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워둔 차가 혼자 움직였다. 무척 당황스러웠다. 당시 상황은 이렇다. 오랜만에 토요타 86 시동을 걸어주기 위해 지하 주차장에 내려갔다. 주차를 하고 두 번의 주말이 지났으니 한 열흘 서 있었나 보다. 위치는 차 한 대가 아슬아슬하게 들어갈 수 있는 두 기둥 사이였다. 운전석 도어 뒷부분이 기둥 앞을 스치며 열릴 수 있는 한계점까지 후진으로 집어넣어야 앞 범퍼가 다른 통행을 방해하지 않기 때문에 더 큰 차량은 세울 수도 없는 그런 공간이다. 일종의 86 맞춤형 공간이라 몇 년째 이 자리를 애용해왔다. 그런데 차에 돌아와보니 문 끝이 기둥에 막혀 열 수가 없다. 차가 한 뼘 이상 뒤로 이동해 양쪽 도어가 모두 기둥에 가려버린 것. 차에서 내릴 때는 분명 문이 열리는 위치였는데 다시 타려고 하니 문을 열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반대 방향으로 차를 밀어봐도 기어가 고정돼 움직이지 않았다. 차체와 기둥 사이 공간은 겨우 2센티미터 남짓이라 도어 역시 그 정도만 열렸다. 틈으로 손을 집어 넣어 창문을 내리는 것도 불가능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평지처럼 보이던 바닥이 아주 미세하게 뒷벽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배수 목적으로 살짝 경사를 준 셈이다. 여기에 개인적인 습관이 문제가 됐다. 평지에 수동변속기 차량을 주차하는 경우 나는 주차 브레이크를 당기는 대신 항상 시동을 끄고 기어를 넣어둔다. 10년 전 독일에서 포르쉐 인스트럭터 교육을 받을 때 생긴 습관인데 트랙 주행으로 달궈진 브레이크가 주차 브레이크 사용으로 고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가장 높은 기어비의 단수에 걸어두면 실린더 내부 저항이 구동 바퀴에 강하게 걸리면서 차량이 잘 움직이지 않게 된다. 오르막에서는 1단, 내리막에서는 후진 기어를 넣어야만 차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건 잘못된 속설이다. 1단이나 후진 기어 양쪽 다 제동 효과가 있고 둘 중 기어비가 더 높은 쪽을 선택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마지막으로 주차할 때도 습관적으로 핸드브레이크 대신 1단 기어를 체결해뒀다. 외부 기온이 아주 높거나 엔진 온도가 많이 올라 있는 상태에서 시동을 끄면 압축 행정상 갇힌 압축 공기가 가열하고 팽창해 피스톤을 살짝 밀어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원인이 어떻든 기어를 넣어둔 채로 주차한 차가 스스로 움직였다는 경험담은 해외 자동차 포럼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메커니즘은 전혀 다르지만 자동변속기의 P로 해두어도 어느 정도 앞뒤로 움직일 수 있는 유격이 있다. 확실하게 정지 상태를 단속해 두려면 반드시 주차 브레이크를 함께 써야 한다. 경사가 심한 언덕 위에 주차한다면 추가로 운전대를 돌려 앞바퀴의 각도를 틀어주면 좋다. 만에 하나 차가 언덕 아래로 움직이더라도 앞 타이어가 인도나 도로 가장자리 시설물에 걸려 속도가 붙기 전에 멈추는 역할을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주차 공간이 워낙 부족한 우리나라 실정에서는 간혹 중립에 두고 차를 밀 수 있게 주차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역시 개선해야 할 문화다. 어떤 경우라도 주차된 차량의 위치를 임의적으로 옮기는 것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기둥 사이에 갇혀버린 차를 어떻게 빼내야 할지 고민하다가 불현듯 지금 차 안에 이든이라도 혼자 남겨졌으면 어땠을까 생각이 들었다. 차내에 아이를 홀로 두고 내리는 상황은 가급적 피해야겠지만 어떻게 발생할지 모르는 위급 상황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차 안에서 내리지 못한 작은 생명이 무더위에 희생됐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아이에게 최소한의 차량 조작법을 숙지시켜야겠다고 다짐하고 잊어버렸는데 엉뚱한 계기로 실천에 옮기게 됐다. 

세 살 아이가 실내 도어 핸들을 당겨 문을 열기에는 힘도 부족하고 낙상 위험도 있는 데다 혼자 도로 위로 나오는 것 자체가 더 큰 위험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이든이에게 차량 전원을 켜고 파워윈도 조작법을 가르쳤다. 생후 29개월 여자아이에게 윈도 스위치는 꽤 많은 힘을 줘야만 제대로 눌렸다. 몇 번의 시도 끝에 혼자 창문을 내리는 데 성공했다. 경적을 울리는 법도 함께 일렀다. 하지만 아직 이든이의 근력으로는 경적을 누르기 어려웠다. 대신 비상등 스위치도 알려줬다. 만약 어디선가 혼자 차 안에 남겨졌는데 힘들거나 겁이 나면 빨간 세모를 누르라고 일렀다. 

아! 차는 어떻게 됐을까? 우산을 유리 틈으로 집어넣고 낑낑대며 기어 레버를 중립으로 옮긴 후에야 차량을 밀어낼 수 있었다. 

글_강병휘(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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