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북동쪽, 그것도 떠오르는 19구에 위치한 라 빌레트 공원. 이 아름답고 개성 넘치는 공원이 예전엔 도살장과 정육점이었다니, 도대체 누가 믿기나 할까. 세계적인 건축가이자, 이론가 베르나르 추미에 의해 1993년 설계된 이 공원은 산책로, 정원, 야외 조각 공원 등을 조성, 파리 시민을 위한 특별한 휴식처로 자리 잡았다.

얼마 전 이곳에 회색빛의 거대한 건축물 하나가 들어섰다. 필하모니 드 파리(Philharmonie de Paris)다. 이름에서 짐작되듯 이곳은 클래식 전문 공연장이다. 2400석 규모의 이 콘서트홀은 까다로운 국제 음향 기준도 무리 없이 충족시켰다. 그런데 단지 이들의 목표가 세계적인 클래식 공연장이었을까? 음악과 어우러진 라이프스타일 공간. 탁 트인 전망의 레스토랑, 리허설 스튜디오, 전시 공간, 연회장 등으로 이루어진 그 구조만 봐도 이미 답은 나온 듯하다. 높이 52m의 역동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이 건축물은 공사 기간만 5년이 소요됐다. 그 외관부터도 심상치 않다.

이 혁신적인 건축물 뒤에 바로 프랑스가 자랑하는 건축가 장 누벨이 있다. 모던하면서도 음향을 살릴 수 있는 공간. 무엇보다 구름, 비, 햇빛, 그리고 빌레트 공원의 아름다움과 조화를 이룰 것. 그는 이 모든 걸 끌어안을 수 있는 알루미늄 패널을 외벽에 사용했다. 더욱이 그래픽적인 스크래치 효과까지 더해져, 바람을 타고 음악이 파도를 치는 듯한 다이내믹한 볼륨감이 느껴진다. 이곳의 도시 풍경과도 딱 떨어지는 조화를 이뤄냈지만 무엇보다 지붕 위로 관람객이 걸을 수 있도록 설계한 구조가 인상적이다.

올봄엔 이 옥상 공간도 오픈할 예정이라니 기대해도 좋겠다. 오케스트라는 물론 재즈, 세계 음악 등 다양한 음악을 어우르는 공간, 도심과 교외를 연결하는 새로운 문화 랜드마크다. 필하모니 드 파리의 미래는 이미 예견된 듯하다(www.philharmoniedeparis.f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