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EAMER 문지영(<노블레스> 피처 에디터)
GARAGE CONCEPT 초대형 요트
자동차를 꼭 차고에 둘 필요는 없다. 더 근사하고 멋진 삶을 영위하고자 할 때 우린 자동차 이상의 것을 꿈꾼다. 큰 요트에 드림카석 대를 싣고 대양을 가르는 럭셔리 노매드는 어떨까? 어차피 꿈인데 크게 질러보자.
DREAM CARS 아우디 R8, 롤스로이스 레이스, 벤츠 C 클래스 쿠페, 

20대엔 가슴이 답답할 때마다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한강변을 뛰었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처럼 쾌속 질주하다 보면 꽉 막힌 속이 뚫리곤 했다. 30대에 들어선 머릿속이 복잡해지면 차를 몰고 강변북로를 내달린다. 그리고 두무개 다리를 통과할 때마다 이 차가 아우디 R8이면 좋겠다는 기분 좋은 상상에 빠진다. 미래에서 온 것처럼 구조적인 디자인의 R8을 타고 달리면 아치형 다리가 일상을 탈출하는 통로처럼 느껴질 것 같아서다. 당연히 멈출 수 없을 것처럼 스피드를 올려야 한다. 신형 R8만 해도 5.2리터 V10 엔진을 탑재해 최고출력 610마력, 최대토크 57.1kg·m의 강력한 파워를 뿜어낸다. 최고속도는 시속 330킬로미터, 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은 가뿐하게 3.2초를 찍으니 앙칼진 배기음을 느끼며 조금만 밟아도 아드레날린이 솟구칠 테다. 이보다 달리기 성능이 뛰어난 슈퍼카는 얼마든지 많다. 하지만 수치를 비교하며 머리 복잡하게 따질 필요 없다. R8이어야 하는 이유 중 8할이 바로 디자인이다. 넓고 낮은 차체, 풀 LED 헤드램프와 싱글 프레임 라디에이터 그릴 등은 다분히 미래지향적인데, 우아하게 흐르는 곡선의 루프 디자인 덕분에 과도하게 사치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단박에 눈에 띄는 외모지만 느끼하지 않고 매끈하게 잘빠진 남자 같은 느낌. 외모지상주의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종잡을 수 없는 여자처럼 스포티한 감성을 표출하다가, 어떤 날은 시크한 슈트를 입고 긴 머리카락을 날리며 우아하게 차를 몰고 싶다. 이때 귀족적인 기품이 느껴지되 나이 들어 보이지 않고, 잔잔하게 달리다 속도를 높여도 품위를 잃지 않으면 좋겠다. 그 조건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차가 바로 롤스로이스 레이스다. 대단한 차이긴 하지만 감히 위시리스트에 올릴 생각도 못한 모델. 수억원대의 몸값도 그렇지만 나 같은 평범한 여자보다 젊은 나이에 성공한 CEO에게 더 어울릴 법한 차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해 레이스를 타고 서킷을 도는 호사스러운 경험을 한 이후 진짜 ‘꿈의 차’로 마음에 품었다. 다소 보수적인 이미지의 롤스로이스에 젊은 감각을 입힌 쿠페. 이 차의 진가는 좌석에 앉았을 때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안락한 라운지 같은 분위기의 실내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요하다. 작정하고 급가속을 해봐도, 운전대를 이리저리 꺾어봐도 속도감을 거의 느낄 수 없다. 그렇다고 지루한 건 아니다. 2톤이 넘는 우람한 무게에도 시속 100킬로미터까지 4.6초에 끊는 스피드를 숨기고 있다. 가속페달을 힘껏 밟아보니 여유를 간직한 채 빠른 몸놀림으로 트랙 위를 신나게 움직였다. 하지만 이 차를 타고 전력 질주를 할 필요가 있을까? 그저 마법의 양탄자를 탄 듯 부드럽게 도로 위를 미끄러지다 목적지에 도달하면 수어사이드 도어를 열고 우아하게 내리면 된다. 드라마 속 여주인공처럼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정신 차리고 현실로 돌아와 새 차로 바꾸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나의 진짜 위시리스트를 훑어보았다. 본래 벤츠 C 클래스를 점찍어두고 있었으나 최근 시승한 C 200 쿠페가 자꾸 아른거린다. 무엇보다 C 클래스 세단보다 예쁘다. S 클래스 쿠페를 닮은 스포티한 후면은 흠잡을 데 없는 예쁜 외모에 완벽한 뒤태를 지닌 여자처럼 절로 뒤돌아보게 한다. 최고출력 184마력, 최대토크 30.6kg·m가 빚어내는 주행 성능이 아쉽다면 아쉬운 부분. 하지만 편안하게 일상 주행이 가능하고, 과도하게 날뛰지 않아 여자가 운전해도 통제 가능한 달리기 실력이라 생각하면 타협이 가능하다. 다만 지금 타기에 제격인데 이 차를 사고 나면 왠지 외로운 싱글 라이프가 계속될까 봐 조심스럽다. 

셋 다 목적은 다르지만 고르고 보니 묘하게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남자를 볼 때도 큰 덩치에 마초적인 매력을 지닌 사람보다 늘씬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선호하는데, 차를 보는 기준도 비슷한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