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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설진의 숨

숨을 쉬는 것만으로 일순 관객을 숨죽이게 하는 무용수, 김설진.

2017.10.19

‘누구나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움직임으로 감동을 주지는 못한다.’ 김설진의 낙서집 <사부작 사부작>의 어딘가에서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주저 없이 김설진을 떠올렸다. 현대 무용수이자 안무가, 그리고 최근에는 대중에게 ‘이효리 춤 선생’으로 다시 한번 각인된 인물. 김설진은 얼마 전 춤으로는 차마 털어낼 수 없는 잔상과 감정을 담은 낙서집 <사부작 사부작>을 펴냈다. 낙서집 속 글과 그림을 하나하나 만난 첫 기분은, Mnet <댄싱 9>에서 한대수의 ‘하루 아침’에 맞추어 신들린 듯 춤추는 김설진을 보았을 때의 충격과 비슷했다. 오직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그 용솟음치는 감정을 오롯이 자신만이 출 수 있는 춤에 담아 전하던 그는 이미 ‘평가’라는 것을 무의미하게 만들었으니까. ‘시처럼 춤을 쓰고 싶었고, 풍경처럼 춤을 그리고 싶었다’는 김설진의 몸이 아름다운 언어이자 거침없는 붓 그 자체이듯, 그는 춤꾼이기 전에 시인이고 화가다. 그 흔적은 그의 책에 고이 살아 숨 쉰다. 그리고 화보 촬영장에서 만난 김설진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시와 그림 한 편을 숨처럼 고요하게, 그러나 생명력 있게 채워가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음으로 움직임을 표현해달라’는 다소 어려운 촬영 콘셉트를 요구했는데, 소감이 어떤가. 이렇게 말해도 될까? 사실 잡지 화보 촬영이 아니라 개인 작업을 하는 느낌이었다. 보통 화보 촬영에서는 특정 주제 아래 꾸민 것, 혹은 잘 보이기 위한 사진 작업을 주로 하지 않나. 평소 관심 있던 분야의 연장선에서 작업한 느낌이라 흥미로웠다. 
이 콘셉트를 어떻게 이해하고 표현했나? 사실 움직이지 않음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추상적일 수 있다. 결국 살아 있는 것은 다 움직이니까. 나는 ‘숨’으로 접근했다. 숨 쉬는 것만으로도 인물이 달라진다. 마침 요즘 형태나 껍데기를 표현하는 것보다는 질감에 관심이 큰 상태다. 
김설진이라는 무용수는 어떤 질감일까? 나 하나만 있으면 재미없을 거 같다(웃음). 사실 요즘 별로 좋지 않은 상태다. 슬럼프가 꽤 길어서. 며칠 전에도 공연을 했는데 감정 상태가 아주 깊숙한 땅바닥을 내려찍었다. 하지만 그냥 두었다. 헤어 나오려고 하지 않고. 항상 어떻게든 지나가긴 하는데, 지난번에 통했던 해결 방법이 통하지 않으니 이번에는 그냥 놓아두고 있다. 어디까지 가는지 보자 하는 심사로. 
최근 인스타그램에 ‘춤이 뭔지 점점 모르겠다’고 해시태그를 달았던데, 그것도 하나의 이유일까? 슬럼프랑 조금 별개의 부분이긴 한데, 춤이 뭔지 다 알았다고 착각하고 살았는데 지금은 진짜 모르겠다. 점점 더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더 알고 싶다는 의미이기도 한가? 그럴 수도 있겠다. ‘아, 이럴 거야’라는 확신이 무너지는 순간 한 번씩 고비가 오지 않나. 그런데 한편으론 ‘꼭 다 알아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고. 아, 무거운 얘기 하고 싶지 않았는데! 요즘은 그냥 그렇게 살고 있다. 
내가 이해하는 김설진은 잘 알 수 없는 것에서 더 흥미나 자극을 느낄 것 같은데. 틀리진 않는 이해다. 다 알면 더는 안 하지 않을까? 이미 다 알고 있는데 굳이 했던 걸 또 하는 건 참 재미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새로운 걸 해야지’라는 일종의 강박에 갇혀 있는 건 아니고, 그 순간에 재미있는 것을 할 뿐이다. 
낙서도 그중 하나인가? 낙서는 현실 도피다. 음악이나 낙서를 할 땐 주변을 완전히 차단하고 오롯이 집중할 수 있으니까. 생각을 까먹을까 봐 습관적으로 쓰고,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적기도 한다. 그림은 삐뚤빼뚤한 형태가 대부분인데, 이건 주로 어딘가로 이동할 때 그린 것이다. 비행기, 전철, 버스, 기차 안에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사람이 채워져 있으면 그 공간이 너무 힘들고 버겁다. 특히 무대 위에 사람이 많을 땐 죽을 거 같다. 무대 위에 나 혼자뿐이면 더 미칠 것 같지만(웃음). 
<사부작 사부작>을 보면 대부분의 글은 시 같고, 어떤 건 노래 가사 같다. 그림은 그냥 ‘끄적거렸다’고 하기엔 비범한 수준이다. 굳이 ‘낙서’라고 한 이유가 있나? 실제로 흥얼거리면서 노래 가사처럼 쓴 것도 있다. 스스로도 시집에 가깝지 않나 하고 편집자에게 물었더니 “시집이라고 볼 순 없습니다”라며 선을 긋더라(웃음). 편집자와 서로 조용하게 할 말은 다 하는 사이다. 나 역시도 없던 카테고리이지만 낙서집이 가장 적합하지 않나 생각한다. 
그동안의 낙서를 모두 살펴보는 과정에 엄청난 시간과 공이 들었을 것 같은데. 책 기획부터 발간까지 1년 반 정도 걸렸는데, 그중 6개월은 그동안 모아둔 낙서를 다시 열어보는 과정이었다. 두 상자에 빼곡한 낙서를 펼쳐 보면서 ‘내가 이렇게 바보 같은 생각도 했구나’ 싶기도 하고, 몸서리치게 오글거리기도 하고. 그때는 절절히 가슴앓이하면서 썼을 텐데 말이다. 그래도 그것 하나하나가 다 나니까. 과거의 나와 직면하는 느낌이었다.  
글과 말 중에 어떤 것이 더 편한가? 어떤 게 더 편하다고 말할 순 없다. 말은 실수를 피하기 어렵고 글은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생각한 것을 옮기는 게 글이라면, 말을 하면서 생각이 정리된달까. 글 쓰는 건 어릴 때부터 좋아했는데 말하는 것도 습관이 되니 생각과 더 가까워질 수 있게 된 거 같다. 
춤은 생각하고 추는 편인가, 아니면 말처럼 추는 것에 가깝나? 춤마다 다른데, 대개 반반이다. 작품 할 땐 전자에 가까운데 요즘 흥미를 느끼는 건 후자다. 예전에는 말할 내용과 순서를 다 정해서 ‘대본’처럼 춤을 이야기했다면 지금은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반영해 표현한다.
최근에 이효리 춤 선생으로 화제가 됐다. 뮤직비디오 속 이효리의 춤을 보니 안무를 ‘배웠다’는 느낌보다는 비로소 춤에서 해방됐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렇게 느꼈다면 다행이다. 효리 누나와는 움직임보다 대화를 많이 나눴다. 잠잘 땐 어떤 자세로 자요? 깰 땐 어떤 자세로 일어나요? 넘어질 땐 어떻게 넘어져요? 사소한 질문을 통해서 이효리라는 사람의 자연스러운 행동을 많이 찾으려고 했다. 서로 ‘몸’에 대해 진지하게 궁금해하고 고민을 공유한 시간이었다. 
김설진은 제주도 태생이고, 이효리는 현재 제주도에서 살고 있다. 어쩌면 제주 DNA를 공유한 것은 아닐까?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난다고 생각한다. 운명 같은 걸 믿는다. 꼭 제주가 아니더라도. 내가 춤추지 않고 그가 가수가 아니었다면 다른 방법으로 만났을 거 같다. 
김설진의 춤을 보면 표현력도 훌륭하지만 관찰력이 대단하다고 느낀다. 언젠가 고양이 묘사를 할 땐 소름이 끼쳤다.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하. 아무래도 관찰한 순간이 켜켜이 쌓인 것 같다. 평소에 잡생각도 참 많고. 예전에는 사람을 주로 관찰했는데 ‘숨’에 관심을 가진 뒤에는 자연스레 생명에 관심이 생겼다. ‘졸린 것을 표현해봐!’라고 하면 다들 졸린 것 자체만 표현하는데, 사실 깨어 있음에서 잠듦으로 가는 과정에서 가장 재미있는 움직임은 잠에 들고 싶지 않은데 까무룩 잠에 빠지는 그 순간이다. 그게 아파서 그러는 사람도 있고, 피곤해서 그런 사람도 있고, 술 깨려고 하는 사람도 있고 다 다르다. 그게 동물로 가면 더 원초적이다. 그런 동작을 흉내 낸 건데 일반적으로 봐온 무용은 아니니까 새롭다고 보는 거 같다. 모든 움직임은 완전한 창작이 아니라 사실 다 모방이라고 생각한다. 
춤추지 않는 김설진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바보 중의 바보가 아니었을까.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춤을 추니까 그나마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사람을 좋아하게 되니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요리하게 되고…. 글은 춤으로 표현이 안 되거나 저장시킬 수 없는 것을 쓰는 거고, 글로 더 이상 표현할 수 없을 때는 그림으로 자꾸 뱉어내려고 한다. 막말로 하면 싸지르는 것이다. 자꾸 배출해야 하니까. 
춤출 때 머릿속엔 어떤 낙서가 그려지나? 그때그때 다른데, 과포화 상태가 되면 아무것도 안 보인다. 
그런 상태를 자주 느끼나? 춤을 미친 듯이 추다 보면 죽을 것 같을 때가 있다. 사경을 헤매는 느낌하고 비슷할 거 같은데, 그때 비로소 ‘쫙~’ 하고 열리는 순간이 있다. 더 할 수 있을 거 같고, 하루 종일 할 수 있을 거 같고…. 이건 술이나 다른 어떤 환각 상태와도 비교할 수 없다. 그 상태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아마 춤을 그만둘 수 없을 것이다. 연습할 때보다는 무대 위에서 생사가 오가는 순간을 느끼면 그때부터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그 순간을 관객도 느끼는 것 같은가? 글쎄… 물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웃음). 예전에 몸이 아팠던 적이 많아서 환각 상태가 항상 좋게 느껴지지만은 않다. 상상을 깊게 하다 보면 어지러울 때가 있다. 
언제까지 춤을 출 건가? 재미없을 때까지. 춤이 밉거나 짜증 난 적은 있지만 재미없던 적은 한 번도 없다. 벌써 27년이나 춤을 췄는데 그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겠나. 그런데도 늘 재미있었다. 다른 게 춤보다 훨씬 재미있어지면 그걸 할 거다. “평생 춤추실 텐데…”라는 말을 많이 듣는데 들을 때마다 그런 끔찍한 소리 하지 말라고 한다. 하하. 
마지막 춤은 누구와 함께? 이렇게 생각하니까 비로소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들린다. 진짜 그만두려고 할 때쯤 그때 생각할 거 같다. 아마 모든 사람이 죽을 때까지 춤추지 않을까? 꼭 무대가 아니라도 숨 쉬듯 자연스럽게. 나도 사실은 죽기 전까지 출 수 있다면 좋겠다. 그게 무대가 아닌 다른 어딘가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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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네이버, 인터뷰, 김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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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인물,무용수,댄싱9,사부작 사부작

CREDIT Editor 전희란 Photo 최랄라 출처 THE 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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