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새로운 시작, 희망을 품은 아트

2024년 갑진년 청룡의 해가 떠올랐다. 새로운 시작과 희망의 에너지를 품은 예술가들의 창조적 시선과 함께.

2024.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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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고 론디노네, Achtzehntenjunizweitausendd reiundzwanzig, 2023, Watercolor on canvas, artist’s frame, 30.5×45.7cm, Courtesy of studio rondinone,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명상과 사색의 시간 

우고 론디노네 

토템을 연상시키는 형형색색의 거대한 돌탑 조각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작가. 스위스 출신의 현대미술가 우고 론디노네(Ugo Rondinone)가 새해, 대자연의 에너지로 다시금 우리를 매혹한다. 수채화 연작 〈Mattituck〉을 통해서다. 태양, 시간, 바람, 소리 등 대자연을 세밀히 관찰, 기록하고 그것을 통해 삶의 성찰을 유도하는 론디노네. <매티턱>은 그의 집이 있는 롱아일랜드의 매티턱에서 본 노을을 묘사한 연작으로, 바다, 해, 하늘만이 화면을 채운다. 컬러 또한 보색을 이루는 세 가지 색만 존재한다. 그는 이 간결한 색 구성만으로 해가 뜨고 지는 순간의 풍경, 노을의 섬세함, 그리고 일상의 자연을 대면하는 인간의 감성 등을 화폭에 담아낸다. 매일 뜨고 지는 해. 가장 아름답지만 잊힌, 이 소소한 일상은 론디노네의 시선을 통해 새로운 시공간으로 탈바꿈한다. 그날의 온도, 시간, 바람 소리, 세상의 고요를 품은 채. 익숙하지만 낯선 그곳에서 우리는 이끌리듯 명상의 시간을 갖게 된다.

 

 

 

유영국, Work, 1984, Oil on canvas, 105×105cm, 이미지 제공 유영국미술문화재단

 

굳건한 붉은 바위처럼 

유영국 

동트기 직전, 어둠을 뚫기 위한 고요하고도 치열한 움직임이 하늘과 바다를 보랏빛으로 물들인다. 그 틈으로 해를 삼킨 듯 붉게 달아오른 바위.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의 작품 ‘Work’다. 고향 울진의 깊은 바다, 장엄한 산맥, 붉은 태양 등 그의 화면은 자연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저 자연은 아니다. 점·선·면의 절제된 형태와 강렬한 색채로 구현된 기하학적 추상. 유영국은 이를 통해 자연의 정수, 본질을 담아내고자 했다. 60세까지 기초를 공부하고 그 이후에는 ‘자연으로 더 부드럽게 돌아가리’라 생각했다는 그. 실제 예순 이후인 1980년대 작품은 원숙한 색면 조형미가 두드러지며 서정성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1984년 작인 ‘Work’ 또한 차분한 보라색과 바위의 갈색, 청록색 등에서 한층 부드러워진 자연의 표현이 엿보인다. 더불어 우뚝 솟은 바위의 붉은 색면과 가늘게 갈라지는 붉은 선은 화면에 역동성을 더한다. 해를 품은 붉은 바위처럼 굳건하고 역동적으로 나아갈 2024년을 기원하며. 

 

 

 

김선우, The Dreamers, 2023, Gouache on canvas, 145.5×112cm, 이미지 제공 PBG

 

날아오르는 도도새 

김선우

당신의 꿈, 희망은 무엇입니까. 언제부터인지 꿈을 묻는 것이 공허한 질문처럼 여겨진다. ‘도도새 작가’ 김선우는 우리의 꿈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제목부터 ‘The Dreamers’인 이 작품도 도도새와 함께다. 천혜의 섬 모리셔스에 살던 도도새. 천적도 없고, 풍부한 먹을 것 덕에 날 필요도 없던 도도새는 스스로 날기를 포기해 결국 멸종의 비극을 맞았다. 김선우는 도도새에게서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혀 좌절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 거친 현실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성적인 현실주의자가 되어야 하지만, 혁명가 체 게바라가 말했듯, 현실을 직시하는 동시에 가슴속에는 불가능한 꿈과 이상을 끌어안고 살아야 한다.” 김선우의 도도새는 별빛 내려앉은 찬란한 바다 위로, 미지의 초록 숲 위로 다시금 날아오른다. 색색의 풍선을 타고서. 미지의 낙원인 그곳. 그 낙원에서 새로운 길을 찾기를, 다시 날아오르려는 마음의 근육을 키울 수 있기를, 김선우는 도도새와 함께 바라는 것이다. 

 

 

 

(왼쪽) Catherine Opie, Untitled #9 (From Your Shore to My Shore), 2009, Pigment print, 109.2×81.9cm (print), 111.76×84.45×5.08cm (framed) ©Catherine Opie. Courtesy of Regen Projects, Los Angeles and Lehmann Maupin, New York, Hong Kong, Seoul, and London  (오른쪽)  Catherine Opie, Untitled #10 (From Your Shore to My Shore), 2009, Pigment print, 109.2×81.9cm (print), 111.76×84.45×5.08cm (framed) ©Catherine Opie. Courtesy of Regen Projects, Los Angeles and Lehmann Maupin, New York, Hong Kong, Seoul, and London

 

모두에게 평등한 풍경 

캐서린 오피 

어느 바다인지, 떠오르는 해인지, 지는 해인지도 모호하다. 바다와 수평선. 핸드폰 사진첩 어딘가에 하나쯤은 있을 법한 지극히 평범한 풍경이다. 캐서린 오피(Catherine Opie)는 이 평범한 소재를 전혀 다르게 접근한다. 아메리칸드림과 미국적 정체성을 둘러싼 이상 및 규범에 의문을 던지는 역동적인 사진 작업으로 알려진 작가가 아닌가. <당신의 해안에서 나의 해안으로(From Your Shore to My Shore)> 연작은 2009년 작가가 화물선을 타고 한국에서 캘리포니아 롱비치로 되돌아가던 열흘간의 여정에서 매일의 일출과 일몰을 포착한 사진이다. 중앙의 수평선을 기준으로 대등하게 나뉜 하늘과 바다. 한국인지, 미국인지, 그 이외의 해역인지, 장소를 특정할 만한 어떤 단서도 없다. 분명한 것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보고 접근할 수 있는 보편적인 풍경이라는 것뿐. 작가는 이 평등한 풍경 속에서 인류애를 유출해낸다. 차별 없이, 모두에게 평등한 풍경. 그 희망을 담은 새해가 떠오른다. 

 

 


정직성, Dragon 202301, 2023, Acrylic and oil on canvas, 130.3×193.9cm 

 

청룡, 바람을 가르다 

정직성 

“한여름, 열섬이 형성된 도시 고가도로 옆에서 훅 불어오는 습도 높은 더운 바람을 강렬하게 느껴본 적이 있다. 한국에서 수기(水氣)의 상징적 도상으로 여겨지는 용을 끌어들여 그 바람의 느낌을 상기하고, 현재의 현실적 상황성을 강조하여 그린 그림이다.” 정직성의 ‘Dragon’은 제목처럼 용을 모티프로 하지만, 더 주목할 것은 ‘바람’이다. 있다고 믿지만 볼 수 없는 것들, 아름답고 찬란하지만 곧 사라지는 것들…. 정직성은 이러한 것들을 자신만의 붓질과 물감의 흔적을 통해 드러내고 환기한다. 다닥다닥 붙은 비좁은 집에서 간신히 숨 쉬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을 담은 <연립주택>, <공사장 추상>, <녹색 풀>, <현대 자개 회화> 등 다양한 연작을 통해 현실에 부대끼는 약자들의 팍팍한 삶,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마음을 기울여온 정직성. 청룡의 해를 맞은 2024년, 정직성은 영험하고 상서로운 기운의 청룡을 소환해 그들에게 생동하는 에너지를 전한다. 위로와 쉼을 품은 바람과 함께.

 

 

 

사이먼 고, Departed, 2022, Oil on canvas, 130.5×97cm, Courtesy of SEOJUNG ART and the artist 

 

관계에 관한 고찰 

사이먼 고

관계에 있어 사람이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모두가 예상하듯, 가능하지 않다. 사이먼 고는 이 지점에 시선을 멈춘다. 사랑 그리고 관계에 대한 고찰을 동화 같은 인물들로 풀어내는 사이먼 고. 배경만 다를 뿐 그의 작품 속 사람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각기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다. 구름과 무지개로 장식된 환상의 세계. 그들은 찬란한 무지개 속을, 별빛 반짝이는 구름 속을 유영하지만 마냥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마냥 어둡거나 비극적이지도 않다. 폭신한 구름처럼 온기를 내포하고 있다. 성숙하지 못한 관계가 만들어낸 갈등과 상처, 그로 인해 형성된 사랑의 지속성에 관한 어려움을 따듯한 시선으로 담아내는 작가. 사이먼 고는 ‘관계’의 늪에 빠진 현대인에게 깊은 공감과 위안을 건넨다. 미숙한 관계가 빚어낸 불안쯤은 동화적이고 몽환적인 풍경 속에 잠시 내려놓아도 좋을 것이고. 다시 시작될 새해는 서툰 관계의 ‘우리 사이’를 되돌아볼 기회다.

 

 

 

김종학, 겨울 설악 바다, 1993, Oil on canvas, 80.3×100cm, 이미지 제공 조현화랑 

 

설악의 기운을 담아 

김종학

새해의 일출. 희망, 사랑, 간절함 등 세상의 모든 염원이 떠오르는 일출 아래 뜨겁게 집결할 터. 기운 충만한 설악산의 일출은 그 얼마나 특별할 것인가. 몇십 년을 홀로 설악에 칩거한 채 그곳의 자연을 그려온 김종학. “그림을 그리는 것 외에는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라는 말로, 지난 시간의 열정과 노고를 대신하는 노 화백의 겸허함은 화폭을 통해 그 면모를 드러낸다. 이름 모를 곤충과 새, 야생화 등 원초적인 설악의 자연은 그의 화폭 안에서 강한 생명력과 자유로움을 뽐내지만, 또한 질서와 균형을 이룬다. 설악의 일출을 품은 ‘겨울 설악 바다’에는 숭고한 고요함마저 흐른다. 요동치는 마음과 번뇌를 설악의 하얀 눈이 이내 뒤덮어버리니. 자연의 선들을 과감하게 생략해 더욱 짙고 장엄한 겨울 설악의 설경 너머로 풍요로운 노란빛 해가 초연히 떠오른다. 다가올 봄과 내일의 희망을 품고서. 자연의 장엄한 생명력과 넉넉함을 품은 설악의 일출과 함께 모두의 염원도 꽃피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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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설미현PHO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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