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철저히 비어만 효과로 보이네요.” 시승을 마친 후 내가 기아차 관계자에게 했던 말이다. 스팅어 GT가 이전의 기아차, 나아가 모든 국산차와도 구분되는 새로운 차원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 새로운 차원은 바로 밸런스였다. 

출시되기 전까지 스팅어는 디자인과 성능이 화제였다. 출시된 뒤에는 접지력과 안정적인 조종성능에 대한 호평이 많다. 하지만 나는 밸런스에서 강한 인상을 받았다. 원래 처음 해보는 것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서 실수하거나 과한 결과물을 얻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어느 만큼만 가야 하고 어느 지점에서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정말 어렵다. 그런데 처음 해보는 성격의 모델에서 이런 균형을 단번에 찾아낸 것이 놀라웠다. 
내가 ‘비어만 효과’라고 콕 짚어서 이야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은 자동차 대국이다. 축적된 역량이나 노하우도 상당하다. 하지만 스팅어와 같은 새로운 도전엔 경험 부족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기아차에게 스포츠 럭셔리 뒷바퀴굴림 세단은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개발 방향은 설정할 수 있지만 얼마큼 가야 하는지 계측값은 알 수가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경험이 많은 비어만 박사의 노하우가 빛을 발했을 것이다. 

가장 먼저 밸런스를 느낀 것은 주행 특성에서였다. 일단 높은 접지력이 주는 안정성이 모든 것의 기반이 된다. 꽤 높은 페이스의 스포츠 주행에서도 뒷바퀴가 접지력을 잃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따라서 뒷바퀴굴림 스포츠 세단에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이라도 좀 더 자신감을 갖고 다이내믹하게 운전할 수 있다. 예리하지 않지만 정직한 조향감각도 드라이버에게 확신을 준다. 그리고 이 안정성은 장거리 고속주행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그렇다고 스팅어의 달리는 즐거움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가속페달을 밟거나 놓을 때 뒷바퀴를 살짝 흘리면서 주행 방향에 변화를 주는 스티어링 이펙트로 코너를 주무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뒷바퀴의 움직임이 급작스럽지 않기 때문에 뒷바퀴굴림에 경험이 많지 않은 운전자라도 코너 안쪽을 보며 코너를 주파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단, 조건이 있다. 힘이 충분해야 한다. 그리고 네바퀴굴림 스팅어는 궁극의 안정성을 얻는 대신 정직한 조향 감각과 뒷바퀴를 이용한 스포츠 드라이빙은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스팅어에서 가장 밸런스가 좋은 차는 스팅어 3.3 터보 GT 뒷바퀴굴림 모델이다. 게다가 스팅어 GT는 기계식 후륜 LSD로 뒷바퀴의 구동력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어서 더욱 다이내믹하다. 

이렇게 고속주행에 장기가 있으면서 스포츠 성향을 가진 장르를 우리는 럭셔리 스포츠 GT라고 부른다. 기아가 이 장르를 선택한 것은 철저한 계산에 따른 것이다. 단번에 정통 스포츠 세단으로 도전장을 던졌다간 부족한 실력이 탄로 날 수 있으니 약간 소프트하지만 고객층은 더 넓고 디자인과 고급스러움 그리고 실내 공간 등의 요소가 더 크게 작용하는 럭셔리 GT 시장을 공략한 것이다. 이것은 기아가 미래의 야심과 현재의 실력 사이에서 솔직하게 균형점을 찾은 합리적인 결과다.

3.3리터 V6 트윈터보 엔진은 365마력을 낸다. 엔진 회전이 부드럽다. 다만 8단 자동변속기는 반응이 약간 더디고 스포츠 주행에서 직결감이 아쉽다.

스팅어는 가슴은 뜨겁지만 냉철한 머리로 판단한 현명한 모델이다. 이런 치밀한 기획에서 나왔기 때문에 첫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완성도와 상품성을 갖췄다. 스팅어의 스포츠는 순간의 쾌감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젊은이의 치기 어린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안정감 안에서 한계를 다루는 새로운 쾌감의 영역으로 차근차근 접근해가는 어른스러운 스포츠를 추구한다.  

완벽하진 않다. 매우 부드러운 8단 자동변속기는 럭셔리 컴포트 세단에는 잘 어울렸지만 스포츠 성향을 감당하기에는 직결감이 아쉽다. 오토 모드에서는 코너링 시 어떤 기어를 선택할지 주저하는 점이 거슬린다. 스포츠 성향에 어울리는 좀 더 세심한 변속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그리고 영암 서킷의 긴 직선 끝의 풀 브레이킹에서 나는 두 번이나 정확한 포인트를 놓치고 오버스피드로 진입했다. 영암 서킷 경험이 많지 않지만 다른 차에선 한 번도 그러지 않았는데 스팅어에서만 연거푸 실수한 것이다. 내 실수가 크겠지만 앞바퀴의 접지 감각이 조금만 더 명확하거나 풀 브레이킹 시 앞바퀴를 조금 더 노면에 눌러 붙일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비어만 박사가 스팅어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만들었을 리는 없다. 하지만 피터 슈라이어가 기아차에게 디자인의 중요성을 일깨웠듯이 비어만 박사는 기아가 갖고 있던 가능성을 확인하고 꺼내주었다.  
글_나윤석  

KIA STINGER GT
기본 가격 4880만원 레이아웃 앞 엔진, RWD, 5인승, 5도어 해치백 엔진  V6 3.3ℓ DOHC 트윈터보, 365마력, 52.0kg·m 변속기 8단 자동 공차중량 1785kg 휠베이스 2906mm 길이×너비×높이 4831×1870×1400mm 연비(시내, 고속도로, 복합) 7.9, 10.2, 8.8km/ℓ CO₂ 배출량 192g/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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