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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과 감성을 담은 집

‘도시=아파트’라는 불문율이 깨지고 있다. 틀에 박힌 아파트를 대신할 전원 속 주택을 꿈꾸지만, 그렇다고 도시의 편리함을 포기할 순 없는 사람들. 그들이 이 새로운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2016.10.05

 

 

1 코너 창을 활용해 남동쪽에 치우친 자연을 집 안으로 끌어들였다 2 지붕 경사에 맞춘 여러 겹의 레이어 덕에 미니멀하면서도 역동적인 구조가 돋보인다 3 거대한 볼륨감을 선으로 분할, 크지만 위압적이지 않은 딥 하우스. 석재 루버로 장식적인 멋을 더했다 4 지하 1층과 2층을 잇는 계단은 조형성마저 느껴진다

 

건축가 김호민의 딥 하우스
강원도 숲속 어디쯤에나 있을 법한 집이 도심, 그것도 서울에 지어졌다. 구기동에 얼마 전 완공된 딥 하우스(Deep House)로, 폴리머(poly.m.ur) 건축사사무소 김호민 건축가의 작품이다. 웅장하고 개성 넘치는 외관 덕에 잘 지은 부티크 호텔 같기도 한 이곳. 양평, 파주 등 한적한 전원주택에서나 볼 법한 개성 넘치는 집이 서울 구기동에 들어선 것이다.
“자연과 가까이하고 싶다는 것이 건축주의 가장 큰 요구 사항이었어요.” 북한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초입에 위치한 딥 하우스는 그 때문에 웅장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더구나 암벽산으로 이루어진 터라 풍수적으로 보면 소위 ‘쎈’ 지역에 속한다. 마치 산의 형상 같기도 한 딥 하우스의 개성 넘치는 외관은 어쩌면 이러한 지형적 특징 때문에 외려 가능했을지 모른다. 하나 또 다른 난제는 이곳이 자연경관지구라는 점이었다.  
“자연경관지구다 보니 의무적으로 경사지붕(박공지붕)을 해야 하고, 경사 역시 3 대 1의 비율로 해야 한다는 규제가 있었어요.” 1990년대 경사지붕이 주춤하고 평평한 평지붕이 유행했다. 그런데 그 지붕이 경관상 세련되고 아름답지 않다는 이유로, 특히 자연경관지구에는 경사지붕을 만들도록 건축법상 의무화됐다. 물론 지붕의 경사 역시 3 대 1의 비율로 정해졌다. 법규를 지키면서도 건축적 아이덴티티를 드러낼 수 있는 집. 건축가 김호민의 선택은 의외로 과감했다.     


“네모난 박스 형태 위에 경사지붕을 얹는 대신 아예 벽을 지붕의 일부로 연장해 벽과 지붕의 구분을 없앴어요. 이로써 벽과 지붕 주위로 한 층의 레이어가 더해지면서 두꺼운 벽이 형성됐죠.” 쉽게 말해 지붕의 경사면이 벽까지 하나로 이어지는 형태다.  그 덕분에 다각형의 외피와 내부 사이에는 삼각형 모양의 비어 있는 공간이 발생했다. 이 공간은 자연스럽게 수납공간으로, 다락으로 탈바꿈했다. 딥 하우스의 외관에는 여느 주택에서는 볼 수 없는 석재 루버가 쓰였다. 마치 건물을 일정한 간격으로 재단하듯 외벽을 둘러싼 루버. “멀리서 보면 하나의 메스처럼 보이지만 다가가서 보면 텍스처가 보이죠. 거대하고 위압적이지 않고, 그 내에 ‘섬세한 스케일이 담겨 있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는 일종의 장식적인 요소죠.” 육중한 볼륨의 딥 하우스를 선으로 분할한 루버는 장식적으로도 아름답지만 거대한 볼륨감에서 오는 위화감을 충분히 상쇄시킨다.  
딥 하우스의 두 번째 비밀 병기는 바로 ‘코너 창’이다. 집의 구조를 보면 옆으로 긴 대지에 정남향으로 집이 앉은 구조다. 한데 문제는 남동쪽으로 쏠려 있는 수려한 풍경이었다. 이 풍경을 어떻게 집 안으로 끌어들일 것인가. “그래서 고안한 게 바로 코너 창이었어요. 남동쪽에 위치한 앞산을 집에서도 바라볼 수 있도록 각 공간마다 코너 창을 만들었죠.” 그 덕에 어떤 방, 공간에서든 코너 창을 통해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다. 코너 창이 주는 또 하나의 효과는 ‘방 안의 방’이라는 시각적인 마법이다. 마치 하나의 방에 또 하나의 공간이 들어선 느낌이랄까? 앞으로 돌출된 삼각형의 빈 공간과 그 안에 더해진 코너 창은 마치 네모난 방에 또 하나의 공간이 더해진 느낌이다. 코너 창 앞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 방 안에 커피숍 하나가 들어선 느낌이고, 책을 읽으면 서재 하나가 자연스럽게 더해지는 풍경이다. ‘수납’이라는 편리함과 ‘여유’라는 감성을 더한 공간. 삼각형의 공기층과 코너 창은 이 두 마리 토끼를 안겨준 셈이다.

 

 

 

1 천고가 높은 천장엔 선적이면서도 구 같기도 한 조명으로 볼륨감을 주었다. 천창의 긴 창에서 내려온 자연의 빛과 만나 아늑한 공간을 연출한다 2 모던한 감각이 돋보이는 오픈 키친 너머로 구기동의 포근한 자연을 품은 창이 하나로 이어진다. 3 접이식 계단을 오르면 다락으로 이어진다

 

자연을 끌어들이는 특별한 방법
“거실 창문을 보면 알겠지만 생각보다 큰 편이 아니에요. 거대한 통창 대신 직접 다가가서 자연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랐어요.” 여느 건축가라면 마땅히 커다란 통창으로 앞산의 풍경을 고스란히 끌어들였을 테지만, 그는 오히려 공간에 어울리는 적당한 창을 내었다. 거대한 자연을 무작정 끌어들이는 대신 사람이 자연스레 다가갈 수 있도록 여유 하나를 선물한 셈이다.


아직 정식 입주를 하지는 않았지만 딥 하우스에는 아이 세 명을 둔 건축주의 아들 부부가 들어올 예정이다. “아들 역시 30년을 이곳에서 살았어요. 결혼 후에도 잠깐 살다가 아파트로 분가했고, 다시 고향집 같은 이곳으로 돌아오게 된 거죠.” 지하 1층과 지상 2층으로 이루어진 딥 하우스 내부로 들어서면 주택임에도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다. 이 때문인지 집이라기보다는 호텔 같은 느낌마저 든다. 문득 오랜 세월 호텔을 경영해왔다는 건축주의 이력이 스치듯 지나갔다. “구기동은 암반 지역이라서 지하의 돌을 파내는 데만 2~3개월이 걸렸어요.” 주변 민원 때문에 굴착기로 돌을 무작정 쪼갤 수도 없었다. 소음을 줄일 수 있는 특수 장비까지 동원해서도 석 달이 소요됐다. “지하의 한 벽면에는 일부러 쪼개고 남은 암벽의 일부를 남겨두었어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얼마나 어렵게 이 집을 지었는지 기억하라는 의미로요.”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볼 수 있는 가족실과 룸으로 이루어진 지하 공간에는 실제 쪼개고 캐낸 흔적이 남아 있는 암벽 덩어리가 조각 작품처럼 창문 너머에 우뚝 서 있다. 이 밖에도 남자만을 위한 드레스룸, 서재, 아이들을 위한 다락, 서늘한 와인 창고가 들어설 지하 공간(이 통로는 건축주의 또 다른 부지와 연결된다), 자연이 내다보이는 욕조,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옥상 데크 등 거칠고 육중한 외형과 달리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공간 구성이 돋보인다.
“구조가 복잡해 보여도 논리는 심플해요. 공기층처럼 공간 활용을 했고, 덜 춥고 덜 더운 구조.” 내부는 모듈처럼 삼각형의 공기층과 코너 창이 반복되는 형태로, 그것들은 놓인 위치에 따라 기능이 달라진다. 겉에서 보면 거대하고 복잡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따뜻한 감성이 숨어 있는 공간. 김호민의 건축이 딱 그 지점에 서 있다.


5대를 잇는 건축가 집안에, 자하 하디드, 렘 콜하스 등 세계적인 건축 거장을 배출한 런던 AA 스쿨 출신인 김호민. 그에게도 도시 건축에 대한 미래는 풀어야 할 숙제다. “건축가의 태생적 한계가 바로 통일성이죠. 건축가라는 존재가 아티스트처럼 에고가 강해요. 통일성을 갖춘 도심의 건축. 사실 이건 건축가 입장에서도 딜레마인데, 나를 완전히 죽이는 프로젝트를 건축가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자신의 에고를 버리고 갈 건축가는 저는 없다고 생각해요(웃음).” 그 점에서는 자신도 욕심 많은 건축가에 속한다. 자신의 족적, 아이덴티티를 남기고픈 건축가의 태생적 한계 때문에 흔히 이야기하는 정돈된 도심의 건축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그는 말한다. 한창 화두가 된 공공성 문제 역시 건축가가 개입하는 순간 힘들어질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진다고. 하나 반대로 생각하면 건축가의 이러한 욕망은 도시 안에 또 다른 아트 예술품 하나를 만들어줄 것이다. 누군가는 공공성에 기반한 따뜻함을 전한다면, 다른 누군가는 생동감 넘치는 아티스틱한 건축적 사운드를 들려줘도 되지 않겠는가? 김호민, 그 역시 폴리머(poly.m.ur)라는 이름처럼 흑백 논리가 아닌 다양성을 품은 건축을 꿈꾼다. 도심 건축의 새로운 미래. 그것 역시 분명 다양성에 있을 것이다. 다양성과 더불어 생명력을 얻는 도시라는 공간의 필연적인 생태 구조처럼.

 

 

 

흑백의 논리가 아닌 다양성을 품은 건축. 딥 하우스는 건축가 김호민의 실험적인 건축을 대변하는 서막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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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설미현 Photo 박우진 출처 THE 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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