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전동화
이번 모터쇼의 프레스 콘퍼런스에서 환청이 들리는 줄 알았다. 거의 모든 브랜드가 똑같은 표현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20**년까지 ◯◯개의 전기차 신모델을 출시하겠다’는 발표였다. 여기에서 전기차는 정확하게 말하면 전동화(Electrification) 모델을 뜻한다. 이 전동화 계획은 매우 치밀하다. 제한된 숫자의 순수 전기차 모델을 중심으로 이보다 많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등의 풀 하이브리드 모델을 출시한다. 그리고 거의 모든 라인업에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적용된 전동화 모델을 출시하는 방식이다. 원활한 배터리 수급이 전동화 작업의 관건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2025년에는 그룹 전체 생산량의 4분의 1인 200만~300만대를 전동화 모델이 차지할 것으로 예상한 폭스바겐 그룹은 필요한 배터리가 무려 150GWh나 될 것으로 예측했다. 이 양은 작년 전 세계의 리튬 배터리 생산량인 28GWh의 여섯 배에 해당한다. 그래서 폭스바겐은 중국과 미국, 유럽에 파트너와 함께 배터리 공장을 설립할 계획이다.

 

02 자율주행차의 양분화
지금까지 자율주행은 양날의 검이었다. 자동차의 미래이기도 하지만 카셰어링에 적합해 자동차의 판매를 떨어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비해 다양한 자동차 브랜드들은 직접 카셰어링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자동차 수요를 확보하고 전기차의 부족한 서비스 매출도 보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에 이번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는 자율주행차의 종류를 사용 형태에 따라 구분해 제시했다. 대중 브랜드의 모델은 카셰어링 및 셔틀 서비스에 적합한 효율성 중심의 모델을 제시하되, 동시에 사용자에 따라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한 기능을 제공한다. 이에 비해 럭셔리 브랜드는 글자 그대로 ‘달리는 응접실 또는 집무실’을 제공하기 위해 자율주행과 커넥티비티를 활용한다.

 

03 기성품
보쉬, 콘티넨탈, ZF 등으로 대표되는 독일의 자동차 기술 전문 기업들은 독일 자동차 기술의 핵심이다. 이들이 제공하는 엔진 및 새시 모듈과 제어 장치들이 독일 자동차와 세계 자동차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동화-자율주행-커넥티비티 시대에 들어와 자동차산업의 진입 장벽이 무너졌다. IT 기업들이 진출하면서 그들의 절대적 지배력은 약화될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그들이 아니다. IT 기업인 엔비디아 등과의 협력을 통해 자율주행용 인공지능 제어 모듈, 기존 플랫폼에 적용할 수 있도록 모터와 제어 모듈이 일체화된 E 액슬, 통신 모듈과 클라우드 서비스 등 반 기성화 모듈을 선보였다. 이 모듈로 인해 자동차 제작사들은 손쉽게 미래형 자동차를 만들 수 있다. 

 

 

 

04 삼위일체
가까운 미래의 자동차를 구성하는 기술은 이제 분명해졌다. 바로 앞서 언급한 전동화, 자율주행, 그리고 커넥티비티다. 이 세 기술이 조합돼 새로운 형태의 모빌리티를 만든다는 것이다. 새로운 모빌리티의 목표는 스리 제로다. 환경오염 제로, 사고 제로, 스트레스 제로.

 

05 중국
중국은 이미 세계 최대의 시장이다. 특히 전기차에 관한 한 중국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배터리와 모터에 필요한 희토류의 주요 공급처라는 점, 전기차의 보급에 정부가 가장 적극적이라는 점, 정부의 협조 아래 보다 공격적인 기술 개발이 가능한 나라라는 점 등에서 그 중요성은 엄청나다. 이번 ZF가 클라우드 학습 등을 위해 중국의 바이두와 협력을 발표했듯이 중국의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는 빅데이터를 통한 인공지능 개발에도 매우 중요하다. 거의 모든 브랜드가 모터쇼에서 중국어 통역을 제공한 것 이외에도 중국의 부품업체들이 대거 출품한 것으로 중국의 약진은 확인할 수 있었다.

 

06 TRENDY
메르세데스 벤츠는 항상 페스트할레(Festhalle)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의 전시 공간으로 사용한다. 이곳은 프랑크푸르트 메세의 상징과도 같은 유서 깊은 건물이다. 따라서 메르세데스 벤츠도 이곳 전시 공간을 대부분 헤리티지를 강조하는 테마로 꾸며왔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펑크와 힙합 음악과 댄서들의 공연, 현란한 LCD 스크린 등으로 꾸며진 젊고 생기가 가득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행사 진행 요원들의 복장도 모두 캐주얼하게 바뀌었다. 젊어지지 않으면 시대의 변화와 함께 사라질 위험이 있다는 것을 감지한 것일까? 메르세데스 벤츠의 변신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07 B 세그먼트 SUV
미래의 이야기로 가득한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였지만 바로 지금 가장 중요한 테마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소형 SUV, 즉 B 세그먼트 SUV 신모델의 대거 등장이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유럽도 B SUV가 가장 뜨겁게 성장하는 세그먼트다. 지금까지 르노의 캡처(QM3)와 푸조 2008이 시장을 지배했다. 그러나 이 세그먼트의 최초 모델인 닛산 쥬크가 모델 체인지에 들어갔고 캡처와 2008도 황혼기에 접어들고 있다. 성장 동력이 중요한 이 시기에 대장 브랜드들이 드디어 B SUV를 출시했다. 독일의 맹주인 폭스바겐의 T록, 크로스오버 SUV의 세계적 강자인 현대의 코나와 기아의 스토닉이었다. 

 

 

 

08 NEW MOBILITY WORLD
모터쇼의 3.1관(3관 2층) 전체는 뉴 모빌리티 월드로 꾸며졌다. 이곳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모터쇼 안에 마련된 IT 기업들의 자동차산업 진출관이다. 많은 자동차 기업들이 전자제품 박람회에 출품하는 것에 대항해 반대의 목적으로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미디어 기업, 데이터베이스 관련 기업, 통신 기업, 그리고 삼성의 소유가 된 하만과 같은 V2X 관련 기업 등 미래 자동차와 관련 있는 기업들이 대기업부터 벤처기업까지 다양하게 참가했다. 기존의 모터쇼 부스와 달리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 교류의 장 역할을 하고 있었다. 기술적 측면뿐 아니라 이제는 문화적 측면과 소통의 방법도 달라지고 있다.

 

09 엔비디아 vs. 모빌아이
뉴 모빌리티 월드에는 크고 작은 무대에서 다양한 세미나가 개최됐다. 대부분의 IT 기업들은 자동차와 관련된 기술과 그 동향을 발표했다. 자율주행과 인공지능과 관련한 부분은 흥미로웠다. 엔비디아로 대표되는 카메라 및 그래픽 프로세서 중심 데이터 처리 집단과 모빌아이로 대표되는 ADAS 기반의 하드웨어 중심 주변 인식 시스템의 대결이었다. 요즘 추세는 엔비디아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작은 에러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고정밀 지도와 결합된 모빌아이 같은 신뢰도 높은 시스템도 중요하다. 기존의 IT 기술과 차이가 있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었다.

 

10 미래는 지금
‘Future now’는 이번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의 슬로건이었다. 지금까지 보았듯이 자동차의 미래는 이미 구체적으로 준비되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자동차는 어른들의 장난감이라는 감성적 만족도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런 자각이 자율주행차의 용도별 디자인 차별화 제시로 이어졌다. 엔비디아의 주장처럼 자동차의 기본은 안전이라는 점도 현재와 미래 모두에서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 가지 아쉬웠다면 국내 브랜드의 미래 자동차에 대한 비전 제시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우리만 아직 현재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됐다.  글_나윤석(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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