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가 아이오닉 EV에 일부 품목을 제외한 i 트림을 추가한 것은 어디까지나 EV 시장의 저변 확대를 위해서다. 4089만원의 가격이지만 세제 혜택을 받으면 3840만원으로 떨어지고, 정부 지원금까지 받으면 최저 1600만원에 구입이 가능하다. 르노삼성 SM3 Z.E.보다 소폭 저렴해진다. 

그렇다면 편의 품목 배제라는 강수까지 두면서 아이오닉 EV에 i 트림을 추가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EV 렌터카 및 택시 때문이다. 르노삼성이 영업용 택시로 SM3 Z.E.를 늘리자 대항마로 i 트림을 내놨다. 점차 커지는 EV 택시의 방관자로 남기에는 시장 규모가 커진 걸 점을 간과할 수 없었던 셈이다. 그래서 고육지책으로 아이오닉 EV의 품목 조정을 거쳐 택시용을 내놓게 됐다. 

하지만 요금이 걸림돌이었다변. 현행법상 중형 택시는 배기량이나 크기로 구분하는데, 전기 택시는 내연기관이 없어 크기가 기준으로 활용된다. 중형이 되려면 길이 4.7미터, 너비 1.7미터를 초과해야 하고, 현재 이를 만족하는 차종은 SM3 Z.E.뿐이다. 그래서 아이오닉 EV 택시는 이용 요금이 SM3 Z.E.보다 저렴하다. 택시 사업자로서 요금이 적다는 것은 곧 수익과 직결되는 만큼 아이오닉 EV를 구입, 택시로 운행하는 것은 오히려 현명하지 못한 판단이다.  

현재 국토부 훈령에 따라 서울시 기준으로 소형 택시는 2킬로미터 기본요금으로 2100원, 중형 택시는 3000원, 대형 택시는 5000원을 적용 중이다. 100원씩 요금이 올라가는 구간에서도 소형은 155미터 또는 37초, 중형은 142미터 또는 35초를 기준으로 한다. 한마디로 소형차일수록 요금이 적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전기 택시가 활성화돼 있는 제주에서도 SM3 Z.E.는 중형 택시로 기본요금 2800원을 받지만 아이오닉 EV는 소형 택시여서 2200원에 그친다. 제아무리 아이오닉 EV의 공간이 넓고, 1회 충전 후 주행거리가 길어도 요금은 아킬레스건이다. 

그럼에도 현대차가 고무적인 것은 아이오닉 EV 택시 판매가 SM3 Z.E.를 앞섰다는 점이다. 1회 충전 주행거리가 길고, 공간이 넓어 사업자 선택이 많다. 그사이 국토부는 전기 택시를 운행할 경우 크기와 상관없이 모두 중형 택시로 인정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나아가 새로운 정부 또한 친환경차 비중 확대를 약속한 만큼 아이오닉 EV 택시의 선전은 시간문제였을 뿐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러자 택시를 통해 EV 주도권을 가지려던 르노삼성이 발끈했다. 당장은 주행거리가 짧지만 조만간 출시할 1회 충전 주행거리 200킬로미터의 SM3 Z.E.를 내놓으면 상황이 달라질 것으로 예측한다. 
그사이 전국 택시 사업자의 기대심리를 높여 대기수요를 만들어야 하는 르노삼성은 다소 독특한(?) 경쟁 구도 형성에 나섰다. 박동훈 사장은 SM3 Z.E.와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마다 ‘택시로는 세단이 적절하다’는 언급을 잊지 않는다. EV 택시 시장을 먼저 개척한 입장에서 해치백인 아이오닉 EV의 추격이 만만치 않아서다. 지금이야 아이오닉 EV의 주행거리가 길어 SM3 Z.E.가 다소 밀리는 양상이지만 주행거리 차이를 없애고, 국토부가 소형과 중형 요금을 통합하면 어디까지나 ‘세단 vs. 해치백’의 경쟁 구도가 형성된다는 전망에 따라 ‘택시=세단’ 공식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현재 EV 택시가 활발한 곳은 제주도다. 지난해 SM3 Z.E. 택시 100대가 투입돼 르노삼성이 기선을 잡았지만 올해는 아이오닉 EV가 대세다. 1회 충전 주행거리 확장이 소형 요금의 불리함마저 극복시키는 요인이고, 이는 곧 충전 시간 감소와 운행 시간 증가에 따른 수익 증대로 연결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장을 선점하려는 르노삼성에게 아이오닉 EV 택시는 강력한 경쟁자이자 도전자다. 

EV 택시가 제조사에게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검증 효과 때문이다. 택시 운행이 활발할수록 EV에 대한 일반 소비자들의 두려움이 줄어 보급이 확산될 수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영업용 택시의 하루 평균 주행거리는 221킬로미터다. 그러나 이 거리는 해마다 조금씩 줄고 있다. 또한 평균 주행거리가 221킬로미터에 달할 뿐 실제 소비자가 탑승한 거리는 이보다 짧다. 따라서 1회 충전으로 달릴 수 있는 거리를 200킬로미터로 설정하면 거리 문제는 해결될 것으로 전망한다. 나아가 불필요한 택시 운행을 줄이기 위한 빅데이터 기반의 택시 지원 사업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물론 여전히 불편함은 존재한다. 급속 충전은 아직 20~30분이 걸리고, 전기는 LPG처럼 보조금도 없다. 하지만 올해부터 절반으로 떨어진 킬로와트당 178원의 충전 요금은 사업자 부담을 크게 낮췄다. 2킬로미터 기본 거리를 갈 때 킬로와트당 5킬로미터를 가는 중형 EV 택시는 전기요금이 534원이고, 기본요금으로 2800원을 받는다(제주 기준). 그럼 사업자는 약 2200원이 수익이다. 1리터에 8.6킬로미터(쏘나타 2.0 LPG 도심 기준)를 가는 LPG 택시의 수익 2300원에 비하면 조금 낮지만 결정적으로 엔진오일 등의 유지비가 없다. 

국내에서 EV 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1회 주행거리 확장 속도에 맞춰 소비자 불안감이 사라지고, 시장은 그만큼 커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시장의 확대는 여기저기서 명분으로 내세우는 환경친화적인 측면이 아니라 사용자 비용 절감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으니 속도는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현대차와 르노삼성이 EV 택시에서 ‘해치백 vs. 세단’을 서로 앞세우는 것도 EV의 성장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글_권용주(<오토타임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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