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즘이 이토록 활기를 띤 적이 있었나. 부드럽게 나풀거리는 시폰 드레스와 하이 쿠튀르적 비즈 장식 대신 스포츠 웨어의 디테일에 대한 디자이너들의 사랑이 이번 시즌 정점을 찍었다. 펜싱 유니폼에서 영감을 얻은 디올의 화이트 스포티즘 룩부터 베르사체와 끌로에, 쿠레주의 큼직한 나일론 아노락 점퍼와 트랙 슈트 룩, 그리고 자유분방하고 활기찬 스포티즘의 기운을 제대로 받아 쿨한 캘리포니아 서프 룩을 선보인 알렉산더 왕까지. 이쯤 되면 운동과 담쌓고 지낸 패피들도 트렌드와 멋을 위해 백화점이 아닌 체육관으로 몰려갈 기세다. 이번 시즌, 최고의 스포티즘 룩을 꼽자면 펜싱복에서 영감은 받아 시즌 컬렉션을 전개한 디올. 스포티즘 룩도 더없이 우아할 수 있음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디올 역사상 최초의 여성 디자이너로 간택되며 첫 데뷔 무대를 선보인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첫 번째 컬렉션의 키워드를 펜싱으로 꼽았다. “펜싱은 여성과 남성의 유니폼이 동일한 스포츠 종목이죠.” 남성과 여성의 동등함에 초점을 맞춘 그녀는 디올의 페미니즘에 담백한 밴디지 디테일과 퀼팅 소재, 슬립온 스니커즈 등을 더해 우아하고 격조 있는 스포티즘을 완성했다. 디올이 숭고한 스포츠 정신을 선보였다면, 알렉산더 왕은 자유분방하고 에너제틱한 젊은 기운을 쿨하게 내뿜었다. 네온 컬러와 레이스를 적절하게 믹스한 브라톱과 래시가드 티셔츠, 크롭트 아노락과 목에 두른 퍼 액세서리와 펑키한 밍크 가운까지, 뻔한 아이템을 그만의 솜씨로 다이내믹하게 조합한 컬렉션은 그야말로 스포티즘의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피날레 직전, 깜짝 발표한 아디다스 오리지널스와 알렉산더 왕의 협업 컬렉션까지!)  

런웨이를 수놓은 스포티즘의 새로운 해석은 운동복과 출근복, 하이패션과 스트리트 웨어의 개념이 모호해진 지금, 바쁜 현대 여성에게 매우 현실적인 트렌드다. 캐주얼하지만 얼마든지 드레스업이 가능하고, 편안하고 실용적이지만 패셔너블하니 이런 영리한 트렌드가 또 있을까. 런웨이에 오른 스포티즘의 열기는 리얼웨이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끌로에가 선보인 대표적인 스포티즘 룩인 넉넉한 톱과 스트링 쇼츠는 하이힐과 스니커즈 매치에 따라 포멀한 룩과 캐주얼한 룩으로 연출할 수 있다. 좀 더 난도가 높은 액티브한 스포츠 무드를 만끽하고 싶다면 베르사체와 J.W. 앤더슨 그리고 조셉의 스포츠 룩을 참고하면 된다. 스트링 장식을 활용한 베르사체의 컷아웃 드레스와 스판덱스 레깅스, 나일론 어깨끈을 이용한 비즈 드레스는 도나텔라 특유의 관능적인 무드가 더해져 섹시한 스포츠 룩으로 완성되었다. 조셉과 DKNY 역시 얌전한 모범생이 입을 법한 재킷과 트렌치코트에 농구용 저지 소재 드레스와 그래픽적인 컬러 블록 트랙 슈트를 매치해 스포티즘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이번 시즌 런웨이를 강타한 스포티즘 룩을 즐기는 데 필요한 애티튜드는? 트렌드에 대한 대한 심각한 고찰이나 분석보다는 단순함과 건강함, 유쾌함과 즐거움으로 스타일링 자체를 기꺼이 탐하는 태도다. 다양한 스포츠 아이템을 당당하게 활용해 거리로, 사무실로, 이브닝 파티장이나 클럽으로 망설임 없이 행차할 것. 그게 바로 스포츠의 정신이자 이번 시즌 스포티즘 트렌드를 제안한 디자이너들이 여성에게 전하는 메시지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