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두두두두둥.” 낯선 배기음이 들리자 그가 왔음을 직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료로 보며 동경해 마지않았던 진짜 BMW 2002였다. BMW의 날렵하고 경쾌한 운동 DNA는 2002와 1602 등 02 시리즈부터 본격화됐다. 이 차는 지금의 3시리즈와 2시리즈의 조상이라고 볼 수 있다. 베이지색이 연하게 배어 나오는 BMW 2002tii의 오너 김윤동 씨를 만났다.

시작은 집착이었다. 김윤동 씨는 2002에서 전반적으로 풍기는 클래식한 이미지에 끌렸다. 첫눈에 반했고 어떻게든 가지고 싶었다. 그러던 중 정말 운 좋게 지인이 국내에 들여온 걸 이어받았다. 하지만 차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본인만의 2002로 부활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이 차는 한국에 들어오기 전 레이스 전용으로 튜닝돼 있었는데 모두 순정으로 돌렸다. 오리지널 컬러를 찾아 도장을 새로 하고 휠도 바꾸었다. 안전벨트는 영국에서 수입해 새로 달았다. 카뷰레터도 두 개를 달았다가 한 개만 달기를 반복하며 출력의 적정선을 탐색했다. 어디에서 구했는지 그가 아주 오래된 매킨토시 카 오디오를 보여주며 말했다. “아직도 손봐야 할 게 많아요. 다음은 오디오입니다.” 

그는 2002를 신줏단지 모시듯 바라만 보지 않는다. 자동차는 달리라고 있는 게 아니던가? 당당하게 일상에서 데일리 카로 타고 다닌다. 2016년에 1975년형 차를 타는 기분은 어떤 걸까? “유일무이의 존재입니다. 도로에 돌아다닐 수 있는 2002는 국내에 이 차 한 대뿐이에요. 요즘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려서 어디에 가든 제 위치가 탄로 나지요. 해시태그라도 걸게 되면 제 일상의 이동 경로가 공개되는 겁니다.” 마치 모터쇼에라도 온 듯 아무렇지 않게 차에 기대어 같이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있다. 그럴 때마다 김윤동 씨의 안타까움은 더해간다. 남의 시선을 즐기는 편이 아니라 짙게 틴팅도 해봤지만 지금은 모든 걸 수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사람들이 쏟아내는 관심을 받아들이는 건 유명세를 치르는 것과 같다.
 

2011년 MBC <무한도전> ‘스피드 특집’에 마이크로버스로 소개된 폭스바겐 타입 2.

2002뿐만이 아니다. 김윤동 씨는 자타공인 클래식카 애호가다. 2002 이외에도 마이크로버스라고 불리는 폭스바겐 타입 2 두 대와 에리바 트레일러, 오스틴 미니밴이 더 있다. 그 전엔 로버 미니를 10년 정도 끌었다. 어려서부터 자동차를 좋아했지만 그의 안테나는 유독 클래식카에 주파수를 맞추고 있었다. 10년 전 미니가 국내에 공식 출범해 신형 미니 쿠퍼를 사라고 손짓했지만 그는 어떻게든 구형 로버 미니를 갖기 위해 애썼다. 당시 타고 있던 EF 쏘나타와 두 냥짜리 금목걸이도 팔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급기야 유학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된 친구의 달러까지 빌려 꿈에 그리던 로버 미니를 샀다. 그에게 로버 미니는 클래식카의 교과서가 돼주었다.

클래식카를 제대로 만진 건 마이크로버스를 복원하면서다. 외국에서 상태가 엉망인 타입 2를 들여와 엔진을 제외하고 모든 걸 새롭게 만들었다. 처음엔 차 안에서 콘크리트와 나뭇조각, 심지어 총알까지 나왔다. 모든 부품을 독일과 미국 등 세계 각지에서 주문했다. 부품 가격만 2000만원 정도가 들었다. 부담이 컸지만 끝은 봐야 했다. 2011년 만족할 만큼 복원이 끝났을 때 MBC <무한도전>에서 마이크로버스 섭외 연락이 왔다. 최근 500회 특집에서도 재조명된 ‘스피드’ 특집이었다.

그는 클래식카가 왜 좋은 걸까? “디자인입니다. 단순히 오래됐다고 모두 클래식카라고 부를 순 없어요. 오랫동안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으며 클래식한 유산으로 남은 디자인이 있어요. 전 그 모습이 너무 좋습니다.” 김윤동 씨의 꿈은 작게라도 클래식카 여러 대를 모아놓은 카페를 운영하면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곧 보유 중인 클래식카들을 한 대씩 천천히 처분할 계획이라고 한다. “저도 두 아이의 아빠인 만큼 이제 현실도 고려해야지요. 너무 내 욕심만 차린 것 같아서 가족에게 미안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도 <무한도전>에 나왔던 마이크로버스는 절대 안 팔 겁니다.” 비록 지금 손에 쥔 차들을 몇 대 놓을지라도 그의 눈빛과 미소는 편안해 보였다. 마치 속편을 예고하며 끝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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