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차 시대는 끝난 것처럼 보였다. 살림이 나아졌는지 큰 차를 좋아하고 편의장비도 많이 달린 고급 모델을 고르는 경향이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섣부른 짐작이었다. 바야흐로 경차 르네상스다. 명맥이 끊길 뻔했던 경차는 신모델과 격렬한 경쟁이 많은 판매량으로 이어졌고, 이제 시장 관점은 물론 자동차 제조사의 사업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제품이 됐다. 한국지엠의 스파크가 대표적이다. 회사 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일 뿐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으로의 수출도 활발하다. 스파크는 국내와 해외 시장에서 매우 큰 임무를 맡고 있는 ‘작지만 큰 자동차’다. 그런데 이 작은 거인의 미래는 그저 탄탄대로이기만 할까? 

 

작은 두 거인 1991년 탄생해 그해 3만대 이상 팔린 대우 티코를 시작으로 경차는 1996년 판매 10만대 벽을 넘으며 탄탄한 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2000년대 경차 시장은 티코의 대를 이은 마티즈와 스파크, 그리고 2004년 출시해 최근 3세대까지 이른 기아 모닝이 이끌고 이다. 둘은 경쟁자이자 동반자다.

 

원조 경차에서 스파크까지
한국 경차 역사는 1980년대에 시작된 한국형 국민차 프로젝트에서 출발한다. ‘한국의 폭스바겐 비틀’을 만들어 국민에게 보급하고 에너지도 절감하자는 취지로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1991년 탄생한 티코로 결실을 맺는다. 300만원대부터 시작하는 티코는 당시 가장 작은 승용차였던 기아 프라이드 1.1보다 거의 20퍼센트 이상 저렴했다. 리터당 20킬로미터를 가볍게 내는 우수한 연비도 자랑거리였다. 그 결과 출시 첫해 3만대 이상 팔리며 새로운 승용차 시장을 열었다. 전성기는 20세기 말이었다. 환율 폭등, 기름값 인상, IMF 경제위기 등으로 국민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티코와 1998년 선보인 후속모델 마티즈(M100)는 연간 10만대 판매를 넘는 호황을 누렸다. 이전 1996년에 발표된 각종 경차 혜택에 현대 아토스와 기아 비스토 같은 경쟁모델까지 더해지면서 경차 시장은 더욱 풍성해졌다. 

하지만 한계도 분명했다. 배기량 800cc인 엔진은 힘이 부족해 도로에서 무시당하기 십상이었고, “껌 밟아서 급정거했다” 같은 블랙 유머가 유행할 정도로 가벼운 차체도 문제였다. 경차에만 적용한 완화된 규정 탓에 안전성도 취약했다. 게다가 경제위기에서 탈출하자 경차 인기도 금세 시들었다. 아토스와 비스토는 5년 남짓한 기간 만에 국내시장에서 단종되고 인도 등으로 생산라인을 옮기는 운명을 맞았다. 그나마 아토스는 형편이 나았다. 높은 지붕 덕분에 인도 남성이 터번을 쓰고도 편안하게 탈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인도 국민차로 10년 이상 장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경차 시장은 급격히 식었다. 1999년 15만대 이상으로 올랐던 판매량은 2002년 5만7000여 대로 떨어졌다. 불과 3년 만에 3분의 1 수준으로 내려간 거다. 경쟁 모델이 철수하면서 시장을 지키는 모델도 마티즈와 올 뉴 마티즈뿐이었다. 

그러다 2008년 배기량 기준이 800cc에서 1리터로 완화되고 차체 규격도 조금씩 커지는 등 새로운 경차 규정이 시행되면서 경차 시장은 다시금 활기를 띠었다. 이 무렵 2세대 기아 모닝이 새롭게 합류하면서 경차 시장은 연간 판매 13만대 이상으로 다시금 10만대 영역에 진입했다. 2009년, 한국지엠도 마티즈 크리에이티브(쉐보레 브랜드 론칭과 함께 스파크로 개명) 출시와 함께 1리터 경차 시대를 열었다. 이후 모닝과 스파크는 각각 10만대와 6만대 정도로 시장을 나눠 가졌다. 2011년 박스형 경차인 기아 레이가 추가된 뒤 모닝 판매가 9만대 정도로 내려왔을 뿐 모닝과 스파크의 양자 구도는 2015년까지 안정적으로 이어졌다. 새로운 시장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했던 레이는 4만4000대가량 팔린 2012년 이후 점차 판매량이 줄고 있다. 

 

 

쓴맛 남긴 경차 대전, 논란 남은 경차 혜택
2015년 서울모터쇼에서 공개된 더 넥스트 스파크는 그해 8월, 마침내 7년 만에 모닝을 경차 시장 1위에서 끌어내렸다. 기아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9월에 할인 폭을 넓히더니 10월부터는 130만원 상당의 김치냉장고(삼성)를 제공했다. 스파크보다 여성·주부가 세컨드카로 쓰는 비중이 높다는 고객 분석에 따른 것이었다. 이 프로모션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였다. 신모델인 스파크의 1위 탈환을 ‘한 달 천하’로 끝내버린 것이다. 한국지엠도 20만원 할인 또는 스마트워치 증정 프로모션으로 맞불을 놨지만 역부족이었다. 재역전은 이듬해 이뤄졌다. 할인 폭을 크게 키워 1위를 되찾았고, 10월에는 120만원 현금 할인 또는 200만원 상당의 김치냉장고(만도)까지 제공했다. 결국 스파크는 지난해 7만8000대 판매로 7만5000대의 모닝을 간발의 차이로 제쳤다. 신차임에도 공격적인 프로모션을 펼친 결과였다. 하지만 진짜 승자는 스파크가 아니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2015년의 삼성과 2016년의 만도, 그러니까 경차 시장에선 자동차가 아니라 가전업계가 진정한 승자라는 얘기였다. 마진율이 낮은 경차에 소비자가격의 10퍼센트에 달하는 프로모션은 과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른바 ‘2015~16 경차 대전’은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우선 경차 시장의 가치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다. 스파크는 신차인데도 가격의 10퍼센트 수준에 달하는 프로모션을 해야 했다. 이는 자동차 제조사에게 경차 시장은 수익성이 떨어지는(적극적으로 공략할 필요가 없는) 무대로 여겨질 수 있다. 하물며 신모델이 출시되고 공격적인 프로모션까지 단행했는데도 경차 판매량과 승용차 시장 내 점유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경차 시장의 정점은 제3의 경차인 레이가 1년 내내 판매한 2012년(약 20만대)이었다. 점유율은 2012년 17.3퍼센트에서 지난해 12.9퍼센트까지 내려갔다.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지금 경차의 원가와 가격대는 경차 소비자들이 원하는 가격대보다 다소 높다. 둘째, 개별소비세 인하 혜택을 받는 차들이 늘어나면서 이미 개별소비세 면제 대상이던 경차의 경쟁력이 떨어졌다. 경차의 경쟁력이 제품이나 가격이 아니라 ‘경차 혜택’에 따른 건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경차의 판매 성적이 혜택에 좌우됐다는 건 이미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1996년 경차 판매가 급증한 건 등록세 인하와 고속도로 통행료 감면 등 혜택이 제공된 덕분이었다. 2004년과 2008년 경차 판매가 회복된 것 역시 차체 크기와 엔진 배기량 완화라는 제도적 지원에 의한 것이었다. 반면 2015년 하반기와  2016년 상반기에는 자동차 경기부양책으로 개별소비세 인하가 실시되면서 경차의 경쟁력이 떨어졌다. 

애초 경차에 여러 혜택을 주었던 건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어서였다. 원조 경차인 티코는 차 무게가 600킬로그램 수준이었고 연비는 리터당 24킬로미터(구 연비, 수동변속기 기준)에 달했다. 지금의 스파크는 무게가 900킬로그램에 이르고 연비는 리터당 15킬로미터(신 연비, 수동변속기 기준)에 머문다. 그 사이 경차를 제외한 다른 승용차들은 경량화와 연료 직분사, 디젤 엔진이나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 등으로 경차를 능가하는 연료효율을 갖게 됐다. 게다가 교통 흐름에 뒤처지지 않게 다니다 보면 요즘 경차의 실제 연비는 중형차 수준보다 못한 경우도 많다. 공간 효율로 승부했던 톨보이 스타일의 레이 판매가 부진한 것도 낮은 연비와 동력성능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경차는 더 이상 혜택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얘기일까? 연료경제성 측면에선 분명 이유가 희박해졌다. 하지만 시야를 넓혀 연료를 여러 자원 중 하나로 보면 자원효율성 측면에서 여전히 뛰어나다. 강철 등 제작에 필요한 자원도 적게 쓰지만 도심 공간이라는 자원의 효율성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즘 출근길은 1인 탑승 차가 대부분이다. 작은 차로 큰 차를 대신할 수 있다면 거의 포화 상태에 이른 도심 도로를 확장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자면 경차의 진화가 우선이다. 

 

굿 모닝 지난 1월 공식 출시한 3세대 모닝. 기아는 경차 시장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경쟁모델을 철저하게 벤치마킹했다. 결과적으로 지난 1월 공식 출시한 3세대 모닝은 스타일과 실내공간, 주행품질, 편의장비까지 거의 모든 항목에서 더 넥스트 스파크보다 한 끗씩 앞서나갔다.

 

작지만 좋은 차로 진화하다
초기 경차가 연료 경제성만을 위해 다른 많은 편의를 포기해도 됐다면 지금부터는 안전성이나 거주성 등에서 균형감각을 갖춘 (크기는) 작지만 (편의는) 적지 않은 차가 돼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바라본 더 넥스트 스파크는 과연 어떤 경차일까? 

지난가을 나는 더 넥스트 스파크 수동 모델을 구입했다. 거칠어진 운전을 가다듬어야겠다는 결심에 잘 돌고 잘 멈추며 드라이버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기본에 충실한 차를 물색했고, 스파크가 바로 그런 차였다. 등록비가 거의 들지 않아 실질적인 구매비용이 적다는 점, 시가지에서 주로 쓰는 만큼 공영주차장 할인이나 혼잡통행료 면제 같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무엇보다 이전 세대 스파크에 비해 어린 차 같은 느낌이 적고 다이내믹하지만 점잖은 디자인을 가진 것이 마음에 들었다. 구형 스파크는 여성 운전자가 타면 아들 차를 빌려 탄 듯한 어색함을 피할 수 없었다. 반면 더 넥스트 스파크 디자인은 훨씬 보편타당하다. 역동성이 살아 있는 인테리어도 중년 남자인 내게 활력소가 된다. 경차 분위기를 지우기 위해 애써 무덤덤한 인테리어를 선택한 모닝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구형 스파크와 같은 수동변속기는 1단부터 5단까지 기어비가 촘촘하게 붙어 있어 고속주행 연비가 떨어진다(엔진회전수가 높다). 하지만 저속 토크가 크게 향상된 3기통 엔진과 조화를 이뤄 시가지에서의 동력성능은 뜻밖에도 다이내믹하고 재미있다. 합리성을 토대로 재미까지 살아 있는 어른의 장난감인 셈이다. 

또 경차지만 다양한 주행 보조 안전장치를 누릴 수 있다. 종종 얘기하는 ‘하이테크의 민주화’다. 앞차와 추돌할 위험이 있거나 차선을 벗어나는 경우 혹은 사각지대에 차가 있을 때 운전자에게 경고를 하는데, 비록 스스로 수정까지 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 기능만으로도 시가지 주행 안전성은 크게 향상된다. ABS와 ESC 같은 전통적인 전자식 보조 안전장비는 당연히 기본이다. 더 넥스트 스파크는 ‘훌륭한 작은 차’로 바람직하게 진화했다. 

 

 

적이 아니라 라이벌과의 동침
스파크의 라이벌은 모닝이다. 그리고 이번에 완전신형 모닝이 등장했다. 신형은 지난 1월 국산차 판매 3위 기록으로 더 넥스트 스파크(8위)를 밀어내며 경차 1위 자리를 되찾았다. 그런데 순위 변동보다 중요한 사실이 있다. 신형 모닝이 스파크를 철저하게 벤치마킹해 자신의 약점을 완벽하게 보완했다는 점이다. 이전 모델은 경차 같지 않은 무난한 디자인으로 중년 여성의 사랑을 받았다. 반대급부로 다른 기아 제품을 구매할 기회가 많은 젊은 고객의 유입 효과는 약했다. 또 경차 같지 않은 부드러운 승차감에 힘쓰다 보니 고속주행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약점이 있었다. 신형은 스파크에 비해 뒤처졌던 디자인의 역동성과 조종성능을 보강하는 데 집중했다. 동시에 본연의 강점인 넓은 실내와 경차 같지 않은 인테리어 디자인 등으로 보편성을 고수했다. 세부를 뜯어봐도 완전신형 모닝은 스파크를 정조준한 ‘목적타’다. 엔진 출력도 1마력 높고, 최대토크는 같지만 더 낮은 회전수에서 나온다. 차체 크기는 그대로지만(규정 때문에 더 커질 수도 없다) 앞 오버행을 줄이고 휠베이스를 15밀리미터 길게 해 실내공간과 외관 디자인의 안정감을 키웠다. 스파크에 버금가는 주행안정성과 조종성을 갖추기 위해 차체 강성도 32퍼센트 향상시켰다. 운전석에는 스파크에 없는 선바이저 조명을 달고, 앞 시트 열선은 끄고 켜는 것만 가능한 스파크와 달리 2단계 조절 기능을 넣었다. 카탈로그와 제원을 보면 스파크보다 딱 한 끗씩 앞서간다. 

더 넥스트 스파크의 기회는 주행성능에 있다. 스파크가 모닝에 앞서 선점한 테마다. 모닝의 조종 특성은 토크 벡터링 적용 등으로 디지털적 예리함을 강조한다. 이에 비하면 아날로그적인 스파크는 좀 더 자연스러워 조종하는 맛이 크다. 사실 더 넥스트 스파크도 모닝에서 배운 게 많다. 대표적인 예가 시티 모드다. 시티 모드는 스티어링 무게를 덜어줘 조작성을 높이는 기능이다. 덕분에 시내에선 가볍고 경쾌한 조종감각을, 교외에선 단단하고 교감할 줄 아는 쉐보레 특유의 우수한 조종성능을 맛볼 수 있다. 이처럼 모닝과 스파크는 서로 배운다. 적과 경쟁자의 차이다. 경쟁자는 실상 동업자다. 두 차가 열심히 할수록 경차 시장은 성장한다. 스파크와 모닝은 이미 국내 판매량보다 해외 수출량이 훨씬 많은 강력한 수출상품이 됐다. 

 

스파크의 다음 스텝은? 더 넥스트 스파크의 강점은 여전히 주행성능이다. 잘 돌고 잘 멈추며, 운전자가 개입할 여지도 충분하다. 이처럼 탄탄한 기본기에 전방추돌 경고, 차선이탈 경보와 같은 최신 안전장치까지 충실하게 챙겼다. 하지만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는 적절한 미끼상품을 개발하고 업무용 차시장을 적절히 공략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멀리 보는 경차가 오래 산다
스파크에 당장 큰 문제는 없어 보이지만 보완해야 할 점은 있다. 멀리 내다보는 판매 전략이다. 우선 스파크의 트림은 성격에 따라 이원화하는 게 좋겠다. 생애 첫 차를 찾는 이들에겐 가능하면 더 높은 사양을 선택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이처럼 작지만 좋은 차를 원하는 이들을 위해 사양이 높고 첨단 장비가 있는 상위 트림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경차답지 않은 편의장비는 덜어낸 모델도 필요하다. 요즘 현대자동차가 곧잘 쓰는 ‘밸류 플러스’라는 스페셜 트림이 대표적이다. 정규 트림의 편의장비들 중 인기 있는 것을 모아 엔트리 모델에 적용한 것이다. 고객 눈에 띄도록 하는 미끼상품인데, 이는 소비자에겐 가격 대비 가치가 높은 최고의 상품이 될 뿐만 아니라 자동차 제조사에게도 품질 저하 없이 원가를 최적화하는 수단이 된다. 이 같은 접근 방법은 경차엔 특히 중요하고 효과적일 것이다. 또 업무용 차 시장을 보다 적극적으로 공략할 필요도 있다. 대의명분은 경차 본연의 임무 중 하나인 도심 공간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것이지만 멀게는 지금의 경차 혜택을 유지하거나 확대하는 데 매우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도심에서 경차의 기여도를 높이는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는 얘기다. 가볍게 흘려들을 얘기가 아니다. 경차의 가장 중요한 구매 요인은 다름 아닌 정부의 다양한 혜택이기 때문이다.  글_나윤석(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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