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TECH 작은 차, 큰 엔진

미국 스포츠카 역사에 획을 그은 영국 출신의 머슬카가 있다. 바로 셸비 코브라다

2015.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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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 Shelby Cobra 427 S/C

 

 

셸비 코브라는 영국 AC의 ‘에이스’ 차체에 포드의 V8 엔진을 얹은 차다. 이 차는 영국 스포츠카의 특징인 경량 DNA와 미국 스포츠카의 대배기량 엔진이 조화를 이룬 작품이다. 코브라의 기초가 된 에이스(영국 서레이 생산)는 본래 철제 튜브 프레임에 알루미늄 보디 패널을 얹고, 2.6리터 직렬 6기통 엔진을 단 2인승 수제 스포츠카였다. 그러나 1961년 미국인 카레이서 캐럴 셸비가 미국 판매를 목적으로 AC사에 강화 차체를 요구하면서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다. 캐럴 셸비는 F1 레이서이자 르망 24시 레이스에서 우승한 유명 레이서였지만 건강의 문제로 일찍 은퇴했다. 그는 곧 ‘셸비 아메리칸’이라는 자동차 회사를 설립하고 고성능 로드스터를 판매할 계획을 세웠다. 이때 그는 영국 AC의 차체를 선택했다. 르망 레이스 시절 발견한 영국 경량 스포츠카의 잠재력 때문이었다.
 

AC는 주문대로 강성을 강화한 차체를 미국으로 보냈다. 셸비는 여기에 포드의 V8 엔진과 변속기를 얹어 ‘셸비 코브라’로 팔았다. 사실 애초 셸비가 생각한 코브라의 엔진은 쉐보레 V8이었다. 하지만 콜벳과의 경쟁을 염려한 쉐보레가 그의 제안을 거절했고, 결국 포드가 V8 엔진을 공급하기로 한 것이다(포드에겐 콜벳의 대항마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코브라의 엔진은 당시 포드가 막 개발한 경량 스몰 블록 260큐빅인치(4.3리터)였다. 그러나 개량을 거듭해 1965년형은 나스카용으로 개발한 427큐빅인치(7리터) V8 엔진까지 올라갔다. 셸비와 포드의 관계도 여기서 발전했다. 셸비 코브라를 시작으로 1965년에는 머스탱의 고성능 버전인 GT 350 개발에 참여했고, 이후 포드 머스탱 고성능 버전의 개발을 지속해서 맡게 됐다. 물론 현재도 포드 머스탱의 고성능 버전에서 셸비의 이름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셸비 코브라에 탑재된 포드 427 엔진은 450마력(63.9kg·m)을 발휘했다. 최고시속 300킬로미터, 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을 단 3.8초 만에 도달했다. 1965년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차로 불렸다. 427의 성능을 대변하는 별명도 있다. 바로 ‘살인마’다. 작은 차에 얹힌 난폭한 파워 때문에 무수한 사고가 발생하며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1톤 남짓한 몸무게에 450마력을 발휘하는 V8의 조합은 웬만한 실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차의 이름처럼, 조금만 방심하면 바로 운전자의 목숨을 위협했다. 코브라의 짜릿한 엔진 출력에는 다양한 에피소드가 뒤따른다. 캐럴 셸비가 고객과 시승을 나가며 윈드실드 안쪽에 100달러 지폐를 붙이고는 “급출발 때 손을 뻗어 지폐를 잡으면 그 돈을 가져라”고 한 것이 대표적이다.
 

여러 코브라 모델 중에서도 특히 ‘427 S/C’의 가치가 높았다. S/C는 세미 컴피티션(Semi-Competition)의 약자로 ‘준경주차’를 뜻한다. 이 차는 애초 레이스에 참가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레이스 호몰로게이션 취득에 실패하며 일반 도로용으로 다듬어 31대만 팔렸다. 코브라는 모든 차의 섀시 넘버가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AC에서는 코브라의 섀시 넘버가 기록된 책을 ‘바이블’로 부른다. 차의 색상, 편의장비, 특별 옵션 등 출고한 모든 차의 디테일이 기록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가 팔린 후에도 섀시 넘버마다의 역사와 이야기가 꾸준히 전해진다. 이렇게 한정 생산대수, 역사적인 스토리, 뛰어난 성능의 조건은 수집가들의 이목을 끌기 마련이다. 게다가 이렇게 독특한 구성의 차는 더 희귀하다. 그래서 지금도 모든 코브라의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427 S/C는 현재도 150만 달러(약 17억원)를 호가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셸비 코브라는 영국 AC의 경량 보디를 바탕으로 포드의 V8 엔진을 얹었다.

 

 

 

 

 

코브라 427 S/C의 구성은 독특하다. 애초부터 루프를 과감하게 배제한 디자인에 레이싱카처럼 싱글 롤바를 달았다. 나무로 만든 스티어링휠과 긴 기어레버같이 클래식카의 멋도 살아 있다. V8 엔진은 나스카용으로 개발한 만큼 군더더기 없는 구성을 자랑한다.   

 

 

한국인 디자이너 존 전(왼쪽)과 캐럴 셸비

 

 

코브라를 손본 한국인 디자이너


셸비에는 한국인 디자이너 존 전(John Chun, 전명준)이 있었다. 그의 인생은 진정한 ‘아메리카 드림’이었다. 1928년 북한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전쟁을 겪으며 월남했다. 그리고 1957년 미국으로 이민길에 올랐다.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에 정착한 그는 2년제 단기대학(커뮤니티 칼리지)을 다니며 공학 부문에서 특히 두각을 나타냈다. 그의 재능을 발견한 교수가 디자인 학교로의 진학을 권유할 정도였다. 그는 로스앤젤레스의 디자인 아트센터 대학(ACCD)에 포트폴리오를 제출해 입학 허가를 받았다(현재 전 세계 자동차 회사에서 활약하는 한국계 디자이너 상당수가 ACCD 출신이다. 전 씨가 ACCD의 첫 번째 한국인 학생인 셈이다). 하지만 가난한 이민자에게는 비싸기로 유명한 아트센터 학비가 만만치 않았다. 그는 학기마다 350달러의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밤에는 농기계 회사인 인터내셔널 하베스터에서 정비사로 일했다. 학생과 정비사의 삶이 공존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똑같은 과제를 남들보다 반나절 이상 빨리 끝내야 겨우 일할 시간이 생겼다.
 

디자인 아트센터를 졸업한 후에도 30대 후반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 때문에 취직이 쉽지 않았다.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디자이너 면접에서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러다 우연히 셸비 아메리칸의 수석 엔지니어 프레드 구델의 눈에 띄었다. 구델은 전 씨의 디자인 능력과 정비사 경력에 흥미를 느끼고 그를 채용했다. 당시 신생 회사이던 셸비는 포드 엔진을 얹은 코브라를 시작으로 머스탱 고성능 버전의 개발을 의뢰받은 상태였다. 전 씨의 능력이 십분 발휘됐다. 그는 1967~69년형 GT 350과 GT 500 모델의 디자인을 맡았다. 머스탱을 기반으로 디자인과 성능을 개량한 셸비 GT는 곧 마니아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셸비 코브라의 후기형 디자인에도 관여했다. 롤케이지와 스포일러 등 고성능 모델에 필요한 구성이 그의 손을 거쳤다. 셸비의 로고 디자인도 그의 솜씨다. 코브라가 똬리를 틀고 있는 로고를 만들기 위해 전 씨는 6개월 이상 뱀 몸의 패턴을 연구했다. 이후 그는 크라이슬러 디자인 센터로 이직해 여러 고성능 차의 디자인을 담당했다. 현대 자동차도 1970년대 초 포니를 개발하며 전명준 씨에게 자문을 구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크라이슬러 이후 자신의 경력 마지막을 자동차 장난감 디자인(통카 토이즈)과 디자인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며 보냈다. 그리고 은퇴 후 여생을 미국 미네소타에서 부인과 함께 레스토랑을 운영하다 위암으로 지난 2013년 세상을 떠났다. 겸손한 성격 때문에 세상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존 전의 업적은 ACCD를 졸업하고 토요타에 입사한 그의 아들과 뉴욕 파슨스 디자인 학교에서 패션디자인을 공부한 딸을 통해 알려졌다.

 

CREDIT

EDITOR : 박진수, 김태영PHOTO : 박남규, 유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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