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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 랜드로버를 위해

랜드로버의 성장이 거침없다. 매년 판매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고 위축된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도 군계일학의 성장세를 보이는 중이다. 헤리티지에 기반한 정교한 브랜드 관리, 볼륨 시장에의 착실한 대비가 이 같은 성공을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 다음부터다. 특히 서비스 품질 향상은 결코 미뤄둬선 안 될 과제다

2016.09.09

| 작은 거인 디스커버리 스포트는 랜드로버의 성장판이다. 럭셔리와 라이프스타일 제품군으로 이원화된 브랜드 전략의 중심에 있을 뿐 아니라 볼륨까지 책임지고 있다.

 

매년 20퍼센트 이상 성장해온 수입차 시장이 올 상반기 감소세로 접어들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가장 큰 원인은 폭스바겐 디젤 게이트다. 폭스바겐과 계열사 아우디가 잃은 시장을 경쟁자들이 제대로 이어받지 못했고, 디젤 엔진을 떠난 고객들을 하이브리드 등 친환경 파워트레인이 빠르게 흡수하지 못한 게 판매량 감소로 이어졌다. 물론 디젤 게이트는 너무 급작스러운 사건이었고 그 파장의 확대도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지만 시장이 이 정도로 급격하게 둔화될 거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인 브랜드가 있다. 랜드로버다. 2014년 4000대, 지난해 7000대를 넘기더니 올해는 판매 1만대를 뛰어넘을 기세다. SUV만 갖고 있는 브랜드가, 그것도 1억원을 호가하는 제품이 대부분인 브랜드가 이렇게 급성장한 비결은 무엇일까? 

 

랜드로버의 독야청청

개별소비세 환원 철회 등 자동차산업 부양책이 이어진 올 상반기 국산차 시장은 개소세 인하가 없었던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10.9퍼센트 성장했다. 하지만 수입차 시장은 지난해 상반기 11만9832대에서 올 상반기 11만6749대로 성장은커녕 2.6퍼센트 감소했다. 물론 지난해 수입차 시장 점유율 28.17퍼센트로 1위였던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아우디, 폭스바겐, 벤틀리)가 22.0퍼센트로 크게 움츠러든 것이 직격탄이었다. 그리고 수입차 시장의 70퍼센트(68.8퍼센트)에 육박했던 디젤차 역시 폭스바겐 게이트와 정부의 미세먼지 주범 지목으로 주춤하면서 64.9퍼센트로 감소했다. 지난 몇 년간 수입차 시장의 주요 성장동력이었던 디젤차와 폭스바겐 그룹이 휘청거리면서 시장 전체가 흔들린 것이다. 지나친 할인 경쟁이나 틈새모델의 과도한 도입으로 증명되는 레드오션 현상, 수입차 서비스에 대한 불만과 수입차에의 환상이 실망으로 반전되는 등 다양한 피로 현상을 보여온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이 같은 수입차 시장의 전환기에 랜드로버 브랜드의 약진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랜드로버는 SUV 전문 럭셔리 브랜드다. 세단이 없다는 뜻이다. 지난해 기준 수입차 시장에서 세단 점유율은 51.3퍼센트이고, 쿠페형 세단과 같은 파생형 세단을 포함하면 60퍼센트에 가깝다. 랜드로버는 시장의 60퍼센트를 비워놓고 경쟁하는 셈이다. 이보크 컨버터블이 출시되면 그나마 장르 하나가 늘어나는 것이지만 시장 점유율엔 큰 의미 없다. 수입차 시장에서 줄곧 1퍼센트대 점유율을 보이던 랜드로버 브랜드가 올 상반기 달성한 점유율은 무려 4.71퍼센트다. 풀 라인업을 갖춘 포드의 점유율이 4.91퍼센트 그리고 토요타와 혼다, 닛산 등 일본 메이저 브랜드들은 이보다 한참 낮은 2~3퍼센트대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정말 대단한 숫자다. 참고로 일본 브랜드들은 캠리와 RAV4, 어코드와 CR-V, 알티마와 캐시카이 등 유명 세단과 크로스오버 SUV를 모두 갖고 있다. 

 

시장 요인이 랜드로버의 큰 성장동력이란 점은 무시할 수 없다. 21세기 자동차시장은 SUV 열풍과 럭셔리 브랜드의 약진이 주도하고 있다. 럭셔리 및 슈퍼 럭셔리 브랜드들이 앞다퉈 SUV 모델을 내놓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랜드로버는 이 두 가지 세계적 흐름으로부터 동시에 지원을 받는 세계 유일의 브랜드다. 당대의 가장 대접받는 아이템이 된 것이다. 하지만 랜드로버는 이런 흐름을 편안하게 즐기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앞서 말했듯 강력한 럭셔리 브랜드들의 SUV 시장 진출이 첫 번째, 그 다음은 회사 내부의 형편이다. 재규어 랜드로버 브랜드의 지난해 전 세계 판매량은 50만대에 근접했다. 하지만 재규어 브랜드의 판매는 XE와 F 페이스 등 엄청난 투자가 이뤄졌음에도 여전히 8만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즉 40만대를 판매하는 랜드로버는 회사 운영에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시장 분위기에만 힘입어 얻어진 결과가 아니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 하이테크도 전략이다 랜드로버는 SUV로서의 기본적 성능 외에 경량화와 첨단 디지털 기술 개발에도 소홀하지 않다. 원격조종과 투명 보닛 같은 실험적 기술은 SUV 전문 브랜드의 시도라서 더욱 값져 보인다.

 

헤리티지를 성공의 자산으로 삼다

랜드로버에 따라붙는 ‘SUV의 지존’이라는 이미지는 실로 엄청난 가치다. 이보다 더 대단한 것은 그 이미지를 흐트러뜨리지 않는 그들의 브랜드 마케팅이다. 우리는 아이코닉한 브랜드들이 판매량 확대를 위해 더 넓은 시장으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브랜드 이미지가 희석되거나 품질 문제 등 심각한 부작용을 겪는 모습을 많이 봤다. SUV 장르에서도 대유행을 타고 크로스오버 SUV 크로스오버 모델들을 선보인 정통 SUV 브랜드들이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결과적으로 충성도 높은 고객들까지 동요시키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 랜드로버는 브랜드 이미지 관리를 대단히 잘해오고 있다. ‘오프로드의 리무진’이라는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헤리티지’라는 자산의 관리가 바로 그것이다. 랜드로버는 알루미늄과 모노코크 차체를 통한 경량화와 첨단 IT 기술 접목에 열심이다. 연료 소모가 많은 대형 고급 SUV가 주력이기 때문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오프로드 주파성능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안락함을 더한다는 목적으로 귀결된다. 예컨대 언덕을 넘을 때 보닛에 가린 전방 지형을 보여주는 투명 보닛(Transparent bonnet)이나 차 밖에서 지형을 살피며 스마트폰 앱으로 차량을 운전하는 기능 등은 오프로드를 다녀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미래 기술이다. ‘어떻게’보다는 ‘왜’라고 하는 주제를 놓치지 않고 첨단 기술을 사용하는 바람직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다양한 지형을 통과하는 터레인 리스폰스 기능을 모든 모델에 이식하고 크로스오버 SUV 성격이 가장 강한 레인지로버 이보크조차 50센티미터 깊이의 물을 통과하는 도하 성능을 강조하는 등 오프로더의 본질만큼은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미지도 전하고 있다. 

헤리티지 영역에서의 접근은 두 가지 갈래로 진행됐다. 첫째는 연속성이다. 랜드로버는 풍성한 역사가 있는 디펜더를 단종하면서 새로운 디펜더의 등장을 예고했다. 이를 통해 랜드로버의 스토리가 계속됨을, 브랜드 헤리티지가 계승됨을 확실히 했다. 우리말로 바꿀 때 애매한 단어 중 하나가 헤리티지(heritage)다. 이는 단순한 역사(history)도 아니고 전통(tradition)도 아니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오랫동안 이어지는 스토리가 담겨 있는 역사 정도일 것이다. 이런 면에서 랜드로버가 디펜더 스토리를 활용하는 방법은 헤리티지를 다루는 모범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헤리티지 전략은 제품의 브랜드화다. 랜드로버 모델을 럭셔리 제품군인 레인지로버 시리즈와 라이프스타일 제품군인 디스커버리 시리즈로 확립하는 과정이다. 레인지로버 시리즈는 이미 기함인 레인지로버, 그 아래의 보다 역동적인 레인지로버 스포트, 그리고 가장 젊고 실험적인 이보크로 정리됐다. 또 하나의 줄기인 라이프스타일 모델은 디스커버리와 프리랜더로 양분돼 있었는데 이 중 프리랜더 자리를 디스커버리 스포트가 이어받았다. 이는 단순한 모델 체인지가 아니었다. 디스커버리 브랜드의 확립이고, 나아가 랜드로버의 모델 헤리티지 전략 가운데 중요한 한 수였다. 

 

 

 

 

 

랜드로버다운 볼륨 시장 공략

기존 프리랜더도 제품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제품 헤리티지엔 문제가 있었다. 갑자기 뿌리에 없던 자식이 태어났는데 알고 보니 혼다와의 공동 프로젝트였다거나(1세대. 결국 무산돼 독자 개발로 마무리됐지만) 포드 플랫폼에서 빚어지는(2세대) 등 혈통에 아쉬움이 있었다. SUV 종가인 랜드로버 제품으로는 탐탁지 않은 면이었고, 랜드로버 애호가들에게도 서자와 같은 대접을 받았다. 콤팩트 크로스오버 SUV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환경에서 연간 5만대 수준에 머문 성적도 못내 아쉬웠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선 프리랜더에 부족했던 헤리티지를 부여할 필요가 있었다. 디스커버리 브랜드의 등장 배경이다. 

디스커버리 스포트의 LR-MS 플랫폼은 2세대 프리랜더가 썼던 포드 EUCD 플랫폼의 오프로드 성능을 강화한 것이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가장 가까운 친척인 이보크보다 깊은 60센티미터의 도하 능력으로 최고 수준의 오프로드 성능을 확보했다. 실내외 디자인도 단정하고 기능적이지만 여전히 고급스러운 디스커버리의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졌다. 초기 생산물량인 2015년형엔 포드 계열의 4기통 엔진을 올렸지만 2016년형은 재규어 랜드로버가 전략적으로 새로 개발한 인제니움 2.0리터 4기통 디젤 엔진을 얹었다. 신모델의 엔진이 몇 개월 만에 바뀌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디스커버리 스포트를 하루라도 빨리 투입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했음을 알 수 있다. 이전 재규어 랜드로버 모델들은 대부분 포드 시절의 엔진을 그대로 쓰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가장 먼저 개발한 독자 엔진이 콤팩트 세그먼트에 주로 쓰이는 2.0리터 4기통 엔진이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볼륨 확대를 위해 D 세그먼트 SUV 시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지가 그만큼 강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프리랜더의 부족한 헤리티지와 스토리는 디스커버리라는 브랜드로 보완하고 기술적인 측면은 새로운 인제니움 엔진으로 완성도를 더한 셈이다.  

인제니움 엔진이 올라간 재규어 랜드로버 모델들은 같은 차임에도 불구하고 이전 듀라토크 엔진 모델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매끈한 회전 질감과 N.V.H 특성을 보여준다. 시장확대용 모델인 디스커버리 스포트 역시 럭셔리 브랜드 랜드로버는 물론 새로운 이름인 디스커버리에도 어울리는 고급스러운 질감과 풍부한 성능을 자랑한다. 디스커버리 스포트는 일상 주행 영역에선 승차감이 매우 부드럽고 정숙성도 좋아 고급스러운 느낌이 강하다. 동시에 오프로드에선 충분한 서스펜션 스트로크와 터레인 리스폰스 시스템의 접지력 제어를 앞세워 외모와 다른 강력한 험로 주파 성능을 보인다. 딱딱한 플라스틱 소재가 떨리면서 나는 잡소리에선 원가 제약이 있는 하위 모델의 한계가 느껴지지만 랜드로버의 엔트리 모델로는 분명 일취월장한 성능과 제품력을 지니고 있다. 

 

 

이런 SUV 없다 20세기 카 디자인의 아이콘이 아우디 TT였다면 21세기엔 레인지로버 이보크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실험적이고 감각적인 동시에 고급스럽고 본질에 충실하다.

 

 

 

성장통을 대비하라 

디스커버리 스포트 출시 이후 랜드로버는 국내 시장에서 대폭발을 일으켰다. 2014년과 2015년 각각 4675대, 7171대였던 랜드로버 코리아 판매량은 올 상반기에만 5502대 팔려 연간 1만대를 거뜬히 넘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까지 D 세그먼트 SUV가 37~38퍼센트, E 세그먼트와 F 세그먼트 SUV가 각각 30퍼센트 안팎이었지만 올해는 디스커버리 스포트를 중심으로 D 세그먼트 SUV가 50퍼센트를 넘는 급성장을 이뤘다. 절대 수량에서도 지난해 팔린 D 세그먼트 SUV 합계(2649대)를 뛰어넘는 2875대를 기록했다. 

랜드로버, 그리고 디스커버리 스포트에 의한 D 세그먼트 SUV 시장의 약진은 전체 수입차 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수입차 시장에서 24퍼센트를 차지했던 SUV 점유율이 올 상반기 30퍼센트로 훌쩍 올라갔다. 집계 자료를 꼼꼼히 살펴보면 D 세그먼트 제품이 28.4퍼센트에서 35.8퍼센트로 오르며 전체 성장을 주도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D 세그먼트 시장에 메르세데스 벤츠 GLC를 제외하고는 특별한 신차가 없다는 점, 지프 체로키의 디젤 모델이 판매 중단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디스커버리 스포트의 파급 효과가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헤리티지의 힘 랜드로버는 풍성한 역사가 있고 과거를 소중하게 다룰 줄 알며 거기서 스토리를 빚어내는 법도 안다. 큰 수익을 내는 SUV 전문 브랜드로 장수할 수 있는 배경이다.

 

하지만 랜드로버는 자매 브랜드인 재규어와 딜러 네트워크를 공유한다. 한쪽 브랜드 판매가 좋으면 다른 브랜드는 오히려 관심에서 벗어나는 일종의 풍선 효과가 있다는 얘기다. 이미 판매 비중은 랜드로버 쪽에 기울어 있다. 그리고 디스커버리 스포트의 약진은 이런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 두 브랜드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현명한 브랜드 관리가 절실한 상황이다. 물론 재규어 XE의 판매가 좀 더 활성화되고 F 페이스가 성공하면 균형점은 자연스럽게 찾아올 수 있다. 서비스 품질 문제도 유심히 챙겨야 한다. 지난 몇 년, 우리는 급격하게 성장한 몇몇 수입차 브랜드의 서비스 품질이 크게 악화되는 현상을 목격했다. 공장 건물과 설비는 신속한 투자를 통해 빠른 시일 내에 갖출 수 있다. 하지만 숙련된 인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특히 럭셔리 브랜드에겐 브랜드 로열티가 매우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서비스 만족도가 필수다. 랜드로버의 서비스 만족도는 수입차 최상위권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매년 60퍼센트 이상의 급성장이 반복되면 서비스 과밀 상태에 다다르고 소비자 불만은 더욱 커질 것이다. 따라서 서비스 네트워크에 대한 투자, 특히 인력 공급 방안이 마련돼 있어야 하고, 아직 없다면 하루빨리 준비해야 한다. 신규 제품의 성공은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잘못하면 아주 단단하고 날카로운 부메랑이 될 수 있다. 호사다마다. 잘나가는 지금,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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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작은 거인,랜드로버,디스커버리,럭셔리 SUV

CREDIT Editor 김형준 Photo 랜드로버 출처 MOTOR TR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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