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 벤츠의 ‘메르세데스’는 ‘자비’라는 뜻으로, 스페인에서 소녀의 이름으로 널리 쓰이는 단어다. 다임러 애호가가 자신의 딸 이름을 레이싱카의 애칭으로 사용한 것을 기원으로 20세기 여명기부터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E 클래스를 시승하며 뜬금없이 메르세데스의 의미를 떠올리는 이유는 아마도 본능적으로 이 차의 중요성을 그리고 그 의미를 직감하는 것이리라. 그만큼 E 클래스는 메르세데스 벤츠에게 중요한 모델이었고 한국 시장에서는 더욱 중요하다. 브랜드 재정비를 마무리하는 모델로 이번 W213 E 클래스는 의미가 남다르다. 그 간절함은 지난 국내 프리뷰 행사에 무려 4000여 명의 언론 및 관계자를 초청해 초대형 행사를 치른 것에서 이미 드러났다. 일단 시장의 초기 반응은 성공적이다. 사전 계약만 1만대가 넘었고 지난 7월에는 단숨에 수입차 판매 1위모델로 등극했다. 게다가 이 성적은 최근의 구설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입차의 다수를 차지하는 디젤 모델 없이 4기통 E 300 모델 하나로이룬 것이다. 디젤 모델이 비로소 인증을 마치고 출격을 기다리는 8월 이후의 성적은 더욱 급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테일램프는 세로로 더 커 보이는 S나 C 클래스보다 가로 폭이 좀 더 넓게 보인다. 안정감을 강조한 설정이다.

 

E 클래스를 처음 만나면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이게 S 클래스인지 C 클래스 인지 헷갈린다고. 조금 전문적으로 말하면 패밀리 룩이 너무 지나치다는 것이다. 동의 하지만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메르세데스 벤츠가 S 클래스로부터 시작한 새로운 럭셔리의 정의가 C 클래스를 거쳐 E 클래스에서 완성되기 때문이다. 지금 벤츠에겐 모델의 차별화보다 새로운 럭셔리 DNA를 모든 모델에 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최근 메르세데스 벤츠의 인테리어 디자인과 그 질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새로운 수준에서의 통일이다. 단순한 패밀리 룩이 아니다.

 

사실 나도 C·E·S 클래스의 차이점을 찾으려 애썼다. 그리고 아주 사소한 부분에도 차별화가 섬세하게 적용됐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면 에어컨 송풍구의 개폐 다이얼이다. 겉만 봐서는 모두 크롬 도금 손잡이로 똑같아 보인다. 하지만 S 클래스의 다이얼은 전기식 스위치고 실제 송풍구를 여닫는 건 서브 모터가 담당한다. C 클래스는 개폐 날개와 다이얼이 직결된 기계식이다. E 클래스는 기계식이지만 기어에 실리콘 오일이 채워져 있는 소프트 터치 방식이다. 이렇듯 DNA는 공유하지만 아주 섬세한 차별화가 ‘계획돼 있는’ 것이 메르세데스 벤츠의 제품 기획 수준이다.

 

운전석에 앉으면 가장 먼저 탁 트인 개방감이 느껴진다. 이전 세대에 비해 낮고 운전자에게서 멀어진 대시보드 형상 덕분이다. 나처럼 키가 작고 팔다리가 짧은 체형을 가진 사람, 또는 키가 상대적으로 작은 동양 여성은 이전 E 클래스에서 올바른 운전 자세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페달 위치에 맞춰 시트를 앞으로 당기면 대시보드와 운전대가 지나치게 가까웠다. 의자 전체를 뒤로 밀고 걸터앉든가 아니면 등받이를 더 눕히고 살짝 누운 듯 운전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분히 서양인 체격에 맞춘 인간공학이다. 하지만 신형 E 클래스는 어떤 체격을 가진 사람이라도 이상적인 시트 포지션을 찾을 수 있다. 아시아와 여성 고객을 염두에 둔것 같다. 실제로 주행 감각에서도 이런 느낌은 계속된다. 이전의 메르세데스 모델들은 가속페달이 매우 깊게 밟혔다. 그러다 보니 다리가 짧은 내 체형이나 여성은 가속페달을 적당히 밟았다고 생각하는데도 차 입장에서는 페달에 발을 얹은 정도에 불과한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엔진의 부드러운 응답성은 특히 시가지에서 둔하고 민첩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메르세데스 벤츠니까 타기는 해도 이래저래 여성이 시가지에서 운전하기에 그리 편한 차는 아니었다. 하지만 신형 E 300은 달랐다. 운전자세가 꼭 맞았고, 가속 페달에 신속하게 반응하는 엔진의 응답성과 두툼한 저속 토크는 시내에서 필요한 순발력을 원하는 순간에 제공했다. 차의 움직임도 몰라보게 산뜻하다. 경쾌하지만 경박하지 않고 민첩하지만 신경질적이지 않다. 전과 다르게 누구라도 시내에서 편안하게 운전할 수 있는 친절한 세단으로 탈바꿈했다.

 

 

 

메르세데스 벤츠 브랜드 전략의 결정판으로 등장한 E 클래스가 내놓은 하이라이트 중 하나가 인텔리전트 드라이브, 즉 자율주행 기술이다. 이는 프리뷰 행사의 신기술 체험에서도 가장 많은 시간이 할애 됐을 정도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시승차는 출시 한정판으로 제공하는 드라이빙 어시스턴스 패키지 플러스가 적용된 최상급 E 300익스클루시브 4매틱 인텔리전트 드라이브 에디션이다. 차선이 없는 곳에서 주변 장애물과 앞차의 궤적을 읽어 자율주행을 이어가는 스티어링 파일럿을 작동시키자 차는 사거리에서 앞차를 따라서 좌회전을 했다. 프리세이프 플러스는 교차로에서 보행자나 차를 인식하고 제동과 회피 조향을 스스로 했다. 이미 실용성이 뛰어났던 주차 보조 기능은 전·후진 변속이나 제동조차도 운전자가 조작할 필요가 없다. 요컨대 E 클래스의 자율주행 기능과 능동 안전 기능은 우리도 이런 기능이 있다는 카탈로그의 한 줄이 아니라 실제 쓰임새가 아주 우수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하지만 E 클래스는 아직 새 차다. 그래서 아직 숙성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 과속방지턱 처럼 조금 큰 요철에서 충격을 흡수하지 못하고 그대로 실내로 전달하는 서스펜션과 서브 프레임은 부싱류의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9G 트로닉 9단 자동변속기는 속도를 줄일 때 3단에서 2단으로 변속하면서 충격을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E 클래스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뉴 럭셔리 전략을 완성하는 마침표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또한 자율주행으로의 의미 있는 한 걸음으로서도 큰 의의가 있다. E클래스는 메르세데스 벤츠, 더 나아가 자동차 산업에 메르세데스(자비)가 될 수 있을까? 내 대답은 ‘그렇다’이다.

 

 

SPECIFICATION

MERCEDES-BENZ E 300 4MATIC EXCLUSIVE INTELLIGENT DRIVE

기본 가격 8050만원 레이아웃 앞 엔진, 4WD, 5인승, 4도어 세단 엔진 직렬 4기통 2.0ℓ DOHC 터보 16밸브, 245마력, 37.7kg·m 변속기 9단 자동 공차중량 1790kg 휠베이스 2940mm 길이×너비×높이 4925×1850×1460mm 복합연비 10.3km/ℓ CO₂ 배출량 169g/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