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만 한 아우 없다’는 속담을 별로 신뢰하진 않는다. 다만형이 괜찮으면 동생도 괜찮을 것 같단 생각은 좀 하는 편이다. 무슨 근거나 논리가 있는 건 아니다. 그냥 경험칙이다. 주변에 그런 경우가 많았다. HR-V를 기대했던 건 뚱딴지처럼 바로 그 때문이었다. CR-V가 상품성이 좋은 차니까 HR-V도 왠지 괜찮을 것 같았다. 더군다나 현재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소형 SUV 시장에 내놓는 차를 단순히 구색 갖추기 식으로 급하게 준비해 되는 대로 내놓진 않았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예상은 잘 맞아들었다. 일단 생김새부터 좋았다. 앞모습은 혼다의 패밀리룩을 따랐지만 라디에이터 그릴에 두툼한 크롬을 억지로 끼워 넣거나 헤드램프 위로 길쭉한 크롬라인을 강제로 밀어 넣지 않았다. 인상이 자연스럽고 깔끔하다. 조금 심심한 느낌도 있지만 요란한 것보단 낫다. 옆모습은 얼핏 보면 쿠페 같다. 늘씬하다. 하지만 실제 지붕라인이 낮게 깔리진 않는다. 뒤로 가며 바짝 내리 꺾이는 건 윈도라인이다. 또 그 라인과 아래쪽으로 이어진 캐릭터 라인이 앞뒤 문짝 위로 깊은 주름을 잡아 잘 달리는 차라는 인상을 풍긴다. 이것이 쿠페 같은 느낌을 더욱 부추기기도 한다. 뒷모습은 무난하다. 리어램프가 좀 크다는 느낌도 들지만 거슬릴 정도는 아니다. 예쁜 엉덩이는 아니지만 보기 좋은 엉덩이이긴 하다. 리어램프가 커서 시인성은 좋겠단 얘기다.

 

소형 SUV지만 실내까지 소형은 아니다. 사실 소형 SUV는 말이 소형이지 크기는 거의 준중형 세단과 맞먹는 경우가 많다. 뭐, 가격도 준중형 세단과 비슷하고. 아무튼 실내가 대단히 넓다고 할 순 없지만 체급을 생각하면 별다른 불만을 제기할 일도 없다. 앞뒤 좌석을 적절히 분배하면 모든 승객이 큰 불편 없이 앉을 수 있다. 운전석도 나쁘지 않다. 지난해 10월호에 실린 빅테스트에서 <모터 트렌드> 미국판 에디터들은 HR-V의 운전석이 좁은 데다 편한 자세가 취해지지 않는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하지만 난 괜찮았다. 그들은 키가 180센티미터라고 했고 나는 182센티미터가 조금 넘는데도 불편함이 느껴지진 않았다. 헤드룸도 남았고 자세 자체도 괜찮았다. 물론 운전 자세라는 건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때문에 어떠한 불만이라도 나올 수 있다.

 

 

센터페시아는 깔끔하다. 복잡하게 이런저런 버튼이 덕지덕지 붙어 있지 않다. 비결은 터치 패널이다. 공조장치를 조작하는 부위가 터치패널로 이뤄졌다. 기술적으로 보면 별거 아닐 수 있지만 심미적으로 확실히 단정하고 보기 좋다. 시동을 끄면 터치패널의 조명도 꺼져 그저 검은 하이글로시 패널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위에는 7인치 터치스크린이 들어가 있다. 오디오와 자동차 세팅 등이 가능하나 시승차의 경우 내비게이션은 들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엔 교통정보 반영이 빠른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다지 걸림돌이 될 것 같진 않다.

 

엔진은 1.8리터 가솔린 엔진이 들어갔다. 터보 엔진들이 주름잡는 시대지만 HR-V는 아직 자연흡기 엔진을 품고 있다. 개인적으로 터보 엔진의 적극적인 사용에 대해 불만은 없지만 자연흡기 엔진의 자연스럽고 예측 가능한 반응에 더욱 마음이 쏠리긴 한다. HR-V의 i-VTEC SOHC 엔진의 경우에는 일반 양산차에 적용되는 가솔린 엔진이라면 이미 레드라인을 벗어났을 엔진회전수인 6500rpm에 이르러서야 최고출력인 143마력이 터져 나온다. 고회전 엔진이라고까지 칭송할 수준은 아니지만 엔진회전수를 높여 쥐어짜내듯 타는 재미가 있다.

 

 

변속기는 CVT다. 직결감이 좋다. 최고속도에 다다를 때까지 꾸준하게 속도를 높여준다. 하지만 폭발적인 느낌은 없다. 변속기의 특성과 가속 반응이 맞닿아 있다. 물론 엔진 자체가 활력이 넘치는 것도 아니긴 하다. 가속은 일반적인 2.0리터 중형세단의 반응을 생각하면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최고출력을 쏟아내는 구간까지 엔진회전수를 높이고 꾸준히 가속을 이어가면 꼭 고성능 경주차를 모는 것 같은 느낌이 약간 든다. 가장 큰 원인은 엔진음이다. 엔진회전수를 조금 높이 쓰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엔진음이 꽤 앙칼지게 들린다. 그런데 이 날카로운 엔진음이 꼭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경쟁 차종에 비해 실제 엔진음이 좀 크게 들렸기 때문이다. 가족과 함께 편하게 타는 일이 많은SUV일 텐데 방음은 좀 더 신경 쓰는 게 좋았겠다 싶다.

 

서스펜션 반응은 대체로 부드럽다. 고속에서 차체가 적당히 눌리면 약간 단단한 느낌도 들지만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편안하고 안락하다. 굽이진 길을 달릴 때도 욕심 부리지 않는 편이 좋겠다. 기대보다는 나았지만 그래도 SUV는 SUV다. 아무래도 무게중심이 높아 원심력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혼다는 패키징에 굉장한 장점을 보이는 회사다. 미니밴 오딧세이의 경우 예비 타이어를 2열석 바닥으로 옮기며 마지막열 시트를 바닥 아래로 완전히 가라앉게 만든 바 있다. 이번 HR-V도 원래 2열석 아래 있던 연료탱크를 1열석 아래로 옮기며 매직시트라는 걸 채용해 2열석 공간을 더욱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대한 내용은 140페이지에 잘 나와 있다. 아무튼 HR-V는 혼다의 세심함이 전체적으로 잘 묻어나는 소형 SUV다. 다양한 외부입력 단자를 마련해 장거리 여행의 지루함을 덜 수 있도록 했고 컵홀더 바닥을 2단계 높이로 활용할 수 있어 기다란 모양의 음료수도 안정적으로 보관할 수 있다. 보면 볼수록 ‘형만 한 아우’다. 뚱딴지같은 예감이 또 한 번 맞아떨어졌다.

 

 

SPECIFICATION

HONDA HR-V

기본 가격 3190만원 레이아웃 앞 엔진, FWD, 5인승, 5도어 왜건 엔진 4기통 1.8ℓ SOHC 16밸브, 143마력, 17.5kg·m 변속기 무단변속기 공차중량 1340kg 휠베이스 2610mm 길이×너비×높이 4295×1770×1605mm 복합연비 13.1km/ℓ CO₂ 배출량 130g/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