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어 손잡이를 당긴다. BMW의 새로운 5시리즈. 손끝에서 느껴지는 도어의 묵직함만으로도 이 차의 무게감과 존재감이 전해지는 듯하다. 이런 묵직한 도어를 지닌 차들은 대체로 조용하고 편하며 안락하다. 말해 뭐하나. 이 차는 BMW의 최신 5시리즈이니 당연한 귀결이다. 

하지만 그 무게감이 꼭 물리적인 것만은 아니다. 신형 5시리즈가 그렇다. 이 차는 이전 F10에 비해 최대 115킬로그램 가볍다. 115킬로그램이라니.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섀시를 강철 외에 알루미늄, 마그네슘 등의 경량 소재로 바꾸고 트렁크 덮개를 모두 알루미늄으로 만들었다. 이 외에 더 작고 가볍고 얇으면서 단단한 소재를 찾아내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연구했을까? 어쩌면 전선 한 가닥을 줄이기 위해 몇 날 며칠을 고심했을지 모른다. 특히나 G30은 이전보다 차체가 커졌다. 휠베이스가 7밀리미터 늘었고 길이와 너비, 높이가 각각 29, 8, 4밀리미터씩 커진 4936×1868×1479밀리미터가 됐다. 

차체가 커지면 공기와 닿는 면적이 넓어져 공력성능에 불리한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여기서도 BMW의 엔지니어들은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또 밤잠을 설쳤을지 모른다. 공기저항계수가 0.22다. 그릴에 셔터를 달아 엔진룸에서 생기는 공기저항을 덜어내고 안개등 옆으로도 구멍을 뚫어 휠하우스 안쪽에서 생기는 와류를 줄였다. 이렇게 구멍을 뚫고 막으면서 바람을 다스린 결과 동급에서 가장 낮은 공기저항계수를 얻었다. 
전체적인 실루엣이 짧고 길다. 오버행이 짧아졌고 보닛과 사이드 실루엣이 길어졌다. 옆의 두 개의 직선은 뒤로 흐르는 게 아니라 앞으로 쏟아지는 느낌을 연출한다. 서 있어도 달리는 것 같다. 앞바퀴와 운전석의 거리도 상당히 길다. 정통 뒷바퀴굴림 세단만이 가질 수 있는 멋진 비율이다. 

무게감이 느껴지는 도어를 닫기 위해 힘줘 도어를 던질 필요 없다. 살짝 놓아두면 저절로 스르륵 닫힌다. 사이드 볼스터가 두툼한 시트. 이 시트는 볼스터와 어깨 각도, 허벅지 지지까지 조절된다. 몸에 착 감긴다. 당연히 열선, 통풍 기능도 있다. 사실 자동차 시트는 아주 중요하다. 탑승자가 느끼는 대부분의 감각과 편하고 불편함의 척도는 시트에서부터 시작되니까. 그리고 시트가 편해야 안전하다. 그런 면에서 신형 5시리즈의 것은 훌륭하다. 

 

대시보드와 센터페시아는 우드그레인과 무광 크롬을 적절히 혼용했다. 탁한 질감이나 투박한 느낌이 없는 실내다. 그러면서 계기반과 스탠딩 디스플레이가 최첨단 기술을 내포하고 있음을 은근히 뽐낸다. 눈에 닿는 모든 것이 점잖고 고급스럽다. 이 멋진 실내엔 수많은 기술이 요소요소에 숨어 있을 것이다. 늘 그랬다. BMW의 모든 신형 모델들은 신묘한 기술을 탐닉하는 재미가 있다. 

제스처 컨트롤. 7시리즈에서 이어받은 이 기술은 처음 사용할 땐 조금 겸연쩍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손가락을 세우고 돌리는 건 왠지 모를 부끄러움을 유발한다. 하지만 신선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다. 손에 닿는 것이 없으니 시선을 빼앗길 일도 없다. 아직 많은 것을 컨트롤할 수 없지만 이 기술은 미래 자동차 환경에서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자율주행 시대엔 운전대를 잡지 않으니 손이 각종 컨트롤러와 멀어지게 될 것이다. 이때 몸을 곧추세우거나 일으키지 않고 손짓으로만 컨트롤할 수 있다. 신형 5시리즈는 제스처 컨트롤이 아니더라도 i드라이브와 음성인식, 운전대 리모컨, 10.25인치 터치스크린 등으로 컨트롤할 수 있다.

신형 5시리즈는 BMW가 자율주행 시대로 가는 여정의 이정표와 같다. 여러 개의 카메라와 레이더, 초음파 등의 센서를 사용하는 액티브 크루즈컨트롤과 조향 및 차선 유지 어시스트 기술이 융합돼 일정 시간 자율주행이 가능하다. 차선 가운데에서 정확한 타이밍에 부드럽게 조향되는 것을 경험하니 자율주행 시대가 멀지 않았음을 느낀다. 또 신형 5시리즈에 들어간 지능형 속도제어 어시스트는 설정된 속도에 도달할 때까지 가속과 제동과 조향을 스스로 한다. 최대 시속 210킬로미터까지 설정할 수 있다. 이 외에 7시리즈에서 이어받은 무인주차 기술도 있다. 

 

3.0리터 직렬 6기통 터보 디젤 엔진은 이전보다 7마력 높아진 265마력이 됐다. 최대토크도 63.2kg·m에 이른다. 이 엔진이 8단 자동변속기와 짝을 이뤄 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을 5.7초에 달리고 최고속도는 시속 250킬로미터에서 전자적으로 제한된다. 회전이 부드럽고 터보 지체 현상을 느낄 수 없다. 참고로 가솔린 엔진 530i는 528i를 대체하면서 직렬 4기통이 됐지만 530d는 여전히 6기통을 사용한다.  

바퀴가 구르기 시작하면서부터 BMW 특유의 묵직한 승차감을 느낄 수 있다. F10보다 차체 무게가 100킬로그램 이상 가벼워졌지만 더 묵직하고 부드러워졌다. 서스펜션이 움직이지 않는 것 같으면서 충격을 걸러내고 차체가 수평을 유지한다. 20인치나 되는 런플랫 타이어를 끼우고 스트로크가 짧은 M 스포츠 서스펜션을 끼웠음에도 이런 주행감이 나오는 게 신기하다. 이전부터 BMW에서 느꼈던 친숙한 편안함이지만 그 깊이가 더해졌다. 고속도로에선 ‘BMW가 지금 이 순간 가장 위대한 절정에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더없이 느긋하고 편하다.

 

운전도 지극히 쉽다. 가변식 스티어링 시스템으로 유턴이나 주차 시엔 운전대를 단 한 바퀴만 돌리면 된다. 여기에 뒷바퀴가 앞바퀴와 반대로 조향되면서 회전반경을 줄인다. 속도를 올리면 스티어링이 무거워지고 뒷바퀴가 앞바퀴와 같은 방향으로 조향되면서 좀 더 안정적인 좌우 움직임을 만든다. 

이런 최첨단 조향 기술이 아니더라도 이 차는 뛰어난 섀시 강성과 무게 밸런스를 느낄 수 있다. 스티어링 반응과 속도는 예상을 빗나가는 일 없이 빠르고 정확하다. 주행 궤적도 예측한 대로다. 특히 앞바퀴 그립이 좋아졌다. 회피 주행을 가정한 무모할 정도의 스티어링에도 언더스티어가 일지 않으며 내가 예상한 대로 움직인다. 거친 노면에서도 운전대가 요동치거나 뒷바퀴 그립이 떨어지지 않았다. 

50:50의 정확한 무게 밸런스와 가벼워진 차체가 만들어낸 뛰어난 주행안정성을 경험하면 자연스럽게 스포츠 모드 버튼을 누르게 된다. 그러면 사이드 볼스터가 조여지고 운전대가 무거워진다. 댐퍼도 단단해진다. 마치 ‘마음껏 달려보세요’라며 끼를 부리는 듯하다. 기꺼이 오른발에 힘을 주고 코너를 파고들어도 예의 그 안정성은 무너지지 않는다. 운전대는 노면 정보를 충분히 전달하고 그에 따른 운전자의 반응에 빠르고 정확한 움직임으로 화답한다. 한편으로는 능청스럽기까지 하다. 지극히 편했던 차가 천연덕스럽게 스포츠를 내뿜으니 말이다. 

깊이가 있다. 일곱 번째 BMW 5시리즈는 자동차 만듦새의 깊이가 더욱 깊어졌다. 몸에 닿는 모든 것의 질감이 부드럽고 손이 닿는 모든 것의 조작감은 일관성을 지녔다. 주행품질의 깊이는 어떤가. 마땅히 럭셔리 중형 세단이 지녀야 할 기품 이상의 세심함을 느낄 수 있다. 거기에 역동적인 움직임에서도 자세를 흩트리지 않는 100년 기술의 깊이를 보여준다. 

BMW는 스포츠가 럭셔리에 밀려난 우울한 시대에 신형 5시리즈라는 질문과 답변을 던졌다. “왜 그래야 해? 둘 다 하면 안 돼?” 작금의 자동차들은 한없이 편하고 안락하지만 예전의 단단한 섀시가 주었던 믿음직하고 짜릿한 주행은 점점 옅어지고 있다. BMW는 100년의 역사 동안 천둥 같은 박진감 때문에 열망을 진정시켜야 했던 차를 얼마나 많이 만들었던가. 신형 5시리즈는 그런 BMW의 과거의 초상을 연상시킨다. 비록 정신이 혼곤할 정도로 몰아치진 않더라도, 우리가 사랑했던 BMW가 좀 더 또렷해졌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이들이 신선한 꽃을 뿌리며 새로운 5시리즈를 반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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