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이거 제가 요청한 차 맞나요?” 도어트림을 보고 뭔가 잘못됐다 싶었다. 화려한 장식은 고사하고 브랜드 표시도 없었다. QX60은 보스 오디오가 기본이라고 했는데. 혹시 하는 생각에 차에 올라봤다. 그제야 대시보드 위 작은 엠블럼이 보였다. 보스는 당최 꾸미는 것과 거리가 먼 브랜드다. 하지만 이건 수수해도 너무 수수하다. 사실 보스는 고급 카오디오 분야에서 영향력이 크지 않다. 그간 엠블럼만 붙인 저가 오디오를 남발했기 때문이다. 고급차에선 그럭저럭 괜찮은 소리를 냈지만 단가가 낮은 대중차에선 엉망인 경우가 많았다. 이런 사례가 늘면서 평판도 바닥에 떨어졌다. 고급 오디오 시장에선 사운드 퀄리티만큼 브랜드 이미지도 중요하다. 물론 홈 오디오로 잔뼈가 굵은 보스가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최근 출시한 프리미엄 서브 브랜드 파나레이가 그 증거다. 뱅앤올룹슨, 하만카돈, 마크레빈슨 등으로 고급 카오디오 시장을 평정한 하만카돈 그룹을 보며 느끼는 게 많았을 거다. 인피니티의 음질은 보스 중에서 최상위 수준이다. QX60은 15개의 스피커로 구성되어 있고 센터포인트(디지털 서라운드)도 지원한다. 특성은 팝과 어울린다. 보스 홈 오디오가 그렇듯, 정교하진 않지만 딱딱하지 않고 밸런스가 뛰어나다. 그래서 연말 분위기와 어울리는 팝 앨범 2개를 골랐다. 에드 시런의 <X>와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OST다. 두 앨범 모두 철 지난 ‘히트곡 모음집’이지만 식상한 캐럴보단 낫겠다 싶었다. 에드 시런은 길거리 공연으로 실력을 갈고닦은 싱어송라이터다. 때문에 곡의 대부분을 기타 위주로 편곡하고 ‘원 테이크’로 녹음한 듯한 자연스러운 사운드를 추구한다. 이런 특징은 앨범의 첫 곡 ‘ONE’에서 두드러진다. 어쿠스틱 기타의 간결한 연주가 이끄는 4마디짜리 인트로에 기타의 현과 프렛이 살을 부비며 내는 소음과 에드 시런의 호흡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하지만 보스에는 이보다 더 리듬감 있고 풍성한 곡이 더 잘 어울린다. ‘SING’이나 ‘DON’T’와 같은 곡이 제격이지만 연말에 듣기엔 다소 자극적이라 ‘PHOTOGRAPH’를 틀었다. 가사와 멜로디, 악기 편성까지 기승전결이 뚜렷해 감수성이 풍부해지는 이맘때 딱 좋은 곡이다. 그런데 트위터가 중역대 소리에 묻혀 까끌까끌한 목소리와 악기들의 청명함이 잘 살아나지 않았다. 설정에서 고음을 2단계 정도 높여주니 그제야 딱 좋은 균형을 유지했다. 보스의 따뜻한 톤과 이 곡의 드라마틱한 전개는 2절 3번째 코러스에서 엔딩으로 이어지는 부분에서 시너지를 일으키며 큰 울림을 만든다. 4박자를 3박자처럼 쪼갠 독특한 그루브가 절정을 찍는 순간, 모든 악기가 연주를 멈추고 잔잔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이 곡에서 목소리를 오버 더빙한 것처럼 느껴지는 유일한 부분이다. “When I away~”로 시작하는 서정적인 가사는 가슴을 아주 잔인하게 관통한다. 마음이 떠난 사람도 이 가사를 들으면 돌아오지 않을까란 착각을 할 정도로.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았나 싶어 <러브 액츄얼리> OST CD를 꺼냈다. 이 앨범엔 켈리 클락슨, 노라 존스, 마룬5 등 유명 아티스트의 히트곡이 담겨 있다. 하지만 백미는 역시 트로그스의 명곡 ‘CHRISTMAS IS ALL AROUND’를 배우 빌 나이가 부른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다. 사실 이 곡은 베이스가 굉장히 세다. 하지만 QX60은 소형 박스에 4인치 스피커 두 개를 넣은 간결한 서브우퍼를 트렁크에 달고도(7인승이라 앞좌석에서 굉장히 멀다) 강한 저음을 충실하게 재생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는 종소리 등 잔향이 많은 곡이라 센터포인트로 이를 조금 더 강조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시승 내내 혼자라는 사실이 조금 서글펐지만 풍성한 사운드와 함께 밤거리를 달리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혹시 <러브 액츄얼리>처럼 연말에 가슴 따뜻해지는 일이 일어나진 않을까라는 근거 없는 기대가 생기는 건 별로였지만.  

보스는 고급 오디오 티를 내지 않는다. 센터 스피커의 초라한 엠블럼만이 보스의 정체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단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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