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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애하는 도망자

전설적인 시인이자 정치인, 민중운동가였던 파블로 네루다. 그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했지만, 전기 영화와는 일찌감치 거리를 둔 <네루다>의 반전.

2017.05.19

“오늘 밤 나는 쓸 수 있다 제일 슬픈 구절을 / 예컨대 이렇게 쓴다 ‘밤은 산산이 부서지고 / 푸른 별들은 멀리서 떨고 있다.’” 이 아름다운 시구(詩句)를 쓴 이의 이름은 파블로 네루다. 1971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전설적인 칠레의 시인이다. 그 누구보다 언어를 아름답게 다루는 시인이면서 부패한 권력에 저항하는 정치인이었고, 언제나 민중의 편에 선 운동가였던 그를, 고국인 칠레 사람뿐 아니라 세계 시민 모두가 사랑했다. 칠레의 상원의원으로 재직한 시절, 공산당원이었던 네루다는 연설을 통해 당시 칠레 대통령을 비판했고, 이후 공개 수배되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살게 되었다. 최근 재개봉한 영화 <일 포스티노>는 망명 시기 중 이탈리아에 거주하던 때를 중심으로, 네루다와 교류한 우편배달부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이다. 프랑스와 폴란드,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을 오가며 저항 운동을 전개하면서도 끊임없이 시 쓰기를 이어간 이 시절의 이야기는 창작자들에게 영감을 줄 수밖에 없다.
5월 개봉하는 영화 <네루다>도 같은 시기를 다룬다. 고국을 떠나 도망자가 되어 은둔하는 시인 네루다(루이스 그네코 분)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이 질문에 극적인 이야기를 더하기 위해 <네루다>는 또 다른 인물 오스카(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분)를 등장시킨다. 오스카는 대통령에게서 네루다를 잡아오라는 명령을 받고 비밀리에 시인을 쫓는 경찰이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미묘하게 오간다. 지난 1월에 개봉했지만, 촬영과 개봉 순서로는 파블로 라라인 감독의 전작인 <재키>와는 달리 전기 영화로 분류되지 않는 이유다. 칠레인이며 네루다와 이름이 같은 라라인 감독은 고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인물을 포장하지 않고 실제 있었던 인물과 사건 안에 상상력을 불어넣어 또 다른 현실을 보여준다. <네루다>의 장점은 시인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데 있다기보다, 쫓고 쫓기는 지명 수배자와 경찰과의 관계와 관계의 역전이 주는 영화적 쾌감에 있다. <네루다> 속 네루다는 위인이 아니라 생생히 살아 있는 이야기 속 한 등장인물이다.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이 연기한 비밀 경찰 오스카가 타이틀롤인 네루다 역의 루이스 그네코보다 앞서 이름이 등장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오스카와 네루다, 두 인물 사이의 관계야말로 영화의 핵심이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서 남미가 낳은 또 다른 혁명가 체 게바라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이 영화에서 실제 인물의 반대편에 선 캐릭터를 연기한다. 실화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는 모호한 이야기 속에서 라라인 감독은 이야기 면에서나 장르적으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삶을 사랑했고 사랑을 노래했던, 그리고 드높은 명성과 더불어 민중의 사랑까지 받았던 시인의 어둠에서, 자신이 쫓고 있는 이의 언어와 예술에 강력히 매혹되어버리고 마는 인간의 복잡한 내면에서, 이야기의 조각을 하나씩 발견해 퍼즐을 맞추어가다 보면, 위인전보다 더욱 강렬한 상상력의 세계와 그 안의 인물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시에서, 파블로 네루다는 이렇게 썼다. “시가 내게로 왔다 / 
그러니까… / 시가 날 찾아왔다. 난 모른다. /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겨울에선지, 강에선지.” 이 시처럼, 어디서 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남미의 뛰어난 감독 중 한 명이 현실을 빚어 창조한 아름다운 영화는, 5월에 찾아온다. 이 영화가 기다릴 수 없을 정도로 궁금하다면 4월 27일 개봉하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네루다>를 미리 만날 수 있다.

 

이 글을 쓴 윤이나는 영화 칼럼니스트이자 <미쓰윤의 알바일지>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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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윤이나 Photo PR 출처 THE 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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