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피드S에 대한 나의 기억은 이채롭다. 저편에서 달려오던 라피드S가 내 앞에 멈추었을 때, 배기가스의 푸르스름한 향기를 느꼈다. 빠르고 효율적이지만 무미건조한 독일 차에서 나는 텁텁한 냄새와는 달랐다. 연료가 타면서 나오는 힘의 향기라고나 할까? 이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냐고 할 지 모르지만, 차를 좋아하는 사람은 안다. 이런 향기로 느낄 수 있는 차의 진가를. 라피드S의 또 다른 향은 문을 열었을 때 물씬 풍기는 진한 가죽 내음이다. 요즘 자동차 가죽 시트를 보면, 이게 가죽인지 비닐인지 구분할 수 없는 지경이다. 때가 타고 표면이 갈라질까 봐 가공을 너무 심하게 해서 그렇다. 심지어 최고급 리무진의 시트 역시 표면이 부드러울 뿐 가죽 본연의 향기는 사라진 지 오래다. 하지만 라피드S는 가죽은 가죽답게 그 특징을 남겨두었다. 혹자는 냄새가 너무 진하다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진짜’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지금 이 문장만 보고도 흥분할 것이고 공감할 것이다. 이처럼 나와 함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차를 도대체 얼마 만에 만난 것인지! 게다가 무채색 톤으로 일관된 실내는 고급스러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너무 모던해서 화려하게 느껴질 정도다. 좋은 소재와 재단으로 완성한 블랙 이브닝드레스가 그 어떤 화려하게 치장된 드레스보다 고급스럽고 화려하다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거기에 뱅앤올룹슨의 오디오는 실내를 정숙하게도, 한없이 신나게도 해준다. 이는 음향 엔지니어들이 애스턴 마틴 자체의 사운드와 오디오의 밸런스를 맞춰 완벽한 오디오를 즐길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라피드S는 오직 하나뿐인 4도어 스포츠 세단이다. 설명이 필요 없다. 옆에서 본 차체의 비율과 실루엣이 말해준다. 전장이 5미터나 되는 이 차는 애스턴 마틴의 트레이드마크인 ‘백조 날개’의 모양을 가졌다. 이것이 라피드S가 마냥 날렵해 보이거나 터프해 보이지 않고, 우아한 듯 강해 보이는 이유다. 그 덕에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어울린다. 기다란 보닛 속에는 12기통 엔진을 프런트 미드십으로 품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세단처럼 ‘변형’한 4도어 쿠페들과는 순도가 다르다. 단지 뒤를 약간 늘려 뒷문 두 짝을 더했을 뿐 차체 전체의 실루엣은 고성능 스포츠 GT 쿠페의 그것이다. 뿌리부터 지극히 스포츠 GT다.

(위부터) 라피드S의 조작 버튼은 디지털과 아날로그 방식을 적절하게 결합하였다. 라피드S는 애스턴 마틴 중 가죽이 가장 많이 사용된 차다. 사용자의 취향대로 수천 가지의 색을 조합할 수 있다. 아름다운 라인과 균형감이 느껴지는 보닛은 차체를 우아하게 만든다.

차의 모든 것이 디지털 첨단 장비로 제어되고 있다는 사실이 무서울 때가 있다. 무수한 장비를 무턱대고 믿어야 하는 내 처지를 생각하면 말이다. 운전자로서 내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결정하고,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진정한 드라이버를 인정하는 차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하나 라피드S는 운전자와 교감한다. 내가 주인임을 인정해주는 그런 차다. 실제로 라피드S는 애스턴 마틴에서 가장 진보된 엔진을 장착하고 있다. V12기동 6L 엔진은 560마력이란 출력을 낸다. 하지만 내 발끝 하나로 이 힘을 정교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 더 놀랍다. 요즘 흔한 터보 엔진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이유다. 이건 ‘진짜’다. 속도가 KTX의 영역에 근접할수록 오히려 큰 돌덩어리 같은 안정감은 그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을 테니! 코너를 돌 때도 그 안정감은 변함없다. 복잡한 전자 제어나 첨단 장비보다 제대로 만든 차체와 서스펜션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 차를 타보면 알 수 있다. 첨단 사륜구동이 판치는 요즘에 이 단순한 후륜구동 방식이 더 믿음직하다니! 네 바퀴에 걸리는 하중과 접지력이 내 손발처럼 느껴진다. 그 때문에 나는 560마력 가운데 얼마를 노면에 퍼부을 수 있을지 차를 믿고 결정하면 된다.

오리지널의 가치, 탄탄한 기본이 선사하는 아름다운 경험. 마지막으로 남은 영국 자동차 브랜드 애스턴 마틴이 나는 사라질까 두렵다. 독보적인 가치를 위한 그들의 노력을 나는 다시금 느꼈다. 라피드S를 통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