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이 독자들에게 도착했을 때는 이미 2015년 선보인 쌍용 티볼리가 누적판매 10만대를 돌파한 뒤일 것이다. 쌍용차 역사상 최단기간 10만대 돌파 기록이다. 꼭 잘 팔려서만이 아니라 티볼리는 여러모로 기특한 모델이다. 티볼리 덕에 쌍용은 SUV의 강자라는 옛 영광에만 매달려 있는 브랜드 이미지, 외국자본 ‘먹튀’ 논란이나 노조 정리해고 같은 부정적 키워드를 떨쳐내고 시장을 이끈다는 긍정적 이미지를 품게 됐다. 지난해 3분기까지 영업이익 200억원을 기록, 9년 만의 흑자 경영 가능성도 커졌다. 시장 측면에서도 B 세그먼트 시장을 연간 10만대 수준의 내수시장 규모로 정착시킨 시장 발전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신규 모델 부족으로 점점 오그라들던 B 세그먼트 해치백의 하락세를 상쇄하는 경쟁력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B 세그먼트 SUV 시장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시장의 부담을 티볼리 혼자 힘으로 이겨내고 있어 더 위태롭다. B 세그먼트 SUV 시장은 이미 성숙 단계에 들어선 걸까? 아니면 벌써 피로감이 쌓인 걸까? 대표 모델인 티볼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티볼리를 통해 B 세그먼트 SUV 시장의 미래까지 살폈다. 

 

 

존재감 있는 디자인과 풍부한 옵션 등 값 대비 가치에서 티볼리를 따를 라이벌이 지금 시장엔 없다.  심지어 전방추돌 경고와 차선유지 보조 같은 능동적 주행안전 패키지까지 불과 60만원에 제공한다. 

 

 

B 세그먼트 SUV 시장이 열리다 

이 시장엔 이미 기아 쏘울이 있었다. 하지만 그 차는 엄밀히 말해 박스형 승용차다. 따라서 B 세그먼트 SUV 시장을 연 첫 모델은 2013년에 등장한 쉐보레 트랙스 가솔린으로 봐야 한다. 트랙스가 그해 8000대 넘게 팔리면서 B 세그먼트 SUV는 1만대 이상의 규모를 가진 의미 있는 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트랙스는 홀덴 트랙스, 오펠 모카, 뷰익 앙코르 등 다양한 이름으로 팔리던 수출 전략 모델이었다. 생산량은 시작부터 20만대를 넘었고, 그중 국내 공급량은 5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한국이 아니라 선진 시장용 엔트리 모델이라 기본기는 매우 좋지만 안팎 질감이나 옵션은 떨어졌다. 게다가 가격도 높았다. 수출용으로는 이미 생산하고 있던 디젤 모델을 출시 2년이 지나서야 선보이는 등 국내 시장 요구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럼에도 매년 1만대 이상 팔린다는 것은 모델 자체가 지닌 경쟁력도 있지만 B 세그먼트 SUV 시장이 분명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였다. 2014년 등장한 르노삼성 QM3는 이 시장을 본격적인 궤도로 끌어올렸다. 좋은 차지만 감성적인 부분이 아쉬웠던 트랙스에 비해 QM3는 통통 튀는 개성과 유럽 감성, 그리고 효율 좋은 디젤 파워트레인 등으로 빈자리를 정확히 꿰차고 들어왔다. 디젤 모델밖에 없어 가격이 비쌌지만 스페인산 수입 완제품이라는 사실과 어우러져 오히려 프리미엄 소형 SUV로 차별화할 수 있었다. QM3는 출시 첫해 1만8191대 팔리면서 B 세그먼트 SUV 시장 규모를 단숨에 세 배(약 3만3000대)까지 키웠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한국의 B 세그먼트 SUV 시장이 자리 잡았다고 말할 수 없다. 소형 크로스오버 시장에는 변화무쌍한 도심 정글에서의 드라이브를 즐기는 젊은 계층이나 주위 시선은 아랑곳 않고 작지만 개성 충만한 모델을 기꺼이 구입하는 이상적인 고객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오랜 경제불황으로 구매력이 떨어져 작고 경제적인 차를 구입해야 하는 사람, 자녀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운동능력과 지각능력이 약화돼 큰 차를 운전하는 게 부담스러워진 장년층이 오히려 많다. 티볼리는 이런 현실에 솔직하게 접근한 첫 번째 B 세그먼트 SUV였다. 

가솔린 직분사 터보 다운사이징 엔진(트랙스)도, 고효율 듀얼클러치 변속기(QM3)도 없지만 대신 티볼리는 1.6리터 MPI 엔진과 수동변속기로 1600만원대라는 소형 해치백의 가격을 거머쥐었다. 여기에 조금 과하기는 해도 인상적인 디자인으로 가격을 뛰어넘는 존재감까지 더했다. 강인한 디자인은 젊은 여성 고객에게 어필했다. 티볼리에서 미니 컨트리맨의 이미지를 느끼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결정적인 강점은 가격을 뛰어넘는 화려한 장비 구성이었다. 저렴하지만 저렴해 보이거나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티볼리의 큰 무기였다. 이미지를 추구하지만 현실적인 구매를 원하는 오늘날 소비자에게 꼭 맞는 제품이었단 얘기다. 

티볼리는 출시 첫해인 2015년 4만5021대나 팔리며 시장을 점령했다. 더불어 국내 B 세그먼트 SUV 시장은 전년도보다 160퍼센트나 오른 8만6000대 규모로 폭발적 성장세를 보였다. 게다가 티볼리의 등장은 경쟁자의 밥그릇을 빼앗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새로운 시장이 생기는 순기능으로 작용했다. 티볼리가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2015년에 경쟁모델인 트랙스와 QM3의 판매가 모두 늘어난 것이 이를 증명한다. 물론 소형 해치백 시장이 다소 위축됐지만 이는 모델 노후화, 세제 혜택이 큰 경차의 고급화에 따른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티볼리는 소형 SUV 시장을 본격화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5만대 수준이던 B 세그먼트 시장 규모를 11만대 이상으로 키우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솔직함이 이끈 성공 
거침없이 성장하던 B 세그먼트 SUV 시장은 지난해부터 주춤한 분위기다. 내수시장의 전반적인 불황 탓으로 돌리기엔 설명이 부족하다. 이참에 국산 B 세그먼트 SUV 시장의 내부 구조를 좀 더 꼼꼼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트랙스는 수출형에만 얹던 디젤 엔진을 내수 모델에도 얹기 시작했다. 가솔린 엔진이 그랬듯 동급에서 가장 강력한 디젤 엔진이었다. 탄탄한 기본기에 고성능 디젤 엔진까지 올렸으니 트랙스에도 기회가 올 줄 알았다. 그런데 판매는 늘지 않았고 여전히 전체 판매량의 65퍼센트 이상을 가솔린 모델이 차지하고 있다. 트랙스는 그나마 형편이 나았다. 진짜 문제는 QM3였다. SM6가 관심을 받는 사이 QM3 판매가 급감했다. 48개월 무이자 할부 등 공격적인 판촉활동을 펼치고 2017년형부터 가격을 100만원씩 내리는 등 가격 경쟁력 확보에 집중했지만 2016년 11월까지 판매량(1만3284대)은 전년 동기(2만1542대) 대비 60퍼센트 수준에 그쳤다. 트랙스 디젤과 QM3가 겪은 저조한 판매 현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시장의 이미지 타깃 그룹, 즉 젊고 역동적인 고객층이나 자기 확신이 강한 중장년 고객층만으로는 시장 전체를 설명할 수 없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프리미엄 이미지와 여성 대상 마케팅에 집중했던 QM3의 경우 오히려 장년층 고객 분포가 절반을 넘고 그 비율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이는 실속형 혹은 불황형 구매 고객이 증가하고 있다는 시장의 현실을 반영한다.
 

반면 실제 고객의 요구(저렴한 가격, 풍부한 옵션, 존재감 있는 디자인)를 솔직하게 반영한 티볼리는 성공을 이어갔다. 파워트레인의 빈약함은 동급 유일의 4WD 옵션으로 채웠다. 부족한 주행안정성과 승차감은 여성들의 지지를 얻은 과감한 디자인과 다양한 옵션으로 상쇄했다. 2015년 7월에는 출시 6개월 만에 디젤 엔진을 추가하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쌍용은 디젤 모델의 가격도 적절한 수준에서 잘 억제했다. 지난해 3월 선보인 티볼리 에어는 넉넉한 공간과 여전히 저렴한 가격, 다소 점잖아진 디자인 등으로 투싼·스포티지 1.7리터 디젤이 버티고 있는 C 세그먼트 SUV 시장의 엔트리 모델까지 정조준했다. 그리고 7월에 두 가지 무기가 더해졌다. 하나는 동급 유일의 능동적 주행안전장비 묶음인 스마트 드라이빙 패키지였다. 긴급제동 보조(AEBS), 차선유지 보조(LKAS), 스마트 하이빔(HBA), 전방추돌 경고(FCWS), 차선이탈 경고(LDWS) 등이 포함된 이 패키지의 가격은 불과 60만원이었다. 다른 모델이나 세그먼트에선 200만원대를 넘나드는 구성이었다. 서민이라고 해서 빈곤할 필요는 없다는 하이테크의 민주화를 티볼리가 구현한 셈이다. 두 번째 무기는 티볼리 에어 가솔린 모델이었다. 이 차엔 애초 디젤 엔진밖에 없었다. 차가 길고 무거워져 넉넉한 힘이 필요했고, 경쟁 상대로 삼은 투싼·스포티지의 주력이 1.7리터 디젤 엔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력성능은 약간 부족하더라도 부담없는 값에 넉넉한 공간을 원하는 고객이 있다는 시장 반응을 읽고 재빨리 가솔린 모델을 추가했다.

​경쟁 모델과 달리 티볼리 고객군은 실제 타깃 그룹에 가깝다. ‘생애 첫 SUV’라는 슬로건에 걸맞게 20~30대 고객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고, 특히 디자인에 호감을 느낀 여성 고객이 40퍼센트에 달할 정도다. 실용성을 추구한 티볼리 에어는 티볼리보다 연령대가 약간 높지만 여전히 여성 비율이 많다. 가솔린과 디젤 모델 판매가 거의 같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소위 불황형 고객으로 분류하는 장년층은 중대형 세단에서 소형 세단으로 바꾸면서 상실감을 느끼기보단 젊은 감각에 운전하기 편하고 공간도 충분히 넉넉한 소형 SUV를 선택해 심리적 만족감을 누리려 한다. 주행감각이 차분한 티볼리 가솔린 모델은 그들의 구매 패턴에 딱 맞아떨어진다. 디젤 모델의 경우 연비를 찾는 고객부터 쌍용 4WD의 성능을 기대하는 본격적인 SUV 고객까지를 폭넓게 상대한다. 즉 가솔린과 디젤 모델은 서로 다른 시장을 담당하고 있다. 위축되는 시장 환경에서도 티볼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계속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티볼리는 롱 보디 타입의 티볼리 에어(유럽 수출명  XLV)까지 더하면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하지만 약점도 분명하다. 논리적이지 못한 사용자 환경, 부족한 주행품질, 허약한 파워트레인 등이 그렇다. 

 

 

 

 

질적 성장으로 다시 도약할 때
이번 기사를 위해 타본 티볼리는 최상급 LX 트림에 4WD 시스템과 거의 모든 옵션이 추가돼 가격만 3000만원이 넘었다. 동급 유일의 스마트 드라이빙 패키지, 통풍 앞 시트와 열선 뒤 시트, HID 헤드램프, 주행과 스티어링 모드 등 장비 수준은 일일이 세기 힘들 정도다. 데뷔 3년 차쯤 되자 확실히 초기 모델보다 성숙해졌다. 특히 주행감각이 그렇다. 시승차는 4WD 시스템 덕에 앞뒤 무게배분이 개선되고 멀티링크 뒤 서스펜션까지 적용돼 거친 노면에서도 안정적이고 승차감도 좋다. 가장 마음에 든 건 시트였다. 부위별로 단단함이 다른 이경도(異硬度) 패드를 적용한 세미버킷 시트는 몸을 단단하면서도 편안하게 잡아주는 느낌이 매우 좋았다. 선진국 젊은이와 젊은 가족에 초점을 맞춰 앞좌석 중심으로 설계된 경쟁 모델들과 달리 티볼리는 뒤 시트도 충분히 크고 안락해 성인 4명이 타기에 손색없다. 가격 경쟁력과 동급 최고의 장비 수준이라는, 질보다 양으로 승부하는 자세는 여전하다. 

디자인도 쌍용차만의 디자인 DNA보다는 여러 곳에서 빌려온 듯한 요소가 모자이크처럼 데커레이션 덩어리를 이루고 있다. 실내는 너무 많은 기능을 담다 보니 스위치 넣을 빈자리 찾기에 급급했다는 느낌마저 든다. 배치에 논리가 전혀 없다. 파워스티어링 무게를 바꾸는 스위치는 운전대 오른쪽 인포테인먼트 아래에 있고 모드를 바꿀 때마다 계기반 중앙 화면에 그래픽으로 표시된다. 그런데 주행 모드 스위치는 운전대 왼쪽의 대시보드 스위치 패널에 있고 모드를 바꿀 때 계기 다이얼 안의 지시등이 바뀌는 정도로 간소하다. 두 기능의 조작과 안내를 달리해야 하는 이유, 즉 논리가 없다. 운전대 열선 버튼은 주행 모드 스위치와 같은 패널에 있다. 스티어링 관련 기능을 양옆으로 떨어뜨려 둘 이유가 있을까? 또 주행보조 장치 중 하나인 차선이탈 경고시스템 스위치는 인포테인먼트 아래에 따로 있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기능인 전방추돌 경고 기능은 계기반 중앙 화면에서 복잡한 메뉴를 찾아가야 비로소 만날 수 있다.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배치다. 

소형 SUV 시장은 이미 성숙 단계에 접어들었다. 시장 요구가 점차 세분화되고 섬세해지고 있다. 기아는 하이브리드 보조금을 등에 업고 윗급 모델 니로를 이 시장에 투입했다. 티볼리가 가졌던 값 대비 가치라는 우위를 단숨에 무너뜨릴 수 있는 정공법이다. 현대의 소형 SUV 역시 지금까지의 경쟁 모델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무기를 갖고 등장할 게 분명하다. 넋 놓고 있다가는 순식간에 시장의 주도권까지 잃을 수 있다. 티볼리가 세그먼트 대표 모델로 자리 잡고 쌍용의 대표작으로 우뚝 서려면 꼭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질감과 철학이다. 이전 세대 쌍용차에 비해 크게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티볼리의 질감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디자인과 기능에는 과함만 있을 뿐 철학이나 논리가 없다. 다음 세대의 티볼리는 반드시 질적 성장을 통해 한 단계 더 도약해야 한다. 그 목표는 ‘무쏘와 코란도의 쌍용’이 아니라 ‘티볼리의 쌍용’으로 삼는 게 마땅하겠다. 

 

트랙스가 상품성을 개선해 등장했고, QM3는 연일 특별판을 내놓고 있으며, 니로는 하이브리드 보조금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다. 새해엔 현대도 새로운 소형 SUV를 투입한다. 소형 SUV 시장은 이미 무르익었다. 질적 향상 없이는 티볼리의 미래도 불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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