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삶을 빚어내는 도예가, 보딜 만츠

닭 모이 주고, 토끼 물 주고, 틈틈이 작업하고…. 온종일 작업에만 몰두하는 장인의 삶에 익숙한 우리에겐 분명 낯선 풍경이다. 덴마크의 한적한 아틀리에에서 유유자적 일상을 즐기며 홀로 작업 중인 도예가 보딜 만츠. 그만의 특별한 흙의 노래가 국내 처음 공개됐다.

2018.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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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an, Sand-cast Porcelain, 33×46cm 

 

Angular oval form Cube II, Porcelain, 13×18cm, 2018

 

 

그의 이름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도 당연하다.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그의 명성을 다 떼놓고, 한국에서야 몇 해 전 열린 경기도 세계도자비엔날레 국제공모전에서 대상을 차지했다는 소박한 자취가 전부이니 말이다. 덴마크 작가 보딜 만츠. 그에 관한 수족을 살짝 덧붙이자면 도자 예술 역사상 현대 도자에 가장 크고 깊은 영향을 미쳤고, 그의 계보를 잇는 제자들이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 중이다. 10월 13일까지 갤러리 엘비스(LVS)에서 펼쳐질 국내 첫 개인전을 앞두고 그가 한국을 찾았다. 그런데 ‘현대 도예의 산증인’이라는 근엄한 타이틀보다는 할머니라는 호칭이 더 어울려 보인다. 작품에 앞서 호기심을 더욱 자극한 것은 그의 아틀리에였다. 덴마크 북서쪽의 셸란섬에 위치한 보딜 만츠의 아틀리에이자 집.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시골 풍경 속에 그가 있었다.    


“1850년대에 지어진 건물인데, 원래는 동네의 조그만 학교였죠. 1967년부터 이곳에 살았어요. 여기에서 세 아이가 자랐고, 지금은 손주도 놀러 오고.” 특별한 연고가 있었던 건  아니다. 예전 아버지가 살던 곳과 가까워 익숙하기도 했고, 남편과 함께 작업하기 더없이 넉넉한 공간이었다. 동반자이자 작가인 남편 리처드 만츠가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후 그는 이곳에서 홀로 작업한다(어시스트도 없이 모든 작업은 그의 손을 거친다). 한데 정확히 말하자면 혼자는 아니다. 그가 ‘나의 친구’라 명명한 반려견 ‘소자(Soja)’와 닭, 토끼가 함께하니. “원래는 닭을 여러 마리 키웠는데, 최근에 여우가 잡아먹어서 두 마리밖에 안 남았어요.” 작업을 하며 동물을 기르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고 했더니 고개를 젓는다. 닭은 손이 많이 가지 않을뿐더러 동물을 키우는 것은 익숙하고 삶의 일부라고.

 

덴마크 북서쪽의 셸란섬에 위치한 보딜 만츠의 아틀리에. 원래 학교였던 이곳은 1850년대 지어진 건물로, 보딜 만츠는 1967년 동반자이자 작업의 동료인 남편과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그는 아직까지도 어시스트 없이 홀로 작업한다. 그의 반려견 소자와 함께. Photo by Ole Akhøj

 

덴마크의 아름다운 자연을 품은 아틀리에와 집. Photo by Ole Akhøj

 

종잇장처럼 얇고 투명함 너머
“아주 어렸을 때는 아버지 집 근처 바닷가에서 찰흙을 가지고 노는 걸 좋아했어요. 구트 에릭슨(Gutte Eriksen)이라는 도예 작가를 만나면서 흙(도예)에 관심을 갖게 됐죠.” 마치 본능처럼 흙과 인연을 맺게 된 보딜 만츠. 그의 대표작 하면 가장 먼저 실린더 작업이 떠오른다. 흔히 도자기 하면 물레를 돌려 가마에 굽는 형식을 떠올린다. 보딜 만츠의 작업은 그 시작부터 다르다. 일단 물레를 돌리지 않는다. “물레를 돌리면 이렇게 얇게 작업할 수가 없어요.” 그의 말에서 그다음 특징을 찾을 수 있다. 바로 종잇장처럼 얇고 투명하다는 것. 비정형의 원통형 오브제. 얼마나 얇은지 안과 밖의 색이 교차하듯 은은하게 비친다. 보딜 만츠의 작업 핵심은 바로 이 ‘투명함’이다.   


“내 작업은 안과 밖이 상호 작용하고 하나 되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죠. 그러려면 기물이 얇고 투명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토록 투명한 자기를 만들까? 먼저 종이를 접어 형태를 구성한 후 흙, 물 등을 섞어 만든 흙물을 석고 틀에 붓는다. 시간이 지나면 틀의 바닥과 옆면을 따라 얇은 막이 생겨나는데, 이때 호스를 이용해 흙물을 빨아낸다. 매우 얇은 터라 흙물을 빨아들이지 않고 따라낼 경우 무너져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잘 굳힌 얇은 막을 떼어내 900℃에서 초벌을 하고 건조한 뒤 다시 무광 유약을 발라 1300℃에서 굽는다. 마지막으로 원하는 컬러의 박에 물을 묻혀, 완성된 도자기 표면에 부착한 후 저온 혹은 고온으로 구워낸다(이때 굽는 온도에 따라 색도 달라진다). 완성된 오브제에 컬러를 입히는 과정은 금박 씌운 옛날 껌종이를 상상하면 쉬운데, 오브제에 금박을 붙인 후 색이 입혀지면 구워내는 방식이다. 캐스팅 후 흙물을 붓고 말리고 다시 몇 번을 굽는 인고의 과정을 거쳐 비로소 그만의 투명한 실린더가 탄생되는 것이다. 안과 밖이 교차하듯 비치는 은근한 투명함. 보딜 만츠의 그것은 매우 현대적이면서도 동양적이며, 얇고 여리지만 묘한 힘을 품고 있다. 안과 밖의 소통, 하나 됨을 빚어낸 그만의 깊은 철학을 올곧이 품은 듯 말이다. 투명함 뒤로 목격되는 또 다른 특징은 바로 기하학적인 패턴. 그것은 얼핏 몬드리안을 떠올리게 한다. “어떤 것은 덴마크의 하얀 겨울과 그 눈 속에 묻힌 까만 나뭇가지가 투영되기도 하고, 사막의 지형, 물결, 초록 등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인 자연의 그것이 어느 순간 나타납니다.” 그의 기하학적인 패턴은 몬드리안, 말레비치의 회화를, 현대 건축물을 떠올리게 한다. 그 때문일까. 분명 도예지만 그의 작업은 회화와 조각 그 어디쯤에 서 있는 듯하다. 실제 전시장에는 그의 작업을 프린트한 거대한 작품이 벽에 걸려 있는데, 마치 회화인 듯 착각하게 된다. 얼핏 이우환의 서정이 읽히기도 한다. “덴마크에는 하얀 흙(고령토)이 없어요. 그래서 캐나다, 영국에서 수입한 걸 써요. 남편이 살아 있을 때 배합해둔 걸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데, 물론 이 흙은 그냥 고령토가 아니라 혼합 재료를 섞어 만든 것입니다.” 남편이 없는 지금은 당시에 작업해둔 흙과 현재 구매한 흙을 섞어서 사용한다고.  

 

소박하고 정겨운 그의 집과 아틀리에에 따뜻하게 햇살이 깃든다. Photo by Erik Brahl

 

얇고 투명함을 특징으로 하는 보딜 만츠의 대표작 실린더 시리즈를 비롯해 그의 실험 정신이 빛나는 작품 100여 점을 갤러리 엘비스에서 만날 수 있다.

 

B급의 미학? 
“실린더 작업을 할 때 완벽한, 전형적인 형태로 만들 수는 있어요. 하지만 내게는 손에서 자연스럽게 찌그러지고 움직이는 게 더 재미있어요.” 보딜 만츠의 오브제는 완벽한 원형이 아니다. 좌우 대칭의 완벽한 형태감에 익숙한 이라면 그의 작품을 보고 B급이 아니냐고 되물을 수도 있다. 보딜 만츠는 완벽한 원형 대신, 손의 이야기를 작품 속에 담아낸다. 자연스러움의 미학. 그것은 비단 형태에 국한되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그의 아틀리에는 덴마크의 시골 마을로, 자연과 함께 공존한다. 작업을 하다가 토끼 밥을 주고 오면 벌이 잠시 앉아 가기고 하고, 점심을 먹고 나면 초파리 한 마리가 잠시 쉬었다 가기도 한다. 티끌 하나 없는 완벽함을 추구하는 보통의 미학 기준이라면, 이것은 B급이 되어야 옳다. 하나 보딜 만츠에게 벌이 쉬었다 간 흔적은 큰 의미가 없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다. 시간의 흔적, 자연의 흔적이 담긴 보딜 만츠의 작품은 완벽함이 품지 못한 투박하고 따뜻한 서정을 품고 있다.   


“흙은 가마의 열에 의해 물성이 자유롭게 움직이죠. 그런데 그 물성이 아름답게 움직이지 못한 것은 바로 버립니다.” 그에게 결국 아름다운 자기란 오점 없는 완벽한 형태가 아니라 자유로운 물성 그대로의 아름다움인 것이다.  
“언제부터 도예 작업을 했느냐 규정하기 애매하긴 하지만, 15세 때부터였던 거 같아요.” 어느덧 칠순을 넘긴 나이. 한데, 오랜 시간 지치고 않고 작업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대체 뭘까. 그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답한다. “흥미로웠기 때문인 것 같아요. 덴마크 속담에 이런 말이 있어요. ‘말에서 떨어져도 다시 말에 올라타야 한다’. 나 역시 초창기에는 돈도 없고 좋은 작업도 안 나왔지만 꾸준히 말에 다시 올라탔죠.” 꾸준히 말에 오르지 않고 소위 ‘카피’ 작업을 양산하는 젊은 작가들에 대한 그의 시선은 어떨까. 보딜 만츠의 작업을 따라 하는 한국 작가도 물론 존재하니. “나 역시 젊었을 때 에릭슨의 작업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어요. 그 영감을 자기만의 것으로 진화, 발전시키는 게 중요하죠. 그 단계를 넘어가지 못하면 카피에 머물 테고요.” 그는 결코 언성을 높이지 않았다. 오히려 너그럽게 화답했다. 빅토리아 앨버트, 프랑스 장식미술관,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뮤지엄에 작품이 소장될 만큼 성공한 작가지만 그는 아직도 옷이라고 해봐야 한 뼘 크기의 장이면 다 들어간다. 흙물을 붓고 기다리는 시간에 닭 모이를 주고 빵 하나에 계란으로 가볍게 식사하고 다시 작업한다. 그는 이토록 소박하게 일상의 삶을 빚고 또 빚는 것이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한국의 수공은 이미 기술적으로는 세계적이다. 그런데 왜 아직 한국의 도예 작가들은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지 못할까. 어쩌면 그 답을 보딜 만츠의 이 진득한 삶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순수 종이 작업을 한 때도 있어요. 요즘은 석고 작업도 하고요. 실린더 작업을 하다 보면 자유로운 작업을 하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석고로 벽을 장식한다거나, 종이를 이용해  작업을 펼친다거나, 보딜 만츠는 흙을 빚지만 그 자체에 머물지 않는다. 실린더 작업이 그러했듯 그는 쉼 없이 실험을 펼친다. 그래픽, 페인팅, 조각, 건축물…. 여리고 투명한 보딜 만츠의 실린더에는 다양한 장르와 시선이 읽힌다. 흔들림 없이, 소박한 일상의 삶을 빚어내는 덴마크 할머니 보딜 만츠에게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어쩌면 그가 빚어낸 자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떤 이는 나이가 들수록 작업에 확신이 든다는데, 나는 아닌 것 같아요. 아직까지 젊은 작가들처럼 실험도 계속해야 하고. 갈수록 더 겸손해야 해요.” ‘겸손’, 그는 이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한참을 서성였고, 함께 한국에 온 친구에게 단어를 물었지만 그 친구 역시 답을 주지 못했다. 결국 ‘겸손’이란 단어를 한참 만에 떠올린 것은 보딜 만츠였고, 비로소 그는 답을 해결한 듯 개운하게 웃었다. 60여 년이라는 긴 시간을 흙과 함께했지만 그는 아직도 좋은 작업을 만드는 경지에 다다랐는지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혹여 우리는 너무 짧은 인내와 기다림 끝에 쉽게 무릎 꿇고 있지는 않은지. 


Cooperation 갤러리 LVS

 

 

 

 

더네이버, 인터뷰, 보딜 만츠

CREDIT

EDITOR : 설미현PHOTO : 박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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