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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상상하는, 도시

‘공공미술’이라 이름 붙여진 것들이 부질없는 권위와 거만함을 벗고 회색 도심에 새로운 메시지를 던진다. 도시라는 거대한 캔버스 위에 그려진 작은 쉼표 하나. 회색 도시를 유영하는 새롭고 기발한 아트신, 그 곁을 걸었다.

2016.05.13

 

소리 없는 증식, 김병호

‘쓱’ 지나쳤다면 그저 나팔 모양의 조형물 정도로 여겼을지 모른다. 길이 14m, 너비 6m, 높이 5m, 더군다나 무게만 7.6톤이다. 이 육중한 존재감과 달리 ‘조용한 증식’이라는 의외의 제목이 붙었다. 여의도 IFC몰 야외잔디광장에 우뚝 선 김병호 작가의 ‘조용한 증식’. 이 거대한 몸집을 채우고 있는 것은 가는 파이프 튜브다. “한 명의 목소리, 하나의 사고가 모여 거대한 패러다임이 되듯. 작은 하나하나가 모여 거대한 집합체를 이루고, 그것이 바로 세상을 바꾸는 힘이 아닐까 싶다.” 가는 파이프 튜브의 결합이 만들어낸 또 다른 거대한 집합체. 하나 그 목소리, 움직임은 결코 요란하지 않다. 여기에서 우리가 놓친 한 가지. 그의 나팔에는 미세한 사운드가 흐르도록 설계되었다. 도시를 흐르는 보이지 않는 조용한 움직임처럼. 노란 꽃의 수술에서 포자가 퍼져 나가듯, 그의 노란 나팔은 조용히 그렇게 증식 중이다. 

 

 

 

도심 속 뉴 캔버스, 미디어 파사드

도심 속 회색 건물과 미디어의 색다른 동거. 조형물에 국한된 공공미술이 새로운 캔버스를 입었다. 미디어 파사드가 그것. 건물 외벽 등에 LED 조명을 설치해 미디어를 구현하는 미디어 파사드가 상업용 홍보 영상의 단계를 넘어, 도심 속 새로운 예술 코드로 떠올랐다. 서울스퀘어가 그 중심이다. 가로 99m, 세로 78m의 대형 미디어 캔버스. 서울스퀘어의 4층부터 23층까지의 외벽이 밤이 되면 이 거대한 캔버스로 탈바꿈한다. 어딘가를 향해 걷는 사람들의 모습을 간결하고 명료한 선으로 담아낸 줄리언 오피의 ‘워킹 피플’을 비롯, 반 고흐 인사이드, 문경원, 뮌, 김신일 등이 10분 간격으로 특별한 도심 속 캔버스를 채운다. 한낮의 열기를 식히는 또 다른 밤의 서정. 미디어 캔버스는 어둠이 내려앉은 지친 도심에 찬란한 빛의 위안을 건넨다.

 

 

 

꼬리에 꼬리를 물다, 서도호

영등포의 랜드마크로 떠오른 서도호 작가의 ‘카르마’. 이 청동 조각 작품은 타임스퀘어의 명물이 된 지 오래. 카르마, 우리말로 풀면 ‘업’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마치 목말을 탄 듯한 사람들이, 그것도 줄줄이 맞물려 있다. 목말을 탄 사람들은 하나같이 앞사람의 눈을 가린 채다. 그것은 마치 목적 없이 달려가는 현대사회의 군상처럼 다가온다. 서도호의 ‘카르마’는 동양의 전통 개념인 카르마를 주제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연결되는 일련의 인과를 시각화한 작업이다. 타인의 어깨 위에 올라앉은 군상들. 흥미로운 건 꼬리에 꼬리를 문 이 사람들이 궁극엔 하나의 점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인간의 삶은 결국 연결되어 있다는 듯이, 무엇보다 하나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듯이. 많은 사람의 관계 속에 얽힌 현대사회의, 인간의 카르마. 아이러니한 점은 그 관계가 그려놓은 유려한 선이 아름답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뻔’하지 않은 ‘펀’ 최정화

선명한 색상의 탐스러운 과일나무. 청계9가 서울문화재단 청사에 들어선 최정화 작가의 ‘과일나무’다. 왜 이토록 화려한 과일나무였을까? 주변을 둘러보니 어두침침한 잿빛투성이이다. 작가는 이곳 청계천에 환한 빛을, 밝은 에너지를 던지고 싶었다. 주렁주렁 열린 과일나무를 통해. 높이 7m, 지름 5m인 과일나무 실체는 사실 패브릭이다. 가벼운 패브릭 소재로 어디라도 이동 가능한 ‘과일나무’. 사실 이 작업은 ‘도심게릴라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된 공공미술 프로젝트 중 하나. 서울문화재단에서 시범 설치된 후 서울의 다양한 공간으로 이동해 대중과 만날 예정이다. 뻔한 서울의 일상을 펀(Fun)하게 하는 최정화의 그것을 과연 ‘키치’라는 단어 속에 가둘 수 있을까?  

 

 

 

다 지우고 남은 것, 자비에 베이앙

직선과 기하학적인 도형, 단순한 면…. 그는 사물이나 주제에서 불필요한 것을 다 지우고 최후에 남은 것을 작품으로 보여준다. 그것이야말로 존재의 본질일 것이라고. 프랑스 출신의 자비에 베이앙. 마차를 끄는 역동적 말들로 이루어진 ‘마차’ 시리즈를 통해 익숙한 자비에 베이앙을 이곳 포시즌스 호텔 서울에서 만날 수 있다. 물론 마차 대신 ‘모빌’이다.  고전과 현대라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시간성을 넘나드는 작가는 20세기의 세계적인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의 특징을 현대적인 조각으로 풀어냈고, ‘모빌’ 시리즈가 그것이다. 단순하고 기능주의적인 르코르뷔지에의 건축은 그의 손을 거쳐 가장 심플한 선과 형태의 ‘모빌’로 재탄생한다. 다 지워낸 가장 아름다운 그것으로.

 

 

 

상상의 놀이터, 임옥상

“우리나라의 어린이 놀이터는 어떤가. 신체 운동만을 위한, 그야말로 천편일률적인 놀이터다. 상상력,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고 싶었다.” 임옥상, 그는 서울숲에 어린이를 위한 특별한 놀이터 하나를 만들었다. 이름 하여 ‘거인나라’. 그는 공공미술이라는 거창한 이름 대신 자신의 작품을 어린이 놀이터라 소개했다. 높이 9m의 거대한 작품은 시소와 그네가 전부인 어린이 놀이터에, 특별한 의미를 던진다. 철로 만든 ‘거인나라’는 실제로 놀이기구처럼 거인의 몸속을 타고 오를 수 있는 구조다. 도시는 우리에게 놀이터여야 한다. ‘거인나라’는 그가 도심 속에 선사한 상상의 나라다. 마음껏 유희할 수 있는, 편견 없는 놀이터.

 

 

 

일상이 예술과 만날 때, 이명호

사진작가 이명호의 첫 번째 공공미술 프로젝트. 송도 센트럴공원에 얼마 전 뿌리를 내린  ‘송도트리’다. 마치 자연 속 나무를 캔버스에 담듯, 하얀 천을 스크린처럼 두르는 사진 작업 프로젝트를 펼쳐온 그의 작업을 본 이라면 ‘송도트리’가 조금 더 친숙하게 다가올 것이다. 복자기, 무궁화, 소나무. 그는 센트럴공원에 가장 많은 세 나무에 하얀 천을 스크린처럼 설치했다. 그 순간, 나무는 하얀 천 위에 떠 있는 듯 환영을 만들어내며 낯선 풍경으로 다가온다. 무심코 지나쳤을 일상의 모든 것들. 이명호는 무심한 일상에 낯설고 신선한 풍경 하나를 건넨다. 나무가 성장함에 따라 캔버스를 확장하는 장기 프로젝트 ‘자라나는 조각’으로 진행될 소나무 작품은 앞으로의 모습이 더더욱 기대된다. 

 

 

 

회색 도시를 유영하다, 이용백

도심 속 회색 건물 사이사이를 유유히 헤엄치는 고래. 을지로 시그니처타워 앞에 설치된 이용백 작가의 ‘알비노 고래’다. 그의 고래는 알비노, 즉 백색증을 앓는, 하얀 고래다. 기형이라는 슬픈 운명이지만, 그 희귀성 때문에 신비하게 다가온다는 묘한 이중성을 품고 있는 알비노 고래. 한데 그의 고래는 몸통의 살은 온데간데없고, 뼈만 남은 상태다. 고래에 대한 측은함은 몸통 노즐에서 안개처럼 뿜는 분수 앞에 감탄으로 바뀐다. 물안개와 함께 거대한 회색 바다를 헤엄치는 길이 16m의 하얀 고래. 아쉽지만 이 놀라운 마법은 5월부터 여름까지, 그것도 비 오는 날에만 펼쳐진다. 불완전하지만 낯선 신비함을 간직한 이용백의 ‘알비노 고래’. 바다가 아닌 회색 도시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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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neighbor,네이버,도시,예술,전시,공공미술

CREDIT Editor 설미현 Photo 고영훈 출처 THE 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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