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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희대의 테러리스트, 백남준

또 다른 예술의 서막을 알리다

2016.09.07

 

1 백남준, 실제 물고기/생방송 물고기, 1982(1999), 비디오 설치, 진공관 TV 2대, 진공관 TV 빈케이스, CCTV 카메라, 어항 세트, 백남준아트센터
2 백남준, David, 196×60×300cm

3 백남준, 저드 얄커트, 시네마 메타피지크: 2, 3, 4번, 1967-2, 백남준아트센터

 

현대 문명의 상징인 TV, 그 입장에선 ‘바보상자’ 취급을 당하는 현실이 억울했을지 모른다. 백남준이라는 천재 아티스트의 눈에 포착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 그의 서거 10주기를 맞아 <백남준 쇼>가 열리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로 향하는 길. ‘정작 우리는 그의 TV를 제대로 이해하기는 한 걸까?’라는 자괴 섞인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비디오 아트의 거장이라는 타이틀 이전의 백남준은, 말 그대로 ‘똘끼’ 충만한 아티스트였다. 퍼포먼스 중 객석으로 달려가 관객의 넥타이를 싹둑 자르는가 하면, 벗은 구두에 따른 물을 단숨에 마셔버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도끼로 피아노를 때려 부수기까지 했으니. 이 괴이한 남자는 똘끼 넘치기로 유명한 예술가들 사이에서도 전무후무한 캐릭터일 것이다. 백인 중심의 유럽 미술계에 등장한 이 동양 남자의 거침없는 기행은 그들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백남준, 거북, 1993년 작, <백남준 쇼>

 

그의 숱한 기행을 이해하려면 플럭서스 운동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의 정신세계를 관통하는 커다란 흐름, 그것은 바로 플럭서스 운동이었다. 플럭서스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반자본주의 성향의 예술적 행동주의로 해석할 수 있다. 조선 최고의 부잣집 막내아들, 보수 엘리트의 상징이자 일본 최고의 명문인 도쿄 대학 출신 백남준과 플럭서스의 아이러니한 조합. 다분히 부자연스럽지만 그 때문에 더욱 매력적인 조합임이 분명하다.

 

그의 피를 뜨겁게 하는 유일한 탈출구는 기존의 예술을 거부하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것뿐이었다. 이때 그의 눈에 비친 게 바로 TV였다. 현대 문명의 상징이자 바보상자로 치부되는 TV. 그는 하루 종일 작업실에 틀어박혀 TV 화면을 변형시키는 연구에 몰두했다. 전자에 관한 연구는 물론 물리학 관련 서적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리고 마침내 1970년대 중반, TV 브라운관 13대로 제작한 그의 비디오 아트 작품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수많은 비디오 아트 작품 중 그를 세상 밖으로 탈출시킨 대표작을 꼽자면 고민할 것 없이 ‘TV 부처’다. 이 작품은 부처상 앞에 TV가 있고 TV 뒤에 비디오카메라를 설치, 화면에 부처의 모습이 나오도록 만들었다. 마치 부처가 TV에 나오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상념에 빠진 모습이다. 서양과 동양의 만남, 과학기술과 정신세계를 잇는 걸작. 그의 ‘TV 부처’는 평론가들의 극찬과 함께 백남준의 진가를 세상에 알렸다. ‘TV 정원’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꽃 대신 사이사이에 TV를 꽂아 만든 ‘TV 정원’. 바보상자로 지탄받던 TV는 그의 손을 거쳐 현대 기계문명의 아름다운 꽃으로 탈바꿈했다.

 

이 밖에도 그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비디오 조각’ ‘굿모닝 미스터 오웰’ 등 상상을 뛰어넘는 무한의 에너지를 뿜어냈다. 이런 그가 사실은 정통 미술 교육을 받지 못했다면 놀라운가? 도쿄 대학에서도, 독일에서도 그가 공부한 것은 다름 아닌 음악이었다(이는 물론 그의 사운드 작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예술 동지이자 아내인 구보타 시게코는 그 덕분에 그가 전통적인 미술의 고루하고 진부한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노라고 자서전을 통해 고백했다. 경제 관념은 늘 제로였고, 사기는 기본, 자신의 소지품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해 커다란 주머니가 달린 셔츠를 트레이드마크처럼 입고 다녔다는 인간적인 백남준의 뒷모습과 함께.   

 

 

 

1 요셉 보이스를 기리며 만든 추모 작품 ‘Beuys-Vox’. 2 백남준, 네온 TV 3 백남준, Video Chandelier 4, <백남준 쇼>
 

예술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었던 백남준. 그의 순수하고 우직한 예술 세계를 돌아볼 수 있는 <백남준 쇼>가 그의 생일인 7월 20일부터 10월 30일까지 DDP에서 열린다. 100여 점에 달하는 그의 작품은 물론 임영균 작가가 찍은 그의 사진 43점도 함께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전성기에 제작한 길이 10m의 초대형 작품 ‘거북’과 모차르트 서거 200주기를 기념해 만든 ‘M200’을 만날 수 있다. 전시작 중 ‘거북’은 국내에서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백남준아트센터에선 내년 2월 5일까지 <점-선-면-TV> 전을 통해 자주 소개된 바 없는 드로잉, 회화 작품을 전시한다. 전시장 밖에선 그의 생가 복원 작업이 한창이다. 그가 5세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을 떠난 1949년까지 12년간 살았던 창신동 집터. 11월 이곳에 백남준기념관이 들어설 예정이다. 인류와 과학기술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기를 바란 백남준. 실제 그는 TV가 얼마든지 자연과 어울릴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이지 않았던가. 그의 비디오 아트는 또 다른 예술의 서막이었고, 우리는 그 품속에서 오늘도 위안을 받는다. 차갑고 소음 가득한 그곳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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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neighbor,네이버,백남준,예술,아티스트,전시,TV,비디오,백남준 쇼

CREDIT Editor 설미현 Photo 고운 출처 THE 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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