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표 중형세단인 쏘나타가 30년 가까이 지켜온 ‘대표’ 자리를 내줄 위기에 처했다. 1988년 6월 등장 이후 한때 중형시장 점유율 80퍼센트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을 만큼 쏘나타는 한국을 대표하는 제품으로 군림해왔다. 그 사이 여러 경쟁차가 도전장을 냈지만 높은 장벽을 뛰어넘기란 불가능했고, 쏘나타는 단단한 바위처럼 터줏대감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불가능하리라 여겼던 쏘나타의 아성이 점차 무너지고 있다. 왜 그럴까?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통계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쏘나타 판매는 5만1406대다. 2위인 르노삼성 SM5 및 SM6 판매대수(3만9305대)보다 1만2000대가량 많으니 여전히 굳건하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다르다. 쏘나타 전체 판매의 46.9퍼센트인 2만4000대 정도가 LPG다. 택시 및 렌터카, 장애인 등이 구매했다. 이런 조건의 구매를 제외한 일반 자가용 시장에선 이미 르노삼성에게 중형차 1위 자리를 내줬다. LPG를 제외하면 르노삼성은 SM5와 SM6를 무려 3만1465대 판매해 쏘나타의 2만7287대를 가볍게 넘겼다. 드러내지 않지만 르노삼성이 내부적으로 샴페인을 터뜨리는 배경이다. 

과거 쏘나타는 한마디로 ‘권력’ 그 자체였다. 실제로 지난 2005년 ‘현대차의 질주가 무섭다’는 표현이 쏟아질 때 주인공은 쏘나타였다. 당시 국내 소비자 만족도 조사기관인 마케팅 인사이트가 소비자 설문을 했는데, 가장 사고 싶어 하는 차가 쏘나타(NF)였고, 같은 해 국내에서 판매한 현대차 가운데 35퍼센트가 쏘나타였다. 이후에도 쏘나타의 견고한 질주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랬던 쏘나타가 실질적인 1위 자리를 르노삼성에게 내주었으니 현대차로선 충격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이런 현상은 왜 일어났을까? 요즘 현대차 사람들을 만나면 이구동성으로 ‘경쟁사가 무섭게 치고 온다’는 시각을 숨기지 않는다. 르노삼성을 두고 하는 말일 게다. 하지만 경쟁사로만 핑계를 돌리기엔 완벽한 해석이 되지 않는다. 현대차 또한 지속적으로 제품 및 상품 개선을 위해 노력해왔기 때문이다. 더불어 시장이 줄었다는 것도 맞지 않는다. 감소 폭으로 볼 때 쏘나타만 가파르게 떨어져서다. 

그래서 정확하게는 대중화에 따른 쏘나타 브랜드의 노후화를 꼽지 않을 수 없다. 과거 쏘나타는 중산층의 상징이었고 어디서나 당당했다. 1988년 등장 때부터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가 있으면 쏘나타를 타야 한다는 생각이 적지 않았다. 쏘나타는 중형 승용차의 교과서가 됐고, 이 시기를 거친 소비자들은 쏘나타를 통해 ‘중형차의 맛’을 알게 됐다. 그리고 현대차는 전통이라는 가치 아래 차명을 그대로 유지하되 코드 네임으로만 세대를 분류해 지금에 이르렀다. 한마디로 ‘맛’에 대한 집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다 대한민국 사회의 인구 고령화가 오히려 쏘나타의 발목을 잡는다는 시선이 등장했다. 사회가 경제적으로 급성장할 때 중산층의 상징이었던 쏘나타가 이제는 너무나 평범한, 대중적인 제품으로 인식돼 오히려 차별화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택시의 대부분이 쏘나타이고, 렌터카의 대부분이 쏘나타다. 기본적으로 제품의 브랜드 지위가 오히려 낮아지며 자가용 구매층의 외면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중형 구매층인 20~39세 인구가 줄어드는 것도 하락 속도를 부추겼다. 통계청에 따르면 쏘나타가 한창 잘나가던 1990년대 젊은 인구의 비중은 37.7퍼센트였지만 2010년 이후 30퍼센트로 줄었다. 장년으로 넘어가는 인구는 많지만 20대로 유입되는 사람이 줄어 나타난 현상이다. 그런데 새로 진입하는 젊은 소비자에게 쏘나타는 ‘아버지 세대가 좋아했던 차’라는 인식이 너무 강하다. 그래서 쏘나타를 사면 고리타분한 사람처럼 보인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현대차는 이런 흐름에 대한 고민을 했을까? 물론이다. LF 쏘나타를 내놓기 전 현대차 내부에선 ‘쏘나타’ 차명 변경을 두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쏘나타’는 수출명으로 유지하되 소비자에게 젊은 이미지로 가기 위해 국내는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동차 회사가 제품명을 지속하며 전통적 가치를 쌓아가는 것에 비춰 내수 차명 변경은 오히려 쏘나타의 제품 가치를 떨어트릴 수 있다는 판단이 힘을 얻었다. 결국 당시 현대차의 쏘나타 유지는 돈독하던 중형차 아성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경쟁 차종인 SM6, 말리부와 비교해 제품이 고루하다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어서다. 

르노삼성이 SM5 후속인 SM6를 내놓을 때 차명을 바꾼 것은 ‘SM5’가 실패했다고 본 것이 아니라 새로움에 익숙한 젊은 소비층을 겨냥한 전략적 판단이었다. 스마트 기기에 익숙하고, SNS로 일상을 주고받는 젊은 소비층에게 ‘새로움’은 곧 ‘설렘’이고, 그래야 전혀 다른 분위기로 중형의 주도권을 가져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 SM6 출시 전 잠시 만난 르노삼성 박동훈 사장은 “오랜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라고 설명해줬다. 그리고 결과는 성공적이다. 쉐보레 또한 글로벌 브랜드 단일화에 따라 ‘말리부’를 사용하지만 ‘말리부’는 그간 국내에 없던 이름이어서 새로움을 부여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쏘나타는 무려 30년이 유지돼 새롭다는 느낌이 반감되고 있다. 심지어 LF 출시 이후 현대차는 쏘나타 헤리티지 마케팅에 주력했다. 이를 통해 견고한 ‘대한민국 대표 중형세단 쏘나타’ 이미지를 보다 공고히 했다. 하지만 현대차의 노력에 젊은 소비층은 ‘새로움이 없다’며 외면했고, 그 사이 르노삼성과 쉐보레는 새롭게 진입한 소비자를 맞이했다. 물론 SM6와 말리부가 현대차 그랜저의 대안으로 여겨지는 효과도 있었지만 쏘나타의 흔들림은 근본적으로 브랜드 노후화에서 비롯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얼마 전 현대차 출신 임원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쏘나타 브랜드 노후화에 대한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그는 내게 거침없이 “쏘나타는 현대차의 상징이고, 아들에게도 강력 추천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순간 아버지의 조언(?)을 들어야 할 아들 입장에서 그 말을 되새겨봤다. “아버지가 타시던 그 평범하고 고루한 자동차를 타라고요? 그건 아버지 때 통하는 얘기일 뿐 지금은 아니잖아요. 쏘나타는 너무 오래됐어요. 신선함이 없다고요.” 어쩌면 다음에 나올 쏘나타의 차명은 바뀔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현대차 내부에서도 ‘쏘나타’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속출하고 있으니 말이다. 글_권용주(<오토타임즈>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