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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부엌

전 세계 모든 나라의 음식을 만들어 먹어보겠다! 이 무모한 사샤 마틴의 도전이 <부엌은 내게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에 담겼다. 자그마치 195개국이다.

2016.11.16

 

수다가 많은 식탁, 현기증 나게 하는 주방

195개국의 요리 195가지를 만나러 갔다. 요리사는 주방에서 고개를 내민 채,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녀가 거쳐온 시끌벅적한 부엌은 참으로 남달랐고, 그 자체로 근사한 극장이었다. 그 이야기들은 그녀의 요리에 중요한 재료가 되었을 터다. 그러나 나의 혀와 코와 침샘이 안달 났음을 부정하기도 어렵다. 주방에선 쉴 틈 없이 코를 벌름거리게 하는 온갖 향기가 스며 나오는데, 수다쟁이 요리사의 이야기를 가만 듣고 있기란 쉽지 않았다. 이탈리아에서 넘어온 피나 외고모할머니는 전형적인 제노바식 조합 - 토마토소스, 감자, 스파게티를 큼직한 냄비에 넣고 끓여서 내놓았다. 104세까지 산 알프레드의 장수 요리도 흥미로웠다. 열댓 가지에 달하는 스위트 이탤리언 소시지를 넣고, 말린 포르치니 버섯으로 감칠맛을 낸 미트 소스라니. 정통 이탈리아 요리에는 마늘과 양파 중 하나만 쓰지, 절대 둘을 같이 쓰지 않는다는 것도 배웠다. 하나 저자처럼 나도 둘 다 넣을 것이다. 가족과 헤어져 파리로 온 소녀가 바게트 하나를 통째로 뜯어 먹으며 큰길을 걸어가는 모습에서 나의 체험이 겹치기도 했다. 20세기의 어느 날 나는 잘츠부르크에서 숙소를 구하지 못해 무작정 야간열차에 올라탔다가 예정에 없던 스트라스부르에 내렸다. 그때 어느 빵집 앞에 줄지은 사람들에 이끌려 바게트 하나를 샀다. 내가 이걸 먹으러 여기에 왔구나, 싶었다. 소녀가 나와 다른 점은 그 재료까지 속속들이 알아냈다는 데 있다. 기다림 끝에 본격적인 요리를 만난다. 슬픔을 잊기 위해 요리 동아리를 만들어 파스타 반죽에 도전한 소녀가 요리 학교에서 공부하고 새로운 가족을 꾸린다. 아이가 태어나자 그녀는 무턱대고 외친다. “전 세계를 요리할 테야! 전 세계 모든 나라의 레시피를! 한 주에 하나씩. 블로그를 시작해야겠어!” 아프가니스탄의 ‘카벨리 팔라우’부터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다민족 국가에 사는 저자도 재료 구입에 어려움을 겪으니, 요리들을 하나씩 따라 해보겠다는 희망은 재빨리 접어야 했다. 그래도 195개국이나 되니, 우리와 가까운 10개 정도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살짝 쪼갠 카르다몸 10개’만 구하면 ‘마살라 차이’는 만들 수 있겠다. 그러면 그녀가 차려내는 거대한 세계의 식탁 구석 자리에 앉아, 그녀의 수다를 계속 들을 수 있겠지.

이 글을 쓴 이명석은 문화 칼럼니스트이다. 

 

인생을 꿰는 밥 한 그릇의 온기

195개국의 요리 195가지를 눈으로라도 맛볼 수 있으려나 싶어 첫 페이지를 넘겼을 때 내가 만난 것은 가난한 엄마가 가난한 아이 둘과 마주 앉은 가난한 부엌이었다. 아마 저자도, 가난한 부엌 풍경으로 첫 장을 열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원래 이런 책을 쓸 생각이 아니었다. 오클라호마 주 털사의 조그만 부엌에서 전 세계 요리를 하며 보낸 4년간의 이야기를 발랄하게 소개하는 책을 쓸 생각이었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럴 수 없었음을 고백한 뒤 그녀는 단숨에 자신의 험난한 인생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요리 이야기 보러 왔다가 주방장에게 붙잡혀 신세 한탄을 들은 꼴이지만 매몰차게 뿌리치지 못한 까닭은, 아니 오히려 눈물까지 글썽이며 이야기에 빠져든 이유는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가 나와 아주 먼 듯하면서도 가까운 느낌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요리 한 그릇을 앞에 내놓은 듯 훈기와 냄새를 실감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 둘을 지키기 위한 가난하지만 당찬 미혼모의 몸부림, 제법 잘 갖춰진 듯한 아동 보호 프로그램의 빈틈 속에서 이리저리 밀려다니면서도 엄마의 부엌으로 돌아와 행복을 느끼는 아이들, 부유한 위탁 부모 슬하에서 느끼는 외로움, 일탈, 회귀, 관계 회복을 위한 노력. 결국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겨워했던 소녀는 남편과 아이로 이루어진 작은 가정을 꾸리고, 그 안에 자신의 요리를 만두소를 넣듯 차곡차곡 채운다. 불안한 행복을 끝내 자기 것으로 소화하기 위해. 레시피대로만 한다면 늘 그 맛을 재생해주는 정직한 요리의 힘에 기대기 위해. 책을 읽고 나서 사랑하는 동거묘들을 위해 한 그릇의 식사를 만들었다. 닭고기를 잘게 자르고 뜨거운 물에 담가 겉만 살짝 익힌 뒤,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캔을 따서 육수를 따라 낸 닭고기 위에 붓고 잘 비볐다. 고양이들은 때 아닌 식사를 의아해하는 기색도 없이 기쁘게 먹는다. 가난한 엄마가 몇 가지 없는 식재료로 아이들에게 흥미로운 음식을 만들어주듯 고양이에게 밥을 만들어주면서, 결국 인생은 한 그릇의 밥에서 또 한 그릇의 밥으로 가는 과정에 지나지 않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우리 모두가 둘러앉은 식탁이 몇 번이나 차려져야 인생의 끝을 만닐까. 중요한 것은 횟수가 아니라 지금 내 앞에 차려진 밥 한 그릇의 온기일 것이다.

이 글을 쓴 박사는 북 칼럼니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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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설미현 Photo 홍지은 출처 THE 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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