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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와 살기

절실하게,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한평생 글을 읽고 쓴 우치다 다쓰루. <어떤 글이 살아 남는가>는 쓰기와 읽기에 대한 얘기다. 한데 돌아보면 ‘살기’를 말한다.

2018.05.08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하면, 십중팔구 듣는 이야기가 “부럽네요. 저도 글을 잘 쓰고 싶어요”이다. 그때마다 내가 하는 대답은 정해져 있다. “저야말로 누구보다도 글을 잘 쓰고 싶어 하는 사람입니다만.” 글을 쓰는 것이 경제적인 의미에서든 실존적인 의미에서든 중심에 놓인 나 같은 사람에게는 ‘글을 잘 쓰는 것’이 생계와 삶의 질을 좌우하는 변수가 된다. 절실하게, 살아남는 글을 쓰고 싶다. 글을 읽을 만하게 쓸 수 있는 능력은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데 무척 유용하다. 그러나 글이라는 것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눈을 뚫고 들어오는 글, 멱살을 잡는 글, 뇌 속으로 파고들어 떨어지지 않는 글, 등골을 물고 놓지 않는 글, 다리가 풀리게 하는 글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내용이 미처 이해되기 전에 눈물부터 솟는 글이 있음을 알고 있다. 인생을 좌우하는 글, 치유하기 힘든 상처의 형태든 온통 의지하게 만드는 굵은 뿌리의 형태든 읽은 순간부터 나를 떠나지 않는 글이 있음을 알고 있다. 아마도 그런 글 때문에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글을 쓰고 싶어서. 

우치다 다쓰루는 글을 써낸 분량으로 따지면 누구와도 비교하기 힘들 만큼 독보적일 것이다. ‘일본 최고의 지성’, ‘일본의 대표적인 사상가’라 해도 과언이 아닌 그는 일본 사회와 교육에 대해 수많은 글을 써 냈다. 불문학 교수로서 정년 퇴임 전 마지막 학기에 진행한 강의 ‘창조적 글쓰기’를 바탕으로 쓴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이 그동안 주로 다룬 주제들이 아니라 바로 읽기와 쓰기, 그가 평생 해온 작업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의 강의는 여느 평범한 글쓰기 강의에서 다룰 법한 주제를 훌쩍 뛰어넘어 바로 글쓰기의 본질로 들어간다. “수십 년에 걸쳐 현명함과 어리석음이 뒤섞인 채 신물 날 정도로 다양한 글을 읽고 또 스스로 대량의 글을 써온 결과, 나는 ‘글쓰기’의 본질이 ‘독자에 대한 경의’에 귀착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실천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마음을 다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첫 수업에 밝힌 이 결론에 어떻게 도달하게 되었는지, 마음을 다해 이야기한다는 것이 어떤 뜻인지 그는 반년에 걸쳐 풀어낸다. 전방위적으로 흐르는 이야기는 흩어졌다 모이면서 굵은 밧줄처럼 일관되게 하나의 결론을 향한다. 입시와 시험 중심의 글쓰기에 익숙해 합격 최저선을 상정하고 이 정도면 되겠지, 하는 안이한 마음으로 글을 써온 이들의 한계를 두들겨 부순다.
그는 저자와 독자, 텍스트에 대해서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새롭게 도마 위에 올린다. 글은 저자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옮긴 것에 불과한가? 아니다. 글은 정신적인 노동에 한정되는 것일까? 그럴 리가. 상식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부서져 나가면서 읽기와 쓰기에 대한 인식은 확장된다. 그가 메시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신자’라고 말할 때, 그저 글만 매끄럽게 써서 어느 누구든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내면 되리라 여긴 안이한 독자는 두 손 들고 만다. 그가 그런 결론을 얻은 것은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책을 처음 접했을 때의 경험 덕분이다. 프랑스어도 어렵고, 유대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책에 등장하는 고유명사와 철학적 용어가 무슨 의미인지도 알지 못하는 젊은 학생은 책의 내용은 거의 이해하지 못했지만 “내 말을 들어달라”고 간청하는 저자의 뜨거운 마음만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전해지는 언어’에 대한 원체험입니다. 전해진 것은 언어의 내용이 아니라 언어를 전달하고 싶다는 열의입니다. 그것은 뇌가 아니라 피부로 전해졌습니다.” 그 경험은 그가 이후 쓰는 글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이 책은 글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언어는 도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언어를 사용한다기보다는 우리 자신이 언어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언어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언어에 지배당하고 있습니다. 언어는 우리의 피이자 살이고, 뼈이자 피부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살아남는 글을 빙자하여, 우리에게 살아남는 법을 이야기한다.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를 “누가 살아남는가”로 바꿔도 될 만큼 분명하게. 

※ 이 글을 쓴 박사는 북 칼럼니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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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네이버, 북,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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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북,도서,어떤 글이 살아남는가,우치다 다쓰루

CREDIT Editor 설미현 Photo 김도윤 출처 THE 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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