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난지도에 관한 신문 아카이브를 기반으로 한 ‘트윈픽스’, 2011

2 유비호, Twin Peaks, 신문 아카이브(1977~1992, 270여 신문 기사), 2011 

3 망부석 설화의 인어공주상을 도상으로 빌려온 영상 작업 ‘안개 잠’, 2015

“페인팅이 시각을 다룬다면 미디어 아트는 ‘시간’을 다루는 작업이죠.” 미디어 아티스트 유비호. 영상과 인터랙션 작업을 하는 그이지만 그는 대학생시절 서양화를 전공했다. “감정, 정서, 쓸쓸함, 절망이란 단어를 그림으로 표현하기가 힘들잖아요. 영상은 그게 가능해요.” 9월 11일까지 DDP 디자인둘레길에서 김광석 20주기를 기념하는 추모전이 열린다. <내 안의 김광석>전이 그것인데, 그를 비롯해 여섯 작가가 참여 중이다. “김광석이 한창 활동하던 시기가 90년대인데, X세대인 저 역시 그의 음악을 듣고 자랐죠. ‘서른 즈음에’,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부치지 못한 편지’를 보면, 하나같이 소심한 성격의 사람들이 나오죠. 말할 수 없이 애처롭고, 떠난 사랑 뒤에 홀로 남겨진.” 그는 떠난 사랑에 대한 쓸쓸함, 인생에 대한 쓸쓸함을 ‘고독에 대하여’라는 영상 작업으로 선보였다. 그의 영상 속에는 걸어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등장한다. 그중에 꽁지머리를 착 동여맨 백발 노장의 낯설지 않은 뒷모습이 포착됐다.

1 사회적 재난을 겪은 개인, 가족들을 인터뷰하고, 이 시대의 가치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이너 뷰’, 2015

2 나의 뫼르소, 2015 3 <내 안의 김광석>전

“네, 맞아요. 김구림 선생님이에요. 직접 찾아가 출연을 부탁드렸는데 흔쾌히 승낙해주셨어요. 선생님의 뒷모습 말고 배우들의 모습도 있고요.” 백남준과 함께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의 1세대라 할 수 있는 전위 예술가 김구림. 한국 미디어 아트의 한 시대를 이끌었고, 지켜봐온 그의 뒷모습은 그 어떤 앞모습보다 강한 오라를 풍겼다. 범상한 한 인간의 뒷모습이라기보다는 한국 미술의 역사를 걸어온 거장의 숙연한 뒷모습이었다.

“대학생때 서정적인 아이였어요.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웃음). 감정이 퇴화하면 일상생활을 못해요. 그런데 현대인은 사랑을 주려고 해도 가끔 오해를 해요. 그러니 작품으로라도 사랑을 주고 싶은 거죠.” 사랑의 감정조차 오해를 낳고, 감정의 소통조차 결여된 현대인의 리얼한 민낯. 디지털 영상 속에 녹아든 유비호의 이야기는 ‘사랑’이라는 것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는 2014년 성곡미술관이 선정한 ‘내일의 작가상’을 수상했고, 그 기념전에 선보인 ‘떠도는 이들이 전하는 바람의 노래’ 역시 맥을 같이한다. 한 남자가 백발의 노모를 버리기 위해 다리를 절뚝거리며 걷고 있다. 서울 북아현동 재개발지구, 인왕산 선바위 등을 정처 없이 걷다가 해가 떨어졌지만 그들은 여전히 어둠 속에 서 있다. 자본주의 사회가 낳은 현대판 고려장의 애달픈 현실. 백남준, 육근병 세대의 미디어 아트가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거친 저항을 품고 있다면 지금 세대의 미디어 아트는 좀 더 부드럽게 현대인의 일상 속으로 파고든 모습이다. “영상이란 매체는 지금 시기의 문학이라 할 수 있어요. 지금 시대의 소설. 저 역시 그런 소설 같은 작업을 하고 싶어요. 인생사와 서사를 다루는.” 인생을 몇 시간의 짧은 영상으로 압축할 수는 없지만 무당이 그러하듯 현대인의 지친 영혼을 샤워시켜주는 일. 미디어 아티스트 유비호, 그는 지금 거기에 서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팔리지 않으면 설치 후 창고에 틀어박혀야 하는 게 비디오, 영상 작업의 운명이죠. 그러니 관객 역시 그때, 그 시간이 아니면 볼 수 없죠.” 우리의 삶이 담긴 가장 리얼한 현장. 그 표현 방식은 달라졌지만 백남준이 그러했듯 오늘의 미디어 아티스트 역시 그 뜨거운 현장에 서 있다. 유비호, 그는 그 틈에서 차가운 디지털 매체인 영상으로 가장 따뜻하고 서정적인 러브 레터를 쓰는 중이다.

감정이 결여된 현대인의 민낯에 애틋한 러브 레터를 보내는 미디어 아티스트 유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