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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가구 실험가, 곽철안

그는 가구를 디자인한다. 하지만 그를 가구 디자이너라는 영역 안에 가두는 시선에는 반대다. 곽철안, 그의 가구는 기능보다는 미(美)적 가치에 더 집중하는 듯 보이므로. 한데 이번 신작은 좀 달라졌다.

2017.04.19

“가볍게 만들자 싶었어요.” 이는 당연히 무게의 문제는 아니다. 곽철안 작가의 신작 ‘모아레’ 시리즈가 전시장 안을 담홍색으로, 담청색으로 물들였다. 사실 그를 대중에 알린 건 ‘기와’ 작업이다. 5년 전, 네덜란드에서 막 건너온 어느 젊은 디자이너가 내민 것은 다름 아닌 기와였다. 수백 년 된 한옥이 철거되면서 남겨진 기와. 그는 이 기와로 테이블을 만들고, 의자를 만들었다. 켜켜이 쌓인 기와의 흙먼지를 거둬낸 자리, 그곳엔 기와를 구울 당시의 흔적이 세월을 버팀목 삼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옛것의 재생, 외장재인 기와를 삶 속에 끌어들인 기발한 발상. 충분히 준비된 미사여구 앞에서도, 그는 자신의 작업을 포장하지 않았다. 그저 온전히 재료에 집중했을 따름이라고 답했다.     

 

 

“사실 기와는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는 작업이었어요. 특히 여성분들은 색이 너무 칙칙하다는 의견도 있었고, 심지어 타일 같다고 하는 분도 있었죠(웃음).” 하긴, 누가 이 낡고 우중충한 기와로 가구 만들 생각을 하겠나. 각기 다른 기와의 은은한 색감. 누군가에겐 칙칙함으로 다가온 기와의 색감이 그의 눈에는 더없이 아름다웠다. 기와라는 소재에 집중한 그의 작업은 ‘예쁨’이라는 가구 본연의 역할을 기대하는 이에겐 낯설게 다가왔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작업은 분명 달라졌다. ‘나무에 염색을 한 건가?’ 신작 모아레 시리즈를 보면 누구라도 이런 생각부터 든다.    
 

 

 

한복 소재인 오간자를 가구에 접목한 작가 곽철안의 신작 ‘모아레’ 시리즈. 그는 기와, 오간자 등 가구 재료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소재를 과감하게 실험한다. 느리고, 더욱 느리게.    

 

“한복 소재인 오간자를 이용했어요. 두 개의 실크, 망사 천을 겹친다고 생각해 보세요. 자연스럽게 컬러가 섞이고 망사 형태의 모아레 패턴이 생기죠.” 레이어 된 두 개의 커튼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모아레 시리즈는 가구 조형에, 텍스타일 아트가 녹아든 모습이다. 방법은 이렇다. 각기 다른 컬러의 오간자 천을 레이어하고, 그 위에 에폭시, 폴리머 레진을 부어 고정한 뒤 나무에 압착하는 방식이다. 놀라운 건 두 개의 컬러가 에폭시, 폴리머 레진과 만나는 순간, 전혀 다른 뜻밖의 컬러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시점에 따라 색이 다르게 보이기도 하고, 나뭇결 같은 패턴이 생기기도 해요.” 그는 작업을 설명하던 중, 자신은 의외로 색에 둔감한 편이라는 고백을 했다. 컬러감이 약한 그에게 색의 레이어를 통해 또 다른 색을 만들어내는 이번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에폭시를 발랐을 때 나오는 색감은 좀체 예상하기도 어려웠어요.” 마치 가마 안에 도자기를 넣고 속절없이 기다리는 도예가의 마음이랄까? “흥미로운 건 오간자를 레이어하면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우리의 정서를 닮은 색이 발현된다는 것이죠.” 컬러의 자연적 발생. 이 우연의 색은 상상치 못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기존 작업이 모두 제 손을 거쳤다면, 이번에는 가구 공장에서 만들었어요.” 목공 전문가들의 손을 빌렸으니, 이번 작업은 좀 더 쉽고 편했을 테지? 속내를 읽기라도 한 듯 그는 고개부터 흔든다. “그분들은 새로운 도전을 좋아하지 않아요. 새로운 것에 도전할 공장을 찾기도 힘들었고, 기대하는 만큼의 기술력을 갖춘 가구 공장을 찾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죠. 막상 찾고 나서도 저를 잘 안 믿어주시더라고요(웃음).” 소위 잔뼈 굵은 전문가들에게 기존의 틀을 깬, 작업을 의뢰하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마치 관성의 법칙처럼, 그들은 늘 하던 방식대로 하고 싶어 했다. “거의 매일 감수를 했어요. 그분들이야 작업을 매일 들여다보니 싫어하시더라고요(웃음).” 그에게 이번 작업은 소재에 관한 또 다른 긴긴 실험이었다.  

 

 

“이것이 과연 수납공간에 관한 디자인인가, 한복에 관한 디자인인가. 사실 개인적으로는 작품에 두 가지 스토리가 들어가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다만 이번 작업은 달랐죠.” 기와가 그렇듯, 그는 늘 소재에 집중한 작업을 펼쳐왔다. 이번 작업 역시 오간자에 대한 실험에서 시작됐다. “레이어된 오간자 위에 에폭시, 폴리머 레진을 부어 고정하는데, 이 과정이 생각만큼 쉽지가 않아요. 특히 에폭시는 온도에 매우 민감한 재료예요. 우리나라는 사계절까지 있으니. 계절에 따른 온도 변화를 다 체크해야 했어요.” 그는 사계절의 습도와 온도, 비율에 따라 각기 다른 재료를 실험해야 했고, 모아레 시리즈의 준비 작업에만 2년이 걸렸다. 오간자를 둘러싼 지난한 실험 과정만 보자면, 모아레 시리즈는 한복에 관한 디자인에 가깝다. 하나 서두에서 언급했듯, 그는 이번 작업을 가볍게 만들고 싶었다. 
“기와 작업이 아트에 가깝다면 이번 작업은 가볍고, 빨리 생산, 소비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췄죠.” 조형적인 가구와 대중적인 가구 사이. 굳이 편을 가르자면 모아레 시리즈는 후자에 더 가깝다. ‘수납’이라는 가구 본연의 기능 역시 접목했다. 그가 구상한 완벽한 형태는 아니지만, 가볍게 만들자는 본래 의도에는 충실했다. 물론 아직 모아레 시리즈에 대한 많은 실험이 남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오직 하나의 길로만 가야 한다는 강박에서 조금은 벗어난 듯싶다고 그는 말한다.          
 

 

“저는 정확하게 떨어지는 비례를 좋아해요. 제 작품을 보고 ‘제품스럽다’라고 느끼는 건 그런 측면이 작용한 탓일 거예요.” 정확한 비례에 대한 그만의 집착. 수납공간에 적용된 비례만 봐도 이는 입증된다. “여느 작가들과 달리 저는 민감함과는 거리가 먼 편이에요. ‘이 집이 가구 디자이너의 집이야?’ 싶을 만큼 집이 불편해도 참는 편이죠(웃음).” 딱 떨어지는 비례를 좋아하는 그의 디자인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삶이 아닌가. 불편을 참아내는, 게으른 디자이너. 어쩌면 그의 디자인은 게으름(느림)을 밑거름 삼아 탄생될지 모른다. 순간, 그의 오차 없는 비례는 냉철함이 아닌, 아름다운 긴장감으로 다가왔다. 비록 더딜지라도 끊임없이 재료를 탐구하는 조금은 느리고 게으른 실험가. 곽철안, 그의 가구가 단지 수납을 위한 가구가 될 수 없으며, 그가 단순히 가구 디자이너일 수 없는 이유다. 4월 19일까지 청담동 지갤러리(g.gallery)에서 솔직하고 담백한, 그만의 느린 실험이 펼쳐진다.   

 

더네이버, 가구디자이너, 곽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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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곽철안,가구디자이너,가구 디자인,모아레 시리즈,기와 시리즈,수납

CREDIT Editor 설미현 Photo 박우진 출처 THE 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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