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현실 속 행복의 요새를 만들다

과장과 축소, 도치와 반전 등 재기 발랄한 상상력으로 유희적인 패션을 선보이는 ‘빅터앤롤프’의 공동 설립자 롤프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원더랜드 같은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기이하고 도발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한 ‘스튜디오 욥’과 함께 완성한 실사판 드림 하우스.

2022.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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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로봇 얼굴을 닮은 독특한 수납장으로 놀이동산의 유쾌한 분위기를 연출한 거실. 입술 모양의 벽난로, 비둘기 오브제 테이블, 기하학적인 청동 암체어는 스튜디오 욥, 샤를로트 페리앙 라운지 체어는 핏 파라(Piet Parra) 스튜디오에서 맞춤 제작한 패브릭으로 새롭게 커버링했다.       

 

 

절친한 사이인 동갑내기 패션 디자이너와 프로덕트 디자이너. 각자 분야에서 기발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강렬한 개성을 발산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둘 사이에 ‘위험한 거래’가 이뤄졌다. 초현실주적인 유머에 뛰어난 테크닉을 더해 마법 같은 패션 디자인으로 침체된 패션계에 활력을 불어넣은 ‘빅터앤롤프(Viktor & Rolf)’의 공동 설립자 롤프 스뇌렌(Rolf Snoeren)이 도발적인 프로덕트 디자인으로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스타일을 제시하는 스튜디오 욥(Studio Job)의 설립자 욥 스메이츠(Job Smeets)에게 자신과 파트너가 함께 살 집 인테리어를 의뢰한 것. 

 

 

창문이 나열된 벽면은 핑크, 방문이 있는 벽면은 스톤 패턴 벽지로 마감한 복도. 각 방의 문은 체커보드 장식이 들어간 유리창을 삽입한 아치형으로 제작했다. 

 

스튜디오 욥의 벽지로 마감한 캐비닛, 건축가 마르치오 체키(Marzio Cecchi)가 디자인한 라운지 체어, 미국 아티스트 카라 워커(Kara Walker)의 강렬한 그림 작품이 오묘한 조합을 이루는 침실. 

 

 

20대 인턴 시절부터 서로의 성공을 기원하며 성장한 만큼 두터운 신뢰가 쌓인 관계. 하지만 극히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좋고 싫음, 옳고 그름이 판가름 나는 홈 인테리어 디자인을 의뢰한 것은 30년 우정에 금이 갈 각오를 한 것이니 얼마나 위험한 제안인가. “정확히 말하자면 제가 먼저 롤프 커플의 집을 디자인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욥은 롤프의 배우자 브랜든 오델(Brandon O’dell)이 암스테르담 운하 옆 1890년대 옛 은행 건물의 펜트하우스를 구입했다는 말을 들은 순간을 회상했다. 롤프와 브랜든 커플은 집을 계약하면서 욥 스메이츠를 내심 인테리어 디자이너 후보로 정했고, 셋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 집을 샀다는 이야기를 꺼내며 ‘작전’을 본격적으로 펼쳤다. “사실 인테리어 개조는 스튜디오 욥의 실질적인 업무는 아니야. 욥은 가구나 소품 등 프로덕트 디자인을 하는 디자이너거든.” 롤프가 욥의 눈치를 살피며 파트너인 브랜든에게 말을 건넸고, 이때 대화를 듣던 욥은 “그 펜트하우스 내가 할 수 있어!”라며 먼저 인테리어 디자인을 자청했다. 

 

 

벽지 패턴 때문에 ‘고인돌 가족’이 사는 집 같은 느낌이 드는 다이닝룸에는 과학과 마법이 혼합된 작품을 선보이기로 유명한 데이비드 알트메이드(David Altmejd)의 거울 오브제와 1900년대 초반 기하학적인 직선과 그리드를 중시하며 유겐트 스틸 운동을 이끈 요제프 호프만(Josef Hoffman)이 디자인한 의자 등 존재감이 남다른 가구와 오브제가 자리한다.  

 


조심스레 접근한 게 무색할 만큼 흔쾌히 진행된 인테리어 디자인의 결과는? 롤프와 브랜든 커플은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엉뚱함을 섬기는 사원’이라고 한다. 디자이너로서 창작의 근원을 어린 시절 네덜란드 최대 규모의 테마파크 에프텔링(Efteling)에서 쌓은 추억이라 말하는 욥은 햄버거 모양의 카우치, 빨간 벽돌로 만든 듯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펀칭 백, 껍질을 반만 벗긴 바나나 형상의 램프 등 장난스럽고 엉뚱한 물건을 만들어내며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듯, 펜트하우스를 놀이동산처럼 흥미진진하게 탈바꿈시켰다. “모든 사람이 모던하고 심플한 화이트 큐브 같은 집에서 살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편리한 기능을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요리를 못하는 사람도 좋아할 만큼 흥미롭게 디자인한 주방. 왼쪽 창가의 그림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작품.    

 


왓츠앱을 통해 어렵사리 이어간 토론, 악몽 같은 허가 문제 해결 등 18개월간 온갖 고생을 겪으며 완성한 집은 체커보드 유리창이 삽입된 아치형 방문부터 버튼이 촘촘히 박힌 클래식 버튼다운 소파 베드, 도발적인 디자인의 입술 모양 벽난로와 통나무 패널로 만든 듯 고풍스러운 현관문까지 유쾌한 종합 예술품과 다름없다. “이 집은 욥과의 우정을 기념하는 징표예요.” 롤프는 암스테르담이 코로나19로 봉쇄되기 며칠 전인 2020년 3월에 펜트하우스 개조가 완공되었다는 점을 언급하며 이렇게 소회한다. “우리 부부는 새집으로 이사했고, 입주 후 밖으로 나갈 수 없었습니다.” 커플은 고립되었던 기간 동안 욥이 이룩한 놀이동산 같은 집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패션 브랜드 빅터앤롤프 설립자 롤프 스뇌렌(Rolf Snoeren, 왼쪽)과 국제 NGO 활동가 브랜든 오델(Brandon O’dell) 커플. 

 


브라운 레진으로 입체적인 나뭇결을 표현한 현관문은 플레이 모빌 장난감 요새의 문 같은 모습으로 호기심을 자아내고, 입을 크게 벌린 모양의 청동 벽난로 안에는 치아 뒤 목구멍에서 불꽃이 타오르는 것 같은 기이한 풍경이 펼쳐진다. 빌트인 캐비닛은 로봇이 웃는 듯한 표정으로 시선을 사로잡고, 벽돌을 쌓아 만든 듯 눈속임 기법으로 디자인한 주방 가구는 만화적인 분위기로 흥겨움을 선사한다. “솔직히 기능적으로 뛰어난 주방은 아닐 수 있어요. 하지만 요리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아름다운 주방입니다.” 인테리어 디자인을 담당한 욥에게 주방은 이 집에서 손에 꼽을 수 있는 성공적인 결과물 중 하나다. 

 

 

아치형 도어를 열면 문과 같은 아치형 헤드보드 침대가 나타나는 침실. 트레카 드 파리(Treca de Paris)에서 맞춤 제작한 침대는 스튜디오 욥이 만든 거북이 오브제를 발받침 삼아 세팅되었다. 침실 도어 가운데 삽입된 체커보드 유리창과 어우러진 플로어 스탠드는 아르테미데 ‘쇼군’, 눈에서 불빛이 나오는 고양이 형상 조명은 스튜디오 욥 제품. 

 

벽돌인 듯한 착각이 드는 스튜디오 욥의 벽지로 마감한 홈 오피스. 대형 사진은 네덜란드 패션 사진작가 듀오 이네즈 앤 피노트(Inez and Vinoodh) 작품, 테이블은 돔 한스 판 데어 란(Dom Hans van der Laan) 디자인, 캐비닛은 치스 브라크만(Cees Braakman) 디자인으로 모두 빈티지다. 

 


그리고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백미는 펜트하우스에서 누릴 수 있는 루프톱 테라스. 다이닝 공간에 인접한 곡선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나오는 루프톱 테라스에는 빨간색 하트 모양의 야외용 카펫을 깔고, 그 위에 커플을 위한 테이블과 의자 세트를 놓아 로맨틱한 공간을 마련했다. 푸른 하늘과 빨간 카펫의 대비가 강렬해 시선을 잡아끄는 루프톱 테라스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암스테르담 운하 지역의 제한 조건 때문에 외부에서 보이지 않게 연출했는데, 집주인 롤프는 이 아름다운 공간이 상공을 지나는 비행기 안에서는 보이지 않을까 싶다고. 사실 이 엉뚱함은 롤프가 10년간 집이라 부른, 거리 바로 아래 운하에 인접한 5층짜리 카날 하우스에 의도적으로 거부감을 표시한 것이다. “마치 신분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았어요.” 비좁은 공간이 층층이 이어진 예전 집과 달리, 탁 트인 너른 실내가 매력적인 새집은 채광 창이 여러 개 나 있어 도시의 다양한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그중 롤프와 브랜든 커플이 즐겨 보는 풍광은 그들이 3년 전 결혼식을 올린, 19세기 후반에 지은 교회가 주인공인 시티 뷰다. 요가 클래스에서 만난 롤프와 브랜든은 동성 커플인 만큼 결혼식에 특별한 하객이 다수 참석했는데, 그중 주목받은 인물은 인권 운동가이자 네덜란드 왕자비였던 마벌(Mabel of Orange-Nassau)이었다. “그녀가 프리소(Friso) 왕자와 결혼할 때 크레이프 조젯(Crepe-georgette) 원단으로 만든 리본 장식 200여 개가 달린 빅터앤롤프 드레스를 입었었죠.”

 

 

데이비드 알트메이드(David Altmejd)의 두상 조형 작품이 놓여 있는 침실.  

 


롤프는 펜트하우스를 개조할 때 욥 스튜디오에 디자인과 관련한 전권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호기로움도 잠시, 롤프와 욥은 이것이 좋은 생각이 아닐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욥에게 광기 어린 디자인을 창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하지만 제 파트너 브랜든이 원하는 ‘따뜻함’과 ‘편안함’을 공간에 표현하는 건 욥에게 쉽지 않은 일임을 알았습니다.” 오랜 우정을 지켜온 사이지만 상대방의 배우자 취향을 금세 파악하기란 어려운 법. 그러나 인테리어 디자인은 예상보다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브랜든은 자신이 원하던 안정적이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얻어냈으니 말이다. “전체적으로 우아한 라인이 흐르고 라운드 형태로 되어 있어 마음에 들어요.” 

 

 

공용 욕실은 이른바 소변 색깔의 노란 타일로 마감해 위트를 가미한 것이 특징. 벽에 걸린 사진은 뉴욕 아티스트 저스틴 쿠퍼(Justine Cooper) 작품. 

 

연어색 타일로 마감한 침실 내 욕실. 색색의 전구로 이뤄진 천장 조명은 맞춤 제작, 세면대는 빈티지다. 

 


그러나 작업을 하면서 ‘오! 맙소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는 순간도 많았음을 고백했다. 그중 첫 번째 고비는 욥이 남자 성기 모양의 조명을 만들자는 제안이었는데 이를 즉시 거부했고, 다음에 맞이한 위기는 욥이 ‘오줌 색깔’이라 알려준 노란색 타일로 완성한 파우더룸을 보여줬을 때다. 반면 마음을 졸였던 메인 욕실은 별다른 의도나 메시지가 없는 연어색 타일로 마감했다. 욥의 발칙한 영감에서 기인한 파우더룸 타일 컬러에 대한 집주인의 속마음은 어땠을까?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색이었죠. 그냥 이에 대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은 ‘오, 욥, 땡큐’ 정도였습니다.” 재미있는 건 이 말을 건네는 롤프의 목소리에서 여전히 떨림이 감지된다는 것이다. 

 

 

루프톱 정원. 빨간색 하트 모양 카펫 안에 스튜디오 욥의 야외 가구를 놓고 클래식한 펜스를 둘러놓아 특별함을 더했다.

 


롤프는 오늘날 빅터앤롤프의 환상적인 협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빅터와 저는 내면에 있는 유아적인 감정을 잃지 않으려고 해요.” 이 말은 들은 욥 스메이츠는 다음과 같이 자신을 설명한다. “빅터앤롤프가 패션 분야에서 하는 일을 저는 프로덕트 디자인계에서 하고 있는 셈이죠.” 그리고 이들을 객관적으로 관찰한 브랜든은 롤프와 욥을 두고 ‘코스믹 브라더(Cosmic Brother)’, 우주적인 형제라고 표현한다. 같은 날, 같은 해에 태어난 롤프와 욥은 19km 떨어진 곳에서 성장하고 20대에 프랑스 파리의 한 회사에서 인턴으로 처음 만난 사이지만, 어쩌면 어린 시절 에프텔링 놀이동산에서 한 번쯤 마주쳤을지 모를 인연이 아니었을까. “저는 그토록 원하던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꿈을 이뤘지만, 그렇다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아니에요. 그래서인지 저는 요즘 집을 통해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특별할 따름입니다.”        

 

STYLING Barbara Ber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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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이정민PHOTO : Kasia Gatkows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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