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주 어릴 때만 해도 전화기를 들고 다닌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전화기는 거실 한쪽에 얌전히 있어야 할 물건이었다. 집으로 전화가 오면 엄마는 큰 소리로 외쳤다. “인수야, 전화 받아!” 그러다 스무 살 무렵 시티폰이라는 게 나왔다. 들고 다닐 수 있는 전화기는 당시로는 엄청난 신문물이었다. 벽돌처럼 거대한 휴대전화를 가방에서 꺼내는 순간 모두의 부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었다. 그게 벌써 30년 전 얘기다. 지금은 2030년이다. 그리고 아무도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지 않는다. 손목에 감거나 카드처럼 지갑에 넣고 다닌다. 세상 참 많이 변했다.

지금 도로엔 자율주행차가 즐비하다. 운전대를 쥔 사람을 가끔 볼 순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운전석에 앉아 영화를 보거나 인터넷을 뒤진다. 샌드위치를 먹거나 커피를 마시는 사람도 있다. 많은 사람들은 직접 운전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왜 사람이  운전해야 하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스티어링휠이 달린 차(그것도 사람이 직접 운전해야 하는 차)를 탄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일이다. 5년 전 수동변속기를 단 자동차가 완전히 사라졌을 때, 수동변속기를 단 재규어 F 타입을 어렵게 구해 시승했을 때의 기분도 그랬다.  

볼보가 2015년에 출시한 2세대 XC90의 외모는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다. 헤드램프에 ‘토르의 망치’라는 이상한 이름이 붙었지만 어쨌든 근사하다. 실내 역시 세련된 느낌이다. 15년 전 볼보의 실내는 심플하면서 우아한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이 최고로 무르익었다. 실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대시보드 가운데 떡하니 붙어 있는 태블릿 같은 모니터다. 혹시나 싶어 손으로 모서리 주변을 눌러봤지만 역시나 뗄 수는 없게 돼 있다. 지금 보면 구식 티가 폴폴 나지만 당시엔 첨단을 달리는 인터페이스였다. 메인 화면은 내비게이션과 미디어, 전화기, 다운로드 센터로 구성되는데 원하는 항목을 터치하면 바로 실행돼 편하다(단, 다운로드 센터는 사용이 안 된다). 그다음 화면에는 헤드업 디스플레이나 주차보조장치 같은 차의 각종 기능을 컨트롤하는 메뉴가 가득하다. 터치 반응은 빠른 편이다. 제스처 컨트롤이나 음성 비서가 없다는 게 아쉽지만 사용하기에 크게 불편하진 않다. 다만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려 할 때 빠릿빠릿하게 되지 않는 게 조금 불만이다. 

지금은 자동차가 휴대전화를 자동으로 인식하지만 10년 전만 해도 블루투스를 켜고 연결해야 했다. XC90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게 됐다, 안 됐다 한다. 모니터에 가까이 휴대전화를 갖다 대도 ‘발견한 장치가 없다’는 메시지만 계속 뜬다. 어렵게 블루투스를 연결했는데 전화가 왔을 때 차 안에 있는 통화 버튼이 아니라 내 휴대전화로 받아도 자동으로 통화가 휴대전화로 넘어가지 않는다. 밖에 있다가 통화를 하기 위해 다시 차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게 귀찮다. XC90에는 당시로는 첨단 기술인 준자율주행 기능이 있다. 스티어링휠에 있는 크루즈컨트롤 버튼을 눌러 파일럿 어시스트를 실행하면 차가 스스로 달릴 준비가 됐을 때 계기반 아래에 초록색 스티어링휠이 뜬다. 시간은 20초 남짓으로 짧은 편이다. 20초쯤 지나면 스티어링휠을 쥐라는 경고가 뜬다. 이 경고를 무시하고 그냥 달리면 스스로 파일럿 어시스트를 그만둔다. 브레이크를 밟아도 바로 그만둔다. 하지만 스티어링휠을 꽉 쥐지 않고 살짝만 잡고 있어도 파일럿 어시스트는 계속된다. 그러다 앞차와 가까워지면 스스로 브레이크를 밟아 거리를 벌린다. 차선을 지키며 스스로 달리는 폼이 제법이다. 15년 전 기술이지만 지금의 자율주행과 기본은 거의 비슷하다. 

XC90에는 앞차나 사람 등과 부딪힐 것 같으면 스스로 브레이크를 밟아 멈추는 시티 세이프티 기능도 있다. 그런데 브레이크를 너무 세게 밟는다. 경고음도 요란하다. 시티 세이프티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울컥거리며 몸이 앞으로 쏠린다. 요즘 차가 이렇게 운전하면 엄청 욕먹을 거다. 시승차는 XC90 중에서도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얹은 T8 엑설런스다. 시동 버튼을 딸깍 돌리면 그냥 조용하다. 우렁찬 엔진 소리는 기대할 수 없다(요즘 엔진 소리를 들을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오른발에 힘을 주면 금세 엔진이 반응을 보인다. ‘우우우웅’ 하는 엔진 소리가 경쾌하다. 커다란 덩치에 맞지 않게 가볍게 달린다. 승차감은 역시 푸근하다. 5인승으로 꾸민 엑설런스 모델은 뒷자리가 으리으리하다. 암레스트 앞쪽에 크리스털로 만든 장식이 있고, 암레스트에선 테이블도 꺼낼 수 있다. 뒷자리엔 냉장고도 있다. 15년 전 사장님들은 이런 뒷자리에 앉아 출퇴근하고, 골프를 치러 갔으려나? 참, 영화배우 이정재도 이 차를 탔다. 그땐 SUV가 매우 인기였다. 글_서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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