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옷의 본질

많은 패션 하우스가 고유의 아카이브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물론, 50년 후에도 여전히 아름답고 즐길 만한 옷이다.

2020.04.22
페이스북 트위터 링크

1, 2 끌로에 하우스만의 터치를 더해 유행과 계절에 휩쓸리지 않는 룩을 선보인 2020 S/S 컬렉션과 디자이너 나타샤 램지 러버. 3  클래식한 스트라이프 셔츠와 화이트 팬츠를 활용해 내추럴한 멋을 살렸다. 4 이탈리아인의 일상복에서 영감을 얻어 최상급 원단으로 만든 아뇨나의 2020 S/S 컬렉션. 5 부드러운 소재와 정교한 재단이 돋보이는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의 질샌더 드레스. 

 

“이 옷은 할머니가 되어서도 입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한 선배가 본인의 소비를 합리화하기 위해 자주 내뱉던 말이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입을 수 있는 옷’, 즉 오래 두고 입을 수 있는 옷을 고르기란 생각보다 까다롭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과 수준 높은 테일러링. 소재 또한 잘 살펴봐야 한다. 예를 들어 이번 시즌 트렌드인 레더 셔츠의 경우,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이지만 소재의 특성상 유행의 물결을 벗어나긴 힘들어 보인다. 별도의 특수 관리 없이도 보관이 가능한 제품인지, 활용도가 높은 아이템인지, 생산국이 어디인지까지, 고려할 요소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요즘은 생산과정이 공정했는지, 친환경적으로 만들었는지까지도 고려하는 의식 있는 소비가 요구되는 시대이지 않은가. 이렇듯 귀찮은 판단 과정을 거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옷의 본질에 초점을 맞추고 ‘잘’ 만들어진 옷을 갈망하며 그런 조건을 충족하면 기꺼이 지갑을 연다. 

 

6, 9 어디에나 매치하기 좋은 미니멀한 재킷을 각자의 개성을 살려 완성한 스트리트 룩.  7, 8 두 번째 컬렉션 만에 ‘뉴보테가’의 입지를 굳건히 지킨 디자이너 대니얼 리와 그의 2020 S/S 컬렉션. 10, 11 단정한 테일러드 룩을 선보이며 패션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 디자이너 조셉 알투자라의 2020 S/S 컬렉션. 

 

발 빠른 패션 하우스들은 이를 눈치챈 듯, 유행의 물결에 휩쓸리기보다는 브랜드 정체성에 집중한 컬렉션을 선보였다. 패스트 패션의 맹렬한 기세 속에서 패션 하우스까지 컬렉션을 선보임과 동시에 제품을 판매하고, 크고 작은 캠페인 활동과 함께 끊임없이 새로운 트렌드와 이슈를 만들어내던 몇 해 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2020 S/S 시즌 아이덴티티를 강점으로 내세운 브랜드는 끌로에, 보테가 베네타, 더 로우, 르메르, 질샌더 등이 대표적. 끌로에의 수장인 나타샤 램지 러버는 이번 컬렉션에 대해 “계절에 구애받지 않는 소재를 활용한 하우스만의 방식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오래 두고 입을 수 있는 실루엣을 선보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죠”라고 밝혔다. 그 결과 몸의 라인을 타고 흐르는 드레스와 블라우스, 테일러링에 집중한 재킷, 팬츠 등 기본에 충실한 아이템을 중심적으로 배치했고, 브랜드 고유의 여성스러운 무드를 적절하게 녹여내는 데 성공했다. 4대 패션위크를 통틀어 가장 기대를 모은 보테가 베네타의 대니얼 리는 “매치하기 좋은 파우치 백, 편하고 실용적인 룩 등을 통해 하우스의 아이콘을 확실히 하고자 했습니다”고 설명하며 두 번째 컬렉션 만에 본인의 입지를 더욱 확고히 했다. 한편, 여성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디자이너 조셉 알투자라는 지속 가능성의 일환으로, 지난 컬렉션에서 선보인 6벌의 슈트 중 한 벌을 다시 런웨이에 올렸다. “매 컬렉션은 별개의 것이 아닌,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제가 같은 디자인의 슈트를 다시 런웨이에 올린 이유죠.” 그는 패션은 지나면 버려지는 것이라는 일회성의 개념에 반기를 들고, 패션도 지속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모두가 ‘기본’을 내세우며 미니멀한 디자인을 선보이면 새로울 게 없지 않냐고? 생로랑의 테일러드 재킷과 르메르의 테일러드 재킷을 과연 ‘같다’고 할 수 있을까? 생로랑은 당당하고 섹시한 분위기를 뿜어낸다면, 르메르의 재킷은 정제되고 우아한 멋을 발한다. 여기에 디자이너가 시즌마다 집중하는 디테일까지 더해지니 클래식이라 할지라도 그 종류는 무수하고, 늘 새롭기 마련이다. 


브랜드가 고유의 정체성에 집중하며, 뛰어난 소재와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옷의 본질을 추구하는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를 따라가는 데 소비자가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한 데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소비 시장이 얼어붙었기 때문. 어려운 시기인 만큼,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브랜드들은 하우스의 근간이 되는 무기를 빼어 들었다. 고급스러운 원단과 브랜드의 기술력을 집약한 테일러링이 그것. 덕분에 ‘잘’ 만들어진 옷을 원하는 소비자의 욕구는 잠정적으로 채워질 예정이다.   

 

 

 

더네이버, 패션트렌드, 옷의 본질, 잘 만들어진 옷

CREDIT

EDITOR : 송유정PHOTO : Imaxtree

아이매거진코리아닷컴, 더네이버, 동방유행 ©imagazinekorea.com, ©theneighbor.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