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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위의 건축가

집 하나로 통의동 골목의 표정을 바꾼 어느 건축가의 이야기.

2016.11.16

 

종로구 통의동의 좁은 골목 안, 길을 밝히는 새로운 건물 한 채가 조용히 들어섰다. 길에서 몇 발짝만 걸어 들어가면 닿을 수 있는 거리지만, 골목 밖에서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곳. 머리를 비쭉 들이밀고 바라봐야 건물의 옆모습이 겨우 눈에 들어올 정도로 수줍게 숨어 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존재감을 지닌 3층 건물은 수공예 생활 예술 브랜드 ‘빈 컬렉션’의 쇼룸이다. 폭이 2m 남짓 되는 골목길을 걷다가 누군가는 이곳을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치기도 하고, 누군가는 신기한 모양새에 시선을 뺏겨 문을 열고 들어가기도 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건물 옆 마당에 잠시 서서 꽃과 나무를 감상하기도 한다. 106.17m2(약 32평) 규모의 빈 컬렉션이 바꾸어놓은 골목의 풍경이다. 건물을 완성한 이는 건축가 조성룡이다. 그런데 그는 건물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건축가가 먼저 부각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가 처음 이 인터뷰를 꺼렸던 이유다.

 

선유도공원, 아시안선수촌 아파트, 어린이대공원의 꿈마루, 이응노 생가 기념관, 의재미술관…. 건축가 조성룡을 설명할 때 늘 대표작으로 따라붙는 건축물이다. 대표작이 곧 건축가의 얼굴이라고 한다면 그가 통의동의 작은 집을 짓게 된 연유에 대해 물음표가 붙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언론이 떠들기 좋은 취재 거리가 되기도 한다. “소설을 한번 써볼까요? ‘웬만한 건축은 다 해본 건축가 조성룡이 나이 70이 넘어서 이제 조그만 집을 짓기 시작했다.’ 그럴싸하죠? 그런데 이렇게 비쳐지면 아주 이상해지는 거예요. 저는 단지 이 도시의 중요한 부분을 어떻게 해석할지 시도해본 거예요. 규모의 문제가 아니고요. 그런 일들이 공사비나 면적에 관계없이 제대로 자리 잡도록 하는 게 최종 목표예요.”

 

조성룡은 인터뷰 서두에 최근 언론이 건축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근사하고 예쁜 집을 대대적으로 다루며 그 외형에 대해서만 말하는 현실. 정작 그 집이 왜 그렇게 지어졌고, 어떤 과정을 거쳐 지어졌는지에 대한 진짜 이야기는 빠져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통의동 집의 껍데기보다는 그 속에 담긴 것에 대한 얘기다.

 

 

 

1 주변의 건물과 어우러지며 또 하나의 풍경을 만드는 빈 컬렉션. 2 길을 걷고 골목을 누비는 일을 좋아하는 조성룡에게 컨버스는 좋은 친구다.

 

 

 

 자연이든 공간이든 건축물이든, 그는 늘 그저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1 제품이 가지런히 놓인 쇼룸의 2층. 2 다락방 위로 난 창에도 빈 컬렉션의 문양을 입혔다. 3 오방색이 쉴 새 없이 바뀌어 돌아가는 간판.

 

풍경 속의 건축, 풍경을 바라보는 건축
빈 컬렉션의 3층 툇마루에 앉아 집을 지은 어른과 이야기를 나눴다. 얼마 전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멘디니가 내한해 빈 컬렉션을 방문했을 때도 이곳에 앉았단다. 알레산드로 멘디니는 빈 컬렉션과 협업한 작품이 있어 인연이 있던 터다. “그 친구는 그동안 아주 잘 갖춰진 건물만 보아서 한국의 ‘보통 건축’을 볼 일이 없었을 거예요. 보통 건축 중에서 ‘좋은 건축’ 말이에요. 이곳에 와서 계속 좋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1시간으로 예정된 행사였는데 이 자리에서 4시간쯤 머물다 갔어요. 그렇게 할 수 있는 게 바로 공간의 힘이죠.”
툇마루에 앉으면 저 멀리 인왕산이 시야에 그림처럼 걸린다. 1, 2층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여기선 인왕산이 가장 중요한 시각적 부분이었어요. 인왕산을 어떻게 이 집과 연결시키는가가 숙제였죠. 저쪽은 바깥이지만 여기서 바라보는 순간 결국 하나의 공간으로 연결되는 거예요. 건너편에 보이는 좀 이상한 콘크리트 벽과 산, 인왕산이 같이 보이기 때문에 경계를 허물 수 있게 되는 거죠.”
건물이 좁은 골목 안에서 하나의 풍경이 된 것처럼, 집 안에서도 어우러짐의 풍경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건물을 올릴 때도 인테리어와 익스테리어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함께 구상해 지었다. 공간을 올리면서 인왕산을 더 자연스러운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게 설계를 수정했다. 그 모든 과정에 인위적이거나 억지스러움은 없었다.

 

 

 

 3층의 툇마루에 앉으면 인왕산이 시야에 그림처럼 걸린다.

 

마당을 열다
‘건축가 조성룡 선생이 뜻깊고 자연스레 설계했습니다. 좁은 골목으로 마당을 열고 고향의 감나무 한 그루를 심습니다. 감이 곱게 익도록 빈의 새로운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빈 컬렉션의 유리창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마당을 ‘열었다’는 표현에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법적으로 주차장을 꼭 두어야 하는데, 처음부터 주차 공간은 배제하기로 했어요. 대신 화단에 나무를 심고 이웃들에게 내줄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죠. 그렇게 해서 울타리 쳐진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내어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겼지요. 담을 허물어서 공간을 여니 좁은 골목이 서로 배려하고 공유하는 공간이 되었어요.”
이곳은 개인 건축물이지만 건축주와 긴밀한 상의를 통해 마당을 열고 공공의 영역을 만들었다. 단지 건물 그 자체가 아니라 건물과 건물 사이, 공간과 공간 사이를 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건축가. 사적인 집을 지을 때도 이웃을 배려하고 이웃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축가. 그가 지은 통의동 집에는 서울의 골목에 집이 어떻게 들어서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지혜가 담겨 있다.
“골목의 모습이 가장 중요해요. 좁은 골목에 들어서서 이 집 앞에 서면 사람들이 어떤 느낌을 받을까를 고민하고, 그 인상이 편안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새 집이지만 사람들이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편안하게 슥 지나갈 수 있어야 하고요.”

 

 

 

1 싱크대 옆의 흰색 문을 열면 나타나는 화장실을 들여다보는 건축가. 조성룡은 “어떤 집에 가든 화장실을 꼭 보라”고 조언한다.
2 화장실 안에서 보내는 시간마저도 온전히 자연의 빛을  느낄 수 있다.

 

그저 느껴지는 대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햇살이 깊숙이 들어왔다. 곳곳으로 난 창을 통해 빛이 들어오면서 따뜻하고 환한 분위기가 내내 감돌았다. 빛이 반사되면서 빈 컬렉션의 공예품에 따스한 온기가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빈 컬렉션의 쇼룸에서 다루는 게 일반 예술 작품은 아니잖아요. 생활 공예품이니까 예술품처럼 특별하게 보일 필요가 없었어요. 예로부터 집에서 쓰던 물건을 보여주는 곳이니 집은 아니지만 집과 유사하게 만들려고 한 거죠. 창문을 없애고 인공 조명을 쓰면 자칫 갤러리처럼 보일 수 있으니까요.”
쇼룸 곳곳을 둘러보면 작품들은 원래부터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놓여 있다. 건축주인 빈 컬렉션 대표, 그리고 공간 기획과 시각적 표현을 담당한 수류산방과의 긴밀한 협업 덕분이리라. 근사한 건물을 짓고 거기에 물건을 채워 넣는 식이 아니라, 건물이 올라가는 순간에도 어떤 물건이 어떻게 놓일지에 대한 그림이 그려져야만 했다. 그런 까닭에 건축가는 빈 컬렉션의 작업장에 가서 수시로 작업 현장과 작업물을 들여다봤다. 자연에서 얻은 좋은 재료를 가지고 전부 손으로 정성스럽게 물건을 만드는 빈 컬렉션은 공간을 창조하는 데 모티프가 됐다. 쇼룸이지만 이불 바느질 작업을 위해 3층에 마루 공간을 둔 것도 그 때문이다. 작은 요소 하나하나에 집착하기보다는 공간에서 느껴지는 느낌을 중요시하는 조성룡은 인터뷰 중 여러 번 “그저 느끼면 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길도, 자연도, 건축물도.
마당에 감나무를 심자는 건축가의 제안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건축주는 미소를 띠었다. 어린 시절 기르던 감나무의 추억 때문에. 나무 주위에는 허브를 무성히 심었고, 그 가운데서는 벌써 드문드문 꽃도 피어났다. 스치는 바람에 잎들이 서로 부딪치며 풍기는 향기는 행인을 머물게 한다. 또 하나의 건축이 된 셈이다. 건축가가 의도했든 아니든, 이 집은 그렇게 나이를 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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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전희란 Photo 표기식, 김재경 출처 THE 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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