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탄생 450주년을 시작으로, 2016년 타계 400주기까지 3년간 이어져온 셰익스피어 관련 행사가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지난 3년간, 매년을 그의 해라 불러도 무방할 만큼 수많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이제 두 편의 작품이 긴 여정의 대미를 장식한다. 장르는 다르나 공교롭게 한 원작에서 출발했다.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과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이 그것. <로미오와 줄리엣>은 <햄릿>과 더불어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가장 자주 공연되는 고전 중의 고전. 읽어본 이 없어도 모르는 이 없는 고전이라, 줄거리 소개는 한 줄 요약으로 갈무리하겠다. 주인공은 로미오와 줄리엣. 첫눈에 반해 사랑의 열병을 앓게 된 청춘 남녀가 원수 가문의 소생이라는 이유로 죽음을 선택하는 아름다운 비극. 흥미로운 사실은 셰익스피어가 작품을 쓴 17세기 엘리자베스 시대에는 여성의 무대 출연을 법으로 엄격히 금지했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줄리엣을 비롯한 극 중 여성 역할은 스무 살 미만의 앳된 미소년들이 주로 맡았다. 문제는 분장이었다. 당시 여성들 사이에서는 화이트 톤 화장이 유행했는데, 소년들은 여기 더해 더욱 짙은 분장을 해야 했다고. 그 짙은 분장 탓에 납중독에 걸려 사망하는 소년이 많았다고 한다. 다시 2016년으로 돌아와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부터 소개하겠다. 이번 연극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는 배우 문근영이다. 원조 국민 여동생 문근영이 이팔청춘 줄리엣으로 분한다. 어느덧 서른이 되었지만 그의 동안 외모 앞에서 나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다.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

오히려 포스터 속 문근영의 모습에서는 원조 줄리엣 올리비아 핫세의 기품마저 느껴질 정도. 그리고 그와 함께 입을 맞출 로미오 역에는 영화 <동주>에서 송몽규역을 맡았던 배우 박정민이 낙점되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든든한 후원자 로렌스 신부 역으로는 손병호가, 두 남녀의 메신저 역할을 하는 유모 역으로는 명품 조연 서이숙과 배해선이 출연한다. 이와 달리 국립오페라단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캐스팅보다 연출진을 주목해야 한다.

일단 작곡자는 프랑스 작곡가 샤를 구노로, 이 작품은 성악가들에게 고난도 작품으로 정평이 난 작품이다. 작품은 유명세에 비해 난이도 때문에 자주 공연되지 못했는데, 가장 최근에 공연된 건 2014년 국립오페라단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그 당시 연출을 맡은 이는 엘라이저 모신스키다. 모신스키는 베르디 영국 로열오페라단에서 전속 연출가로 활동한 오페라의 거장으로, 2014년에 이어 다시 이번 공연의 연출을 맡았다. 뮤지컬 <라이언 킹>의 무대와 의상 디자인을 담당한 디자이너 리처드 허드슨도 이번 프로덕션에 참여했다. 이 외에도 조명, 안무 등 2014년 창작진이 그대로 합류했다. 다만 지휘자와 출연진만 새롭게 재구성되었다. 지휘는 김덕기 서울대 교수, 줄리엣은 나탈리 만프리노와 박혜상, 로미오는 스테판 코스텔로와 김동원이 맡는다. 2014년 공연 당시 클래식 평론가 유형종이 “국립오페라단만이 감당할 수 있는 멋지고 국제적으로 통용될 만한 프로덕션을 (중략) 언제 다시 무대에 올릴지 기약이 없다는 점은 아쉽다”는 평을 남겼는데, 그 점에서는 이번 공연이 한을 풀어줄 듯하다.

심리학 용어 중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가 있다. 부모의 반대 등 주변 환경의 장애가 많을수록 두 사람 사이의 애정이 더 깊어지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공연도 마찬가지다. 주연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되겠지만, 둘의 사랑이 깊어질 수 있도록 극에 현실성과개연성을 부여하는 것은 조연들의 몫이다. 그들의 연기에 따라 청춘 남녀의 사랑은 치기 어린 불장난으로 전락할 수도, 영원불멸의 사랑으로 승화될 수도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만큼이나 다른 배우들의 연기가 중요한 이유다. 연극은 12월 9일부터 내년 1월 15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오페라는 12월 8일부터 11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다.

이 글을 쓴 김일송은 공연 칼럼니스트이다.

더네이버, 공연, 오페라, 라이프스타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