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차는 GT 라인 모델로 3295만원이다. 조그만 차가 꽤 비싸다고? 그럼 3070만원인 알뤼르 GC는 어떤가? 아직도 성에 안 찬다면 기본형 알뤼르 모델도 있다. 알뤼르 GC보다 75만원 싼 2995만원이다. 2000만원 후반대 수입 SUV라는 타이틀은 꽤 의미 있다. 국내 브랜드의 소형 크로스오버 SUV 최상위 모델과 가격 차이가 크지 않아서다. 1.5리터 디젤 엔진을 얹은 르노삼성 QM3 최상위 트림(RE 시그니처 쇼콜라 브라운)은 2495만원, 1.6리터 디젤 엔진의 쉐보레 트랙스 최상급(블레이드 에디션)은 2606만원이다. 한 시장에서 국산과 수입 모델이 이렇게 바투 붙은 경우는 드물다. 2008 SUV는 소형 SUV 구입을 고민하는 사람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잡힐 듯한 거리에 있는 수입차다. 

 

이 차와 비슷한 가격대 제품으로는 수입 C 세그먼트 해치백도 있다. 한 체급 작은 제품인 만큼 그 차들보다는 휠베이스가 작다(2540밀리미터). 하지만 지붕이 높고 의자도 여느 해치백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 덕분에 운전석에선 의자를 가까이 당겨 앉아도 불편함이 없다. 자연스럽게 뒷자리에는 앞자리 의자를 당긴 만큼의 공간이 생긴다. 실제로 2008 SUV의 뒷자리 무릎공간은 수입 C 세그먼트 해치백과 큰 차이 없다. 천장이 높은 만큼 머리공간 여유도 충분하다. 조수석도 대시보드 크기를 최소화한 영리한 설계로 무릎공간을 최대한 확보했다. 앞이든 뒤든 부족한 건 좌우 너비 정도다. 높은 지붕은 트렁크 적재공간에도 여유를 더했다. 기본 적재용량은 410리터로 C 세그먼트 시장의 대표 모델인 골프(380리터)보다 넉넉하다. 트렁크 설계도 꽤 잘 돼 있다. 키 큰 SUV 형태지만 입구가 낮고 넓어 무겁고 부피 큰 물건을 싣고 내리기 수월하다. 공간 자체는 디럭스급 유모차가 빠듯하게 들어갈 정도지만 트렁크 입구에서 뒷자리 등받이까지 길이가 60센티미터로 제법 깊고 바닥도 네모반듯해 활용도는 좋다. 

CUV 혹은 크로스오버 SUV와 SUV는 무엇이 다른지 묻는다면,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하다. 2008 SUV는 ‘SUV 타는 기분’만큼은 확실하게 선사한다. 앞뒤 펜더와 차체 아래쪽을 플라스틱 몰딩으로 두른 것만의 얘기가 아니다. 1열 의자에 앉아보면 탁 트인 시야가 일품이다. 의자가 비교적 높고 대시보드는 낮아 갑갑함이 적은 덕분이다. 여기에 면적이 넓은 앞 유리와 얇은 기둥, 측면의 작은 쪽창도 시원한 시야 확보에 한몫한다. B 세그먼트 해치백 208과 모양과 구성이 똑같은 대시보드인데 운전자나 보조석 승객이 느끼는 개방감은 하늘과 땅 차이다. 2008이 2008 SUV로 이름을 바꾸었을 때 구질구질하게 SUV라는 글자까지 붙여야 했나 싶었는데 이제 조금 알겠다. 도로를 굽어보는 듯한 여유로운 운전 환경은 상당수 고객이 SUV를 애써 고르는 이유 중 하나다. 이 차 역시 그것 하나만으로도 SUV로 대접해 마땅하다. 

 

 

겉모습만 봐서는 기대가 ‘1도’ 없었는데 직접 운전해보니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더라, 는 푸조 차 탔을 때의 클리셰는 이 차에도 어김없이 반복된다. 다만 쫄깃한 핸들링으로 마음을 사로잡은 해치백 모델들과 달리 2008 SUV는 SUV에 기대조차 없었던 ‘작은’ 움직임으로 반전의 재미를 선사한다. 실상 운전대가 모든 걸 말해준다. 작은 차의 그것이라 감안해도 지름이 꽤 작고 모양도 살짝 찌그러진 타원인 그 운전대 덕분에 2008 SUV가 움직이는 느낌은 SUV답지 않게 날카롭고 예민하며 긴박하다. 바닥에 바짝 붙은 작은 해치백만큼 민첩하진 않지만 여느 SUV와 비교하면 뚜렷하게 구별될 정도로 움직임이 ‘작다.’ 변속기는 한번 타본 사람은 두 번 다시 거들떠보지 않아도 매일 타는 사람은 정작 아무 불만 없다는 그 유명한 6단 MCP다. 이 장비는, 적어도 내게는 단점보다 장점이 도드라진다. 엔진 출력이 낭비 없이 전달되고, 연료효율 측면에서의 이점도 상당하다. 저속에서 변속할 때마다 울컥거리고 가파른 언덕에서 허둥대면서 주행 ‘품질’을 떨어뜨리기도 하지만 그건 운전자만 느끼는 불편이고, 엔진과 변속기의 습성에 익숙해지고 나면 해결될 문제이기도 하다. 

 

 

알뤼르와 알뤼르 GC, GT 라인의 세 가지 모델이 있다. GT 라인에는 트림 고유의 빨간 장식과 17인치 휠·타이어, 내비게이션과 후방 카메라 등이 더해진다. 그래서 알뤼르 GC보다 225만원 비싼 3295만원인데 국내 브랜드의 동급 모델보다 편의사양이 떨어지는 B 세그먼트 SUV에 쓰기에는 다소 비싼 느낌이다. 시승차는 후진 기어를 넣었을 때 후방 카메라 영상 대신 내비게이션 화면이 켜지는 오류도 보였다. 알뤼르(2995만원)와 알뤼르 GC(3070만원)의 차이는 그립 컨트롤 장치가 있고 없고 정도다. 노면 상태에 맞춰 파워트레인의 성질을 바꾸는 장치인데 실상 75만원만큼의 쓸모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내 추천은 기본형인 알뤼르 트림이다.  글_김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