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백이나 옷보다 그릇이나 도자기가 더 갖고 싶어. 10 꼬르소 꼬모 매장에 가도 리빙 섹션으로 먼저 달려가게 된다니까. 까사부가티의 블렌더가 눈에 아른거려 딱히 쓸 일도 없는데 결국 질렀잖아. 상큼한 오렌지 컬러 믹서기를 부엌 한켠에 두니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더라고.” 얼마 전 결혼해 한창 살림살이 수집에 관심이 높은 패션 에디터가 말했다. 꼭 방금 결혼한 새댁이 아니더라도 요즘 패션 업계에서는 퀸마마마켓에서 판매하는 가드닝 제품이나 이태원에 위치한 빈티지 숍 인포멀웨어의 접시나 화병을 선물하는 것이 일종의 트렌드처럼 자리 잡았다. 에디터 역시 얼마 전 생일에 선물로 받은 것들이 몽땅 집에 모셔두기 좋은 리빙 제품 일색이었다(실용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프린트 갤러리 숍 아티초크의 프랜시스 베이컨 판화 작품부터 프랑스 향초 브랜드 불리(BULY)의 향초와 성냥, 그리고 아스티에 드 빌라트의 접시와 빈티지 패브릭 테이블보까지. 다들 약속이나 한 듯 이런 리빙 용품을 선물로 안겨준 것이다. 집에 돌아가 받은 선물을 하나하나 어울리는 곳에 두고 바라본 시간은 갓 쇼핑한 예쁜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섰을 때와는 또 다른 만족감을 주었다. 겉치레가 아닌 정말 나를 위한 여유와 시간을 선물로 받은 느낌이랄까? 엄마에게 이런 푸념을 하니 시집갈 나이가 돼서 그런 거라며 조용히 눈을 흘기셨지만, 단순히 삼십대를 넘긴 물리적 시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도산공원을 시작으로 가로수길 곳곳과 한남동, 홍대 부근 등 요즘 추세와 문화가 재빠르게 반영되는 거리에는 눈에 띄게 리빙 숍이 많아졌고, 콧대 높은 멀티숍에서도 한쪽에 구두나 백 대신 포크와 나이프, 물잔을 같이 두고 팔기 시작했다. 리빙에 대한 관심은 밀라노 가구박람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마르니, 마르지엘라, 베르사체 등 하이패션 브랜드도 가구 디자인에 합류하며, 옷이 아닌 리빙 제품으로 스타일을 제안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좀 더 질 좋고 격조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구현하고자 하는 요즘 세대의 성향 덕분 아닐까? 반드시 비싼 집, 좋은 차, 번듯한 차림새가 아니더라도 각자의 취향과 기호에 맞춘 개인적이지만 평화로운 라이프스타일이 요즘 젊은 세대에게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으니 말이다. 의무적으로 남편과 아이를 위해 밥을 차리고 집을 청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미학과 기쁨과 여유를 위해 집을 꾸미고 요리를 하며 향초를 피우고 여유를 부리는 것. 그래서인지 SNS의 타임라인에도 거울에 비친 착장 컷, 혹은 새로 산 쇼핑 아이템보다 새로 도전한 요리 컷(물론 예쁜 접시와 테이블 매트와 함께)이나 새로 구입한 의자나 선반을 찍은 집과 리빙에 관련된 사진으로 가득하다.

LA를 베이스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주얼리 디자이너 소피 부하이 역시 우아하고 정갈한 주얼리와 함께 그녀가 수집한 빈티지 가구와 세라믹 오브제를 온라인 사이트에서 판매하고 있다. 그녀의 라이프스타일 또한 온라인 사이트의 저널 카테고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급스럽지만 과하게 럭셔리하지 않은 그녀만의 취향과 감각으로 잘 세팅된 집은 그녀의 룩과 주얼리 그리고 오브제와 잘 어우러져 ‘소피 부하이 스타일’로 불린다. 그녀의 주얼리를 하면 마치 그녀의 라이프스타일까지 덤으로 구입할 수 있을 듯한 기대감은 나만 갖는 건 아닐 것이다. 요즘 여자들이 열광하는 또 다른 디자이너이자 멀티숍 오너 마리암 나시르 자데 역시 세련되고 베이식한 스타일의 컬렉션과 함께 그녀의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한다. 그리고 얼마 전 마리암이 남편 그리고 두 딸과 함께 멕시코로 다녀온 지극히 개인적인 가족 여행 사진은 미국 <W> 매거진과 <T> 매거진 사이트에 앞다투어 게재되었다. 마치 잘나가는 브랜드의 신상품처럼 말이다. 물론 마리암 가족의 멕시코 여행 사진은 소박하면서도 다정하고 평화로워 어떤 화보보다 아름다웠다. 퀸마마마켓 오픈 당시 강진영, 윤한희 부부도 그런 취지로 숍을 오픈했다고 말했다. “반짝반짝하는 값비싼 것, 잘 알려진 것을 취하는 게 점점 어색해져요. 그런 애티튜드가 고급스럽지 않기 때문이죠. 요즘은 생활을 인위적으로 강요받는 걸 원하지 않아요. 그건 남의 옷을 빌려 입는 것 같아서 내 삶에 녹아든다기보다는 그저 무엇을 ‘소유’할 뿐이죠. 이제는 내 삶 속 소소한 데까지 공을 들일 수 있는 여유가 진정한 의미에서 럭셔리 같아요.”
남의 눈을 의식한 럭셔리 대신 진짜 여유, 진짜 삶, 진짜 행복, 진짜 평화 이런 소소한 순간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값비싸고 트렌디한 옷을 카드 한도가 넘쳐나는 줄도 모르고 사 모으며, 유령처럼 청담동을 떠도는 패션 빅팀은 행복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으니까. 그것보다는 좋은 사람들과의 소박하고 의미 있는 시간과 나의 내적 고민과 갈등을 다독여줄 여유가 필요하므로. 옷장과 스타일에 관한 관심을 전반적인 라이프스타일로 돌리는 것만으로도 삶을 돌아보는 여유가 생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