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밴이라는 장르의 시작은 뚜렷하다. 미국에서 1984년형으로 데뷔한 닷지 캐러밴과 플리머스 보이저가 시작이다. 크라이슬러의 승용차용 K카 플랫폼으로 만든 미니밴은 그때까지 없던 종류의 차였다. 포드에서 머스탱을 만든 리 아이어코카가 크라이슬러 수장이 돼 내놓은 또 하나의 걸작이었다. 크기에 비해 실내공간이 넉넉해 스테이션왜건을 대체하는 히트작이 됐다. 

크라이슬러의 초창기 미니밴은 몇 가지 특징을 지녔다. 모노코크 보디와 앞바퀴굴림 시스템을 얹어 주행성능을 높였다. 승용차처럼 운전이 수월한 미니밴은 프레임 보디를 쓴 풀사이즈 밴과 운전감각이 달랐다. 앞바퀴굴림 덕에 고속도로에서 직진성능도 좋았다. 드라이브 샤프트가 없어 바닥이 낮은 덕에 타고 내리기도 편했다. 높이 앉는 운전석은 탁 트인 시야를 제공했다. 높이가 비교적 낮아 차고에 쉽게 넣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엔진을 앞에 얹은 미니밴은 충돌 에너지도 잘 흡수했다.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아무것도 없어 앞자리에서 뒷자리로 넘어 다니는 것도 수월했다.

크라이슬러의 미니밴이 성공하자 GMC 사파리, 포드 에어로스타 같은 경쟁차들이 나왔지만 크라이슬러를 따라잡을 순 없었다. 포드와 GM에서 내놓은 차는 크기는 작았지만 프레임 보디에 뒷바퀴굴림 시스템을 얹어 운전감각이 크라이슬러와 사뭇 달랐다. 토요타와 미쓰비시는 기아 봉고처럼 엔진을 운전석 아래에 얹은 미니밴을 내놓았지만 충돌했을 때 위험하기 짝이 없는 차를 미국인이 환영할 리 만무했다.

이후로 모든 미니밴은 크라이슬러가 하는 대로 따라야 했다. 크라이슬러는 항상 완벽한 미니밴을 만들자 했고, 미니밴 제작 공식을 만들어갔다. 크라이슬러가 의자를 떼어내면 모든 차들이 따라 했고, 한쪽에만 있던 슬라이딩 도어를 양쪽으로 달자 모든 차들이 양쪽에 달았다. 그런데 일본차의 반격이 서서히 시작됐다. 토요타 시에나, 혼다 오디세이 같은 차가 점점 경쟁에서 앞서기 시작했다. 오디세이가 바닥으로 감쪽같이 사라지는 뒷시트를 내놓자 모든 차들이 따라 했다. 요즘은 오디세이가 미니밴 시장을 리드한다. 지금 미국의 미니밴 시장은 한 해 100만 대 이상 팔리던 전성기의 절반 수준에 머물고 있다. 미니밴 자리에 SUV가 치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모노코크 보디를 두른 싼타페나 쏘렌토를 보면 널찍한 실내가 미니밴과 별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렇지만 많은 가족을 태우고 공간을 넉넉히 쓸 수 있는 미니밴의 장점은 SUV와 비교할 수 없다.

 

 

그랜드 C4 피카소는 인테리어가 전위적이다. 운전석 높이가 나지막해서 안정감이 느껴진다.

 

CITROËN GRAND C4 PICASSO
비좁은 유럽 도로에서는 자동차에 물리적인 제약이 따른다. 캐러밴은 오랫동안 유럽으로 수출됐지만 활약은 미미했다. 유럽의 미니밴은 좀 더 작아야 했다. 유럽의 대표적인 미니밴 그랜드 피카소는 캐러밴에 비해 작다. 국산 대표 미니밴인 카니발보다도 너비가 16센티미터 좁다. 다루기 쉬운 콤팩트한 보디가 마음을 편하게 한다. 복잡한 도심에서 주차공간을 생각하면 피카소의 장점은 두드러진다.

운전석에 앉자 전위적인 디자인에 살짝 흥분되기 시작했다. 프랑스 차를 타는 맛, 시트로엥을 타는 맛이 이것 아닐까? 선바이저를 뒤로 밀어 커다란 하늘을 맞는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색다른 경험을 했다. A 필러가 두 갈래로 나뉘어 펼쳐진 앞 유리창이 꼭 우주선 같은데 와이퍼도 양옆으로 벌어지며 빗물을 닦는다. 와이퍼 스위치와 기어 레버가 가까이 있어 한동안 기어를 넣을 때마다 와이퍼가 왔다 갔다 했다. 누군가는 이런 걸 보고 눈을 흘길지 모르지만 난 이런 게 재미있어 프랑스 차를 찾는다. 모든 것이 새롭다. 이런 차는 내 차로 써야지, 렌터카로 쓰면 고객에게 일일이 설명하기가 피곤할 거다.

그랜드 피카소는 운전석 높이도 나지막해서 안정감이 느껴진다. 필요하면 센터콘솔을 치울 수 있다. 이러면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아무것도 없어 앞에서 뒤로 쉽게 오갈 수 있다. 물론, 공간이 비좁은 차에서 그럴 일은 많지 않아 보이지만. 2열 시트는 세 개의 시트가 나란히 놓였다. 세 사람이 앉을 경우 앞뒤로 시트를 조절해 비껴 앉도록 한 센스가 돋보인다. 공간이 빠듯한 유럽의 미니밴은 이렇게 시트를 움직이게 한 경우가 많았다. 1열 시트 등받이 뒤에 달린 테이블과 커다란 파노라마 루프는 오롯이 뒷자리 손님을 위한 것이다. 심심한 뒷자리에 재미와 개방감이 넘친다. 뒷문도 슬라이딩이 아닌 여닫이 식으로 해서 유럽의 실용주의를 추구했다. 3열은 7인승 차로 의미를 더하지만 크기는 아이들이나 앉을 자리다.

120마력의 1.6리터 디젤 엔진은 달리는 데 힘이 부족하지 않다. 물론 미니밴처럼 달릴 때를 말한 것이다. 좀 심심하다 싶을 때 패들시프트로 박력을 더하는 것도 재미있다. 하루 종일 몰고 난 후 계기반에 찍힌 연비는 리터당 14킬로미터 남짓이었다. 개인적으로 4000만원이라는 값은 적절하다는 생각이다. 유러피언 감성에 젖어보는 데 어느 정도 프리미엄은 당연하다.

 

 

 

 

카니발의 실내는 화려하고 넉넉하다. 미니밴치고 특이하게 기어레버가 센터콘솔에 달렸다.

 

KIA CARNIVAL
내 눈에 카니발의 디자인은 완벽에 가깝다. 피터 슈라이어는 카니발의 균형미에 만족한다고 했다. 그런데 잘 팔리기까지 하니 가히 명작이라 할 만하다. 카니발은 미국의 미니밴이 요구하는 것을 충실히 따른다. 세월이 흐르면서 크기가 넉넉해지고, 양쪽으로 슬라이딩 도어가 달렸다. 접으면 바닥으로 들어가는 시트 등 미국에서 요구하는 미니밴의 조건을 모두 갖췄다. 토요타 시에나나 혼다 오디세이와 앞뒤 모습만 다를 뿐 거의 같아 보인다. 미국의 미니밴 공식대로 만들어진 차다.

화려하게 전개된 대시보드가 넉넉하게 펼쳐진다. 요즘은 국산차를 잘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미니밴치고 특이하게 기어레버가 센터콘솔에 달렸다. 뒷자리로 넘나드는 재미를 포기해야 하지만 또 하나의 개성이 될 수도 있겠다. 국내 시장에서 카니발이 성공한 이유는 라이벌이 흔치 않은 데다 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를 달리는 특권을 가졌다는 데 있다. 꽉 막힌 고속도로에선 이보다 좋은 차가 있을 수 없다. 한편으론 버스전용차로를 왜 국산 미니밴만 달릴 수 있도록 하는지, 생각하면 정말 창피한 일이다. 

버스전용차로를 달리는 특권은 9인승 이상만 가능하기에 국산 미니밴은 비정상적인 차로 만들어진다. 7인승이 마땅한 차체에 9인승 이상을 만들기 위해 비정상적인 차가 됐다. 원래 2+2+3의 3열 시트 배치가 적당한데 억지로 4열을 구겨 넣었다. 그래서 2열, 3열 모두 비좁다. 4열은 거의 앉을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4열은 항상 바닥에 집어넣고 화물공간으로 쓴다. 그렇게 카니발은 어정쩡한 6인승이 됐다. 참고로 카니발 11인승 모델은 2열과 3열 시트 사이에 간이 의자를 만들어 끼웠는데 헤드레스트도 없고, 안전벨트도 없는 것 같다. 버스전용차로를 달리는 특권을 누리기 위해 목숨을 내놓은 셈이다. 제대로 된 7인승의 외국산 미니밴은 이런 비정상 대열에 낄 수가 없다. 이상하게 만든, 위험한 국산차만 버스전용차로를 달리게 하는 것이 애국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외국인에게 말하기도 창피한 법은 빨리 거두는 게 낫다.

여섯 명 이상 탄 모든 차가 버스전용차로를 달리면 어떨까 생각한다. 국산차나 수입차, 미니밴이나 SUV 구분 없이 여섯 명 이상 타면 모두 버스전용차로를 달릴 수 있도록 하는 거다. 단속을 철저히 한다면 지금보다 전용차로 이용 대수는 더 줄어들 것 같다. 국산 미니밴만 버스전용차로를 달리도록 한다는 낯 뜨거운 오명도 피할 수 있다. 
미니밴에서 이야기가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카니발은 마냥 부드러웠다. 202마력의 디젤 엔진은 한없이 조용했다. 1750rpm의 낮은 회전대역에서 45kg·m의 최대토크를 내는 데  부족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차가 무겁고, 스티어링휠이 미끄러워 비 오는 날 운전하기엔 조금 부담스러웠다. 아파트의 좁은 주차공간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한 나에게 2미터 가까운 카니발의 너비가 부담스러운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혼다 오디세이는 일본 국내용과 미국 수출용 차를 따로 만들기도 했다. 연비도 만족스러운 편이 아니다. 미니밴을 하이브리드와 PHEV 등으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이건 미국시장이 요구하는 차세대 미니밴의 조건이기도 하다.    
글_박규철(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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