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파워 스티어링휠

올해 초 로터스 엑시지 S를 시승할 때였다. 차를 옮기려고 운전석에 앉자 후배가 이렇게 말했다. “선배, 그 차 운전할 수 있겠어요?” ‘나름 10년 이상의 운전 경력을 자랑하는 1종 보통면허 소유자에게 그게 무슨 소리냐?’ 하지만 운전대를 쥐자마자 후배의 말을 이해했다. 스티어링휠이 돌덩이처럼 단단하다. 양손으로 부여 쥐고 힘껏 돌려야 겨우 바퀴가 한 뼘쯤 움직였다. 파워 스티어링이 달리지 않았던 거다. 1시간 남짓 돌덩이 같은 스티어링휠과 씨름한 뒤 생각했다. 파워 스티어링 시스템을 개발한 사람에게 감사해야겠다고. 두 손으로 부여잡지 않아도 쉽게 움직일 수 있는 지금의 파워 스티어링을 개발한 건 1926년 프랜시스 데이비스다. 미국의 자동차 회사 피어스 애로의 트럭 부서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했던 그는 늘 트럭의 스티어링휠을 쉽게 조작할 수 없을까 고민했고, 파워 스티어링을 개발했다.

하지만 비싼 비용 때문에 당장 상용화되진 못했다. 1951년 데이비스의 특허가 만료되자 크라이슬러가 임페리얼에 처음 파워 스티어링휠을 얹었다. 요즘은 거의 모든 차에 파워 스티어링이 달린다. 쉽게 움직이는 것을 넘어 속도가 높아지면 묵직해지면서 안정감을 높이는 속도 감응형 스티어링도 개발됐다. 스티어링을 돌린 다음 손을 떼면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가는 기능까지 더해져 요즘 차는 운전하기가 참 쉬워졌다. 고마운 일이다. 유턴 한 번 하려면 ‘끙끙’거리며 스티어링휠을 돌려야 했던 시절로는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

 

2 라디오

TV가 처음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라디오가 곧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100년도 더 지난 지금 라디오는 사라지지 않았고, 사람들에게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특히 운전자들에게. 내가 자동차에서 또 하나 사랑해 마지않는 장비도 바로 라디오다. 운전석에 앉자마자 내비게이션을 켠 다음 라디오를 튼다. 꽉 막히는 출퇴근길에 라디오만큼 위로가 되는 친구도 없다. 재미있는 사연이 나오면 함께 키득거리고, 퀴즈가 나올 땐 함께 정답을 맞힌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정답을 맞히면 괜히 뿌듯하다. 라디오가 없으면 운전이 얼마나 심심할까? 휴대전화에 들어 있는 음악만 주야장천 듣는 건 왠지 지루하다. 라디오가 없으면 못 살 것 같다. 적어도 차 안에서는.

 

3 컵홀더

시트로엥 DS5는 센터콘솔에 컵홀더가 없다. 푸조 308GT는 센터콘솔에 컵홀더가 하나뿐이다. 언젠가 프랑스 본사에서 근무하는 푸조·시트로엥 관계자에게 컵홀더가 불만이라는 말을 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왜 커피를 차에서 마시죠?” 프랑스 사람들에게 차에서 커피를 마시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여기는 한국이고, 우리는 차에서 커피를 마신다. 음료수도 마시고, 우유와 물도 마신다. 고로 컵홀더는 매우 중요하다. 컵홀더가 때로는 그 차를 사지 못할 결정적인 이유가 되기도 한다. 컵홀더에 대한 불만이 쏟아지자 포르쉐는 대시보드 위쪽에 컵홀더를 넣었다. 페라리도 센터콘솔에 컵홀더를 품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컵홀더에 신경 쓰지 않는 자동차 회사들이 많았지만 이젠 그들도 컵홀더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푸조·시트로엥, 듣고 있나?

 

4 열선·통풍 시트

오른쪽에 앉은 후배에게 물었다. 차에서 없으면 안 되는 게 뭐냐고. “열선·통풍 시트요. 특히 여름엔 통풍 시트 없이 못 살 것 같아요. 겨울에도 열선을 켜면 시트가 금세 후끈해지잖아요. 히터를 틀지 않고 열선 시트만 켜도 전 충분히 따뜻해요.” 냉면을 먹을 때도 땀을 흘리는 후배에게 어울리는 대답이다. 최초의 열선 시트는 1960년대 등장했다. 1950년대 중반 GM의 엔지니어들이 열선 시트에 관한 특허를 얻고, 1966년에 선보인 캐딜락 드빌에 후끈한 시트를 하사했다. 하지만 값이 비싸 운전석에만 달았다. 이후 1972년 사브 99와 사브 96에 열선 시트가 들어갔다. 통풍 시트가 상용화된 건 이보다 한참이 지난 후다. 2000년 링컨 내비게이터에 처음으로 통풍 시트가 달렸다. GM과 링컨의 엔지니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5 후방카메라

처음엔 후방카메라를 보는 게 불편했다. 거리가 가늠이 되지 않아 불안했다. 그래서 자꾸 뒤를 보며 후진주차를 했다. 하지만 일주일쯤 지나자 후방카메라에 완전히 적응이 됐다. 그 차를 타고 다닌 게 벌써 5년이다. 이젠 뒤도 잘 보지 않고 카메라만 보며 후진주차를 한다. 그러다 가끔 후방카메라가 없는 차를 탈 때면 어디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불안하고 어색하다. 운전이 서툰 남편은 후방카메라가 없는 차는 주차하지 못한다. 그는 후방카메라가 없는 차를 탄 적이 없다. 뒤쪽 상황만 보여주던 후방카메라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버드 뷰로, 주변 상황을 360도로 보여주는 서라운드 뷰로 진화했다. 원하는 부분을 확대해 볼 수도, 달리는 동안에 양옆의 상황을 볼 수도 있다. 정말 좋아졌다. 이젠 주차할 때 ‘삐비비빅’ 하는 경고음이 울리지 않으면 어색하다.

 

6 내비게이션

누가 나에게 차에서 꼭 필요한 것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내비게이션!”이라고 외칠 거다. 내비게이션 없이 운전하는 건 상상조차 하기 싫다. 길을 몰라서가 아니다. 출근할 때도 난 운전석에 앉자마자 가장 먼저 내비게이션을 켠다. 그리고 ‘티맵’이 안내하는 ‘최적의’ 경로로 달린다. 아는 길인데 왜 내비게이션을 켜느냐고? 혹시 사고가 나거나 도로에 문제가 생겨 길이 막힐까 봐다.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길로 가면 좀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을 거란 믿음도 있다. 물론 내비게이션만 믿고 가다 낭패 본 적도 여러 번 있다. 엉뚱한 길로 안내해 깜깜한 밤에 산속을 헤맨 적도 있고, 갑자기 경로를 바꾸는 바람에 차선을 급하게 바꿨다가 ‘끼어들기 위반’으로 경찰 단속에 걸린 적도 있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을 향한 무한 신뢰를 거둘 수 없다. 요즘은 어디 갈 때 지도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그야말로 ‘바보’가 된다. 난 이미 내비게이션의 노예가 됐다.

 

7 뒷자리 에어컨 송풍구

이번엔 왼쪽에 앉은 후배에게 물었다. 차에서 꼭 필요한 게 뭐냐고. “뒷자리 에어컨 송풍구요.”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다. “왜?” “뒷자리에 아이를 태워야 하는데 에어컨 송풍구가 없으면 더워서 못 견딜 거예요. 차를 사기 전 1시리즈와 골프 사이에서 엄청 고민했거든요. 그런데 결정적으로 1시리즈 뒷자리에는 에어컨 송풍구가 없더라고요.” 생각해보면 요즘처럼 섭씨 35도를 훌쩍 넘는 날씨에 에어컨 송풍구도 없는 뒷자리에 누군가를 태운다는 건 고문이나 다름없다. 정말이지 에어컨이 없다는 건 상상도 하기 싫다. 자동차 에어컨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됐다. 1939년 미국의 자동차 회사 패커드가 에어컨을 품은 모델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패커드에게 경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