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승용차의 일일 평균 주행거리는 37.6킬로미터다. 연간으로 환산하면 1만3724킬로미터에 달한다. 지난 2002년 하루 이용 거리가 53.9킬로미터였으니 30.2퍼센트나 축소된 셈이다. 편리한 대중교통의 확충이 승용차 이용 거리를 줄인 것으로 해석되지만 자동차 회사는 적지 않은 고민에 빠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37.6킬로미터가 던지는 또 하나의 고민은 새로운 모빌리티 역할의 확대다. 최근 등장하는 개인형 이동수단의 주행 가능 거리를 40킬로미터 내외로 본다면 37.6킬로미터는 문제 되지 않는다. 전기자전거, 전동 휠 등 새로운 모빌리티가 자동차를 얼마든지 대신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일부 생각이 앞선 자동차 회사들은 자동차 또한 여러 이동수단의 하나로 보고 새로운 ‘탈것’ 개발에 나서기도 한다. 3륜 전기차를 만들고 전동 휠은 물론 전기자전거 개발에도 적극적이다. 다시 말해 큰 틀에서 모빌리티(Mobility)의 개념을 설정하고, 그 아래 자동차를 비롯해 다양한 개인용 탈것(Personal Mobility)을 마련해두는 전략이다. 

지난 2015년 스페인에서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에도 다양한 모빌리티가 등장했다. 포드는 ‘핸들-온-모빌리티 전기자전거’ 연구를 발표했는데, 기존 자동차 및 대중교통 위주로 형성돼온 도심 교통 인프라에 한층 빠르고 편리한 이동수단을 제공하고자 진행됐다. 자동차 개발뿐만 아니라 궁극적인 교통 문제 해결을 통해 미래 이동성을 개선한다는 포드 스마트 모빌리티 계획의 일환이다. 직원들을 대상으로 전기자전거 디자인 및 설계 아이디어를 공모해 100여 개의 제안을 모았고, 이 가운데 가장 우수한 ‘모드:미(MoDe:Me)’ 및 ‘모드:프로(MoDe:Pro)’ 전기자전거 두 종을 MWC에 선보였다. ‘모드:미’는 도시 근교 통근자를 대상으로 하며 쉽게 접히고 보관이 간편하다. 

사실 자동차의 기본 속성은 이동이다. 손쉽게 원하는 장소로 옮길 수 있어 140년 동안 대중의 이동수단으로 자리해왔다. 이동을 위해 바퀴가 달리고, 바퀴가 회전할 수 있는 동력으로 화석연료를 사용했다. 그런데 140년 지속돼왔던 이동수단의 패러다임이 급격히 변하고 있다. 움직임의 안정을 위해 네 바퀴가 기본이던 자동차 외에 세 바퀴 그리고 두 바퀴 이동수단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더불어 화석연료로 지탱했던 동력 발생 또한 전기로 대체되면서 기술 진입 장벽이 낮아지고 덕분에 이동수단은 지금보다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샤오미가 전동 휠 나인 봇을 만들 수 있었고, 구글과 애플이 자동차 진출을 선언하며 140년 역사의 견고한 자동차산업을 넘볼 수 있었던 배경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개인 이동수단은 5만대가 팔렸다. 올해는 7만5000대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이용이 쉽고 편리해서 온라인 쇼핑몰에선 마치 가전제품처럼 판매한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유행 조짐도 보인다. 

하지만 전기 이동수단은 불법이다. 법에 저촉되는 게 아니라 법이 없는 ‘무법(無法)’이어서 불법이다. 도로교통법은 출력 0.59킬로와트 미만의 원동기가 달린 이동수단은 ‘원동기장치 자전거’로 분류한다. 배기량 50cc 미만 오토바이와 똑같이 본다. 따라서 전동 휠 등 개인 이동수단을 이용하려면 2종 원동기 면허가 필요하다. 또한 오토바이를 인도나 자전거도로에서 타면 안 되는 것처럼, 전동 이동수단 역시 원칙적으로 도로에서만 달려야 한다. 오토바이처럼 헬멧도 써야 한다. 

그렇다면 오토바이처럼 번호판을 부착해 자동차보험을 가입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에 미친다. 하지만 번호판을 받으려면 자동차관리법이 규정한 안전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방향지시등과 전조등, 제동등 등이 있어야 한다. 개인 맞춤형 이동수단 가운데 자동차 안전기준을 충족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자동차가 아닌 만큼 도로 주행도 불법이다. 결국 인도나 보도로 올라가야 하지만 경찰은 도로교통법을 준용해 인도와 보도 주행은 단속한다. 결국 어디서 타든 모두 불법이다. 

일찌감치 새로운 이동수단의 등장을 예견한 선진국은 법도 재빨리 정비했다. 독일은 2009년부터 전동 휠 관련 면허를 새로 만들어 면허를 딴 사람은 자전거도로와 일반도로에서 탈 수 있도록 했다. 미국은 전동 휠을 저속 자동차로 보고 도로 운행을 허용한다. 이에 반해 싱가포르는 인도와 자전거도로에서 전동 휠 등을 타도록 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법 제정 움직임이 있다는 점이다. 올해 1분기 국회에서 자전거도로에서도 전동 킥보드나 전동 휠 등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 개정안이 제출됐다. 최고 시속 25킬로미터 미만, 무게 30킬로그램 미만인 페달보조방식(PAS) 전기자전거도 자전거로 분류했다. 하지만 시행은 내년 3월이다. 그 사이 사고를 경험하면 전적으로 개인 책임이다. 일상생활에서 손해를 입었을 때 보상받는 보험이 있지만 전동 탈것은 제외다. 그렇다고 자동차도 아니어서 자동차보험 가입도 되지 않는다. 인도 및 보도 주행도 안 되고, 도로에서도 타지 말라는 게 현재의 법이다.

이런 가운데 새로운 모빌리티는 끝없이 등장하고 있다. 바퀴의 숫자만 다를 뿐 땅에서 발이 떨어지는 것은 같다. 그리고 퍼스널 모빌리티의 영역은 중소 및 IT 기업들로 확대되고 있다. 모빌리티 사업을 하는 데 있어 그간 내연기관이 진입장벽이었다면 전기 전환은 장벽을 단숨에 무너뜨리는 수단임이 틀림없다. 심지어 신발에도 배터리와 모터, 바퀴를 달아 이동시키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동수단이 불법이라니 한심할 노릇이다. 그리고 정부는 줄기차게 4차 산업혁명을 외친다. 퍼스널 이동수단이 곧 4차 산업혁명의 결과물인데도 말이다. 겉으로는 놀이 기구에 불과할 수 있지만 이동 거리가 늘어나면 대체 교통수단이다. 전동 휠을 타고 출퇴근하는 사람이 서서히 증가하고, 전동 자전거로 마트를 오가는 사람이 많아지고, 전동 킥보드로 등하교 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글_권용주(<오토타임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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