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을 넘어 뚜렷한 정체성을 담아낸 공간. 뮤지엄 건축을 향한 우리의 잣대는 높아져야 한다. 예술 작품보다 더 시선을 끄는 독창적인 뉴 뮤지엄의 출현. 이색적인 디자인 너머로 특유의 정체성과 감성, 미래가 그려진다.
2022.10.071 유려하고 심플한 라인의 외관과 쌍으로 마주 보는 옥상정원은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Photography: Palkó György 2 약 50만 개의 픽셀로 마감한 외벽은 민족지학 뮤지엄의 트레이드마크다. 3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방대한 컬렉션을 만날 수 있다. Photography: Palkó György 4 다양한 식물과 나무가 공존하는 옥상정원으로, 가장 높은 지점에 서면 도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Photography: Palkó György
한 쌍의 녹색 지붕 아래
이름부터 낯선 이곳은 지난 5월, 헝가리 부다페스트 시티파크에 문을 연 ‘민족지학 박물관(Museum of Ethnography)’이다. 땅에서 솟구쳐 오르는 듯한 역동적이면서도 심플한 디자인이 특징으로, 건물의 60%가 지하에 있고 꽃과 나무로 조경한 녹색 지붕이 팔 벌려 환영하듯 하늘 위로 솟아 있는 독특한 구조다. 3만4000m²라는 압도적인 규모도 놀랍지만 마주 보는 한 쌍의 언덕을 연상시키는 옥상정원은 특히 시선을 사로잡는다. 다년생식물, 낙엽성 관목, 700여 개 관상용 표본 등을 식재해 꾸민 옥상정원은 방문객을 향해 늘 열려 있다. 이곳의 또 다른 트레이드마크는 약 50만 픽셀로 이루어진 외관의 유리 커튼월로, 헝가리, 베네수엘라, 콩고, 카메룬 등 세계 곳곳의 민족지학 모티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무늬가 픽셀에 새겨져 있다. 아프리카 오브제, 상아, 아마존 지역의 깃털 왕관, 도자기 등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25만 점에 이르는 컬렉션도 이곳의 자랑이다. 역사성과 정체성의 결합, 나푸르 건축(NAPUR Architect)은 이를 실현했다.
COOPERATION NAPUR ARCHITECT(NAPUR.HU/EN/)
1 건축사무소 BIG(Bjarke Ingels Group)는 이전의 건물 2개에 곡선 모양의 구조물을 추가해 두 건물을 건축적으로, 역사적으로 연결했다. Image by Rasmus Hjortshøj 2 중정에는 자생식물을 심어 지역의 정체성을 살렸고, 거울처럼 반사되는 물웅덩이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옥스뵐의 하늘을 투영한다. Image by Rasmus Hjortshøj 3 곡선의 유리벽을 통해 내부로 빛이 흐르도록 설계해 개방감은 물론 따듯한 온기가 전해진다. Image by Rasmus Hjortshøj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다
덴마크 옥스뵐에 문을 연 ‘덴마크 난민 박물관(Refugee Museum of Denmark)’. 이곳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덴마크 최대 난민 캠프가 있던 자리로, 역사 속 난민 캠프와 우리 시대의 난민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기획됐다. “병원 건물 2동은 이전 난민 수용소의 마지막 흔적으로, 미래 세대가 과거와 현재를 제대로 이해하도록 보존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BIG는 기다란 병원 건물 2동 사이에 곡선 형태의 새 구조물(500㎡)을 추가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의미심장한 구조를 착안했다. 총규모는 1600㎡로, 북쪽 윙에는 갤러리가, 남쪽 윙에는 회의실, 소규모 전시 공간, 카페 등이 자리한다. 그중 눈에 띄는 공간은 새로운 곡선 구조물 안에 들어선 중정 형태의 안뜰. 거울처럼 하늘을 반영한 작은 물웅덩이와 지역 자생식물을 심어 옥스뵐의 정체성을 담아냈다. 코르텐 강철로 덮인 새 구조물은 이전 병원 건물의 붉은 벽돌과 함께 포근한 집처럼 느껴진다. BIG는 ‘난민’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여행하듯 무겁지 않고, 따듯하게 풀어냈다.
COOPERATION BIG(BIG.DK)
1 풍경과 생태를 고려한 번다논 아트 뮤지엄은 건축사무소 KTA(Kerstin Thompson Architects)가 설계를 맡았다. 2 다양한 기획전과 컬렉션을 만날 수 있는 아트 뮤지엄. Arthur Boyd and Izabela Pluta, From impulse to action (Installation view), 2022, Art Museum, Bundanon. Photo by Zan Wimberley 3 ‘브리지’에 마련된 34개 객실은 최고의 전망을 자랑한다. Photo by Katie Rivers 4 협곡 위에 매달린 길이 160m의 ‘브리지’는 호주 시골의 가대식 교량에서 영감을 받았다. Photo by Zan Wimberley
풍경 속에 박힌 미술관과 다리
예술 작품 감상은 물론 전망 좋은 객실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인근에서 고래를 만나고 하이킹, 서핑뿐 아니라 피크닉 바구니를 들고 풍경을 즐겨도 좋은 곳. 뉴사우스웨일스 남부 해안의 숄헤이븐강이 내려다보이는 드넓은 초원 지대(1000ha)에 자리한 번다논(Bundanon)에서는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 호주 예술가 아서 보이드와 그의 아내 이본이 기증한 부지에 조성된 번다논은 아서의 가족이 살던 19세기 농가, 아서 보이드 스튜디오, 아티스트 레지던스 등으로 이뤄진 곳으로, 얼마 전 이곳에 두 공간이 추가됐다. 풍경 속에 들어앉은 ‘아트 뮤지엄(Art Museum)’과 ‘브리지(Bridge)’가 그것. 500m² 규모의 아트 뮤지엄은 모던, 현대, 원주민 아트를 아우르는 다양한 전시를 열고, 시드니 놀런, 조이 헤스터 등 여러 작가의 작품 4000여 점을 보관, 소개할 예정이다. 협곡을 가로지르는 길이 160m, 폭 9m의 ‘브리지’에는 창의적 학습센터와 최대 64명을 수용할 수 있는 숙박 시설, 카페 및 레스토랑이 자리한다. 풍경과 예술이 빚은 디자인, 이보다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
COOPERATION BUNDANON ART MUSEUM(WWW.BUNDANON.COM.AU)
1 높이 5m의 플라워 벽(Flower Wall)과 유리로 둘러싸인 모놀로그 아트 뮤지엄. © Seven W 2 고요와 깊이를 더하는 검은색 물의 중정. 중앙에서 나선형으로 흐르는 물의 디자인은 마침내 바다로 조용히 흘러 들어간다. © Seven W 3 투명한 유리벽을 경계로 아트 갤러리와 물의 중정이 자리한다. © CreatAR Images 4 곡선의 채광창으로 햇빛과 달빛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소극장. © CreatAR Images 5 반투명 유리로 빛을 끌어들인 댄스 스튜디오. © CreatAR Images
수묵화를 닮은 선과 고요
세속의 소란과 잡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원하는 무한소수를 위한 뮤지엄. 7월 중국 친황다오에 문을 연 ‘모놀로그 아트 뮤지엄(Monologue Art Museum)’이 원대한 꿈을 펼친다. 3600㎡의 삼각형 모양을 한 모놀로그 뮤지엄은 천천히 펼쳐지는 두루마리를 연상시킨다. 빛이 모퉁이를 뚫고 들어오는 입구의 소극장을 시작으로 고적한 물의 중정과 탁 트인 복도를 따라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요가실과 전시실, 그리고 벽 뒤에 있는 티룸과 댄스 스튜디오까지, 바람결을 따라 두루마리가 펼쳐지듯 그 모습을 드러낸다. “2학년 때 원나라 산수화가 예찬의 ‘육군자도(Six Gentlemen)’를 모사하며 그와 같은 화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 여섯 그루의 나무는 나의 오랜 집착이 되었다.” 건축 및 조경을 맡은 우토피아 랩(Wutopia Lab)의 대표 건축가 유팅(Yu Ting)은 소나무, 느릅나무 등 그만의 육군자도를 물의 중정 안에 그림처럼 그려놓았다. 북적거리는 바다 한가운데 서 있는 고요한 섬. 모놀로그는 고요한 독백의 시간을 선사한다.
COOPERATION WUTOPIA LAB(WWW.WUTOPIALAB.COM)
더네이버, 라이프스타일, 뮤지엄
EDITOR : 설미현PHO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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