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5일, F1 브리티시 GP 연습주행에서 제바스티안 페텔의 경주차가 특별한 장치를 달고 서킷에 나왔다. 콕핏 앞에 달린 위시본 형태의 바로 페라리가 개발 중인 드라이버 안전장치다. 아직 정식 명칭은 없지만 드라이버 주위를 감싸고 있어 헤일로(Halo)라 부른다. 헤일로는 꽤 오래전부터 F1이 추진하고 있는 드라이버 안전장치다. 2009년 F2 경주 중 앞차에서 떨어져 날아온 바퀴에 머리를 부딪혀 드라이버(헨리 서티스)가 사망하는 사고가 났고, 같은 해 펠리페 마사는 날아온 스프링이 헬멧을 강타해 두개골이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다. 시속 350킬로미터를 넘나드는 경주인 만큼 서킷의 작은 잔해도 드라이버에게 치명상을 줄 수 있다. 따라서 FIA는 싱글시터 드라이버를 위한 안전장치를 강화할 것을 밝혔고 그에 따라 페라리, 레드불, 메르세데스는 다양한 형태의 안전장치를 고안하고 있다.

페라리의 헤일로는 올해 초 선보인 것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소재를 탄소섬유에서 티타늄으로 바꿨고 앞쪽으로 조금 더 연장해 충돌 시 충격을 좀 더 분산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연습주행을 마친 페텔은 헤일로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드라이버의 안전은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하지만 제가 경험한 헤일로는 훌륭하다고 하기 힘드네요. 시야 제약이 많거든요.” 고속에서 시야가 좁아지는 현상까지 더해지는 걸 감안하면 이는 꼭 해결해야 할 문제다.

레드불 X2010 레드불이 선보인 X2010 콘셉트는 콕핏을 캐노피로 완전히 덮고 있다. 공력성능을 높이면서 시야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경주차 화재 시 빨리 탈출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레드불은 에어로스크린으로 시야를 해결하고자 했다. 헤일로처럼 바와 필러가 없어 시야를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곡면 스크린은 왜곡 현상을 만들 수 있다. 또한 오일 등이 스크린에 묻을 경우 드라이버가 자체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없다. 에어로스크린을 단 경주차 테스트를 마친 다니엘 리카도는 이렇게 말했다. “시야는 아주 좋습니다. 문제없어요. 하지만 엔진 사운드가 달라졌어요.” 에어로스크린이 공명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애초 FIA는 내년 시즌부터 헤일로 또는 스크린 형태의 드라이버 안전장치를 사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브리티시 GP에서 열린 FIA와 F1 테크니컬 디렉터의 미팅에서 아직 완벽한 개선책이 없는 것으로 결론지었다고 한다. 더불어 페라리와 포스인디아는 헤일로가 충돌 시 또 다른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레드불 대표 크리스천 호너는 투표를 통해 헤일로 장치를 내년에 도입할지 아니면 미룰지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드라이버 사이에서도 헤일로는 뜨거운 감자다. 알로소와 페텔은 헤일로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반면 해밀턴은 “최악의 비주얼”이라며 “만약 드라이버가 가부를 선택할 수 있다면 난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훌켄베르크도 “지금의 F1 경주차는 충분히 안전하다. 이런 추악한 장치를 달고 서킷을 달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60년이 넘는 F1 역사에서 드라이버 머리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는 없었다. 헤일로 등의 구조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속도에 제약을 가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명은 존엄하지만 레이싱의 절대적 가치인 스피드도 포기할 수 없다. FIA와 각 팀의 고민에도 불구하고 헤일로 도입이 몇 년간 지체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