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MERCEDES-AMG GLE 63 S 4MATIC COUPE, MASERATI LEVANTE S, LAND ROVER RANGE ROVER SPORT SVR

 

#1  고성능 SUV 세계에 변화가 찾아왔다. 크기와 형태에 따른 세분화가 시작된 것. 이제 핫해치처럼 날렵한 SUV나 머슬카처럼 화끈한 SUV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런데 이런 식의 고성능 SUV가 과연 합당할까? 다양한 고성능의 형태 중 어떤 것이 SUV와 가장 잘 어울릴까?

#2  우리는 고성능 카테고리들을 살펴보다 GT라는 카드를 집었다. 아무리 GT가 여기저기 갖다 붙이기 좋다지만 SUV GT라니. 어째 조금 어색하긴 하다. 그런데 GT는 장거리 여행을 무리 없이 소화할 만큼 안락하면서 스포츠카처럼 빠른 차를 뜻한다. 즉, 전통적인 형태만 무시한다면 고성능 SUV만큼 GT에 어울리는 차도 없다. 

#3  우리는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스포츠 SVR과 메르세데스 AMG GLE 63 S 4매틱 쿠페, 그리고 마세라티 르반떼 S를 불러냈다. 메르세데스 벤츠와 마세라티는 GT에 능통한 브랜드고 랜드로버의 고성능 모델이라면 응당 GT 색채를 띠고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차들은 현재 고성능 SUV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모델이다. 

#4 시승이 끝난 후 우리는 승자 결정 방식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서로 취향이 달랐고 최고로 꼽는 차도 달랐다. 기준에 대한 이견이 분분한 가운데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자, 급한 일로 당장 부산에 가야 한다면 어떤 차를 타고 갈래?” 촬영과 시승으로 녹초가 된 우리가 최고의 GT카를 선정하기에 아주 적합한 질문이었다. 결과는? 다음과 같다.

 

 

GT의 덕목 중 중요한 것을 몇 가지 꼽아보면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속도, 편안함, 고급스러움. ‘제대로 된 GT’라는 이야기를 들으려면 이 중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안된다. 세 가지 특징이 서로를 받쳐주며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풍요로움을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풍요로움’이라는 관점에선 SUV만큼 현대적 개념의 GT에 잘 어울리는 장르도 없다. 공간의 여유를 타고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빠르게 달리기도, 안정감에서 비롯되는 편안함을 만들어내기도 불리하다. 그런 핸디캡을 얼마나 잘 극복했는지가 GT 성격을 지닌 SUV를 평가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그렇게 보면 가장 유리한 건 접근 방식이 남다른 르반떼 S다. SUV로 만들어진 다른 두 모델과 달리 스포츠 세단인 기블리의 키를 높였기 때문이다. 적어도 개념 면에서는 GT 개념에 가장 이상적이다. 르반떼 S와 같이 전통적인 스포츠카 스타일인 ‘롱 노즈 쇼트 데크’를 반영한 SUV는 흔치 않다. 눈에 들어오는 고급스러움 면에서도 그리 부족하지 않다. 겉모습은 자극적일 정도로 스포티하고, 고급차다운 존재감이 느껴지며,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소재의 실내는 감성을 자극한다. 특히 시승차는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실크와 질감 좋은 가죽으로 마감해 한층 더 고급스럽다. 물론 값싸 보이는 부분도 눈에 띄지만 디자인과 고급 내장재의 카리스마가 전체적인 분위기를 압도한다. 변속 레버와 같은 파워트레인 계통 장비의 조작감이 조금 떨어지고 엉성한 디지털 인터페이스 디자인만 빼면 크게 아쉬운 점이 없다. 편의장비나 수납공간처럼 세심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뒷좌석이 약간 빠듯하긴 하지만 차 크기에 비해 넉넉한 앞좌석과 충분한 적재공간이 이를 만회한다. 

 

르반떼 S는 세 차 가운데 차체 높이와 무게중심이 가장 낮다. 따라서 몸놀림도 가장 민첩하다. 마치 위아래 움직임에 조금 더 여유가 생긴 기블리를 모는 느낌이다. 네바퀴굴림이지만 일반 도로에서는 뒷바퀴굴림 차의 특성이 강하고 제법 날카롭게 코너를 파고든다. 서스펜션에 잔뜩 힘을 줘 안정감을 높인 다른 SUV에 비해 몸놀림이 훨씬 더 자연스럽다. 출력이 낮은 편이지만 무게가 가장 가벼운 덕분에 가속감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ZF 8단 자동변속기는 전반적으로 훌륭하다. 저속이나 스포츠 모드에서 간혹 강한 충격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빠르고 매끄러우면서 힘을 잘 전달한다. 방음 처리도 잘돼 웬만큼 속도를 높여도 실내에는 엔진음과 배기음만 듣기 좋게 울려 퍼진다. 이런 사운드들은 가속할 때 짜릿함을 더해주지만 정속 주행 때는 약간 걸걸하게 귓전을 긁는다.

서스펜션의 어댑티브 댐핑 시스템은 승차감보다는 접지력에 초점을 맞춘 세팅이다. 요철을 지날 때 종종 차체는 자연스럽게 움직이지만 바퀴는 ‘툭’ 하고 떨어지면서 충격을 준다. 특히 저속으로 거친 길을 달릴 때는 적잖이 거슬린다. 에어 서스펜션을 세련되게 조율했지만 자잘한 진동이 끊임없이 스티어링휠과 시트를 통해 전달되는 것이 문제다. 전반적인 주행 감각은 고속도로를 쾌속 질주하기보다는 굽이치는 산길에서 핸들링의 묘미를 즐기기에 더 잘 어울릴 듯하다. 

일반적인 SUV와 비교한다면 르반떼 S는 분명 GT의 색깔이 잘 반영되어 있는 차다. 그러나 오늘 나온 다른 차들과 비교하면 자극적이고 거친 부분들이 더 크게 다가온다. 몇 세대에 걸쳐 숙성된 차와 그렇지 않은 차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마세라티가 르반떼에 V8 엔진을 얹고 서스펜션을 좀 더 세련되게 다듬는다면? 그때는 르반떼가 지닌 GT의 잠재력이 정말 화끈하게 드러날 것이다.
글_류청희

 

 

SUV가 아닌 대형 해치백에 가깝다. 시동을 걸 때의 배기음은 평범하다 못해 조용한 수준이다. 하지만 회전수를 높이면 V6 엔진의 고운 음색이 귀를 즐겁게 한다. 오늘 모인 세 대의 모델 중 무게중심이 가장 낮게 느껴진다. 시트 힙포인트 역시 마세라티 세단과 비슷한 것 같다. 노멀 모드에서는 어느 정도 롤링과 피칭을 허용하지만 스포츠 모드로 바꾸면 자세를 적극적으로 제어하기 시작한다. 노면이 좋지 않은 데선 조금 통통거리는 느낌이지만 매끄러운 도로에 올라서자 흔들림 없이 고속 영역까지 내달렸다. 하지만 500마력을 넘는 차들을 따라가기엔 부족한 출력이 아쉬움을 남겼다. 강병휘

르반떼는 인상만으로 주위를 압도한다. 디자인 완성도가 높고 낮음을 떠나 존재감이 굉장히 뚜렷하다. 오늘 모인 차 중 가장 길지만 가장 짧아 보인다는 것도 신기하다. 또한 운전 감각도 가장 작은 차처럼 느껴진다. 바닥과 시트가 낮게 깔려 세단처럼 빠릿빠릿하다. V6 엔진은 굉장히 화끈하다. 가속 성능이 인상적이진 않지만 고회전 자연흡기 엔진과 같은 통쾌한 사운드가 심금을 울린다. 하지만 실내 마감은 실망스럽다. 일부 플라스틱 패널은 사출 자국까지 남아 있다. 고급 가죽이나 제냐 원단 같은 걸로 현혹할 게 아니라 전체 품질을 개선했으면 좋겠다. 변속 레버 작동감이 또렷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이건 자칫 사고 위험도 있어 보인다. 소소한 단점을 개선한 뒤 페라리 공장에서 만든 V8 엔진을 얹은 르반떼가 꼭 보고 싶다. 류민

 

뒷좌석과 짐 공간의 편의성
휠베이스가 길어 무릎 공간이 가장 넉넉하다. 다른 차들보다 50밀리미터 정도 더 여유롭다. 바닥이 낮게 깔려 있지만 사이드 스텝이 없고 입구에 턱까지 있어 타고 내리기는 불편하다. 뒷좌석은 정말 고급스럽다. 붉은 가죽과 제냐의 고급 원단의 조합이 근사하다. 오디오는 스피커 17개로 구성된 B&W의 시스템인데 뒷좌석 소리는 영 별로다. USB 충전 포트는 두 개며 시트 열선 버튼은 손잡이 아래 숨겨져 있다. 트렁크 공간은 생각보다 실용성이 떨어진다. 스포일러 때문에 티가 잘 안 나지만 르반떼는 사실 GLE 쿠페처럼 쿠페형 디자인이다. 트렁크 아래 부분은 넓지만 C 필러가 급격하게 떨어지기 때문에 위쪽 공간은 거의 활용할 수 없다. 김선관

 

 

GT라는 장르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브랜드가 몇몇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가 그중 하나다. 프리미엄 또는 럭셔리카 브랜드 중 GT에 관심 없는 곳이 어디 있겠냐만 유럽에 뿌리를 두고 미국 고급차 시장에서 활약해온 벤츠는 쉬지 않고 각 대륙에 어울리는, 때로는 두 대륙을 아우를 수 있는 GT카를 선보이며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왔다. 마세라티, 페라리 등의 이탈리아 브랜드와 함께 현대적인 GT카의 개념을 정립한 SL이나 대형 럭셔리 2도어 GT카 시장을 꿋꿋이 지켜온 S 클래스 쿠페(CL) 등이 좋은 예다.

어찌 보면 벤츠가 가장 먼저 프리미엄 SUV에 손을 대고, 경쟁자 중 최초로 고성능 SUV를 선보인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큰 엔진과 넉넉한 공간을 활용해 풍요로운 감각을 내는 걸 유독 좋아하고, 또 그런 작업에 일가견이 있는 브랜드이니 말이다. 그들이 GT에 능통하고 R 63 AMG와 같은 희귀 모델을 만들었던 것도 이런 성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R 63 AMG, 그러니까 510마력 6.2리터 V8 엔진을 얹은 양산 미니밴과 같은 ‘미친 짓’은 벤츠가 아니면 누구도 도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벤츠는 현재 콤팩트부터 풀사이즈까지 총 7종의 SUV를 생산하고 있다. 라인업에는 GLC와 GLE의 쿠페 버전과 정통 오프로더 G 클래스가 포함되며 모든 모델은 고성능 버전으로도 생산된다. 각 모델의 성격은 크기, 형태, 엔진 등에 따라 뚜렷하게 구분된다. GLE 63 S 쿠페는 이 중 가장 스포티한 모델. BMW X6 M, 포르쉐 카이엔 터보 등 ‘성능 지상주의’에서 태어난 경쟁사의 고성능 SUV들과 자존심 싸움을 펼치는 모델인 만큼 파워트레인과 서스펜션을 가능한 한 빠듯하게 조였다. 

엔진은 585마력 버전의 5.5리터 V8 바이터보다. 600마력을 넘기는 신형 E 63 S의 4.0리터 V8 바이터보 엔진에는 못 미치지만 큰 배기량과 쇼트 스트로크 설계로 저회전부터 고회전까지 꾸준히 힘을 쏟아내는 세팅이기 때문에 고성능 SUV에는 이 5.5리터 엔진이 더 잘 어울린다. 게다가 반응도 더 고급스럽다.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면 4.0리터 엔진은 바로 스로틀을 닫고 정신없는 굉음을 내지만 5.5리터 엔진은 동력부터 끊고 회전수를 살짝 띄운 뒤(스포츠 플러스 기준) 아주 기름진 파열음을 낸다. 또한 엔진 브레이크가 한 템포 늦게, 점진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감각도 한결 매끈하다. 벤츠는 가속페달을 밟았을 때의 반응 못지않게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었을 때의 반응도 중시한다. 그들이 5.5리터 엔진에 DCT가 아닌 토크컨버터 방식 변속기나 MCT(멀티 클러치 변속기)를 사용하는 것도 바로 이런 철학 때문이다.

파워트레인은 세심하고 또 화끈하지만(정지가속은 물론 추월가속에서도 다른 두 차를 가볍게 따돌렸다) 서스펜션은 그렇지 못하다. 무게가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댐퍼를 끊임없이 밀어내는 까닭에 운전자의 신경이 바짝 곤두선다. 물론 작은 움직임과 큰 움직임을 구분해 승차감이 악화되는 것을 방지하고 있기는 하다. 나는 시속 150킬로미터 이상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완성도가 뛰어난 ‘준자율주행’ 장비를 갖췄다는 점에서 GLE 63 S 쿠페를 최고로 꼽았지만 다른 두 사람은 트랙 또는 굽이진 산길에나 어울릴 법한 사나운 서스펜션을 싫어했다. 이에 대한 이견은 없다. GLE 63 S 쿠페는 그랜드 투어러(GT)보단 스프린터에 가까운 게 사실이니까. 하지만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차가 GLE 63 S 쿠페라는 생각에는 변함없다. 글_류민

 

 

메르세데스 벤츠는 GT 성향이 뚜렷한 브랜드다. 큰 모델로 갈수록 더 그렇고 SUV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GLE 63 S 쿠페는 조금 이질감이 든다. 잘 달리기는 하지만 긴장감도 함께 느껴지기 때문이다. 백미는 대배기량 고출력 엔진이 쏟아내는 풍성한 힘과 시원한 가속력이다. 지나치게 조인 서스펜션 때문에 조금 부담스럽지만 그만큼 빠른 속도에서도 안심하고 달릴 수 있다. 다만 대부분의 벤츠는 섀시가 엔진을 이겨왔는데 GLE 63 S 쿠페는 엔진 힘이 과하다는 느낌이 든다. 섀시에 여유가 별로 없기 때문에 서스펜션을 한껏 조여 안정감을 부여한 느낌이다. 든든하기는 해도 마냥 편안하진 않다는 점에서 GT 성향을 완벽하게 구현하지는 못했다는 생각이다. 류청희

디자인과 성능 모두 극단적이다. 325밀리미터에 달하는 22인치 초광폭 타이어가 차체에 묻혀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다. 스포츠 플러스 모드에 두면 AMG다운 배기 사운드를 쏟아낸다.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 주변 운전자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을 녀석이다. 585마력까지 끌어올린 5.5리터 바이터보 엔진은 이 큰 덩치가 무색하게 가뿐히 시속 250킬로미터를 정복한다. 피칭을 1도 허용하지 않는 에어 서스펜션은 초고속 주행에서 돋보이는 안정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이 안정감이 첨단 전자제어 장비의 철벽 수비 덕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강병휘

 

뒷좌석과 짐 공간의 편의성
사이드 스텝이 있어 드나들기가 편하다. 무릎 공간도 여유로운 편이다. 쿠페 디자인이라 루프라인이 완만하게 떨어지지만 헤드라이너를 바짝 올려붙여 그리 답답하지 않다. 공조 장치와 시트 열선 버튼은 센터콘솔 뒷면에 잘 정리해 붙였다. 송풍구는 센터콘솔과 B 필러 두 곳에 있다. 덕분에 30도를 웃도는 날씨에도 앞좌석만큼이나 시원했다. 앞좌석 헤드레스트에 붙인 뒷좌석 전용 모니터 덕분에 심심할 겨를도 없다. 해치 도어는 활짝 열린다. 하지만 짐을 쉽게 넣을 수는 없다. 트렁크 바닥 높이가 무려 940밀리미터나 된다. 하지만 트렁크 구석구석에 숨겨진 수납공간은 아주 유용해 보인다. 김선관

 

 

보닛을 열자 후끈한 열기가 얼굴을 감싼다. 거대한 V8 슈퍼차저 엔진이 안쪽 깊숙이 들어앉아 있다. 범퍼 공기흡입구 안쪽에는 냉각용 코어가 보인다. 고개를 돌리니 엔진룸 안 펜더 위쪽의 공기흡입구도 눈에 띈다. 물길을 건널 때를 대비한 오프로더의 흔적이다. SVR, 그러니까 온로드 고성능 모델임에도 오프로드용 로기어와 전자동 지형반응 시스템(2세대)을 갖췄다. 레인지로버 패밀리로서의 본분을 지키며 고성능까지 동시에 추구하겠다는 야망이 보인다.

모서리를 바짝 세운 버킷 타입 가죽 시트는 어깨 위쪽에 두 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레이스카에서는 이 구멍으로 하네스라 부르는 6점식 안전벨트가 지나간다. 물론 SVR에 하네스를 장착할 일은 없다. 재규어·랜드로버의 고성능 디비전인 SVO(Special Vehicle Operations) 팀의 위트가 마음에 든다. 무턱대고 안락성을 배제한 스포츠 시트가 아니라서 장시간 운전에도 부족함이 없다. 방석은 계기반 아래쪽이 안 보일 정도까지 내려간다. 덕분에 일반 레인지로버보다 더 안정적인 자세를 만들 수 있다. 

 

시동 버튼을 누르니 V8 엔진답게 스타터가 한참을 돈다. 뒤이어 4개의 배기 파이프가 재규어 F타입과 비슷한 포효를 뿜어낸다. SVR의 사운드는 오늘 모인 차 중 가장 풍성하다. 마세라티는 다소 인위적이고 AMG는 톤이 건조하다. 터보차저를 거치지 않은 배기가스가 연주하는 힘찬 심포니는 점점 사라져가는 라이브 콘서트와 비슷하다. 
랜드로버는 다양한 노면에서 실시한 SVR의 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 영상을 공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아스팔트 위에서는 4.7초를 기록했으며 자갈밭과 잔디에서는 각각 5.3초, 5.5초를 찍었다. 심지어 진흙 노면 위에서도 달렸다(6.5초). 다른 브랜드에서는 상상도 못할 테스트. 고출력 파워트레인과 전자동 지형반응 시스템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도전이다. 

가속력은 시속 200킬로미터에 도달하면서부터 공력 특성과 낮은 기어비 때문에 점차 수그러든다. 이때 엔진 회전수는 고작 3000rpm에 불과하다. 최고속보다는 장거리 고속주행에 적합한 GT 성향의 기어비다. 편평비가 높은 타이어(275/45R21)와 스트로크가 긴 서스펜션 덕분에 승차감은 일반 레인지로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즉, 노면의 굴곡이나 가속도 변화에 따라 어느 정도 피칭과 롤링을 허용하는 타입이다. 주행 모드를 다이내믹으로 바꿔도 하체는 여전히 나긋하고 여유롭다. 하지만 코너를 제대로 공략해보면 SVR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 일단 무게중심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기 어렵다. 토크벡터링 시스템은 한계 상황에서 언더스티어를 약한 오버스티어로 바꾸는데 그 실력이 맛깔스럽다. 

실내 역시 GT로서 부족함이 없다. 널찍한 창문 덕분에 시야가 좋고 간결하게 정리한 센터페시아와 터치스크린은 직관성과 조작성이 뛰어나다. 혹시 GT라는 장르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아는가? 바로 ‘피트스톱’ 빈도수다. 105리터의 거대한 연료탱크 덕분에 SVR은 주유소에 발이 묶인 경쟁자들을 뒤로하고 가장 먼저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다.  
글_강병휘

 

 

레인지로버 스포츠를 가장 과격하게 다듬은 모델이 SVR이다. 하지만 외모가 뿜어내는 카리스마는 강력하지 않다. 원래 단순 간결한 형태인 데다 그 느낌을 크게 훼손하지 않는 정도만 손을 댔기 때문이다. 실내 역시 헤드레스트 일체형 버킷 시트 외에는 차이가 거의 없다. 기존 5.0리터 SC보다 출력은 높지만 성능 차이는 뚜렷하지 않다. 주행 질감은 꽤 좋은 편이다. 큰 힘을 고르고 꾸준하게 내는 엔진과 큰 덩치를 차분하게 억제하는 서스펜션, 그리고 자연스럽고 정확한 스티어링이 잘 어우러졌다. 딱히 두드러지는 면은 없지만 균형만큼은 세 차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 류청희

솔직히 조금 실망했다. SVO라는 근사한 이름의 팀이 SVR이라는 더 근사한 이름을 붙인 차라 기대가 굉장히 컸다. 실내를 가득 메운 4개의(비록 뒤쪽은 모양새만 그럴지라도) 버킷 타입 시트를 보라. 어찌 기대를 하지 않을 수가 있나. 그런데 풍기는 분위기나 성능은 레인지로버 스포츠 5.0 SC와 별다를 게 없다. 고성능 모델임에도 2단 트랜스퍼와 전자동 지형반응 시스템을 넣었다는 게 지극히 랜드로버다워 좋긴 했지만 5.0 SC가 있으니 SVR만큼은 이런 거 다 들어내고 파워트레인과 서스펜션을 조금 더 빠듯하게 조여 성능을 끌어올렸으면 더 좋았겠다. 이번 시승의 주제가 GT 성향의 SUV라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지만 성능만을 냉정하게 평가하는 자리였다면 이 SVR에 대한 평가가 지금과 같았으리라곤 장담할 수 없다. 류민

 

뒷좌석과 짐 공간의 편의성
SVR이라 그런지 아주 스포티한 느낌이다. 리어 시트마저 버킷 타입처럼 생겼다. 덕분에 옆구리를 꽉 잡아주고 엉덩이도 쏙 들어간다. 시트가 조금 높은 편이라 앞쪽 풍경도 잘 보인다. 파노라마 선루프 역시 이런 쾌적한 느낌에 한몫한다. 공조 장치와 시트 열선 버튼은 센터콘솔 뒷면에 붙어 있다. 차체 크기에 비해 머리 위, 어깨, 무릎, 팔 공간이 그리 여유롭지 않다. 트렁크도 의외로 작다. 하지만 다른 두 차와 달리 박스 형태라 위쪽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 전동식 테일게이트 작동 버튼은 테일게이트 아래 부분에 달려 있다. 열렸을 때의 높이가 너무 높아 닫기가 쉽지 않다. 르반떼처럼 트렁크 벽면에 붙어 있으면 좋으련만. 김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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