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일 인제스피디움에서 F 페이스 시승 행사가 열렸다. 잠깐, 이 한 줄을 읽고 귀를 의심하는 독자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F타입 말고 F 페이스를 인제스피디움에서 시승했느냐고? 맞다. F 페이스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재규어 최초의 SUV다. 그렇다면 재규어는 왜 SUV를 서킷에 모았을까? 나 역시 그 이유가 몹시 궁금했다. 그리고 서킷을 두 바퀴쯤 돌고 나서 알았다. 재규어는 영리했다. 이날 재규어가 데려온 시승차는 2.0리터 디젤 엔진을 얹은 20d와 3.0리터 디젤 엔진을 얹은 30d 두 가지였다. 우선 30d 퍼스트 에디션으로 서킷을 돌았다. 인제스피디움은 고저차가 심해 코스가 어렵기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이런 서킷을 30d는 출렁이지 않고, 허둥대지도 않고 날렵하게 달려 나갔다. 뒷바퀴를 지지하는 인티그럴 링크 서스펜션이 엉덩이를 노면에 착 붙여 헤어핀 구간을 돌아 나갈 때도 흔들리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랜드로버의 출렁이는 느낌을 예상했는데 F 페이스는 내 예상을 벗어나는 움직임을 보여줬다. 세 바퀴째 자신감이 붙자 속도를 높여 헤어핀 구간에 진입했다. 하지만 F 페이스는 의연했다.

F 페이스 역시 센터콘솔에 기어를 변속하는 둥근 드라이브 셀렉터가 있다. 그 아래에는 눈길과 일반 도로, 에코 모드와 다이내믹 모드로 바꿀 수 있는 버튼이 있다.

타이어에선 비명 소리가 흘러나왔지만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무게중심이 높은 SUV가 이런 움직임을 보인다는 게 놀라웠다. 30d보다 120마력 낮은 출력을 내는 20d는 서킷에서 확실히 답답했다. 쭉 뻗은 직선 코스에선 가속페달을 아무리 짓이겨도 시원스레 내달리지 못했다. 하지만 매끈하면서 날카로운 움직임은 30d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킷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준 F 페이스를 오프로드로 데려갔다. 재규어는 인제스피디움 근처에 있는 한석산 오프로드 코스를 F 페이스의 두 번째 시승 코스로 잡았다. 정상까지 울퉁불퉁한 길이 이어진 진짜 오프로드다.

이곳에선 재규어의 저속 크루즈컨트롤 ASPC가 빛을 발했다. 내리막길에서 ASPC 버튼을 누르고 크루즈컨트롤 버튼으로 속도를 시속 5킬로미터로 세팅하자 차가 스스로 브레이크를 밟으며 언덕을 내려갔다. 언덕을 오를 때도 마찬가지였다. 가속페달과 브레이크 페달을 밟을 필요가 없으니 조향에만 신경 쓰면 됐다. 재규어는 보여주고 싶은 게 많은 모양이었다. 오전 10시에 시작된 행사는 오후 7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2시간 남짓 울퉁불퉁한 오프로드를 달린 뒤 완전히 녹초가 됐다. 그리고 F 페이스로도 충분히 오프로드를 달릴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 재규어가 말하고 싶었던 것도 이게 아닐까? 하지만 서킷에서의 여운이 좀 더 진하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