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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의 비밀

지금 막 세상에 나온 레인지로버 벨라는 사실 50년 전 랜드로버의 비밀 프로젝트였다

2017.09.04

50년 전, 1967년의 어느 날
영국 솔리헐 랜드로버 공장의 작업대 앞에 몇 명의 남자가 모여 앉았다. 비장하고 조심스러운 눈빛을 지닌 이들 앞엔 여러 장의 서류가 나뒹굴고 있었고, 모두들 심각한 표정으로 종이 쪼가리들을 쏘아보고 있었다. 무리 중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이는 사내가 펜을 집어 들자 무거운 침묵의 시간이 끝나는 듯 보였다. 


“이제 사인만 하면 되는 건가?” “아냐! 우린 아직 이름을 정하지 못했어.” 나이 많은 남자는 깊은 한숨과 함께 펜을 내려놓았다. 누군가는 팔짱을 끼고 또 다른 이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다시금 침묵이 찾아왔다. 모두 산소와 피를 억지로 뇌로 공급하며 무언가를 생각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다들 잘 알겠지만 이 차에 관해선 여기 있는 우리만 알고 있어야 해. 이 프로젝트는 랜드로버의 미래를 크게 바꿀지도 모르니까.” “우리만의 비밀로 남겨두자는 의미에서 베일(veil)은 어떨까?” “그건 너무 직설적이야. 음… 베일의 이탈리아어 벨라레(velare)는 어때?” “어차피 그것도 베일이란 뜻이잖아. 이러면 어때? 마지막 e를 빼고 벨라라고 하는 거야.” 모두 고개를 들어 서로를 바라봤다. ‘나는 괜찮은 거 같은데 넌 어때?’라는 뜻이다. 몇 분간의 정적이 흐르고 그가 다시 펜을 들었다. 그리고 서류에 이렇게 적었다. ‘VELAR’. 


이 비밀스러운 남자들은 랜드로버의 수석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들이다. 이들은 랜드로버가 준비하는 프로젝트를 완벽한 비밀로 남기기 위해 지금 막 서류 회사를 세우고 26대의 프로토타입 자동차를 그 회사 이름으로 등록했다. 그리고 그 차의 이름을 ‘벨라’라고 지었다. 비밀 프로젝트는 일반도로에서도 편하게 탈 수 있는 왜건 형태의 4WD였다. 당시 랜드로버로서는 굉장한 도전이자 혁신적인 프로젝트였다. 


1948년 문을 연 랜드로버는 농작물 관리와 군용 목적으로 시리즈 1이라는 차를 선보였다. 지프 윌리스를 기반으로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이와 비슷한 형태로 차체를 디자인한 네바퀴굴림 차였다. 당시는 전쟁 직후여서 철이 너무 비쌌기에 알루미늄으로 차체를 제작했다. 지금 랜드로버의 뛰어난 알루미늄 기술은 이렇게 회사 창립의 순간부터 시작된 것이다. 시리즈 1은 11년이나 장수했고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았다. 시리즈 1의 대성공에 힘입어 시리즈 2에선 다양한 시도를 했다. 스테이션왜건을 선보였고 롱 휠베이스와 쇼트 휠베이스 모델을 추가했다. 엔진도 1.6리터를 버리고 2.0리터에 주력했다. 당시 시리즈 2는 매년 2만5000대 정도씩 판매될 정도로 인기였다. 벨라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가 바로 시리즈 2로 돈을 많이 벌어들일 때였다. 


1960년대 영국은 다른 유럽 나라와 마찬가지로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랜드로버는 못 가는 곳이 없었다. 농작물을 관리하거나 군용으로 쓰기 위해 개발됐으니 차체가 견고했고 4WD 시스템은 강력했다. 당연히 많은 이들이 랜드로버를 선호했다. 하지만 시골이나 전장에서 타는 차라는 인식이 문제였다. 랜드로버가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런 인식을 불식시키는 온로드용 차가 필요했다. 랜드로버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들이 비밀리에 모여 왜건형 4WD 프로토타입을 만든 이유다. 랜드로버 창사 이래 가장 혁신적인 도전이었다. 이 온로드용 차를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면 랜드로버는 영원히 시골이나 전쟁터를 전전긍긍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비밀 결사대는 벨라 프로토타입으로 수많은 테스트를 했고 드디어 3년 후인 1970년 벨라를 베이스로 온로드용 3도어 4WD를 선보였다. 레인지로버(Range Rover)가 세상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다. 차 이름에 랜드로버의 영역 확장 의지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 결과적으로 지금의 레인지로버는 벨라가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벨라가 없었다면 레인지로버도 없었을지 모른다. 

 

50년 후, 2017년 3월 제네바 모터쇼
“디펜더 생산이 중단된 지금 레인지로버 벨라는 랜드로버의 새로운 도전이자 확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랜드로버는 지금 브랜드 정체성에 큰 변화를 시도하고 있죠. 그래서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차원의 디자인 시도가 필요했어요. 그렇게 벨라가 탄생했습니다.” 50년 전 비밀 결사대가 그랬던 것처럼 랜드로버의 수석 디자이너 제리 맥거번은 레인지로버 벨라가 랜드로버의 새로운 도전이자 확장이라고 말했다. 


레인지로버 배지를 달고 부활한 벨라는 지금까지의 랜드로버와는 확연히 다른 디자인이다. 우선 랜드로버 역사 이래 A 필러가 이렇게 뒤로 많이 누운 차는 없었다. 지금 볼 수 있는 SUV 중에서도 가장 낮을 것이다. 공력성능을 높이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명이랄까. 이런 시도는 차체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지붕을 낮추고 더 길게 연장했다. 뒤로 갈수록 좁아지는 보디와 도어 손잡이를 없앤 대담함 또한 랜드로버 최초의 시도다. 이렇게 벨라는 역대 랜드로버 중 가장 날렵하고 매력적인 디자인이 됐다. 

 

 

실내에서도 새로운 시도가 보인다. 두 개의 10인치 터치스크린 모니터다. 각종 버튼을 없애고 차와 관련된 기능을 모니터에 담아 대시보드가 더없이 깔끔하고 간결하다. 두 부분으로 나눈 운전대 컨트롤러도 신선하다. 


50년 전, 온로드 주행성을 위해 비밀리에 벨라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것처럼 50년 후인 지금도 벨라는 온로드 주행성을 위해 공력성능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했다. 그렇다고 랜드로버가 오프로드를 양보할 리 만무하다. 랜드로버의 최신형 전자동 지형 반응 시스템 2와 전지형 프로그레스 컨트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엔진은 240마력을 내는 2.0리터 4기통 디젤 엔진을 비롯해 300마력을 내는 3.0리터 디젤 엔진과 380마력을 내는 3.0리터 V6 슈퍼차저 엔진 등 모두 세 종류를 얹는데 값은 9850만~1억4340만원이다. 


내년이면 랜드로버는 70주년을 맞는다. 그들의 70년 역사에서 벨라는 아주 짧은 순간을 스쳤을 뿐이지만 랜드로버 역사에서 가장 큰 변화를 이끌었고 가장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남겼다. 그리고 어쩌면 랜드로버의 새로운 역사에서 큰 변곡점을 만들지도 모른다. 50년 전 벨라가 그랬던 것처럼. 

 

 

모터트렌드,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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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벨라,레인지로버 벨라,랜드로버,50년 전 벨라

CREDIT Editor 이진우 Photo PR 출처 MOTOR TR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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