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타의 미라이

청명한 하늘이 인상적이었던 지난 6월 어느 날, 도쿄 타워가 우뚝 솟아 있는 일본 도쿄도 미나토구에서 토요타 미라이와 다시 만났다. 같은 날 부산에서는 모터쇼를 통해 미라이가 국내 최초로 전시되고 있었다. 색상도 퓨어 블루 메탈릭으로 같았다. 이날 취재는 토요타가 미디어를 대상으로 매년 진행하고 있는 ‘토요타 하이브리드 스페셜리스트 아카데미’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방점은 ‘하이브리드’에 있지만 토요타는 첫날부터 ‘수 소’를 강조했다.

 

미라이가 한 대 전시된 작은 쇼룸에는 낯선 수소 연료전지차의 설명을 들으려는 기자들로 북적였다. 일단 첫인상은 프리우스와 비슷했다. 쇼룸의 스태프는 미라이의 옆 라인을 물방울 모양으로 그려냈다고 설명했다. 사이드 그릴은 과하게 큰데 이는 파워트레인 특성상 공기를 많이 빨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연료전지가 앞 좌석 바닥 쪽에 배치돼 차체 높이는 1535밀리미터로 높은 편이다. 수소 탱크는 뒷좌석 아래와 뒤 타이어 쪽에 하나씩 있고, 그 위에는 니켈수소 배터리가 자리를 잡았다.

 

 

 

미라이의 구동 원리는 간단하다. 물의 전기분해를 거꾸로 생각하면 된다. 물의 화학식은 H2O로 수소와 산소가 결합해 만들어진다. 전기로 물을 분해하면 음극에선 수소, 양극에선 산소가 발생한다. 이 원리를 반대로 이용해 연료전지에서 수소와 산소를 화학적으로 결합해 전기를 만들어낸다. 이 전기는 부스트 컨버터를 통해 650V의 높은 전압으로 바뀌어 보닛 안에 있는 전기모터로 흘러 들어가 차를 움직인다. 모터를 돌리고 남은 전기와 회생제동으로 생긴 전기는 니켈수소 배터리에 저장돼 구동력에 보탬을 준다. 배기가스는 나오지 않으며 대신 수소와 산소의 화학적 반응으로 생긴 물이 나온다.

 

연료전지는 370장의 셀로 구성돼 최고 출력 155마력의 힘을 낸다. 셀은 수소와 산소가 결합하는 곳이다. 미라이를 상용화하기 위해서는 이 셀의 소형화가 필수적이었다. 셀이 작아져야 효율적으로 더 많은 전기를 만들어낼 수 있고 연료전지에 사용되는 비싼 재료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쌓아온 하이브리드 기술도 미라이 탄생에 한몫 거들었다. 미라이도 원동력을 얻는 방법만 다를 뿐 구동 시스템은 전기차이기 때문이다. 미라이는 토요타의 하이브리드 차에서 사용하는 전기모터와 파워 컨트롤 유닛을 사용하고 있다.

 

 

공생과 상생 이와타니 수소 스테이션 옆에 미라이 단독 쇼룸이 붙어 있다.

 

한 가지 인상적인 건 차가 대용량 전력 공급원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지진과 화산 폭발이 자주 일어나는 곳이라 재난에 대한 대비가 탄탄해야 한다. 예상치 못한 재해가 닥쳐 전력이 끊어졌을 때 미라이는 최대 약 60킬로와트시의 전력량을 제공한다(수소 잔량에 따라 다르다). 전기는 트렁크 내에 설치된 차데모(CHAdeMO) 단자에 별도의 플러그를 꽂아서 사용할 수 있다.

 

미라이 쇼룸 옆엔 이와타니 산업이 직접 운영하는 수소 스테이션이 있다. 수소 스테이션의 핵심은 소형 압축기다. 이곳에선 독일 린덴사(社)가 개발한 ‘이오닉 압축기’를 사용하고 있다. 이와타니 산업 관계자가 주유기 박스처럼 생긴 압축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오닉 압축기는 이온 액체의 비휘발성과 윤활성을 활용해 수소를 압축합니다. 종래의 피스톤 방식보다 내구성이 좋고 무엇보다 부피를 작게 만들 수 있어 도쿄와 같은 도시 충전소에 적합하지요.” 충전소 안쪽엔 10미터 높이의 액화수소 탱크가 있다. 이곳에 액체 상태로 저장된 수소는 기화기와 압축기를 거쳐 수소 디스펜서를 통해 차로 들어간다. 처음 0.6메가파스칼 압력의 수소는 총 5번의 압축을 거쳐 마지막엔 82메가파스칼까지 압축돼 나온다.

 

관계자의 설명을 듣던 도중 어느 미라이 운전자가 실제로 충전소를 찾았다. 우르르 몰려 있는 한국 기자단을 본 운전자는 당황스러웠는지 충전기까지 쉽게 진입하지 못했다. 우리가 자리를 피하자 그제야 차를 충전기 앞에세웠다. 담당 직원이 나와 충전 플러그를 꽂고 디스펜서의 녹색 버튼을 누르자 충전이 시작 됐다. 이와타니 산업 관계자가 설명을 덧붙였다. “아직은 충전 관련 자격을 보유한 사람만 충전할 수 있습니다. 미래에 수소차가 대중화 된다면 직접 충전할 수도 있겠지요. 지금은 하루 평균 13~14대의 수소 연료전지차가 충전소를 찾고 있습니다.” 운전자가 충전한 수소용량은 1.2킬로그램. 그는 1320엔을 결제하고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이와타니 수소 스테이션의 수소 가격은 1킬로그램당 1100엔으로 미라이는 최대 5킬로그램까지 충전할 수 있다. 완전히 충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최장 3분이다. 연료 보급 시간은 내연기관차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완전히 충전 시 주행 가능 거리는 650킬로미터(JC08 모드 기준)다.

 

수소 폭발의 위험은 없는지 궁금했다. 이에 대해 토요타의 나카이 히사시 기술홍보부장이 괜한 걱정이라며 선을 그었다. “미라이는 수소가 유출되지 않도록 탱크를 견고하게 설계했습니다. 만에 하나 수소가 유출되면 센서가 이를 감지해 연료전지 시스템이 곧바로 멈춥니다.” 미라이의 수소 탱크 모형을 보니 더욱 쉽게 이해가 됐다. 수소 탱크는 총 세 개의 층으로 구성되며, 그 층을 다시 탄소섬유 강화 플라스틱이 겹겹으로 감싼다. 이를 통해 70메가파스칼의 고압도 견딜 수 있다. 이는 수심 7000미터 아래의 수압과도 같다. 나카이 기술 홍보부장이 말을 이었다. “수소는 공기보다 가벼워 확산이 잘돼 일상에서 폭발이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만약에 사고로 수소 탱크가 파손되더라도 수소가 녹아서 퍼지도록 설계해 폭발 위험은 없습니다.”

 

해가 질 무렵, 미라이를 직접 타보기 위해 메가웹으로 향했다. 메가웹은 토요타가 지난 1993년 도쿄 오다이바에 지은 복합형 자동차 테마파크다. 모든 토요타 차를 둘러볼 수 있고 시승도 할 수 있다. 이곳에서 미라이를 시승했다. 단 3분 동안만. 시승 담당자와 함께 1.3킬로 미터의 짧은 트랙을 두 바퀴 돌아보는 것에 만 족해야 했다. 3분 동안 미라이의 뒷좌석과 운전석에 타본 소감은 조용하고 무덤덤했다. 함께 탄 시승 관계자는 “이 차는 시속 175킬로미터까지 달릴 수 있고 V6 엔진과 비슷한 성능을 냅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내가 속도를 시속 50킬로미터 이상 올리면 “워워”를 외치며 감속하라고 종용했다.

 

 

시승이 끝나고 미라이의 배출가스 격인 물이 나오는 장관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미라이는 1킬로미터당 60~80cc의 물을 배출한다. 타인의 주차장 등 다른 사람을 배려하기 위해 물을 모았다가 한 번에 배출하는 기능도 있다. 스티어링휠 옆에 있는 ‘H2O’ 버튼을 누르면 전기를 만들고 생성된 물이 뒷바퀴 사이 아래 구멍에서 한꺼번에 바닥으로 쏟아진다. 그 모습이 마치 코끼리가 오줌 누듯 시원하다. 문득 호기심이 들어 옆에 서 있던 메가웹 관계자에게 이 물이 마실 수 있는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가 “아노…”로운을 떼며 말했다. “순수하게 수소와 산소가 결합해서 만들어진 물이라 깨끗하긴 하지만, 배출되는 과정에서 불순물이 섞일 수 있으므로 마시는 건 권하지 않습니다.” 난 미라이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손에 들고 있던 생수로 갈증을 달랬다.

 

 

토요타의 미래

토요타는 미래에 석유를 대체할 연료로 전기와 수소, 바이오 연료, 천연가스 등을 두고 몇가지 기준으로 평가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 연료 공급량, 주행거리의 효율성, 급유 시간, 인프라 등이 그 기준이다. 결론은 전기와 수소로 좁혀졌다. 짧은 거리는 전기, 긴 거리는 하이브리드와 수소 연료전지로 주행거리에 따라 모빌리티의 영역을 분리했다.

 

토요타는 현재 하이브리드에 집중하고 있다. 세단, SUV, 미니밴, 트럭 가릴 것 없이 모든 라인업에 하이브리드를 적용하고 있다. 그 결과 올해 4월 말까지 전 세계에서 총 900만대의 하이브리드 모델을 팔았다. 지난 2012년 이후부턴 매년 100만 대 이상씩 늘었다. 하이브리드는 토요타 내에서도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하이브리드 기술이 발달해야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수소 연료전지도 진화할 수 있기에 하이브리드는 토요타가 계속 이끌어야 할 핵심 가치이자 기술이다.

 

일본어로 ‘미래’를 뜻하는 미라이는 토요타가 처음으로 상용화한 수소 연료전지차다. 지난 2014년 12월부터 일본에서 판매가 시작됐고, 이어 유럽에선 2015년 9월, 미국에선 10월부터 팔고 있다. 일본에서 처음 출시했을 때 한 달 만에 1500대가 팔렸으며 지난해 말엔 누적 3000대 이상 판매된 것으로 집계됐다. 수요가 공급을 월등히 넘어 아직 차를 인도받지 못한 소비자가 대다수다. 지금 계약해도 2년 뒤에나 받을 수 있다. 미라이보다 1년 먼저 출시된 현대 투싼 ix 수소 연료전지 모델이 2014년 출시 이후 올해 6월까지 총 77대 판매된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미라이의 가격은 723만6000엔으로 일본에서 판매되는 토요타 라인업에서 대형 세단 센추리에 이어 두 번째로 비싸다. 하지만 각종 세제 혜택과 정부 보조금으로 최저 397만 3100엔에 구입할 수 있다. 한국 돈으로 4200만원이 웃도는 금액이다. 토요타는 공급이 많아지면 이 가격도 점점 내려가리라 예측했다. 미라이의 올해 생산 목표는 2000대다. 나카이 기술홍보부장이 말했다. “내년에는 연간 3000대 규모로 생산량을 50퍼센트 늘릴 계획입니다. 도쿄 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 이후에는 연간 3만 대 이상을 목표로 잡고 있습니다.” 수소 연료전지차를 그냥 스쳐 지나가는 라인업으로 두지 않겠다는 뜻이다.

 

 

수소 연료전지차는 차만 만든다고 무조건 탈 수 있는 건 아니다. 전기차처럼 충전 인프라가 중요하다. 일본에선 이를 위해 토요타, 혼다, 닛산 3개 사가 손을 잡고 수소 스테이션 보급 확대에 나섰다. 지난 5월 기준 일본의 수소 스테이션은 77곳이다. 이 중 수도권인 관동 지역에만 35곳이 몰려 있다. 일본 정부와 3개 자동차 회사, 에너지 업체 등은 2030년까지 전국에 900개의 수소 스테이션을 짓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토요타는 ‘좋은 차 만들기’라는 개념 아래 TNGA(Toyota New Global Architecture)라는 플랫폼 전략을 마련했다. 신형 프리우스부터 적용된 이 전략은 곧 나올 캠리와 더 나아가 렉서스 브랜드에도 적용할 계획이다. 더불어 수소 연료전지차 개발과 생산, 인프라 확대에도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의지다. 토요타는 수소 연료전지차 시장 확대를 위해 관련 특허 실시권 5680개를 무상으로 제공 중이다. 또한 토요타 그룹의 히노 자동차는 수소 연료전지 버스 상용화를 서두르고 있고 토요타 자동직기는 수소 연료전지 지게차 개발을 추진 중이다. 아이신 정기와는 가정용 연료전지를 만들고 있다. 토요타는 미래에도 여전히 하이브리드가 중심에 있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와 수소 연료전지차가 각자 좌의정과 우의정 역할을 할 것이다. 어쩌면 기름과 엔진 대신 배터리와 전기모터로 내부 패러다임 자체를 바꿀지도 모르겠다. 일본에서 경험한 토요타는 워밍업이 끝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