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을 매료시키는 목소리와 바로 눈앞에서 해답을 얻은 기분이 들도록 대답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때로는 변덕스럽고, 동시에 자신을 낮추기도 하는 그는 아주 친밀하면서 모든 것을 보여주는 CEO라는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있다.’ <모터 트렌드> 2017 ‘올해의 인물’ 1위에 오른 일론 머스크에 대한 평이다. 

자동차 업계, 아니 전 세계를 통틀어 머스크 같은 인물은 없었다. 수많은 잠재 구매자를 설득해 아직 출시되지도 않은 테슬라 모델3를 무려 40만 대나 예약받았다. 또 2030년까지 화성에 8만 명이 거주할 수 있는 화성 식민지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머스크가 말하면 다르다. 불과 20분의 발표 시간과 1500개의 단어로 청중을 설득시킨다.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3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논리적인 콘텐츠와 말하는 이의 품성, 그리고 청중에 대한 이해가 바로 그것이다. 스피치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것을 담아 듣는 사람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일론 머스크는 그 어려운 걸 해낸다. 어쩌면 말도 안 되는 주제를 가지고 말이다. 그는 어떻게 사람들을 설득시키는 걸까? 그의 발표에 어떤 특별함이 있는 걸까? 2016년 열렸던 모델 X, 모델 3 출시 발표회와 테슬라 에너지 발표회에서 일론 머스크가 보여준 스피치를 가지고 소통문화연구소 김은정 책임연구원과 함께 분석했다. 
 

“제 아내가 쌍둥이를 임신했을 때 이런 의문을 가졌습니다. 2열 시트에 설치된 유아용 시트에 쌍둥이를 앉히고 나면 3열 시트에는 어떻게 들어가지? (중략) 그래서 2열 시트 전체가 앞으로 움직이게 만들어 3열 시트로 들어가는 입구를 넓게 했습니다.”(모델X 출시 발표회)

 

불편에서 출발해 미래를 보여주다
머스크의 스피치는 자기가 겪은 불편한 상황에서 시작한다. 좁은 공간에 주차된 차에 자신의 쌍둥이 아이들을 각각 뒷좌석에 태워야 하는 상황이나 부피가 큰 친환경 배터리가 차지하는 어정쩡한 공간과 같은 예는 실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청중들도 충분히 겪었을 법한 문제들이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 청중들의 이야기를 대변한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청중들은 자신의 불편을 대신 말해주는 머스크에게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해결 방안으로 그는 자신이 개발한 혹은 개발할 제품을 제시한다.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어떤 기술을 적용했는지와 같은 이야기는 그의 발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는 제품으로 인해 바뀌어 있을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현재의 기술을 말하기보다 미래의 환상을 꿈꾸게 한다. 왜 사람들이 모델 3를 보지도 않고 예약을 하며 기다리는 불편을 감수하느냐고? 그들의 미래 차고엔 콘센트로 충전하는 모델 3가 이미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전기차를 왜 만들까요? 이산화탄소는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지구온난화를 넘어 내연기관 자동차는 유해가스를 배출합니다. 1년에 5만3000명이 유해가스 때문에 죽는다고요.”(모델 3 발표회)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지 않는 세상.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미래의 모습입니다. 태양광 패널과 배터리는 그런 세상을 위해 제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테슬라 에너지 발표회)

 

일관성을 보이다
발표자로서 머스크가 사람들의 지지와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일관성이다. 사람들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 과거와 현재가 일관적인 사람을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인들이 선거 때 내놓은 공약과 약속이 선뜻 믿기지 않는 이유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환경과 에너지 분야에 대한 끊임없는 문제 제기를 통해 사람들은 그를 ‘일관성 있게 공공을 위한 가치를 지키는 사람’으로 인식한다. 여기에 그가 테슬라의 CEO라는 점, 그동안 그가 이뤄온 업적에서 오는 전문성은 후광효과를 만들어 이러한 신뢰감을 더 강화해준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머스크가 공공의 가치를 추구하면 그의 주머니도 두둑해진다는 것이다. 공공의 이익과 그의 이익이 같은 방향에 있기 때문이다. ‘공공의 가치’라는 외피를 쓴 사적 이익의 추구인 셈이다. 일관성을 안 보이려야 안 보일 수가 없다.
 

“차를 보고 싶나요? (네!) 여러분은 차가 보고 싶겠지만 오늘 밤에는 보여줄 수가 없어요. (사람들이 웅성거리자) 사실 장난이에요. 지구 어딘가는 오늘 만우절이라고요. 자, 지금 모델 3를 공개합니다.”(2016년 3월 31일, 모델 3 출시 발표회)
“현재 판매되는 배터리의 문제점은… 뭐라고 해야 할까요. 단어를 잊어먹었는데… 정말 ‘구리다’는 겁니다. 그렇죠? 너무 끔찍해요. 비싸고 고장도 잘 나고, 못생겼어요.”(테슬라 에너지 발표회에서 덩치 큰 배터리팩에 대해 이야기하며)

 

서민적인 표현으로 친근감을 형성하다
그는 세련되고 잘 다듬어진 스피치를 구사하지 않는다. 스피치 중간중간엔 미국 코미디 영화의 한 장면을 따라 하기도 한다. 다소 어눌한 말투에 발표 중간중간 말을 더듬기도 한다. 발표의 서두에서나 인터뷰할 때 문장 첫 단어를 반복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중요한 자리에서 긴장하면 발표자가 보이는 습관 중 하나다. 보통 그런 상황에선 억지로 당황하지 않은 척을 하기 마련인데 머스크는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친근한 표정을 지으며 쉬운 단어로 설명한다. 편안하면서 집중도 높은 분위기를 형성해 발표자에게 ‘저런 상황이라면 나도 그럴 수 있어’라는 감정적 동조 효과를 이끌어낸다.

 

“20억개의 파워팩만 있으면 모든 운송수단과 모든 발전기, 모든 난방을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비현실적인 수치로 보이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현재 도로를 달리는 차량 수가 약 20억대입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인류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해왔으니까요, 
이것이 기가팩토리 1을 통해 우리가 이루려고 하는 것입니다. 
'We must do, we can do, we will do.”(테슬라 에너지 발표회) 

 

역동성을 드러내다
머스크의 가장 큰 특징은 열정과 확신을 보여주는 역동성이다. 청중은 발표자의 눈빛, 어조, 자세, 표정, 제스처 등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요소들을 통해 얼마나 발표자가 확신을 갖고 그 주제에 몰입하고 있는지, 얼마나 최선을 다해 호소하고 있는지를 본능적으로 느낀다. 발표를 시작할 때 머스크는 말을 더듬을 정도로 긴장한다. 그러던 그가 제품과 자신의 비전을 설명할 땐 얼굴에서는 열정을, 눈빛에서는 확신을 읽을 수 있다. 좋아하는 일에 몰입한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희열에 찬 미소를 띠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몸짓을 동원해 표현하고, 설명한다. 머스크는 청중이 열망하고 다 함께 지향해야 할 가치를 대구법과 반복을 사용해 강조한다. 다소 ‘격이 없다’, ‘정돈되지 않았다’고 평가할지 모르지만 그가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의심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유명한 그리스 웅변가 키케로는 사람을 설득하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다른 사람에게 붙이고 싶은 불길이 그대의 가슴속에서 먼저 타야 한다”고 말이다. 당신은 보이는가. 머스크의 가슴에서 타고 있는 불길이? 보인다면 당신은 이미 머스크에게 넘어갔다.   

 

 

vs.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가 발표회를 가졌을 때 누구보다 비견됐던 사람. 바로 애플의 고(故) 스티브 잡스다. 지난 1월 9일은 잡스가 아이폰을 선보인 지 10년이 되는 날이다. 그날 잡스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아이폰3 출시 발표회를 열었다. 잡스는 뛰어난 개발자이기도 했지만 완벽한 발표자다. 그의 발표는 머스크와 확연히 다르다. 잘 만든 한 편의 드라마였다. 잡스가 즉흥적으로 아이폰을 이용해 커피 4000잔을 시키는 것조차 모두 시나리오에 있는 내용이었다. 그는 실체 없이 미래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현재 자기 손에 있는 제품이 어떻게 미래를 바꿀지 이야기했다. 제품을 꾸며주는 미사여구보다는 자신이 제시할 수 있는 합당한 근거만을 말했다. 분위기에 휩쓸려 얼굴이 상기되거나 말을 더듬지도 않았다. 오직 준비한 내용에 기반한 스피치를 오차 없이 실행했다. 사람들은 그런 잡스의 모습에 감탄했다. 아이폰3 출시 발표회는 모바일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머스크의 모델 3 발표회는 전기차 시대를 여는 또 하나의 신호탄이 될지 모른다. 이미 됐을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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