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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T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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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가고 싶다

자동차에서 벗어나면 다양한 풍경과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자동차 없이 떠나는 <모터 트렌드>의 여행. 첫 번째는 배다

2016.12.13

“후두두두둑. 후두두두두둑.”

시공간이 사라진 컴컴한 우주에 누워 있는 기분이었다. 바람은 내가 있는 작은 텐트를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밤새도록 흔들어댔다. 누군가 나의 정신 스위치를 켜고 끄는 걸 반복하는 것 같았다. 몇 번이나 잠을 설쳤을까? 어느덧 텐트 안으로 푸른 여명이 스며들었다. ‘그만 일어나서 일출이나 감상해야지’라고 생각한 순간 수상한 기척이 느껴졌다. ‘누구지? 이곳엔 우리 말고 아무도 없는데?’ 불안한 마음으로 텐트의 지퍼를 열자마자 무언가가 후다닥 도망갔다. 사슴이었다. 동물원에서 봤던 진짜 사슴이었다. 사슴은 내가 카메라를 들고 쫓아가자 껑충껑충 뛰어 언덕 아래 덤불 속으로 사라졌다. 덤불 안에는 몇 마리의 사슴이 더 있었다. 그들은 엉킨 나뭇가지 뒤에서 나를 응시하며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여긴 우리 구역이야.”

 

서해 바다 한가운데 고요히 떠 있는 굴업도에 다녀왔다. 행정구 역상으론 인천시 옹진군에 속해 있지만 여기에서 조금만 더 가면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중간계’처럼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 같았다. 굴업도는 인천 연안에서 남서쪽으로 약 90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면적은 2제곱킬로미터도 채 안 되는 아주 작은 섬으로 무인도 같은 유인도다. 현재 15명 정도의 주민이 간단한 어업과 민박으로 생활하고 있다. 굴업도(掘業島)의 뜻은 사람이 엎드려 일하는 모습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그런 설도 있고 또 다른 이야기도 있지요.” 우리에게 맛난 김치찌개를 끓여준 민박집 아주머니가 설명을 덧붙였다. “여기가 육지에서 꽤 멀어요. 그래서 고려 시대부터 이곳으로 귀양을 많이 보냈다고 합니다. 귀양 온 사람들이 여기에서 사는 까마귀 같은 새의 울음소리에 고향을 그리워하는 감정을 이입해 굴업도라는 이름을 지었다는 설도 전해져요.”

 

그래, 이곳이라면 지금까지 단 한 사람도 탈출에 성공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 앨커트래즈 감옥처럼 고립되기 적당하다. 섬은 속세를 떠나 심신을 가다듬기에 최적의 여행지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5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제주도를 제외하고 국내 지적공부에 등록된 섬은 총 3677개다. 이 중 87퍼센트가 무인도지만 사람이 사는 섬도 486개나 된다. 사승봉도 같은 무인도에선 도무지 서해라고 볼 수 없는 에메랄드빛 해변에서 캠핑을 즐길 수 있다. 주말마다 꽉 막힌 도로에 갇혀 있기보다 가끔은 탁 트인 바닷길을 따라 스스로 귀양길에 올라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배 여행은 제약된 시간에 맞춰 여행 경로와 일정을 짜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르지만 출항 이후엔 막힘이 없어 좋다. 육지를 떠나 속세와 동떨어진 세상으로 데려다주며 일탈과 자유를 안겨준다. 이따금 삶의 템포를 ‘시속’이 아닌 ‘노트’에 맞추면 바쁜 삶에 치여 정신없던 몸과 마음도 한결 여유로워질 거다.

 

진수성찬 민박집 아주머니가 맛있는 김치찌개를 끓여줬다. 캠핑에서 이 정도 밥은 진수성찬이다. 위 사진은 새벽에 만난 사슴의 모습이다.

 

‘한국의 갈라파고스’라고도 불리는 굴업도는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자연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민박 대신 캠핑을 하기로 했다. 자동차 없이 섬에서 하는 캠핑은 육지의 오토캠핑과 다르다. 온갖 장비를 담을 수 있는 자동차 트렁크나 루프 박스가 없기 때문에 ‘다운사이징’이 중요하다. 커다란 백팩 안에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을 꾹꾹 눌러 담아야 한다. 텐트, 침낭, 매트, 식기, 랜턴, 의자, 옷 그리고 물과 식료품까지. 숯불이 타오르는 그릴 위에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아이스박스에서 시원한 맥주를 꺼내 마시는 건 굉장한 사치다. 캠핑을 위해 백팩을 꾸리다 보면 인간이 단 하루를 안전하게 버티기 위해선 꽤 많은 것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는다.


군장 같은 백팩을 짊어지고 인천항 국제 연안 여객 터미널을 찾았다. 배표는 한국해운조합에서 운영하는 ‘가보고 싶은 섬’이란 웹사이트에서 예매했다. 비행기나 고속버스처럼 좌석까지 지정할 수 있어 편하다. 굴업도에 가기 위해선 배를 두 번 타야 한다. 기항지(배가 목적지로 가는 도중에 잠시 들르는 항구)는 덕적도다. 이 섬은 인천 연안에서 약 80킬로미터 떨어진 면적 36제곱킬로미터의 섬인데 기암괴석과 배 낚시로 유명한 곳이다. 덕적도까지는 쾌속선을 이용했다. 226톤의 코리아나호는 25노트로 꽤 빨리 달려 1시간 10분 만에 덕적도로 우리를 데려다줬다. 대부분의 쾌속선은 좌석이 지정돼 있고 속도가 높아 출항 이후엔 갑판으로 나갈 수 없다. 좌석벨트를 매고 자리에 조용히 앉아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파도와 섬을 바라보거나 매점에서 컵라면을 사 먹을 수 있을 뿐이다. 코리아나호는 덕적도와 거의 붙어 있는 소야도에 잠시 들렀다.


덕적도 진리항에 승객을 내려줬다. 그곳엔 나그네들을 위한 식당과 마트, 카페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굴업도엔 슈퍼마켓이 없어 이곳에서 물과 라면 등을 사 백팩의 몸집을 키웠다. 잠시 후 미지의 섬으로 안내해줄 나래호가 항구로 들어왔다. 속도가 15노트, 무게가 159톤의 이 여객선은 자동차도 실을 수 있다. 객실은 별도의 지정 좌석 없이 모두 방으로 돼 있는데 내가 탔을 땐 이미 가을 나들이로 설렌 아주머니들이 모두 자리를 차지하고 난 뒤였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부는 뒤쪽 갑판으로나가 무거운 백팩을 벗어 던져놓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매캐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올라와 코끝을 자극했다. 몇몇 승객이 새우 과자를 던져주자 갈매기 떼가 배의 꽁무니를 쫓았다. 공중에서 과자를 낚아채는 솜씨가 오랫동안 고소하고 짭짜름한 맛에 길들여 있는 듯 보였다. 덕적도와 굴업도는 13킬로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도착까지 3시간이 넘게 걸렸다. 바로 가지 않고 문갑도, 백아도, 울도, 지도 등 덕적군도에 있는 여러 섬을 들르기 때문이다. 꼬리뼈에 쥐가 나고 얼굴이 소금기에 절여질 때 즈음 저 멀리 굴업도가 보였다.

 

정겨운 풍경 파란색 철판 지붕인 민박집이 정겹다. 벽에 재미있는 ‘고씨 명언’이 적혀 있다(위). 필요한 것만 챙겼는데도 배낭이 꽉 찼다. 군대에서 군장을 짊어지고 행군한 이래 이런 배낭은 처음 멘다(아래). 이날 본 일몰은 이제껏 본 일몰 중 최고였다.

 

선착장엔 관광객을 태우러 나온 민박집 트럭과 경운기가 마중 나와 있었다. 캠핑을 택한 나는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걸 바라보며 좁은 아스팔트 포장길을 뚜벅뚜벅 걸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곳 주민들은 인심이 좋아 민박을 하지 않아도 그냥 차에 태워준다고. 마을이 모여 있는 해변가로 가는 길은 그리 길지 않았다. 길 위엔 각종 곤충의 ‘로드킬’ 자국이 보였는데 잠시 후 그 이유를 알수 있었다. 손바닥 절반 크기의 통통한 메뚜기가 길 한복판에 떡하니 서 있는 게 아닌가(정말 내가 본 메뚜기 중에 가장 컸다)! 그 뒤를 이어 비슷한 크기의 방아깨비와 여치들이 길 위를 돌아다녔다. 민박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굴업도는 식당이 없고 민박집에서 식사할 수 있다)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언덕에 올라 텐트를 쳤다. 먼저 온 누군가가 캠핑하기 좋게 땅을 다져놨다. 하룻밤을 무사히 보낼 준비를 마치자 어느새 해가 눈높이로 내려와 하루의 마지막 빛을 내기 시작했다. 이제껏 본 일몰 중 최고였다. 해가 사라진 자리는 곧바로 달이 갈음했다. 양갱처럼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검은 바다 표면 위에 달빛이 환하게 내려앉아 고립된 여행의 불안함을 덜어줬다.


다음 날 아침, 사슴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짐과 쓰레기를 정리한 후 민박집이 있는 마을로 내려왔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어제같이 배를 타고 왔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밤새 춥지 않았느냐, 사진은 많이 찍었느냐, 밥은 먹었느냐 등 따뜻한 말이 오갔다. 그중 한 명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보여주며 말을 걸었다. “여기 이 사람 그쪽 맞지요? 어제 산책하러 갔다가 풍경이 너무 멋있어서 찍었어요. 안 그래도 다시 만나면 드리고 싶었는데 잘됐네요.” 사진 속엔 광활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열심히 텐트를 치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감사의 인사를 건네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덕적도로 향하는 배가 들어왔다. 우리는 모두 한배에 다시 올라타 육지로 향했다.

 

이런 배 어때요?

1 페리 오직 이동하는 것에 목적을 둔 배다. 승객만 태운 페리는 20노트 전후의 속도로 배 중에서는 빠르게 움직이는 편이다. 자동차 등 화물을 같이 실을 수 있는 배를 ‘카페리’라고도 한다. 예를 들어 덕적도를 오가는 코리아나호는 페리, 굴업도로 향하는 나래호는 카페리에 속한다.

2 요트 ‘추적선’이란 뜻의 네덜란드어 ‘야흐트’에서 유래한 요트는 17세기부터 등장했다. 경주를 펼치는 스포츠 종목이기도 하지만 항해 자체를 즐기는 투어용으로 많이 사용된다. 과거엔 럭셔리 레포츠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서울과 김포, 부산 등에서 비싸지 않은 값에 누구나 타볼 수 있다. 크게 모터를 사용하는 파워 요트와 돛을 달아 바람의 힘으로 이동하는 세일링 요트로 나뉜다.

3 크루즈 전 세계 바다를 순항하는 리조트다. 이동 중엔 배 안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해 놀 수 있다. 기항지에 내리면 그 주변을 둘러보고 해가 질 때 즈음 다시 배로 돌아와 쉰다. 크루즈 안에만 쉬엄쉬엄 있어도 훌륭한 여행이 된다. 요즘은 여행사에서 판매하는 크루즈 여행 상품도 많다.

4 수상택시 한강을 달리는 수상택시가 최근 부활했다. 수상택시는 2007년 출퇴근과 관광 목적으로 시작했지만 이용률이 낮고 운영업체인 청해진해운이 세월호 참사 이후 손을 놓았다. 이후 서울시가 한강 관광 코스를 새롭게 정비해 투어 사업에 나섰다. 잠실과 여의도를 오가는 일반 편도 요금은 5000원이다.

 

 

모터트렌드, 자동차, 배여행, 섬,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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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여행,서해바다,굴업도,한국의 갈라파고스,코리아나호

CREDIT Editor 조두현 Photo 정택 출처 MOTOR TR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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