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고색창연한 주택에서 평화로운 삶을 살던 한 가족에게 온수 탱크가 터지는 대형 사고가 일어났다. 아끼던 가구를 되살릴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인테리어 디자이너 미리엄 프로웨인은 이 위기를 나다운 집을 만드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았다.
2022.01.21
분홍색과 산호색 등 우아하고 따뜻한 컬러의 암체어와 소파 매치로 한층 밝고 화사한 느낌이 드는 메인 거실. 암체어와 소파 ‘페를라(Perla)’는 1950년대 이탈리아 빈티지로 줄리아 베로네시(Giulia Veronesi)가 디자인했다. 천장에 설치한 모빌은 독일 아티스트 데리크 포벨(Derick Pobell) 작품.

자신이 개조한 집에 직접 수집한 가구와 소품으로 데커레이션까지 완수한 인테리어 디자이너 미리엄 프로웨인. 벽난로 옆에 놓인 파인애플 형태의 도자기 오브제는 그녀가 최근 오픈한 컬렉션 숍 ‘오브젝티(Objeckti)’의 대표 아이템이다.
“원래 우리가 살던 집은 런던 올드 첼시 중심부에 있었어요. 3년 전 온수 탱크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도 그곳에 살고 있었을 겁니다.” 오랜 시간 런던의 문화 예술의 중심지이자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 거주지로도 명성이 자자한 첼시에서 살았던 인테리어 디자이너 미리엄 프로웨인(Miriam Frowein)은 뜻하지 않은 사고로 예정에 없던 이사를 감행해야 했다. 첼시는 현대미술과 빈티지 디자인, 공예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미리엄에게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고 오랜 시간 심혈을 기울여 모은 가구와 소품이 제자리를 꿰차고 있던 집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그녀의 작품과 다름없었다. “온수 탱크가 터지면서 집 안은 그야말로 폐허가 되었죠. 가구 대부분은 손상되거나 아예 쓸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우리 가족의 사진과 가족 구성원의 개인적인 기념품이 유실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죠.” 애정을 갖고 있던 집이 하루아침에 살 수 없는 곳이 된 절망감을 어찌 표현할 수 있을까. 하지만 미리엄은 긍정적인 마음으로 새로운 보금자리를 적극적으로 알아봤고, 친구를 통해 런던 벨그라비아 지역에 있는 좋은 집을 소개받았다. 우연의 일치인지 행운인지 친구가 연결해준 집은 두 딸과 남편, 총 네 명의 가족이 각자 독립된 공간을 갖고 살기 좋은 5층짜리 주택이었고, 런던의 주택 기준을 두고 보면 평균을 웃도는 상태였다.

고전적 우아함과 컨템퍼러리 아트워크의 만남이 돋보이는 2층 거실. 벽난로 위에 걸린 골드 링 모양의 ‘론도(Rondo)’ 금속 거울 오브제는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오스카르 지타(Oskar Zieta)의 디자인, 다양한 컬러 패턴의 그림은 미국 아티스트 제프리 깁슨(Jeffrey Gibson) 작품.
“객관적으로 설명하자면 매우 밋밋한 기본 형태로 살짝 남성적인 터치가 더해진 스타일이었습니다. 그중 제 마음을 사로잡은 건 높은 천장과 빅토리언 시대 주택 특유의 볼륨 있는 방, 그리고 고풍스러운 계단 난간 디자인이었죠. 공간 고유의 특색을 살리면서 우리 가족만의 라이프스타일을 담아내고 싶은 도전 의식이 생겼습니다.” 미리엄이 이 집을 선택하면서 세운 목표는 가족 모두가 만족하는 ‘패밀리 홈’을 만드는 동시에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고풍스러운 런던 도시 풍경을 배경으로 빈티지 가구와 컨템퍼러리 아트 워크의 세련된 조합이 돋보이는 2층 거실. 소파와 그 뒤에 놓인 플로어 스탠드 한 쌍은 빈티지, 창문과 창문 사이에 걸린 원형 거울은 프랑스 아티스트이자 주얼리 디자이너 린 보트랭(Line Vautrin), 테이블과 소파 뒤에 놓인 청동 그릇은 벨기에 예술가 아도 샬레(Ado Chale) 작품. 소파 오른쪽에 놓인 조형 작품 같은 조명 라이트 스탁(Light Stacks)은 매트 가뇽(Matt Gagnon) 디자인.
자신의 이름을 내건 ‘미리엄 프로웨인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는 미리엄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원래 법학을 전공하고 변호사로 사회 생활을 시작한 미리엄은 일하면 할수록 자신이 예술과 디자인에 더 큰 열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런던 인치볼드 디자인 스쿨(Inchbald School of Design)에 진학했다. “아무래도 어렸을 때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게 분명해요. 저는 독일에서 태어났고 어머니는 페르시안 출신으로 페르시안 앤티크 러그와 카펫을 판매하는 사업을 하셨어요. 그 덕분에 저는 카펫의 다양한 컬러, 패턴, 텍스처를 접할 수 있었고, 이것이 제 내면에서 디자인 본능으로 자리 잡았지요.” 미리엄은 디자인 스쿨에 진학하기 전, 결혼과 출산이라는 인생의 중요한 이벤트를 치르며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의 출발이 다소 늦어졌다. 하지만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고자 하는 동기가 확실했던 그녀는 절충적이면서도 예측 불가한 복잡미묘한 스타일로 자신만의 디자인 언어를 구축하며 비교적 짧은 시간에 런던 하이엔드 인테리어 디자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메인 거실과 이어진 다이닝룸 입구. 벽면에 걸린 사진 한 쌍은 이스라엘 현대 예술가 미칼 로브너(Michal Rovner) 작품.
“제 작업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한마디로 똑같은 프로젝트가 없다는 것입니다.” 미리엄은 이에 대해 고대 그리스 사상가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을 인용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고 했어요.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고 사람 역시 생각과 마음이 변하는 존재니까요.” 처음 내가 들어갔던 강물은 이미 하류로 흘러갔기에 두 번째 그 강에 들어간다 해도 그것은 같은 강물이 아니요, 나 역시 처음 강에 들어갔을 때와 모든 것이 동일한 내가 아니기에 ‘만물은 변화하고 생성한다’고 설파한 헤라클레이토스의 이야기 속에서 인테리어 디자인의 묘미를 깨달은 미리엄은 자신의 작업을 두고 고객과 함께 매번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다고 표현한다.

미리엄의 홈 오피스 중심에는 한지를 활용해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창조하는 작가로 유명한 김민정 작가의 작품이 걸려 있다. 테이블 앞에 놓인 의자는 건축가 워런 플래트너(Warren Platner) 디자인.
“저는 클라이언트에게 기존에 익숙했던 환경을 벗어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게 다양한 디자인 세계를 직접 둘러보고 체험해보도록 부드럽게 ‘푸시(push)’하는 걸 즐깁니다. 고객과 그 여정을 함께하다 보면 클라이언트는 독특한 성취감을 얻는 동시에 매우 개성적인, 자신다운 공간을 완성하며 여행을 마무리하게 되죠.”

주방 내에서 간단한 식사와 음료를 즐길 수 있는 식당 공간. 자주 사용하는 그릇을 정리해두는 상부장은 스테인리스 스틸로 제작해 실용적이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살렸다. 펜던트 조명은 톰 딕슨, 흰색 선반 안에 놓인 도자기는 모두 니콜라이 위그 한센(Nicholai Wiig-Hansen) 디자인.
미리엄의 인테리어 디자인 프로젝트는 어느 하나 닮은 것이 없지만 이를 관통하는 일정한 문맥은 존재한다. 그가 디자인한 공간은 언제나 컬러풀하고, 즐겁고, 시간을 초월하는 우아함이 깃들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는 부동의 핵심 요소는 예술. 유럽의 거장 예술가부터 현대 작가의 아트워크를 인테리어 디자인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엮어내고 경우에 따라서는 신진 작가와 장인의 내공이 느껴지는 작업을 선별해 개인에게 최적화된 스타일을 제안한다. 이는 미리엄의 보금자리도 예외는 아니다. 벽마다 걸려 있는 그림, 코너마다 놓인 조형 작품, 순수 예술품이 아니어도 독특한 존재감을 뽐내는 가구, 조명, 거울 그리고 장식 오브제의 절묘한 조합은 예술 애호가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장면. “디자이너로서 제가 고집하는 집착과 트레이드마크가 있다면 그건 바로 현대미술과 ‘수집 가능한’ 컬렉션을 결합하는 것입니다.” 예술 애호가이자 아트 컬렉터인 그녀는 회화와 조형 등 순수 작품과 그에 준하는 예술성을 지닌 오브제를 조합하며 독보적인 개성을 연출하되 기품을 잃지 않는 분위기를 유지함으로써 시간을 초월하는 공간을 완성한다.

곡선과 원형의 조화로 부드럽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돋보이는 다이닝룸. 벽난로 위에 걸린 월넛 프레임 거울은 이탈리아 가구 브랜드 포라다(Porada), 타원형 대리석 사리넨(Saarinen) 테이블은 놀(Knoll), 분홍색 쿠션의 다이닝 체어는 구비(Gubi) 제품. 벽난로 왼쪽의 그림은 현존하지 않는 풍경을 그리는 화가 피터 도이그(Peter Doig)의 <100년 전에> 판화 에디션, 오른쪽에 놓인 다채로운 색상의 구를 쌓아 올린 조각은 영국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애니 모리스(Annie Morris) 작품이다.
“제가 가장 아끼는 컬렉션은 홈 오피스에 자리한 벨기에 예술가이자 최고의 제품 디자이너인 아도 샬레(Ado Chale)의 청동 그릇과 제 40세 생일에 남편이 생일 선물로 준 프랑스 디자이너 린 보트랭(Line Vautrin)의 1955년 작 원형 거울이에요.” 미리엄이 꼽은 애장품은 그녀가 직접 가리키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울 만큼 작은 볼륨에 물성에 충실한 담담한 형태지만 해당 컬렉션이 있는 공간을 들여다보면 그 미미한 존재가 거대한 창문을 배경으로 당당하게 뿜어내는 광채는 범상치 않게 느껴진다. 마치 패션에 있어서 일부분을 차지하지만 궁극적인 아름다움을 완성해주는 주얼리처럼 말이다. “순수 회화나 조각은 세상에 단 한 점밖에 없지만, 예술성을 품은 오브제는 작가나 장인의 개성이 담보되면서 수집 가능하기에 이를 잘 활용한다면 충분히 개성적인 공간을 연출할 수 있죠.” 이런 의미에서 미리엄은 최근 ‘수집 가능한 예술’을 선보이는 사이트 ‘오브젝티(objekti.co.uk)를 열고 멕시코 장인이 만드는 도자기 오브제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2019년에 멕시코로 가족 여행을 떠났는데 현지에서 독특한 조각 장식이 매력적인 도자기를 만났어요. 디자인 업계에 종사하는 남편의 동생 벤저민과 저는 이 도자기에 반해 컬렉션으로서 가치 있게 소개할 방법을 강구했죠.”

담백한 톤으로 간결하게 디자인한 마스터베드룸 내 욕실.
미리엄이 사랑에 빠진 멕시코 도자기는 특정 지역의 숙달된 장인이 만드는 것으로, 수공예로만 제작된다. 그 대표격인 파인애플 모양의 도자기를 살펴보면 손으로 일일이 빚은 꽃봉오리, 솔방울, 작은 씨앗 등이 덧붙여지면서 볼륨이 형성되고, 절개, 투각 등의 섬세한 조각을 통해 사실적인 질감이 표현되며 황산구리 및 기타 미네랄이 혼합된 유약을 입고 여러 번 소성을 거치고 나면 화려하고 이국적인 오브제로 탄생한다. “멕시코 도자기를 우리 집에 매치해보니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 대단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오브젝티의 첫 번째 컬렉션은 앞으로 제 인테리어 디자인을 특별하게 만들어줄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리드미컬한 패턴 패브릭으로 제작한 침대 헤드보드와 노르웨이 아티스트 이다 에크블라드(Ida Ekblad)의 기하학적인 그림이 조화로운 생동감 넘치는 침실.
지하를 포함해 5개 층으로 구성된 미리엄의 집은 그녀가 처음 의도한 바가 모두 반영되었다. 지하에는 온 가족이 모여 영화를 볼 수 있는 홈시어터가 있고, 첫 번째 층은 메인 리빙룸과 다이닝룸으로, 두 번째 층은 미리엄의 디자인 오피스로 구성했다. 3층에는 아홉 살, 열두 살 두 딸의 생활 패턴을 세심하게 반영한 공간이 자리하고, 4층은 부부의 침실과 욕실이, 그리고 맨 위층인 다락은 작은 리빙룸이 딸린 게스트룸으로 꾸몄다. 가족 구성원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한 디자인과 공간 배치,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정체성과 취향을 마음껏 펼쳐낸 홈 오피스가 있는 집은 미리엄을 포함한 모든 가족 구성원이 각자 느끼기에 ‘나다운 집’이라고 표현할 만큼 만족도가 높다.

이 집의 맨 위층 다락은 빈티지의 아늑함과 푸른 컬러와 식물 그림의 싱그러움이 조합을 이룬 게스트룸으로 꾸몄다. 소파와 데이베드는 덴마크 디자이너 피터 흐비트(Peter Hvidt)의 빈티지로 크바드라트(Kvadrat) 패브릭으로 커버링했다. 왼쪽의 금속 플로어 스탠드는 이탈리아 빈티지, 삼발이 형태의 플로어 스탠드는 영국 디자이너 윌리엄 여워드(William Yeoward) 제품.
“사용자의 니즈에 맞게 디자인한 공간이 사용자로부터 애용되는 것만큼 성공적인 인테리어는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우리 가족이 각자의 공간을 사랑하고 잘 사용하는 걸 보면 디자이너로서 보람을 느낍니다.” 뜻하지 않은 사고를 계기로 자신과 가족 모두 행복한 집을 만들 수 있었던 미리엄의 ‘전화위복’ 인테리어 디자인이 특별한 의미를 지닌 건 맞지만, ‘같은 프로젝트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그녀의 소신대로 유일무이한 케이스로 남길 바란다.
STYLIST Fiona Evans
더네이버, 라이프스타일, 공간
EDITOR : 이정민PHOTO : Bndicte Drummond(Photofo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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