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tars&People

  • 기사
  • 이미지

이혜영은 왜 붓을 들었나

재미 삼아 한 번은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벌써 두 번째다. 모델이자 가수였고, 배우인 이혜영이 화가로 두 번째 무대에 선다. 그저 취미로 그림을 그렸을 거라는 대중의 편견을 딛고.

2016.10.14

 

“심각하게 세상과 멀리하거나 그런 작가 말고,
누구나 와서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미술을 하고 싶어요.

대중과 함께하는 작가.”

 

‘작가’ 이혜영. 지난해 이혜영이 첫 전시를 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하물며 올해 또다시 두 번째 전시를 연다는 이야기를 접했을 때조차도. 그녀의 이름 앞에 붙은 ‘작가’라는 타이틀은 내뱉지 못한 고백처럼, 입안을 빙빙 맴돌았다. 9월 한 달간 진화랑에서 열릴 이혜영의 두 번째 개인전 <Muse of the Wind>로 향하는 발걸음은 그 의구심과 약간의 편견을 안은 채 시작됐다. “<바람의 뮤즈>라는 제목처럼, 바람은 자연의 바람이기도 하지만 내가 어떻게 되고 싶은 ‘바람’, 네가 행복해지면 좋겠다는 ‘바람’ 등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어요. 바람은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고 만질 수도 없지만 나를 소리 없이 이끌어주고, 나쁜 기억을 데려가고요.” 작년의 전시가 반려견 ‘부부리’를 모티프로 한 작품이었다면 이번 전시는 그 범위가 확장된 모습이다. 꽃, 나무, 잎사귀, 머리카락 등 이혜영만의 ‘바람의 뮤즈’들이 화폭 곳곳을 자유롭게 노닐고 있으니. 특히 이번 전시엔 내면의 상처와 아픔을 가감 없이 토해낸 전작에서 한발 더 나아가 추상적인 화풍이 등장했다. “작년쯤이었어요. 이제 제 뮤즈였던 프리다 칼로를 떠나보낼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나의 마음이지만 타인의 마음을 그리게 된 것 같아요.” 어느 순간 이혜영은 자신의 아픔을 더는 그리고 싶지 않았다. 그 순간, 주변 사람에 머물던 붓끝은 자연스레 제3자의 그것을 그리고 있었다.   


“나름 그림일기처럼 그리기 시작하다가 바람이 흘러가는 대로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중·고등학교생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였어요. 선생님이 넌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말하셨을 정도로요.” 언니가 그랬듯 음악을 시키려 한 엄마의 만류로 그림은 이혜영과 잠시 멀어져야 했다. “미술 학원 한 번 다닌 적 없지만, 그림을 좋아했고, 언젠가는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늘 품고 있었어요.” 언젠가는 취미로라도 그림을 그리겠다는 다짐을 늘 가슴속에 품고 있던 이혜영은 아버지의 암 선고와 반려견 도로시의 죽음 등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던 차에 자연스럽게 붓을 들었다. “알다시피 두 번째 결혼도 했고, 사춘기 딸도 얻게 되고, 자연스럽게 할 일도 없어지고, 그림을 그려야겠다 싶었어요.” 모델로, 가수로, 배우로 무엇보다 화려한 셀렙의 이미지가 강한 이혜영이 그림을 그린다고 하니, 사람들의 시선은 지레 의구심과 편견에 싸일 수밖에 없었다.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으니 인터넷으로 혼자 공부했어요. 맨 처음 남편, 딸과 함께 화방에 가서 12색 기본 도구를 샀어요(웃음). 물감을 몇 대 몇으로 섞어야 하는지, 질감은 어떻게 내는지 인터넷을 보고 혼자 공부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막상 해보니 되더라고요. 얼마나 신나던지요.” 물감 배합을 잘못하는 통에 갈라지고 뭉치기도 일쑤. 한데 오히려 실수해서 갈라진 게 더 예쁘게 보이기도 하더란다. 그렇게 실수와 실험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 물감을 자유롭게 다루게 됐다. “하루하루 그냥 내 마음을 그렸어요. 내 주위의 것들. 사람들의 시선 따위야 알게 뭐야? 하고.” 애초에 사람들은 이혜영에게 거창한 예술 세계를 기대하지도 않을 터이다. 그저 유명한 연예인이 ‘취미 삼아 그림을 그린다’ 여기는 이가 대부분이다. 이혜영은 사람들의 편견 따위엔 신경 쓰지 않고, 상처받은 내면을 치유하는 마음으로 거침없이 화폭을 칠했다. 그러다 보니 ‘자기 아픈 걸 솔직하게 다 표현하네?’ 하고 관심을 가져주는 이도 생겨났다.   

 

 

 

“이 모든 게 그냥 나예요. 요즘은 오히려 모든 게 편해졌어요. 매일 작업실로 출근해서 작업을 하는데, 아직까진 계속 그려져요. 오히려 시간이 없을 정도로.” 영화를 보다가도 꽂히는 게 있으면 미친 듯이 달려가 그림을 그린다. 한 번 앉으면 9~10시간 그림만 그린다. 한번 꽂히면 마무리할 때까지 집요하게 매달리는 탓에, 작업실에 그려놓은 그림도 제법 쌓였을 정도. “연기가 종합 단체 예술이라면 그림은 제가 다 하잖아요. 캔버스 안에 마치 드라마를 만들 듯이. 그래서 더 재미있어요. 저만의 세월들… 그것이 결국 독특한 모습으로 나오지 않을까요?”

 

이혜영이 그려놓은 상상 속 이야기. 이번 전시에선 그 이야기가 화폭을 넘어 설치, 조각으로까지 이어진다. 이혜영은 전시가 열리는 진화랑 전체에 하얀색 그물을 던졌다. 그리고 그물 사이사이에 수백 개의 바람개비를 달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그것들은 각자의 속도와 이야기를 담아, 갤러리 전체를 신비한 바람의 왕국으로 탈바꿈시킨다. 바다에서 그물을 던지는 것은 희망을 던지는 일. 이혜영은 자신이 그러했듯 대중 역시 예술을 통해 각자의 희망을 건져 올리기를 조심스레 바라는지 모른다. 물론 이 작업은 이혜영 혼자만의 작업물은 아니다. 갤러리 외부 설치 작업은 5명으로 구성된 펀디멘탈 그룹과, 조각은 신진 조각가 신동호와 협업했다.   

 

 

 

1 조각가 신동호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조각 작품 ‘부부리의 탄생’ 앞에 선 이혜영.

2 이혜영, 러브스토리 1, 97×162cm

3 이혜영, 거짓말, 97×162cm

 

대중적인 작가는 왜 안 돼죠?
“제 그림엔 도시가 없어요. 도시에 대한 좋은 기억이 없어서요.“ 마땅히 자연보다는 도시가 어울리는 이혜영의 그림 속엔 그러고 보니 나비, 꽃 등 자연의 그것들이 바람을 따라 노닐고 있다. “저는 바람, 풀, 나무, 새, 벌레, 닭, 개가 있는, 이런 시골에서 자랐어요. 인천 수봉산 아래, 그것도 쓰러져가는 달동네요(웃음). 엄마가 동물을 키우고 나무 키우는 걸 좋아했어요. 대문을 열면 돌담이 쌓여 있고 나무도 있고 거북이도 있고. 아! 밖에 화장실을 만들어 그걸로 거름도 만들고.” 예쁘게 집을 꾸미는 데 관심이 많았던 엄마 덕에 주변 이웃들조차 이혜영을 잘사는 집 딸로 오해했을 정도. “‘인천 시민의 날’ 폭죽이 터지는 날이면, 3남매가 2층 옥상에 누워 그 풍경을 올려다보곤 했어요. 뒷동산이 우리 집 앞마당이나 다를 바 없었죠.” 이런 어린 시절 때문일까. 이혜영이 사는 지금의 아파트 발코니엔 녹색의 화분이 늘 둥지를 틀고 있다. 이제야 화폭 속에 등장하는 자연의 그것들이, 회색 도심 속에 부는 하얀 바람개비의 정체가 조금은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문득 궁금해졌다. 이혜영에게 더욱 특별히 기억되는 바람이 있을까? “현충원에 아빠를 묻고 1년 후 다시 그곳을 찾았어요. 이 얘기를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그곳에 몰래 도로시를 묻어두었는데, 돌아오는 그 길에 바람이 휙 불었어요. 그런데 바람이 따뜻했어요. 아빠와 도로시가 함께 있어서인지 몰라도.” 사랑하는 아빠와 도로시가 뛰어다니며 행복해하고 있을 것 같은 바람. 그 바람은 슬픔에 지친 이혜영에게, 다신 슬퍼하지 말라며 휙, 그리고 따뜻하게 지나갔다.   


“그림을 파는 것엔 별 관심이 없어요. 돈을 생각하면 이런 거 못하죠. 근데, 다음 전시에는 돈이 더 많이 들어갈 것 같은데(웃음). 설치, 조형을 좋아하는데 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협업도 생각 중이고요.” 설치미술가인 크리스토와 장클로드 부부를 좋아한다는 이혜영은 그들을 향한 리스펙트를 작품으로 꼭 보여주고 싶노라고 말한다. “저는 미술계 사람이 아니니 혼자 알아가는 거죠. 예전에는 그냥 그림을 보고 와! 하고 왔다면 이제 아! 이렇게 그렸겠구나 이런 게 보이기 시작했죠. 남들이 뭐라 하든 저는 신경 안 써요. 그분들이 어떻게 생각하시든, 그것도 자유잖아요?(웃음)” 그저 자신의 전시를 보고 ‘나도 한번 도전해볼까?’ 이런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관객이면 족하다고. “심각하게 세상과 멀리하거나 그런 작가 말고, 누구나 와서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미술을 하고 싶어요. 대중과 함께하는 작가.” 그 순간 문득 ‘모든 예술은 다 심오해야 할까? 한 우물을 파는 소위 정통성 있는 작가만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까?’라는 생각에 미쳤다. 누군가는 대중에게 쉽고 재미있게 다가설 수 있는 예술을 보여줘도 좋지 않겠는가. 그것이 이혜영이어도 좋고 말이다. 그렇게 붓을 든 지 5년여. 이혜영은 그렇다고 작가인 척 분위기를 바꿀 생각도, 눈치 보며 그림을 그리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러고선 당당히 포즈를 잡았다. “작가가 예쁘면 안 되나?”  

 

 

 

1 희망을 건져 올리듯 갤러리 전체에 하얀 그물을 던지고, 수백 개의 바람개비를 설치했다.  펀디멘탈 그룹이 함께 참여했다.  

2 이혜영, 고마워, 120×120cm

3 바람을 따라 정원을 누비는 나비 부부리를 모티프로 한 설치 작품 ‘Heart to Heart’.  

4 이혜영, 스카프를 찾은 부부리, 120×120cm

 

What do you think?
좋아요

TAGS neighbor,네이버,이혜영,화가,미술,전시,그림

CREDIT Editor 설미현 Photo 박우진 출처 THE NEIGHBOR

Film

film 더보기
SUBSCRIBE
  • 메인페이지
  • PlayBoy Korea
  • MOTOR TREND
  • neighbor
  • 東方流行 China

RSS KAYA SCHOOL OF MAGAZINE

Copyright Kayamedia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