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과연 우리에게 유용한 물건일까? 현재 대부분의 전기차는 한 번 충전으로 고작 130~150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다. 서울 강남에서 인천국제공항을 다녀오는 것도 불안한 수준이다. 주행거리를 자랑하며 데뷔한 아이오닉 일렉트릭도 191킬로미터밖에 못 달린다.

뭐, 필요할 때마다 충전하는 방법이 있긴 하다. 하지만 주유소 가는 것도 번거로워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배터리 충전은 재앙이나 다름없다. 집에서 잘 때나 사무실에서 일할 때면 몰라도 이동 중 단지 충전을 위해 최소 1시간을 써야 한다는 건 정말 끔찍하다. 그동안 우리가 기름 넣고 타던 차처럼 쓸 수 있는 전기차는 한 번 충전에 451킬로미터를 달리는 1억2860만원짜리 테슬라 100D 정도밖에 없다. 늘 그래왔듯 미래는 항상 부자들에게 먼저 찾아온다. 

나 같은 서민들에게도 꽤 그럴싸한 미래가 찾아왔다. 바로 쉐보레 볼트 EV다. 모델 S 100D처럼 시속 100킬로미터를 4.4초 만에 도달하지는 못하지만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가 모델 S 100D의 약 85퍼센트 수준인 383킬로미터이며 값은 약 38퍼센트인 4779만원에 불과하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까지 따지면 볼트 EV의 실제 구입 가격은 모델 S 100D의 18퍼센트 수준(2000만원 초반)까지 떨어진다(테슬라는 국내에서 보조금을 받을 수 없다). 전기차의 핵심 가치를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라고 본다면 볼트 EV를 두고 모델 S 100D를 살 이유가 별로 없다. 
 

볼트 EV 역시 싸고 효율만 좋은 전기차가 아니다. 안팎 디자인, 패키징, 장비 구성, 성능 등 흠잡을 곳이 없다. 볼트 EV가 콤팩트 크로스오버의 형태를 띠게 된 것도 바로 이런 균형 때문이다. 차가 껑충해 바닥에 큰 배터리를 부담 없이 깔 수 있는 데다 차체가 작아 성능과 효율을 끌어올리기 쉬우니 ‘현실적인 전기차’를 만드는 입장에선 별다른 대안이 없었을 거다. 많은 자동차 회사들이 같은 이유로 콤팩트 크로스오버 SUV의 전기차를 개발 중이다. 

물론 이런 형태라고 누구나 볼트 EV와 같은 차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쉐보레, 그러니까 GM도 알고 보면 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꽤 큰 회사다. 1996년 EV1이라는 현대적인 개념의 양산 전기차를 최초로 만들기도 했고 EREV(주행거리연장 전기차) 볼트도 벌써 두 대나 만들었다. EV1은 너무 먼 옛이야기라 해도 EREV 볼트를 만들면서 쌓은 노하우는 분명 볼트 EV에도 활용됐을 것이다. 가령 큰 배터리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마련하고 또 이를 안전하게 운용하는 법 같은 거 말이다. 가격이나 크기 면에서 비슷한 아이오닉 일렉트릭과 비교해보면 답이 나온다. 차체는 아이오닉 일렉트릭이 크지만 배터리는 볼트 EV가 2배 이상 크다(60kWh:28kWh).

게다가 볼트 EV는 운전 감각마저 굉장히 스포티하다. 바닥에 붙은 배터리 덕분에 무게중심이 낮아 핸들링이 안정적이고 스티어링과 서스펜션의 피드백도 또렷하다. 코너에서의 한계는 낮은 편이지만 시도 때도 없이 비명을 지르고 심할 때는 연기까지 뿜는 연비용 타이어를 바꾸면 해결될 문제다. 가속 성능은 콤팩트 스포츠 모델의 대명사인 골프 GTI와 비슷한 수준이다. 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 시간이 볼트 EV 7.0초, 골프 GTI 6.8초다. 구두쇠처럼 아껴야 할 전기차 주제에 센터페시아에 ‘스포츠’ 버튼을 만들어둔 것도 이런 화끈한 성격 때문이다. 

볼트 EV는 약 빤 차다. 아니, 정확히는 쉐보레가 약 빨고 만든 차다. 고속도로와 와인딩 로드 등 1박 2일간 충전 없이 신나게 타고도 주행가능거리가 250킬로미터나 남아 있는 걸 보고 집에 있는 디젤 해치백을 어서 팔고 볼트 EV를 사고 싶은 욕구가 치밀었다. 그런데 올해 물량은 진작에 다 팔리고 없단다. 400대 사전 계약이 2시간 만에 끝났다나? 미래가 오면 뭐 하나. 아등바등해도 손에 넣을 수 없는데.
글_류민

 

 

지난 3월 볼보가 S60과 V60의 고성능 버전 폴스타를 국내에 들여왔다. BMW의 M이나 메르세데스의 AMG에 해당하는 볼보의 고성능 버전이다. ‘볼보가 고성능을?’이라고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볼보와 폴스타의 인연은 20년 전부터 시작됐다. 폴스타는 볼보만 전문으로 튜닝해오다 2015년엔 완전히 볼보에 인수됐다. 현재 월드 투어링카 챔피언십(WTCC)에서 활약 중인 폴스타 사이언 레이싱팀을 별도로 운영 중이다. 폴스타는 볼보의 브랜드 철학인 안전에 레이싱 DNA를 담아내고 있다. 그 결과물이 S60, V60 폴스타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폴스타처럼 불친절한 차는 처음이다. 컴포트와 스포츠를 선택할 수 있는 전자제어식 서스펜션이 아니다.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알아서 조절해주는 능동형 서스펜션이 흔한 마당에 전자제어식 서스펜션조차 아니라니 고개가 갸우뚱했다. 경주용 차가 수동 조절식 서스펜션을 쓴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실제로 확인한 건 처음이었다. ‘그럼 어떻게 서스펜션을 조절하나요?’라는 질문이 필연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럼 폴스타는 이렇게 말한다. ‘운전자 손으로 직접 하세요’라고 말이다. 
 

폴스타는 운전자의 취향에 따라 서스펜션을 수동으로 조절할 수 있는 올린즈를 선택했다. 서스펜션을 조절하려면 일단은 차에서 내려야 한다. 뒤 서스펜션을 조절하려면 트렁크 안으로, 앞 서스펜션은 차 앞바퀴 밑으로 몸을 집어넣어야 한다. 앞뒤 서스펜션에 달린 리바운드 조절 나사를 돌려 감쇄력의 정도를 조절하는데 왼쪽으로 돌리면 부드럽게, 오른쪽으로 돌리면 딱딱하게 서스펜션이 변한다. 총 30단계로 운전자에게 알맞은 영역을 찾아내는 게 관건이다. 

리바운드 조절 나사를 돌리고 주행하기를 몇 번 반복하면 자신에게 맞는 최적의 서스펜션 단계를 찾을 수 있다. 웬만큼 차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시도도 못할 일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일반 국도에 진입하면 차를 잠시 옆에 세우고 서스펜션을 세팅해야 하는 차를 누가 살까도 싶겠지만 이미 2017년에 들여온 폴스타는 모두 팔렸다. 비록 30대뿐이긴 하지만 이런 차가 팔린다는 건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볼보코리아에서도 이러한 반응을 예상하지 못한 눈치다. 2018년에는 더 많은 폴스타를 들여올 예정이라고. 

30단계로 조절할 수 있는 서스펜션이 황금 빛깔의 올린즈다. 올린즈는 모터스포츠 팀에게 제품을 협찬해준다거나 후원을 하는 스폰서십을 맺지 않고 경주용 차에도 모두 돈을 받고 판매한다. 제품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이 아니면 쉽지 않은 결정이다. 보통 올린즈 서스펜션은 값비싼 자동차 이외에는 순정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하지만 폴스타는 순정으로 값비싼 올린즈를 품었다. 같은 스웨덴 브랜드라 협상이 좀 쉬웠던 걸까? 

터보차저와 슈퍼차저를 함께 사용하는 2.0리터 4기통 엔진을 품은 폴스타는 최고출력 367마력, 최대토크 47.9kg·m를 발휘한다. 화끈한 파워를 즐기면서 동시에 조종 능력을 확보하고, 여기에 승차감까지 갖추겠다는 무모한 도전을 한다. 조종 성능의 대척점에 있는 승차감까지 얻겠다니 이게 가능할까? 이것을 가능케 하려고 선택한 게 바로 올린즈다. 

조종 성능과 승차감을 한 손에 쥐려는 도전과 차의 능력보다 몇 단계 높은 서스펜션, 그리고 이 모든 걸 폴스타에 녹여낸 제품 기획자들까지 모두 약을 빨지 않고서야 이렇게 만들 수 없다.
글_김선관

 

 

 

‘기럭지’부터 다르다. 레이는 높이가 무려 1700밀리미터나 된다. 기아 승용차종 중 레이보다 키 큰 모델은 모하비와 카니발뿐이다. 같은 집안인 현대의 승용차종에는 레이의 우월한 키를 넘어서는 게 단 하나도 없다. 이거 기럭지만 봐도 약을 아주 쭉쭉 빨고 자란 티가 난다. 집안 내력을 완전히 거스른 거 아닌가?

큰 키는 그대로 공간에 반영됐다. 휠베이스도 2520밀리미터나 된다. 준중형급인 쏘울에 불과 5센티미터 뒤질 뿐이다. 여기에 박스처럼 모든 기둥을 반듯하게 세웠다. 그렇게 공간을 최대한 넓고 크게 확장했다. 이건 뭐, 말이 경차지 승객석은 어지간한 대형차 못지않다. 어쩜 이렇게 속이 넓은지 성인 네 명쯤은 포근하게 품는다. 물론 승차 정원은 5명이지만 뒷좌석에 3명이 앉기엔 좁다. 경차 폭 기준인 1600밀리미터 이내로 맞춰야 했기에 넓은 가슴까지 가질 순 없었다. 그래도 경차에서 이 정도 공간을 누리는 건 분명 호사다.

약 기운은 레이를 또 수납 재주꾼으로 만들었다. 일단 많다. 앞좌석 천장 양쪽으로 선반이 있다. 조수석 아래는 서랍이 있다. 앞좌석 사이에도 작은 서랍과 알뜰한 수납공간이 더 있다. 뒷좌석 바닥의 매트를 들추면 운전석 뒤쪽으로 뚜껑이 하나 보인다. 들면 열린다. 수납공간이다. 신발 한 켤레와 접는 우산 2개쯤을 함께 담을 수 있는 크기다.

승차 공간을 최대한 넓히는 바람에 트렁크가 좁아지긴 했다. 하지만 트렁크 바닥 아래 수납함이 있어 활용도가 높다. 물론 뒷좌석은 6:4로 완전히 접힌다. 조수석도 앞으로 완전히 접힌다. 승객이 많지 않다면 크고 기다란 짐도 얼마든지 실을 수 있다. 작은 덩치를 큰 키와 넓은 품, 기능으로 완전히 극복한 셈이다.

대신 가볍진 않다. 일본식 표현을 그대로 들여와 가벼울 경(輕) 자를 써서 경차라 부르지만 큰 만큼 묵직하다. 가장 가벼운 밴이 1030킬로그램이고 가장 무거운 바이퓨얼은 1080킬로그램이다. 현대 엑센트 가솔린 수동변속기 모델보다 10킬로그램 무겁다. 아울러 유선형이 아니라 박스처럼 각이 딱딱 잡힌 차라 공기저항도 크다. 덕분에 고속에서 바람 소리가 크다. 연비도 좀 떨어진다. 뭐 어차피 세상만사 일장일단이 있는 거다. 레이가 들이켠 약이 만병통치약도 아닐 테고.
 

그래도 구매할 때 세금이 면제되는 건 정말 큰 혜택이다. 취득세와 등록세가 모두 면제된다. 공채를 살 필요도 없다. 직접 등록한다면 매우 쾌감이 크다. 짜릿할 만큼 기분이 좋다. 아울러 고속도로 통행료와 공영 주차장 요금 할인 등의 혜택도 생각보다 쏠쏠하다. 특히 여행을 즐기거나 고속도로 운행이 많다면 적지 않은 이익을 누리게 될 거다.

운전하는 재미도 있다. 단, 터보 모델만 그렇다. 자연흡기 모델은 최고 78마력, 최대 9.6kg·m에 그친다. 하지만 터보 엔진은 최고 106마력, 최대 14.0kg·m를 낸다. 이 격차가 생각보다 크다. 물론 터보라고 박진감이 넘친다는 것까진 아니다. 그래도 꽤 빠른 속도로 질주할 수 있다. 단, 레이 터보는 지난 6월부터 더 이상 판매되지 않는다. 터보 모델을 구입하려면 신형 레이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아무튼 잘 달린다 하더라도 ‘꺽다리’ 레이에게 능숙한 코너링까지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생각보다 잘 달리고 잘 버틴다. 그 한계를 조금씩 극복해나가는 재미가 있다. 이거에 빠져들면 마약처럼 푹 빠진다. 운전자까지 약을 쭉쭉 들이켤 수 있다는 거다.

누군가 차를 산다고 하면 레이를 추천할 용의가 매우 많다. 이유는 뭐 여기까지 읽었으면 당연히 알 거다. 그리고 레이는 기아가 참고했다는 일본의 박스형 경차를 거의 모든 면에서 능가한다. 이건 당시 레이 프로젝트를 맡은 팀이 조직적으로 약을 빨았다는 증거다. 자수해서 광명 찾길!  
글_고정식

모터트렌드, 전기차, 쉐보레, 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